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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자 Mar 16. 2019

어른의 목소리를 담은 책 두 권

tbs 교통방송 심야라디오 프로그램 '황진하의 달콤한 밤'의 책 소개 코너 '소설 마시는 시간'입니다.

매주 토요일에서 일요일 넘어가는 자정에 95.1MHz에서 들으실 수 있어요.


2월 24일 예순여덟 번째 방송은 '어른이 없는 시대, 책으로 만나는 어른의 목소리'를 주제로 두 권의 책을 소개했습니다.


↓소설 마시는 시간 멘트↓


ann 책 속에 담긴 인생의 지혜를 음미해 보는 <소설 마시는 시간> 오늘은 어떤 주제로 이야기 나눠볼까요?

요즘 그런 말이 많이 들리죠. 어른이 없다. 사회에 중심을 잡아줄 큰 어른이 없을뿐더러, 각자의 주변에도 인생에 어려운 일이나 고민이 있을 때 상담을 하고 방향을 잡아줄 어른이 없다는 말도 많이 하죠. 개인의 삶이나 라이프스타일, 선택을 존중하는 사회로 가고 있으니까 그런 것도 있겠지만 또 고민을 털어놓을 만한 어른이 주변에 없어서 답답하다고 하는 분들도 많거든요.


ann 괜히 한소리 했다가는 꼰대로 몰릴 수도 있으니까요다들 남의 삶에 관심을 끊게 되죠.

개인의 삶을 존중하는 분위기는 좋지만 멘토나 어른이 사라지는 건 확실히 아쉬운 감이 있습니다. 오늘은 이런 고민을 하는 분들이 읽으면 좋을 만한 책을 두 권 가져왔는데요. 어른의 조언이나 멘토링이 필요할 때 찾아보면 좋을만한, 진짜 어른이 전하는 삶에 대한 조언을 담은 책입니다.


ann 어떤 책부터 만나볼까요?     

먼저 소개해드릴 책은 ‘자기 인생의 철학자들’이라는 제목의 책인데요. 김지수의 인터스텔라라는 인터뷰 기사 시리즈가 있어요. 김지수 기자는 패션지 보그 편집장을 거쳐서 지금은 조선일보 디지털편집국 문화부장을 맡고 있는데요. 이분이 3년 동안 매주 우리 사회의 유명인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인터뷰 기사로 기록한 시리즈가 김지수의 인터스텔라입니다. 이 책은 그중에서도 어른이라고 할 만한 분들의 인터뷰 16편을 모아놓은 인터뷰집이에요.

ann 굉장히 다양한 분들이 나오는 인터뷰 시리즈로 알고 있는데요이 책에는 어떤 분들의 인터뷰가 실려 있는 건가요?

모두 16분의 인터뷰가 있는데요. 배우 중에는 윤여정씨, 이순재씨의 인터뷰가 실려 있고요. 학자 중에는 동물행동학자 최재천 교수, 미술사학자 유홍준 교수, 철학자 김형석 교수의 인터뷰가 있습니다. 이외에도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씨, 일본인 디자이너 하라 켄야, 1세대 디자이너로 유명한 노라노씨, 시인 이성복씨의 인터뷰도 있고요. 인터뷰가 실린 16분의 나이의 평균 일흔두 살이라고 하거든요. 정말 다양한 분야에서 자기의 일가를 이룬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아놓은 거죠.


ann 평균 나이가 일흔두 살이라면 엄청난 연륜이 느껴지겠네요이런 책을 기획한 건 이유가 따로 있다고 하나요?

