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오늘을 보여주는 현대 소설 두 권
tbs 교통방송 심야라디오 프로그램 '황진하의 달콤한 밤'의 책 소개 코너 '소설 마시는 시간'입니다.
매주 토요일에서 일요일 넘어가는 자정에 95.1MHz에서 들으실 수 있어요.
3월 3일 예순아홉 번째 방송은 중국의 현대 소설 두 권을 소개했습니다.
↓소설 마시는 시간 멘트↓
ann 책 속에 담긴 인생의 지혜를 음미해 보는 <소설 마시는 시간> 오늘은 어떤 주제로 이야기 나눠볼까요?
j 오늘은 중국 현대 소설을 두 권 가져왔습니다. 중국이 굉장히 가까운 나라잖아요. 그만큼 중국 문학이나 소설도 익숙할 것 같은데 막상 생각해보면 중국 현대소설은 접한 분이 많지가 않거든요.
ann 그렇죠. 중국 소설이라고 하면 유명한 게 삼국지 같은 역사 소설이 유명한데 다 오래된 작품들이죠.
j 현대소설이라고 하면 위화의 작품을 읽는 분들도 있고요. 그렇지만 일본 소설이나 유럽이나 미국의 소설들에 비하면 중국소설은 번역된 작품도 드물고 베스트셀러가 되는 경우도 확실히 적은 것 같아요. 일본소설은 무라카미 하루키 같은 베스트셀러 작가도 있지만 중국소설 중에는 우리가 아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딱히 없기도 하죠.
ann 확실히 그런 느낌이 있네요. 그럼 어떤 중국 소설부터 만나볼까요?
j 먼저 소개해드릴 책은 하오징팡의 ‘고독 깊은 곳’이라는 소설입니다. 우리가 중국에 대해서 은근히 잘 모르는 게 많은데요. 이 책은 SF 소설이에요. 중국의 SF 소설은 우리가 정말 만나볼 일이 없었던 장르잖아요. 그래서 더 재밌고 흥미로운 책이기도 합니다.
ann 하오징팡의 고독 깊은 곳. 어떤 책인가요?
j 일단 하오징팡에 대해서 소개해드리면요. 1984년에 중국 텐진에 태어난 젊은 작가고요. 이분이 칭화대학에서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은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어요. 정말 천재과 인거죠. 2006년부터 SF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하는데요. 중국에서는 소설을 쓰기 시작하자마자 주목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하오징팡이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계기가 있는데요. 2016년에 이분이 휴고상을 받았어요. 휴고상은 SF 소설계의 노벨문학상으로 불리는 권위있는 상이거든요. 소설을 쓰기 시작한지 10년 만에 세계적인 SF 소설가로 인정을 받은 거죠.
고독 깊은 곳은 하오징팡이 2010년부터 2016년까지 발표한 중단편 소설을 묶은 소설집인데요. 휴고상을 안긴 ‘접는 도시’라는 중편소설도 수록돼 있고요. 하오징팡의 SF 소설의 특성을 잘 알 수 있는 책이죠.
ann 중국의 SF 소설은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네요. SF 소설이라고 하면 보통 미국 작가를 먼저 떠올리기 마련이잖아요.
j 그렇죠. SF 소설이라는 게 단순히 글을 잘 쓴다고 해서 좋은 작가가 나오는 분야는 아닌 것 같아요. 사회적인 투자가 필요한 분야가 아닐까 싶어요. SF는 말 그대로 상상력이 필요한 작업이잖아요. 과학 법칙을 비틀어서 생각하는 능력이 필요한데 그러려면 당연히 과학 법칙에 대한 교육도 중요하고요. 미국의 SF 작가가 유명한 게 달 탐사를 주도하고 사회적으로 많은 투자를 한 덕분이 아닌가 싶어요. 최근에 중국도 이런 분야에 많은 투자를 하잖아요. 달의 뒷면을 세계에서 최초로 탐사에 성공한 것도 중국이고요. 중국이 직접 만든 SF 영화도 흥행을 하고 있죠. 이런 분위기가 좋은 SF 작가가 나오는데 일조한 게 아닌가 싶어요.
M1 짙은 - 달
ann 중국의 현대 소설들 만나보고 있어요. 먼저 하오징팡의 ‘고독 깊은 곳’ 이야기하고 있어요. 어떤 내용인지 이야기해볼까요.
j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접는 도시 이야기를 좀 해보면요. 이 소설은 말 그대로 도시를 접는다는 설정을 가지고 있는데요. 소설의 배경은 미래 사회의 베이징이에요. 인구가 너무 많아지다보니까 도시를 운영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을 하다가 도시를 접는 아이디어를 낸 거죠. 큐브를 돌리면 한쪽 면이 나타나면 다른 한쪽 면은 안으로 들어가잖아요. 그런 원리를 도시에 적용한 거죠. 1공간, 2공간, 3공간 이렇게 3개의 공간이 베이징이라는 도시를 함께 쓰는데요. 각 공간마다 시간이 정해져 있어서 그 시간 동안만 사람들이 생활을 하고 다른 공간의 활동 시간이 되면 도시 자체가 지면 아래로 사라지고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수면 상태에 들어가는 거죠.
