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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자 Mar 17. 2019

연예인, 보통의 존재, 그들의 속내를 담은 책 두 권

tbs 교통방송 심야라디오 프로그램 '황진하의 달콤한 밤'의 책 소개 코너 '소설 마시는 시간'입니다.

매주 토요일에서 일요일 넘어가는 자정에 95.1MHz에서 들으실 수 있어요.


3월 10일 일흔 번째 방송은 연예인이 쓴 에세이 두 권을 소개했습니다.


↓소설 마시는 시간 멘트↓


ann 책 속에 담긴 인생의 지혜를 음미해 보는 <소설 마시는 시간> 오늘은 어떤 주제로 이야기 나눠볼까요?

최근에 보면 서점가에 연예인이 쓴 책이 꽤 많은 것 같아요. 예전에도 배우나 가수가 쓴 책이 없지는 않았지만 사실 실용서가 많았거든요. 예를 들면 현영의 재테크 다이어리라는 책이 2008년대 후반에 엄청 인기를 끌었던 적이 있고요. 조혜련 씨도 박살 일본어라는 일본어 수업 책을 내기도 했죠. 그런데 요즘에는 실용서보다 연예인의 사적인 이야기, 자기의 속내를 솔직하게 드러내는 에세이가 많은 것 같아요.


ann 책을 통해서 팬들과 더 소통하려는 게 아닌가 싶죠.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다양한 종류의 책으로 대중과 소통에 나선 연예인들의 책을 두 권 가져와봤는데요. 연예인이라는 편견을 내려놓고 읽어보면 전업 작가가 썼다고 해도 괜찮을 법한 그런 책들입니다.


ann 어떤 책부터 만나볼까요?     

먼저 소개해드릴 책은 배우 하정우의 ‘걷는 사람, 하정우’라는 책입니다. 하정우 씨가 작년 11월에 출간한 에세이인데요. 자신의 건강 관리 비법이자 취미생활인 걷기에 대해서 굉장히 솔직하고 또 진지하게 쓴 글이더라고요.

ann 하정우 씨는 정말 다재다능한 배우라는 생각이 들죠.     

그렇죠. 하정우 씨는 화가이기도 하잖아요. 직접 그린 그림을 모아서 전시회도 열고 있고요. 책도 꾸준히 쓰고 있죠. 2011년에는 ‘하정우, 느낌 있다’라는 제목의 에세이를 낸 적도 있고요. 이번 책은 두 번째로 낸 책인 거죠. 어느 인터뷰를 찾아보니까 5년에 한 번씩은 지나온 인생을 되돌아보는 느낌으로 책을 쓰려고 한다고 말했더라고요.


ann 걷는 사람 하정우는 어떤 책인가요일단 제목에서 걷기에 대한 책인 게 분명하게 나타나기는 합니다.     

이 책은 정말 하정우식 걷기 예찬이라고 보면 되는데요. 하정우 씨가 일이 없거나 할 때는 보통 하루에 3만보를 걷고 작정하고 걷기에 나서면 하루에 10만보까지도 걸은 적이 있다고 합니다. 강남에서 홍대까지 약속이 있어서 걸어서 가봤더니 1만6000보가 나온 적이 있다는 얘기도 하고요. 비행기 타러 김포공항을 가야돼서 그냥 강남에서 걸어가 본 적도 있다고 하고요. 말 그대로 걷기 예찬인 거죠.

그런데 이 책이 단순히 걷는 게 얼마나 몸에 좋고 이런 류의 이야기만 하는 건 아니고요. 하정우라고 하면 대한민국에서 탑 배우에 반열에 올라 있잖아요. 말 그대로 스타인데, 그 화려한 삶 속에서 자신이 받는 많은 스트레스, 그리고 힘든 순간들이 적지 않은 거죠. 하정우씨는 걷기를 통해서 그 힘든 순간들을 이겨냈다고 이야기하는데요. 연예인들의 깊은 속내를 들을 기회가 많지 않은 걸 생각하면 이 책이 하정우라는 한 명의 인간을 이해하는데 좋은 기회가 될 수 있겠죠.     


M1 로맨틱 펀치 –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https://youtu.be/xvM2Er9VtuE


ann 연예인들의 책 만나보고 있어요먼저 배우 하정우의 걷는 사람하정우’ 어떤 책인지 자세히 이야기해보죠하정우씨는 왜 걷기를 시작했다고 하나요?     