김지수 기자가 보그에서 나와서 조선일보 디지털편집국으로 옮길 때 개인적으로 굉장히 힘든 일이 많았다고 적고 있는데요. 그때 쓰기로 했던 책의 제목이 ‘그 많던 어른은 어디로 갔을까’라고 해요. 어른이 없는 시대에 좋은 어른이 되기 위한 길잡이 같은 책을 써보자고 생각한 거죠. 그런데 본인이 어려운 시기를 겪으면서 책을 한 줄도 쓸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김지수의 인터스텔라라는 인터뷰 시리즈를 하면서 진짜 어른이라고 할 만한 분들을 만났고, 그 과정에서 본인도 위로를 받고 치유를 경험한 거죠. 저도 개인적으로 인터뷰를 많이 하기도 하고 기사도 많이 쓰지만, 이렇게 읽는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위로해주는 인터뷰 기사는 드물거든요. 그중에서도 알맹이들만 뽑아놓은 인터뷰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M1 여행스케치 – 산다는 건 다 그런게 아니겠니

https://youtu.be/IeHFFb6eAL8


ann 어른이 없는 시대책으로 만나는 어른들의 목소리먼저 김지수 기자의 인터뷰집 자기 인생의 철학자들’ 만나보고 있습니다책에서 인상 깊은 인터뷰가 있나요?     

정말 한 줄 한 줄 밑줄을 그어가면서 읽게 되는 책인데요. 이 책에 나오는 인터뷰이들의 평균 나이가 일흔두 살이라고 말씀드렸잖아요. 그렇게 긴 세월을 살아오면서 남는 것들, 어떤 알맹이 같은 게 한 마디 한 마디에서 느껴지는 거죠. 이 분들한테 몇 가지 공통점이 있는데요. 일단 꾸준히 일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굉장히 강조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을 소모해가면서 억지로 일하는 게 아니라 적당히 할 줄 안다는 거죠.


ann 일의 중요함그리고 일과 생활의 균형을 잡는 법을 자연스럽게 깨달은 거군요.     

그렇죠. 우리나라 1세대 패션 디자이너인 노라노씨 인터뷰가 나오는데요. 이분이 아흔살이 넘었거든요. 그런데도 여전히 현역으로 뛰고 계세요. 매일 일곱 시간씩 일하는 루틴을 아직도 유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분이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해요.

“내 행복은 일에 있어요. 일해야 행복해요. 사람은 무용지물로 살면 자기 가치를 잃기 쉬워요. 나이 들어도 생산적인 일을 안 하면 죽기만 기다리게 된다니까.”

그런데 비슷한 말을 철학자 김형석 교수도 합니다. 김 교수는 이렇게 말해요.

“인격의 핵심은 성실성이며, 성실한 사람은 악마도 건드리지 못합니다.” 하고요.

그렇다고 무조건 전력을 다하는 게 아니라 자신을 아끼면서 일할 수 있어야 하죠. 노라노 씨는 내 능력과 체력의 한계에서 10퍼센트 정도 여유를 둬야 한다고 젊은 사람들한테도 당부한다고 하고요.


ann 일의 철학이네요또 어떤 이야기에 밑줄을 쳤나요?     

우리가 늘 욕심이 많잖아요. 다 잘하고 싶고, 이것도 가지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고. 그런데 욕심을 조금 내려놓는 게 결국에는 길게 보면 더 멀리 갈 수 있는 방법이라는 걸 이분들은 다 알고 있더라고요.


ann 어떤 분의 인터뷰에 나오나요?     

배우 이순재씨의 인터뷰에 보면 이런 말이 나와요. 

“좀 손해 보고 살아야 큰 손해를 안 봐요. 하나 더 먹겠다고 달려들면 갈등이 커지고 적이 생겨. 정치할 때 그걸 배웠어요. 살아보니 인생이란 건 여러 욕심이 있겠지만 조그만 손해는 감수하고 좀 모자란 듯 사는 게 좋아.”

이 말은 지나친 경쟁보다 공생을 택하는 게 더 오래갈 수 있다는 뜻이잖아요. 이순재씨는 국회의원까지 해봤으니까 치열한 경쟁의 링에 서봤던 사람이니까 이런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할 수 있게 된 거겠죠.

그런데 또 비슷한 이야기를 동물행동학자인 최재천 교수가 합니다. 최 교수는 동물행동학에서는 세계적인 권위자잖아요. 이분이 동물들의 행동을 관찰해보니 상대방을 무조건 꺾으려는 경쟁심보다 조금씩 물러나서 공생을 택하는 게 생태계 전체에 도움이 된다는 걸 발견한 거죠.


ann 동물들의 삶에서 인생의 지혜를 배운 거네요     

그렇죠. 최재천 교수가 다른 책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는데요.

