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아홉 번째 리뷰_미셸 우엘벡 '복종'
'소립자'에서 인류 문명에 사망 선고를 했던 우엘벡은 새 소설 '복종'에서 유럽 국가들에 사망 선고를 내린다. 단, 이번에는 회생 가능성이 있는 사망 선고다.
"기독교 없이 유럽의 국가들은 영혼 없는 육체에 불과합니다. 한마디로 좀비죠. 그래서 말인데, 기독교는 과연 되살아날 수 있을까요? 저는 예전엔 그렇게 믿었지요. 그러다 점점 토인비의 사상에, 문명은 살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자살하는 것이라는 그의 생각에 동화되었고, 어느 날, 단 하루 만에 모든 것이 와르르 무너져버렸죠."
우엘벡은 이슬람의 부상을 언급한다. 우엘벡은 공공연하게 이슬람교를 멸시해왔다. 그의 전작인 소립자에서 그는 등장인물을 빌려 이슬람교를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종교라고 규정한다. 우엘벡의 생각이 바뀐 것일까.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기독교 중심의 유럽이 죽어가고 있다는 진단은 그의 진심이다. 그는 유럽이 죽어가고 있다고 믿는다. 복종의 주인공인 대학교수 프랑수아는 "1870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서부터 부조리는 이미 시작되었다. 그때부터 이미 애국심의 형태가 심각하게 왜곡되었다. 국가란 살인적인 부조리의 총체와 다름없었으며, 1871년 이후로 조금이나마 의식이 있는 사람들은 죄다 이 사실을 깨달았다. 아마 거기서 허무주의니 무정부주의니 하는 온갖 쓰레기들이 흘러나왔지 싶다"고 읋조린다. 소립자의 주인공이 인류 문명의 사망 시간을 재고 있듯, 복종의 주인공도 유럽 국가들의 사망 시간을 어림짐작한다.
아이들을 장악하는 자가 미래를 장악한다, 그것으로 얘기 끝이죠.
하지만 복종이 묘사하듯이 이슬람이 유럽의 생명을 살려줄 구원자가 될 것인가. 프랑수아는 일부다처제, 경제적인 여유, 학문적인 명성 등을 생각하며 이슬람화된 새로운 유럽의 질서에 편승하려 하지만, 이는 매트릭스의 거짓 세계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사이퍼와 같은 모습일 뿐이다. 우엘벡은 이슬람화된 프랑스, 그리고 유럽은 잘 정돈된 디스토피아일 뿐이라고 말한다. 소설가 에마뉘엘 카레르가 '복종'을 조지 오웰의 '1984'나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 비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소설 속에는 이슬람에 대한 부정적인 묘사가 사실 거의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우엘벡이 항상 이야기하는 가족적인 가치관의 부활이라는 측면에서 이슬람교는 긍정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소설에 나오는 것처럼 이슬람 정당이 프랑스의 여당이 되기는 쉽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아예 불가능해 보이지도 않는다. 이슬람 정당의 집권이 프랑스 경제를 살려내는 과정은 간략하지만 설득력 있다. 요컨대 이런 식이다.
여성 노동력의 제한으로 실업률이 감소하고 아랍계 석유강국들의 한계 없는 자금 지원으로 경기가 활성화되면서, 벤 아베스 정권에 대한 거부감이 차츰 사그라진다. 벤 아베스는 나머지 당들과 연합하면서 결코 양보하지 않는 두 가지 조건, 즉 학제의 이슬람화와 일부다처제 허용을 바탕으로 프랑스를 서서히, 부드럽게 이슬람화한다.
