2017년 독서일지
2017년에 처음 읽은 책은 프리모 레비의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마지막 날에도 읽었던 책은 버트런드 러셀의 <결혼과 도덕>이었다. 좋은 책을 어느 해보다 많이 접하고 읽을 수 있어서 행복한 1년이었다. 개인적으로 다사다난하고 여러 가지로 지치는 한 해였지만, 좋은 책이 있었기에 무사히 트랙을 한 바퀴 돌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특별히 좋았던 책들을 돌아보면, 연초에 읽었던 프리모 레비의 책들을 빼놓을 수 없다. 생존자이자 증언자인 프리모 레비가 쓴 두 권의 책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이것이 인간인가>는 아우슈비츠의 비극에 대한 생생한 보고서인 동시에 인간 존재에 의문 부호이기도 했다.
"인간의 기억은 놀라운 도구인 동시에 속이기 쉬운 도구이다. 우리 안에 누워 있는 기억은 돌 위에 새겨진 것이 아니다."
레비의 진술은 그가 얼마나 탁월한 관찰자였는지 보여준다. 아우슈비츠가 나치 독일의 문제였는지 아니면 인간 존재의 문제였는지는 올해 상반기 내내 중요한 화두였다. 이미 여러 작가가 비슷한 고민을 했고 그들의 생각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독서가 됐다. 예컨대 로맹 가리가 쓴 <인간의 문제>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과연 인간이 나치인지 아닌지 알아볼 때도 되었습니다. 나치즘이 패배했지만 우리의 승리가 아무것도 입증하지 못했다는 결론에 점차 도달했으며 그것이 끔찍하지만 진정한 인간의 진면목을 보는 순간이 아니었는지 자문할 수 있습니다."
비교적 최근에 읽은 수전 손택의 <타인의 고통>도 앞선 책들과 맥락이 이어진다. 사진을 통해 전해지는 이미지가 실제 있었던 사건을 얼마나 재현할 수 있느냐의 문제, 집단적 기억의 가능성에 대한 탐색,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지는 전쟁의 이미지를 실시간으로 받아볼 수 있는 시대의 윤리관 등. 새로운 질문과 대답이 길지 않은 책 곳곳에 가득했다. 모든 지적인 문장들을 뒤로하고 개인적으로는 아래 문장이 베스트였다.
"따라서 화해한다는 것은 잊는다는 것이다. 즉, 화해하려면 기억이 불완전하고 한정되어 있어야만 한다."
2분기 들어서는 '혐오'라는 감정에 대한 책을 몇 권 읽었는데 참 좋았다. 주디스 버틀러의 <혐오 발언>은 내 수준에서 온전히 이해하기 쉽지 않은 책이었지만, 아래 같은 통찰력 있는 문장들을 읽는 것만으로도 많은 공부가 됐다.
"만일 혐오 발언이 차별 행위로 간주된다면, 혐오 발언은 법원이 결정해야 되는 문제가 되며, 따라서 '혐오 발언'은 법원이 그렇다고 하기 전까지는 혐오스럽거나 차별적이라고 간주되지 않는다. 혐오 발언이 있다고 판결하는 법원이 있기 전까지는, 그리고 그런 법원이 없다면, 그 용어에 대한 완전한 의미에서의 혐오 발언이란 없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혐오 발언은 국가의 결정, 즉 국가의 승인된 발언이며, 국가는 그 혐오 발언이라는 행위를 생산한다."
마찬가지로 마사 누스바움의 <혐오에서 인류애로>도 성적 지향과 법적 권리에 대한 다양한 단서를 제공하는 책이었다. 누스바움은 혐오라는 감정이 민주 사회의 입법 기준이 돼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누스바움은 미국의 입법 과정에서 혐오라는 감정이 어떻게 성적 지향을 억제하는 방향으로 기능했는지를 탐색한다. 누스바움 같은 지성이 있다는 건 미국 사회뿐 아니라 인류 모두가 감사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감탄하며 책을 읽었다.
"우리가 먼저 한 가지 덕목, 즉 이 게이 청소년을 비롯해 게이 시민, 레즈비언 시민들의 경험을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혐오는 도덕적 둔감성에 의지한다. 다른 인간을 끈적거리는 민달팽이나 역겨운 쓰레기 조각으로 보는 일은, 그 사람의 눈을 통해 세상을 보고 그 사람의 느낌을 경험해보고자 하는 진지하고도 선의에 찬 시도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을 때에나 가능하다. 혐오는 타인에게 인간 이하의 속성을 전가한다.