ann 중국은 세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잖아요. 인구 문제에 대한 고민도 많을 것 같은데 기발한 아이디어를 낸 거네요.
j 그렇죠. 이 소설이 흥미로운 게 각 공간마다 할당된 시간이 다르다는 거예요. 1공간은 도시를 움직이는 관리자나 기업의 CEO, 교수 같은 사람들이 사는 공간인데 여기는 24시간 동안 가동이 돼요. 24시간 활동하고 24시간은 휴면 상태인 거죠. 2공간은 실제 도시를 움직이게 하는 사람들이 살아가요. 여기는 16시간 동안 활동할 수 있죠. 마지막 3공간은 거대한 쓰레기 처리장의 역할을 하는 곳인데요. 여기는 단 8시간만 활동할 수가 있어요. 공간마다 사는 사람들을 나누고 그 사람들이 활동하는 시간에도 큰 차이가 있는 거죠.
ann 상류층, 중산층, 서민층을 도시 공간으로 나눈 거군요.
j 맞습니다. 이 소설은 3공간에 사는 주인 라오다오가 딸의 유치원 등록비를 벌기 위해 2공간에서 물건을 받아서 1공간으로 전달하는 일을 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다루고 있거든요. 우리가 SF에서 흔히 생각하는 외계인, 전쟁 같은 큰 사건은 벌어지지 않지만 멀지 않은 미래에 인구 과잉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에 대해 고민하게 만드는 소설이죠. 하오징팡은 중국 안에서도 치밀한 심리 묘사나 우아한 감수성으로 주목받는 작가거든요. 그런 장점이 극대화되는 소설이 바로 접는 도시입니다.
ann 아까 말씀하신 외계인이나 전쟁을 다룬 소설은 없나요?
j ‘현의 노래’와 ‘화려한 한가운데’라는 단편이 있는데요. 이 두 작품은 같은 세계관을 공유합니다. 강철족이라고 하는 외계인이 지구를 침략하고 거기에 맞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는데요. 이 강철족에 대한 묘사가 굉장히 흥미로워요. 달에 전진기지를 세우고 지구를 공격하는데 우주에서 폭격을 하니까 지구의 기술로는 어떻게 상대할 방법이 없는 거예요. 그런데 강철족이 인간을 모두 죽이려 드는 건 아니고요. 군사기지나 정치인들만 노리는 거죠. 반대로 문화 예술과 관련된 시설이나 사람들은 절대로 건드리지 않아요. 예컨대 콘서트홀에서 클래식 공연이 진행 중이면 거기는 절대로 공격하지 않는 거죠.
ann 문화와 예술을 보존하려고 하는 외계인이라는 설정이 독특하네요.
j 그렇죠. 강철족은 군사적으로 보면 인간이 도저히 상대할 수가 없는 강적이거든요. 그래서 사람들도 다들 저항을 포기하고 강철족에 순응해서 사는 길을 택해요. 여기에 반대해서 강철족에 맞서려는 사람들이 있는데 바로 연주자들이에요. 이 소설의 제목이 현의 노래라고 말씀드렸잖아요.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달에 있는 강철족의 전진기지를 공격하는 계획을 세운 거죠. 그 방법이 엄청 기발한데요. 달까지 연결돼 있는 거대한 엘리베이터가 만들어져 있거든요. 그 엘리베이터를 진동시키면 반대편에 있는 달에 큰 충격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 거죠. 그런데 이 엘리베이터를 진동시키는 방식이 거대한 음악회를 열어서 다리를 공명시키는 거죠.
ann SF 소설이라고하면 약간 그로테스크한 느낌이 있는데 이 소설들은 정말 우아한 느낌이 드네요.
j 하오징팡이 이런 말을 했어요. SF 소설을 쓰는 건 가능성의 세계를 구상하고 그 세계의 끄트머리에 인물을 세워놓는 일이다. 그때 가장 쉽게 느끼는 것이 탄생과 소외라는 감각이다. 이런 감성을 가지고 쓴 SF 소설이 바로 하오징팡의 고독 깊은 곳이에요.