우엘벡은 복종 출간 후 가진 인터뷰에서 "복종은 이슬람 혐오주의 소설이 아니지만, 원한다면 우리에게는 이슬람 혐오주의 작품을 쓸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뉴스에서 매일 같이 접하는 지하드의 테러는 이슬람의 본질이 아니다. 지젝이 썼듯이 지하드의 테러는 자신들이 서구 문명보다 우월하지 못하다는 자각에서 비롯된 열등감의 발로다. 우엘벡이 지하드의 테러보다 더 우려하는 것은 소설 속에 나오는 벤 아베스 식의 접근이다. 언젠가 프랑스 국민들은 르펜이 이끄는 국민전선과 지하드와 연관된 극단주의 정당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할 수도 있다. 그때 지난 수십년간 무능을 보여준 우파와 좌파 온건주의 정당보다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중도파 이슬람 정당이 집권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우엘벡이 이런 우려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갈수록 황폐화하는 서구 문명에 있다. 그는 "사람들이 신 없이 사는 것을 못 견뎌 한다"고 본다. 신으로 돌아간다면 유럽인들에게 선택지는 단순하다. 기독교로의 회귀와 이슬람뿐이다. 우엘벡은 기독교가 이슬람교의 상대가 되지 못하리라 보는 것 같다. 더욱이 한 번 신에 귀의했던 이들은 무신론자들과 달리 다른 신을 받아들이기 더욱 쉽다. 신에 의지하는 사회가 된다는 것은 이슬람정당이 집권할 기반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무엇보다 무슬림의 진짜 적,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고 증오하는 대상은 가톨릭이 아니라, 현세주의, 정교분리 원칙, 무신론적 유물론이거든요. 그들에게 가톨릭교도들은 신앙인들이며, 가톨릭은 성전을 바탕으로 하는 종교입니다. 그러니 그들을 원래의 신앙에서 한 걸음만 더 움직이게 하면, 그러니까 이슬람으로 개종하도록 설득하기만 하면 그만인 거죠. 이것이 바로 가톨릭교도에 대한 무슬림의 진짜 비전, 애초의 비전입니다."(188p)
슈피겔은 복종에 대해 이렇게 적는다.
"복종이 진정으로 자극하는 것은 이슬람에 대한 두려움이라기보다 한 사회가 자유를 향한 투쟁의 전통과 작별하며 자발적으로 도달한 자포자기에 대한 두려움이다."
복종은 이슬람을 다루지만 여기에 다른 종교를 넣어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정교분리의 원칙, 무신론, 공화국의 전통적인 가치들이 민주주의 형태로 전복되는 아이러니한 비극이다.
"난 어떤 것에도 '찬성' 따위 하지 않아. 그건 당신도 잘 알잖아. 하지만 가부장제는 적어도 존재할 가치가 있다는 생각은 들어. 그러니까 내 말은 가부장제가 사회시스템으로서 끈질기게 존속할 거란 얘기야."
48p
요컨대 카산드라는 끊임없이 실현되는 암울한 예언들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였고, 현재 벌어지는 일들로 보아 중도좌파 언론의 기자들도 트로이인들의 맹목을 되풀이하는 듯했다. 이러한 맹목은 역사적으로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히틀러가 '결국 이성을 찾을 것'이라고 만장일치로 믿었던 1930년대의 지성인들이며 정치가들이며 기자들에게서 동일한 예를 찾아볼 수 있다. 이미 정립된 사회시스템 속에서 번영을 누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 시스템에서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으며 별다른 두려움 없이 그것을 파괴하려 하는 사람들의 관점에서 생각하기란 아마 불가능할 것이다.
65p
"아시다시피 이슬람박애당은 특수한 정당입니다. 그들은 통상적인 정치적 쟁점에 많은 경우 무관심해요. 특히 경제를 모든 것의 중심에 두지 않죠. 그들에게 중요한 건 인구, 그리고 교육입니다. 인구를 구성하는 하위 집단은 출산율을 최대한 높여 자기들의 가치를 계승하는 게 승리하는 거예요. 그들의 눈에는 이보다 더 간단한 이치가 없죠. 경제니 지정학이니 하는 것들은 신기루일 뿐이에요. 아이들을 장악하는 자가 미래를 장악한다, 그것으로 얘기 끝이죠."
