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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고교야구 여자 매니저가 피터 드러커를 읽는다면

스물일곱 번째 리뷰_매니지먼트 리뷰일수도

by 이기자

야구장, 이 작은 다이아몬드 안에 인생이 담겨 있다. 하나의 야구 경기는 보는 이에 따라 감동적인 드라마가 되기도 하고, 열정 넘치는 한 편의 성장영화가 되기도 하고, 눈물의 씨앗이 될 때도 있다. 인생사 희로애락이 야구장에 담겨 있다.


야구를 통해 경영을 소개하는 책이 있다.

'만약 고교야구 여자 매니저가 피터드러커를 읽는다면'

제목만 보더라도 이미 이 책을 사지 않을 수가 없다. 열정의 고교야구, 아름다운 여자 매니저, 공부해야 만 하는 피터 드러커가 제목에 모두 들어가 있으니 도망칠 방법이 없다.

이 책을 사는데 표지도 한 몫 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순 없다.

간단한 스토리의 소설이다. 고등학교 2학년생이던 가와시마 미나미는 어느 날 갑자기 야구부의 여자 매니저가 되기로 한다. 막상 들어가서 본 야구부는 엉망진창. 미나미는 야구부를 다음 해 고시엔 대회에 내보내겠다는 결심을 한다. 일본 전국에 있는 4000여개 고등학교 야구부가 예선을 거쳐 49개만을 추린다. 이 49개 야구부가 고시엔 구장에서 우승을 다투는 대회가 고시엔 대회다. 일본 야구팬들에게는 꿈과 열정의 집합소다.


하지만 미나미가 있는 도쿄 서쪽의 호도쿠보 고등학교 야구부는 고시엔 대회는 꿈도 꾸지 못하는 그저 그런 수준의 팀이다. 팀의 기강은 무너졌고, 선수들은 연습도 제대로 나오지 않고, 감독은 무언가 지레 겁을 먹고 있다. 이 엉망진창인 팀을 미나미가 1년 동안 잘 추슬러서 고시엔 대회에 나가는 것이 스토리의 큰 얼개다.


초보 매니저인 미나미의 무기가 바로 피터 드러커다. 피터 드러커는 미국의 경영학자로 현대 경영학을 창시한 인물로 일컫어진다. 한정된 재원을 어떻게 관리해서 최선의 성과를 낼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으로 평생을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피터 드러커는 연구만 하고 평생을 보낸 사람이 아니다. 코카콜라, GE, IBM, 인텔 등 세계적인 대기업과 비영리단체들을 위한 컨설턴트로도 활약했다. 이론과 현실을 겸비한 경영학의 전설인 셈이다.


피터 드러커는 수많은 책을 썼는데 그중에서도 '매니지먼트(management)'는 조직 관리에 필요한 거의 모든 내용이 담겨 있는 피터 드러커 경영학의 결정체다. 고교 2학년 야구부 매니저인 미나미는 바로 이 책을 들고 엉망진창 호도쿠보 야구부의 체질 개선에 나선다.


미나미는 난관에 봉착할 때마다 피터 드러커의 책에서 해결책을 찾아낸다. 야구가 인생이라면, 피터 드러커는 인생을 좀 더 효율적으로 만들어주는 참고서인 셈. 참고서의 내용을 조금 들여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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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관리하는 능력과 함께 의장 역할이나 면접 능력은 배울 수 있다. 관리 시스템, 승진과 포상 제도를 통해 인재 개발에 효과적인 방법을 강구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근본적인 자질이 필요하다. 진지함이다.(18p)


1930년대의 대공황 때, 수리공에서 시작해 캐딜락 사업부의 경영을 책임지기에 이른 독일 태생 니콜라스 드레이슈타트는 "우리의 경쟁 상대는 바로 다이아몬드나 밍크코트다. 우리 고객이 구입하는 것은 운송 수단이 아니라 사회적 지위다"라고 말했다. 이 말이 파산 직전까지 내몰렸던 캐딜락을 구했다.(49p)


