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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성의 눈치를 보고 야성에 응답하라

스물여덟 번째 리뷰_야성의 부름

by 이기자

"자연과의 교감이 중요한 이유는 야성이 문명의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야성이 문명보다 강하기 때문에 인간은 결코 자연을 정복하지 못한다. 정복하려고 하면 오히려 정복당한다. 야성의 눈치를 보고 야성을 대접하라."


따뜻한 남부지방, 샌프란시스코 산타클라라 지방판사의 집에서 자란 벅은 어느날 알래스카 지방에서 썰매 끄는 개로 팔리게 된다. 문명 세계에서 자란 벅은 곤봉과 송곳니의 세계를 태어나 처음으로 접한다. 그리고 배운다.


"벅은 두들겨 맞았다. (그는 그걸 알았다.) 그러나 길든 것은 아니었다. 벅은 곤봉을 든 남자는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다. 그는 중요한 교훈을 얻었고 앞으로 살면서 그 교훈을 다시는 잊지 않을 것이다. 그 곤봉은 하나의 계시였다. 그것은 그가 원시법의 세계로 입문하는 첫걸음으로, 그는 이미 반쯤 그 길로 들어섰다. 삶의 실상에는 좀 더 광포한 면이 있다."(19p)


그 곤봉은 하나의 계시였다. 그것은 그가 원시법의 세계로 입문하는 첫걸음이었다.


벅은 성장한다. 미국 남부 장원의 왕에서 알래스카의 왕으로 자라난다. '야성의 부름'을 쓴 잭 런던은 니체의 초인 사상과 마르크스의 유물론적 사회의식에 빠져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벅의 성장 과정을 니체식 초인의 등장으로 해석하는 이도 있다. 하지만 나는 오로지 자연과 야성에 대한 경외심 외에 다른 생각은 들지 않는다. 벅은 야성 그 자체다. 니체고 마르크스고 자연과 야성 앞에서는 초라한 인간에 불과하다.


"문명화가 한순간에 모조리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지금 그의 도덕적 해이가 증명해 줬다. 벅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도덕적 배려를 저버렸다. 그는 재미가 아니라 배 속에서 일어난 소동 때문에 음식을 훔쳤다. 그는 당당하게 훔친 것이 아니라 곤봉과 송곳니의 지배 아래 몰래 교활하게 훔쳤다. 한마디로 그는 하지 않는 것보다 하는 것이 더 쉬웠기 때문에 그 짓을 했다."(34p)


지배하느냐, 굴복하느냐, 둘 중 하나였다. 자비를 베푸는 것은 곧 약점을 드러내는 것이다. 야생의 삶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자비란 존재하지 않는다.


벅은 어느 순간 야성의 부름을 듣는다. 그를 문명에 묶어주던 마지막 끈인 손턴이 죽자 벅은 야성의 부름에 화답한다. 벅은 자신이 죽인 이해츠 족 사람들의 냄새를 맡는다. 벅은 곤봉과 창이 없다면 인간이 자신의 맞수가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벅은 인간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벅은 불과 지붕의 세대를 거슬러 울음의 시대로 돌아간다.


"삶에는 그 이상 올라갈 수 없는 어떤 정점을 나타내는 환희가 있다. 그런 것이 살아 있음의 역설이다. 그 환희는 살아있기에 찾아오지만 살아 있음을 완전히 망각할 때에야 찾아온다. 그 환희, 살아 있음의 망각은 감흥의 불꽃 속에서 자아를 잊는 예술가에게 찾아온다. 그리고 싸움터에서 전쟁에 미쳐 자아를 잊고 생존을 거부하는 군인에게 찾아온다. 달빛 속에서 번개처럼 앞질러 가는 살아 있는 먹이를 잡기 위해 늑대의 오래된 울음소리를 내며 앞장서서 달려가는 벅에게도 바로 그 환희가 찾아온다."(52p)

잭 런던의 야성의 부름은 가장 널리 알려진 개 이야기 중 하나일 것이다. 그리고 확신컨대 가장 품위 있는 개 이야기일 것이다. 벅의 품위는 그가 알래스카 협곡의 지배자가 되기 때문이 아니라 야성의 부름에 응답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우리의 문명 속에는 지금도 야만성이 꿈틀거린다. 벅은 수많은 역경을 이겨내고 그 부름에 응답한다.


대자연은 문명이나 인간보다 강하다. 잭 런던의 다른 단편소설인 '불을 지피다'에 나오듯 혹독한 추위 속에 불을 피우지 못한 인간은 죽는다. 인간과 함께 있던 개는 죽음의 냄새를 맡고 털을 곤두세우고는 뒤로 펄쩍 물러선다. 그리고는 자신에게 먹을 것을 주는 사람들을 찾아 다시 캠프로 돌아간다. 대자연 속에서 인간은 죽고 개는 살아남는다. 잭 런던은 벅을 통해 인간들에게 말한다. 겸손하라고. 자만심을 버리라고.


"그러나 개는 안다. 조상들은 진짜 추위가 어떤 것인지 알았고 지금 자신도 그 지식을 물려받았다. 이런 무서운 추위에 밖에 나가 걸으면 좋지 않다는 것을 그는 안다. 그러나 지금 사내와 개 사이에는 친밀한 교감이 없었다. 개가 받은 애무라고는 그저 채찍 세례와 그 채찍으로 위협하는 사나운 소리가 전부였다. 그래서 개는 자신이 감지한 것을 사내에게 알리려고 애쓰지 않았다."(불을 지피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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