오직 그 사람의 눈을 통해 본 세상이 어떨지를 상상할 때에만 인간은 다른 사람을 '무언가'가 아닌 '누군가'로 인식하는 지점에 도달한다."
위로가 되어주는 책들도 많았다. 패티 스미스의 <M트레인>은 혼자 제주를 여행하며 읽었다. 며칠 동안 특별한 계획도 없이 올레길을 뚜벅뚜벅 걷는 여행이었고, 느린 발걸음처럼 천천히 한 장 한 장 공들여 읽었다. 고독의 시간을 함께 해준 패티 스미스에게 심심한 감사의 말을 전한다. 김현 선생의 <행복한 책읽기>는 사회 속의 문학의 역할과 개인의 독서 생활에 대한 여러 가지 흥미로운 관점을 제시해준 책이다. 아름답다의 아름은 알음알음의 알음, 즉 앎의 대상이라는 문장이 기억에 남는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만이 교과서적인 것은 아니다. 익명의 권위가 집단화될 때 그것이 가르치는 것은 다 교과서적"이라는 문장은 왜 사람들이 김현김현 하는지 알 수 있게 해준다.
책에 지칠 때가 있다. 사는 게 이렇게 피곤하고 지치는데 읽어야 할 책이 침대 머리맡에 쌓여 있는 걸 보면 한숨만 나올 때가 있다. 그럴 때 김현 선생의 책이 큰 도움이 됐다. 책읽기는 행복한 일이다.
좋은 소설도 많았다. 이탈로 칼비노의 <우주만화>, 줄리언 반스의 <10 1/2 장으로 쓴 세계 역사> <시대의 소음>, 이언 매큐언의 <넛셸>, 로맹 가리의 <하늘의 뿌리> 같은 소설이 손에 꼽을 만큼 좋았다. 특별히 더 좋았던 소설로는 우선 페터 회의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이 있다. 스밀라는 그간 읽은 소설 속 캐릭터 중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남성, 여성을 떠나서 그냥 최고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캐릭터가 주는 몰입감이 컸다. 소설가 김연수가 스밀라를 향해 "그녀에게 마음이 뺏기지 않은 사람은, 적어도 내가 아는 세상에는 없다"는 찬사를 남겼는데 진심으로 공감한다.
최은영의 <쇼코의 미소>는 예상대로 좋았다. 신형철의 말대로 '진실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럴 것이라고 예상하고 책을 펼쳤음에도 감동은 한 문장 한 문장에 스며들어 있어서 미처 깨닫기도 전에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노벨문학상의 주인공이었던 가즈오 이시구로의 여러 작품 중에는 <녹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이시구로가 음악을 했다면 어떤 위로의 멜로디를 만들었을지 상상하는 재미가 컸다.
지난해에는 모처럼 김승옥의 단편들을 꺼내 읽었다. <환상수첩>을 읽었느냐는 후배의 말에 내용이 바로 기억나지 않아 부끄러웠기 때문인데, 계기가 어찌 됐든 마음을 비우는 독서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무진기행>은 15년 전에도, 10년 전에도, 5년 전에도, 작년에도 매번 좋았다. 그리고 읽을 때마다 조금씩 감상이 달라지는 부분들을 보며 나이를 먹어가는 의미를 헤아릴 수 있어서 좋다고 말하고 싶다. 환상수첩은 그야말로 잊고 있던 김승옥의 단편이었는데 다 읽고 나서 부단히도 울었던 기억이 난다. 뒤에 남겨둔 것, 일부로든 실수로든 놓고 온 것들, 다시는 가지러 갈 수 없는 것들을 떠올리게 만드는 소설이었다.
지난해 읽은 소설 중에 가장 좋았던 건 <깊은 강>이다. 일본 소설가 엔도 슈사쿠가 말년에 쓴 깊은 강은 신과 인간의 관계, 죽음과 구원의 이야기를 다룬다. 엔도 슈사쿠를 종교 소설가 정도로 생각하고 제대로 읽지 않았던 게 후회될 정도로 좋았다. 모두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종교가 있든 없든, 신을 믿든 믿지 않든 이 책에서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란다.
"신이란 당신들처럼 인간밖에 있어 우러러보는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인간 안에 있으며, 더구나 인간을 감싸고 수목을 감싸고 화초도 감싸는 저 거대한 생명입니다."
p.s. 2017년에 가장 좋았던 노래를 단 하나만 꼽으라면 브로콜리너마저의 <잊어버리고 싶어요>다. 길고 지난했던 1년을 행복한 기억으로 마무리하게 해준 고마운 노래다.
잊혀지지 않았으면 하는 것들이
바보 같은 일상에 밀려가는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