M2 이소라 - 신청곡
ann 중국의 현대 소설들 만나보고 있습니다. 먼저 하오징팡의 독특한 SF 소설집 고독 깊은 곳 이야기했고요. 이번에는 어떤 소설을 만나볼까요?
j 이번에 소개해드릴 소설은 중국에서 굉장히 논쟁을 일으킨 작품인데요. 옌랜커라는 작가의 장편소설인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라는 제목의 책입니다.
ann 옌랜커는 잘 모르는 분들이 많을 것 같아요. 어떤 작가인가요?
j 옌랜커는 1958년에 태어난 작가인데요. 스물한 살 때부터 28년을 군인으로 복무했다고 하고요. 군인으로 활동하면서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해서 지금은 중국을 대표하는 소설가 중에 한 명이라고 하고요. 루쉰문학상 같은 중국을 대표하는 문학상을 여럿 받았고 노벨문학상 후보로도 중국 안에서 이야기되는 작가예요.
ann 정말 중국을 대표하는 작가군요. 그런데 이 작품이 중국에서 논란이 됐다고 했는데 무슨 일 때문인가요?
j 이 책은 남녀간의 사랑을 다루고 있거든요. 어느 군부대에서 벌어지는 사랑 이야기인데요. 이렇게만 보면 평범한 러브스토리일 수 있는데 문제가 된 건 이 책의 제목이에요.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말을 한 사람이 바로 마오쩌둥이거든요. 중국의 최고 지도자였던 마오쩌둥이 1944년에 발표한 유명한 정치 슬로건을 군부대 안에서 벌어지는 남녀간의 사랑이야기를 다룬 소설의 제목으로 쓴 거예요. 중국 안에서는 정말 논란이 될만한 사건이었던 거죠.
ann 어떤 사건이 있었나요?
j 이 소설이 2005년 중국 광둥성의 한 문예지에 발표가 됐거든요. 그런데 발표된 소설이 엄청나게 많은 부분이 삭제된 채로 나온 거예요. 앞에서 말씀드린 문제 때문에 검열을 당한 거죠. 그렇게 검열이 됐는데도 불구하고 출간된 후에 전량이 회수돼 폐기되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오프라인에 있던 책은 폐간됐지만 책의 원문이 온라인으로 퍼지면서 엄청난 인기를 끈 거예요. 해외에서도 10여개국에서 출간이 됐고요. 이후에 꾸준히 많은 사람들이 읽고 있죠.
M3 강이채 - Terminal
ann 중국의 현대 소설 만나보고 있습니다. 옌랜커의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사랑 이야기라고 했는데 어떤 내용인가요?
j 중국 문화대혁명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데요. 사단 전체를 통솔하는 군부대의 수장이 있어요. 사단장은 집에서 아내와 단 둘이 살고 있고, 젊은 군인인 우다왕이 그 집에 파견돼 취사와 청소를 담당하죠. 사단장의 부인은 삼십대의 젊은 여자인데 우다왕을 유혹하면서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지게 되는 거죠.
ann 금지된 사랑. 어떻게 보면 흔히 접할 수 있는 소재인데요.
j 그렇죠. 이 소설이 주목할 만한 건 단순히 사랑 이야기를 다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아까도 말씀드린 마오쩌둥이 말한 혁명의 언어를 욕망의 언어로 바꿔낸 지점에 있는데요. 옌랜커가 한국판 서문에서 이런 말을 썼어요.
“이 소설의 배경이 된 시대는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세워진 영혼의 감옥이었다.”
혁명이 다른 모든 가치보다 앞서있는 시대이다보니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이나 사랑 같은 감정까지도 통제를 받아야 했던 거죠. 그런 시대를 배경으로 했기 때문에 사랑 이야기가 더 많은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ann 그런 보이지 않는 감옥이 꼭 그 시대 중국에만 있는 건 아니죠.
j 자유롭게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자유를 뺏기는 건 언제나 늘 벌어질 수 있는 일이죠. 소설은 그런 문제를 비틀어서 보여주는 역할을 해주는 건데요. 이 소설에 나오는 사단장이 성불구자로 그려지거든요. 그런데 이 사단장이 혁명 과업이나 중국 공산당에 정말 충실한 사람이에요. 이런 식으로 현실을 풍자하는 게 소설의 재미인 거죠. 이념이 과잉인 사람이 정작 자신의 욕망은 해결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게.
ann 요즘도 뉴스를 보면 중국은 여전히 통제나 검열이 심하잖아요. 그런데 이런 소설이 큰 인기를 끌었다고 하니까 새롭기도 하네요.
j 우리가 중국에 대해 잘 모르는 부분들이 많은 거죠. 여전히 중국은 당이나 정부에서 검열을 하고 있지만 시대가 빠르게 바뀌다 보니 과거의 방식으로는 불가능한 것들이 많아졌죠. 그런 변화가 세계 어디보다 빠르게 일어나는 곳이 바로 중국인 것 같아요. 소설은 한 사회의 사회상을 보여주는 거울이잖아요. 중국의 현대 소설을 읽어보면 그런 변화의 흐름이나 양상을 뉴스를 통해 읽는 것보다 더 자세하게 이해할 수 있는 거죠.
옌랜커라는 작가에 대해서도 이 책을 바탕으로 조금 더 자세하게 볼 필요가 있는데요. 옌랜커의 소설들이 마치 주말드라마처럼 재밌거든요. 소설이 어렵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 많이 추천합니다.
M4 Velvet Underground – Pale Blue Eye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