“서로 상대를 적당히 두려워하는 상태가 서로에게 예의를 갖추며 평화를 유지하게 만든다. 그런데 인간은 무슨 까닭인지 자꾸만 이런 균형을 깨고 홀로 거머쥐려는 속내를 내보인다. 우리가 자연에서 제일 먼저 배울 게 있다면 약간의 비겁함이다.”

최 교수 본인도 스스로를 2등의 자존감이 강한 사람이라고 일컫거든요. 노력하면 1등은 안 돼도 2등은 할 수 있겠다. 1등을 못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야릇한 편안함도 있다. 무엇보다 혼자서 뛰면 어렵지만 섞여서 같이 뛰면 슬금슬금 앞으로 갈 수 있다고요.


ann 지는 게 이기는 거라는 옛말도 생각나고요.     

책에 일본인 변호사 니시나카 쓰토무라는 분의 인터뷰도 나오는데요. 이분은 50년 동안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1만명의 의뢰인의 삶을 분석한 ‘운을 읽는 변호사’라는 책으로 유명한 분이세요. 이분의 말이 굉장히 인상 깊은데요. 변호사는 다툼으로 먹고사는 직업이잖아요. 그런데도 이런 말을 해요.

“가능한 다투지 않고 적극적으로 남에게 도움이 되는 행동을 해야 한다. 설사 승소하더라도 분쟁을 해서 좋은 게 하나도 없다는 점이 변호사 생활 50년의 결론이다. 이긴 사람도 대부분 그 후에 도산하거나 병에 걸리거나 불행해진다. 분쟁에서 이겨도 진 사람의 원한을 사기 때문이다. 이기더라도 운은 나빠진다.”     


M2 블루파프리카 어른

https://youtu.be/2BL8Sa4Wd2A


ann 어른이 없는 시대책으로 만나는 어른들의 목소리김지수 기자의 자기 인생의 철학자들’ 먼저 이야기 중인데요조금만 더 이야기해볼까요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문구 같은 게 있으면 소개해주세요.

인터뷰를 읽다보면 인생이나 삶에 대해서 굉장히 마음에 남는 말들이 많이 나오는데요. 몇 가지만 소개해드릴게요. 독일에서 활동하는 서양화가 노은님이라는 분이 계세요. 파독 간호사로 가셨다가 화가로 성공한 입지전적인 분인데 이 분이 행복에 대해서 이런 말을 합니다.

“행복이 뭔가요? 배탈 났는데 화장실에 들어가면 행복하고 못 들어가면 불행해요. 막상 나오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죠. 행복은 지나가는 감정이에요.”

행복은 그저 지나가는 감정일 뿐 우리가 챙겨야 할 중요한 감정은 편안함과 감사함이라는 말이거든요. 

배우 윤여정씨의 인생에 대한 말도 인상적인데요.

“씁쓸한 게 인생이에요. 불시에 맨홀에 빠지고 천둥이 쳐요. 그럼에도 닥치기 전까지는 즐겨야 해. 나는 그걸 60 넘어서야 알았어요.”


ann 이런 말을 들으면 지금 내 고민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죠     

아, 아직 나는 충분하구나 하는 마음도 들죠. 한참 때구나 하는 생각. 아흔살이 넘었지만 여전히 현역에서 활동하는 패션 디자이너 노라노씨가 이런 말을 해요. “여러분은 아직 인생을 반도 안 살았잖아. 그러니 내 말을 믿어요.”

100세 철학자인 김형석 교수도 이렇게 말해요. “60세는 돼야 창의적인 생각이 쏟아져 나옵니다. 그런데 60에 어떻게 살까는 40대에 정해야 해요. 75세가 되면 절정의 상태를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에요.”

지금 우리는 삼십대 초중반의 나이잖아요. 그런데도 세상사를 다 아는 것처럼 행동하고 말하고 하는데 이런 말을 접하면 내가 좀 더 겸손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죠.


ann 60세는 돼야 창의적인 생각이 쏟아지기 시작한다는 말이 인상적이네요보통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젊을 때가 창의적이라고 하잖아요.     