100p
나의 페니스는 나의 의식 속에 고통이 아닌 쾌락을 통해 존재하는 유일한 신체 기관이었다. 볼품없지만 단단한 나의 페니스는 늘 내게 충실히 봉사해왔다. 아니, 어쩌면 반대로 내가 페니스에게 봉사해온 것인지도 몰랐다. 그럴 법한 생각이었다. 하지만 페니스의 지배는 부드러웠다. 절대 내게 명령을 내리는 법이 없었으며 때로 부추기기는 했지만 닦달하거나 화를 낸다거나 나의 사회생활에 개입한다든가 하는 일 없이 어디까지나 점잖은 태도를 견지했다.
122p
나는 우선 그녀(마린 르 펜)의 발언이 공화국적인 것에, 다음으로는 대놓고 반교권적인 것에 놀랐다. 그녀는 상투적으로 쥘 페리를 언급하는 차원을 넘어, 니콜라 드 콩도르세까지 거슬러올라가 그가 1972년 입법의회에서 이집트인들과 인도인들을 거론하며 펼쳤던 기념비적인 연설을 인용했다. 이집트인들과 인도인들은 "굉장한 정신적 진보를 이룩했으나 종교 권력이 인간의 교육권을 강탈한 순간, 더할 수 없이 수치스러운 무지의 우둔함 속으로 추락했다"는 것이었다.
135p
이슬람박애당 리더의 진짜 천재성은 무엇보다 그가 선거의 승부는 경제 영역보다는 가치관 영역에서 판가름됨을 이해했다는 것이었다.
185p
"무엇보다 무슬림의 진짜 적,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고 증오하는 대상은 가톨릭이 아니라, 현세주의, 정교분리 원칙, 무신론적 유물론이거든요. 그들에게 가톨릭교도들은 신앙인들이며, 가톨릭은 성전을 바탕으로 하는 종교입니다. 그러니 그들을 원래의 신앙에서 한 걸음만 더 움직이게 하면, 그러니까 이슬람으로 개종하도록 설득하기만 하면 그만인 거죠. 이것이 바로 가톨릭교도에 대한 무슬림의 진짜 비전, 애초의 비전입니다."
188p
"제가 만난 진자 무신론자들은 '혁명가들'이 유일합니다. 그들은 신의 부재를 냉담하게 목도하는 데 그치지 않고 미하일 바쿠닌 식으로 신의 존재를 아예 거부해요. '설령 신이 존재한다 할지라도 신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라고요. 요컨대 키릴로프 유의 무신론자들이죠. 그들은 신을 거부하며 신의 자리에 인간을 앉히려 하고,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에 숭고한 의미를 부여합니다. 그것 역시 선생님과는 거리가 있다고 생각되는데요. 안 그렇습니까?"
304p
"기독교 없이 유럽의 국가들은 영혼 없는 육체에 불과합니다. 한마디로 좀비죠. 그래서 말인데, 기독교는 과연 되살아날 수 있을까요? 저는 예전엔 그렇게 믿었지요. 그러다 점점 토인비의 사상에, 문명은 살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자살하는 것이라는 그의 생각에 동화되었고, 어느 날, 단 하루 만에 모든 것이 와르르 무너져버렸죠. 2013년 3월 30일 오전에 저는 메트로폴 호텔 바 앞을 우연히 지나다 호텔 바가 바로 그날 밤으로 영원히 문을 닫는다는 안내문을 발견했습니다. 경악이었죠. 네, 바로 그 순간 저는 깨달았어요. 유럽이 이미 자살을 감행했다는 것을요."
310p
요컨대 혐오스러운 붕괴의 단계에 다다른 서유럽은 5세기에 고대 로마가 그러했듯 더는 몰락으로부터 스스로를 구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여자의 복종과 선조에 대한 존경 등 여전히 자연적인 위계질서에 의해 지배되는 전통문화를 고수하는 이민자의 대량 유입은 유럽이 가족적, 도덕적으로 재무장하기 위한 역사적인 기회였으며, 구대륙의 새로운 황금시대에 대한 전망을 활짝 열어주었다.
336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