처음 걷기에 몰두하게 된 계기는 좀 재밌는데요. 하정우씨가 2011년에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에 시상자로 나선 적이 있거든요. 이때 하정우씨가 “제가 이 상을 받는다면 국토대장정을 하겠다”고 공개적으로 약속을 한 거예요. 그런데 하정우씨가 영화 ‘황해’로 정말 상을 탄 거죠. 그때 하정우씨가 약속을 지키려고 서울에서 해남까지 577km를 국토대장정에 나서거든요. ‘577프로젝트’라고 다큐멘터리로 촬영도 했는데요. 이 일이 계기가 되면서 걷는 사람이 된 거죠.


ann 그정도로 많이 걸으면 정말 운동이 될 수밖에 없겠죠.     

하정우씨가 유명한 게 먹방이잖아요. 영화 속에서 음식을 맛있게 먹는 걸로 유명해서 그런 장면만 모아놓은 것도 있죠. 평소에도 그렇게 좋은 음식을 잘 먹는 걸 좋아한다고 하는데요. 책에서도 자신이 걷기를 배우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150kg은 나가지 않을까 싶다고도 해요. 그만큼 걷기가 탁월한 다이어트 수단이 된 거죠.


ann 그렇다고 이 책이 건강 팁을 전수하는 책은 아닌 거죠.     

맞습니다. 걷기가 몸에 좋다는 거야 당연한 말이잖아요. 하루에 3만보씩 걸으면 당연히 몸이 좋아질 수밖에 없죠. 하정우씨가 그런 당연한 말을 하려고 이렇게 책까지 쓴 건 당연히 아니고요. 책을 보면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배우 중 한 명이자 성공한 연예인인 하정우씨도 이렇게 늘 고민과 두려움 속에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여느 사람들이 선택의 기로에서 늘 하게되는 고민과 후회들이 연예인이라고 해서 피해가지는 않는 거죠.


ann 어떤 이야기가 있나요?     

하정우씨가 주연과 감독을 함께 맡은 영화가 있었어요. ‘허삼관’이라는 영화인데요. 영화배우 하정우의 감독 도전으로도 잘 알려진 작품인데 사실 관객 수는 100만명을 넘지 않았어요. 흥행으로 보면 실패한 영화인 셈이죠. 책에 보면 그때 하정우씨의 심정이 나오는데요. 이렇게 적고 있어요. 허삼관은 기이할 정도로 관객이 들지 않고 있었고 부랴부랴 이유를 찾다가 나 자신을 질책하다가 눈떠보면 암살 촬영 시간이 닥쳐와 있었다. 촬영장에 가는 것조차 너무나 힘이 들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분명 나를 위로하려 할 테니까.


ann 그때 위로가 되어준 게 걷기였군요.     

그렇죠.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걷는다는 건 크게 의식하지 않고 하는 행동이죠. 숨쉬기처럼. 숨 쉬는 건 우리 삶에서 정말 중요한 행동이지만 거기에 일일이 의미 부여하는 사람은 많지 않죠. 숨을 못 쉬면 우리 삶이 불가능한 걸 알면서도 말이죠. 걷기도 그 비슷한 거죠. 하정우씨는 그걸 깨달은 사람인 거죠. 걷는 게 얼마나 소중하고 행복한 일인 건지 깨달은 거예요. 하정우에게 걷기란 나만의 호흡과 보폭을 잊지 않겠다는 다짐이라고 해요. 잊고 있던 내 몸의 감각을 생생하게 되살리는 일인 거죠. 그렇게 꾸준히 걸으면서 자기 자신을 되찾고 슬픔이나 두려움 속에서 단단히 서는 거죠.


ann 책에서 인상 깊었던 문장이 있으면 소개해주세요.     

이 말이 정말 좋았는데요.

“사람마다 보폭이 다르고 걸음이 다르다. 같은 길을 걸어도 각자가 느끼는 온도차와 통점도 모두 다르다. 길을 걸으면서 나는 잘못된 길은 이 세상에 없다는 걸 알았다. 조금 더디고 험한 길이 있을 뿐이다.”

이 말을 읽고 저는 아 이 사람은 정말 많이 걸어봤구나. 세상의 길을 허투루 걷지 않았구나. 성공한 연예인, 유명한 배우라는 화려한 장막에 갇혀 살지 않고 있구나 하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M2 김사월 누군가에게

https://youtu.be/11mxnvHowTY


ann 연예인들이 쓴 책 만나보고 있어요. ‘걷는 사람하정우’ 이야기해봤고요이번에는 어떤 책 만나볼까요?

이번에는 밴드 언니네이발관의 이석원씨가 쓴 ‘보통의 존재’라는 산문집을 소개해드리려고 하는데요. 언니네이발관은 안타깝게도 지금은 해체하고 더는 활동을 하지 않죠. 하지만 이석원씨는 밴드 해체 이후에도 꾸준히 글을 쓰면서 작가로 독자들을 만나고 있는데요. 보통의 존재는 지금부터 10년 전인 2009년에 출간돼서 연예인의 책에 대한 편견을 깨뜨린 책입니다.


ann 언니네이발관은 책밤지기가 좋아하는 밴드죠?     