이 책의 마지막에 실린 인터뷰가 노인, 나이 듦에 대해서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의사 마크 윌리엄스인데요. 이분이 그런 노인에 대한 사회적 통념에 반박하는 연구를 하시거든요. 이분의 말도 인상 깊은데요.

“나이에 비해 젊어 보이시네요. 같은 가식적 접근은 삼가세요. 젊음의 활력을 유지하는 것이 행복한 노년이라는 생각은 착각입니다. 노인이 청년보다 불행할 거라고 믿는 공중의 믿음부터 바꿔야 해요. 늙는 것은 추락이나 쇠퇴가 아니라 정점을 향해 더욱 성장해 가는 과정이에요.”

노인이 돼서 총기가 흐려진다면 나이를 먹어서가 아니라 몸과 마음이 편안함에 익숙해지면서 편협해졌기 때문이라는 게 이분의 지적이죠. 노인이 된다고 해서 쉴 게 아니라 적당한 일을 하고 가벼운 놀이 활동을 하면서 계속해서 새로운 걸 배우고 익혀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M3  조원선 – 또 하루

https://youtu.be/BfS4Q8-cWTE


ann 어른이 없는 시대책으로 만나는 어른들의 목소리김지수 기자의 자기 인생의 철학자’ 이야기를 해봤는데요책밤지기는 따로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도움을 구하는 어른이나 멘토가 있나요?     

사실 저도 따로 멘토가 있거나 하지는 않거든요. 그래서 저는 좋은 책을 많이 읽자는 생각을 하는데요. 그중에서도 좋아하는 소설가의 산문집이나 인터뷰집을 챙겨뒀다가 고민이 많아질 때 틈틈이 읽기도 합니다. 제 고민이 무엇이든 간에 해결의 실마리가 될 만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는 경우가 종종 있거든요.

ann 어떤 소설가의 책인가요?     

여럿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멘토나 제 인생의 어른이라고 할 만한 소설가는 로맹 가리일 것 같아요. 로맹 가리의 책 중에 ‘인간의 문제’라는 산문집이 있는데요. 1957년부터 로맹 가리가 죽은 1980년까지 로맹 가리의 이름으로 발표된 산문 33편을 싣고 있는 책이거든요. 자신의 소설에서부터 문학뿐 아니라 정치 문제, 외교 문제, 사회 문제 등을 망라해서 자신의 생각을 적고 있거든요. 소설에 국한된 이야기들이 아니다보니까 자연스럽게 제가 하는 고민과 맞닿아 있는 문제들이 나오기도 하죠.


ann 로맹 가리의 인간의 문제기억에 남는 문구가 있나요?     

이런 말이 나오는데요.

“나는 절대적으로 자신이 옳다고 믿는 모든 사람에게 무조건적으로 반대합니다.”라는 말이에요. 자신의 정치적인 진영이 어느 쪽이든지를 떠나서 저는 자기가 맞고 상대방은 틀리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의 말은 일단 의심하거든요. 로맹 가리는 자신이 연합군  소속의 전투기 조종사로 2차세계대전에 참전했거든요. 그 과정에서 전쟁이 사람들을 어떻게 죽이고 사회를 망가뜨리는지에 대해서 많이 고민한 게 글에서도 느껴지죠. 이런 가르침은 사실 2차세계대전 직후나 지금이나 크게 다를 게 없으니까요.


ann 좋아하는 작가나 책을 통해서 고민을 해결하는 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아요.     

정말 좋은 어른이나 멘토를 만나기 쉽지 않아지니까요. 좋은 책을 꾸준히 잘 읽는 게 어느 정도 그런 빈자리를 채우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청취자분들도 좋아하는 작가를 한 명쯤 정해서 그분이 쓴 책을 섭렵해 나가다 보면 어느 순간 그 작가와 대화하는 기분을 받을 수 있을 거예요. 최선은 아니어도 차선책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M4 재주소년 – 다시 소년

https://youtu.be/JA--srUl_r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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