조직의 측면에서 보면 사람이란 비용이자 위협 요소이기도하다. 하지만 일부러 비용을 부담하거나 위협을 감당하려고 사람을 쓰지는 않는다. 누군가를 고용하는 까닭은 그 사람이 지닌 장점이나 능력 때문이다. 조직의 목적은 사람의 장점을 생산으로 연결하고, 그 사람의 약점을 중화시키는 것이다.(119p)


"오랜 기간 마케팅에 대해 이야기는 해왔지만, 소비자운동이 강력한 대중운동으로 등장했다는 사실은 결국 마케팅이 제대로 실천되지 않았다는 말이다. 마케팅에 있어 소비자운동은 수치다."

이 내용을 읽고 미나미는 깨달았다.

"부원들이 연습을 게을리한 것은 일종의 '소비자운동'이었어. 그들은 연습을 빼먹는, 즉 보이콧하는 것으로 훈련 내용 개선을 요구하고 있었던 셈이야."(122p)


성과는 백발백중이 아니다. 백발백중 성과를 올리는 일은 불가능하다. 성과란 장기적으로 보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결코 실수나 실패를 모르는 사람을 믿어서는 안 된다. 그런 사람들은 무난한 일, 별 볼 일 없는 일만 해온 사람들이다. 성과란 야구의 타율 같은 것이다. 약점이 없을 수 없다. 약점만 지적당하면 사람들은 의욕도 잃고 사기도 떨어진다. 뛰어난 사람일수록 많은 실수를 저지른다. 뛰어난 사람일수록 새로운 일을 시도하려고 든다.(172p)


조직원들이 성과보다 노력이 중요하다는 착각을 하게 해서는 안 된다. 일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성과를 위해 일해야 하며, 군살을 기르는 게 아니라 힘을 길러야 하고,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위해 일할 능력과 의욕을 갖도록 해야 한다.(202p)


고교 야구를 통해 경영학을 맛본 다는 것도 흥미롭지만, 사실 이 책의 미덕은 재미에 있다. 그렇다. 이 책은 재밌다. 야구를 좋아하는 독자의 80% 정도는 이 책에 빠져들 것이다. 야구를 좋아하는데다 경영학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90% 정도는 이 책을 좋아할 수밖에 없다. 야구를 좋아하고 경영학에 관심이 있는데다 AKB48을 좋아한다면 100%다. 이 책의 작가인 이와사키 나쓰미는 미대 출신의 방송 작가다. 그는 일본 최고의 아이돌 그룹인 AKB48 프로듀스 작업에도 참여했는데, 실제로 미나미라는 캐릭터는 AKB48 멤버 중 한 명을 모델로 삼았다고 한다. 방송 작가가 실제 아이돌 그룹 멤버를 모델로 삼아서 만든 캐릭터이니 생생한 재미가 더해진다.

3.JPG 모시도라는 애니메이션으로도 만들어지고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보고싶다.

이 책은 2010년 일본에서 모시도라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를 제치고 2010년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다. 모시도라는 만약이라는 뜻의 모시(もし)와 드러커의 일본식 발음 중 도라(ドラ)를 합친 말이다. 일본 언론들은 이 책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자 그 이유를 분석했다. 그중에는 일본의 정치인들에게 리더십이나 매니지먼트 능력이 없다는 점을 꼽는 경우도 많았다. 그렇다면 같은 이유로 이 책은 2015년 한국인들의 필독서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소설 속 미나미의 깨달음이 인상적이다.

"야구부에서 감동을 원하는 고객이 있지. 그래, 그 애가 바로 고객이었던 거야. 그리고 그 애가 원하는 것이 바로 야구부에 대한 정의였어. 야구부가 해야 할 일은 '고객에게 감동을 주는 것'이야. 야구부에 대한 정의는 '고객에게 감동을 주기 위한 조직'이었던 거야."(55p)

도대체 이 나라 정치인 중에는 국민에게 감동을 주는 이가 한 명이라도 있는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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