학생 때는 콘서트마다 쫓아다니고 했었는데요. 예전부터 이석원씨가 본인의 블로그에 에세이 같은 산문을 자주 올렸거든요. 새글이 올라올 때마다 팬들이 우르르 몰려가서 읽고 그랬던 기억이 있어요. 재밌는 게 이석원씨가 책을 쓰고 싶어한다는 걸 예전부터 다들 알고 있었는데요. 어느날 뉴스를 보니까 진짜 책을 쓰고 있다는 거예요. 처음에는 그런가보다 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보니까 이석원씨가 책을 쓰느라 음반 작업을 안 하고 있는 거예요. 책도 책이지만 팬들은 빨리 새 음반이 나왔으면 하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말이죠. 4집이 2004년에 나왔는데 5집은 2008년에야 나왔고요. 마지막 6집은 무려 9년이 걸려서 2017년에 나왔죠. 그래서인지 이석원씨의 책은 언니네이발관 팬들에게는 좋으면서도 복장 터지게 만들었던 그런 느낌이 있어요.

ann 그럼에도 이렇게 방송에서 소개하시는 건 좋은 책이라는 거죠?     

이석원씨가 꽤 책을 자주 내고 있는데요. 제 기준에서는 오늘 소개해드리는 ‘보통의 존재’가 가장 좋은 책이에요. 애정이 간다고 할까요. 이석원씨의 산문이 막 밝고 희망차고 그런 류는 아니거든요. 가라앉아 있고 조금 우울하고 그런 느낌이죠. 그 와중에 삶의 어떤 진실을 드러내 보여주는 게 있는데요. 보통의 존재는 그런 점에서는 이석원씨 뿐 아니라 어떤 전업 작가의 에세이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습니다.


ann 어떤 부분이 그렇게 좋은가요?     

보통이라는 단어를 우리가 일반적으로는 안 좋은 의미로 많이 쓰잖아요. 보통이라고 하면 뭔가 좀 약하거나 못 미치거나 이런 느낌이죠. 그런데 이석원씨는 보통의 존재, 보통의 삶을 살아가는게 얼마나 어려운지에 대해서 이야기하거든요. 누군가에게는 이 정도면 보통이지 뭐, 하고 넘어갈 일들이 자신에게는 얼마나 달성하기 힘들고 어려운 일인지 이야기하는 거죠.

이석원 씨의 개인사를 조금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데요. 이석원 씨는 성공한 밴드의 리더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하지만 개인사에서도 크고 작은 일이 끊이지 않았거든요. 이혼을 경험하고 함께 밴드를 만든 절친한 친구의 죽음을 경험하고 희귀병을 얻고 가족에게 어려운 일이 생기고.. 이런저런 일들을 겪으면서 정말 보통의 삶이라는 건 뭘까. 그런 보통의 삶을 사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죠. 아마도 이 책은 성공한 연예인으로서가 아니라 보통의 삶을 꿈꾸는 한 명의 인간이 쓴 게 아닐까 싶습니다.     


M3  언니네이발관 – 누구나 아는 비밀(with 아이유)

https://youtu.be/eHS8i5k_d_0


ann 연예인들의 책 만나보고 있어요밴드 언니네이발관의 리더였던 이석원 씨의 산문집 보통의 존재’. 인상 깊은 문구나 이야기가 있으면 소개해주세요.     

이 책은 거창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데요. 정말 우리 삶에서 만날 수 있는 작은 이야기들, 소소하다면 소소한 순간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예컨대 이런 이야기도 있어요. ‘나는 오늘도 느리게 달린다’라는 제목의 짧은 챕터인데요. 이건 도로에서 천천히 달리다보면 뒤에서 오는 차들이 늘 클랙슨을 한 번씩 누르고 지나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죠. 정말 별 것 아닌 평범한 일상이잖아요. 그런 이야기들 속에서 이석원이라는 사람이 누구인지, 어떤 고민을 하는지 조금씩 보여주는 거죠.


ann 사랑과 예술죽음과 소멸 이런 식으로 모두가 고민하는 주제도 빠질 수가 없겠죠.     

그렇죠. 이 책을 썼을 때 이석원 씨가 건강과 사랑을 한꺼번에 잃어버린 상황이었거든요. 당연히 그런 문제들에 대해서 큰 고민과 질문을 가지고 있었겠죠. 해파리라는 챕터에서는 이런 말을 하는데요.

“저는 사랑과 생명에 끝이 있다는 것에 찬성하는 편입니다. 나의 삶은 38년간 무기력함에 시달리다가 마흔을 앞두었다는 시기적 절박감과 마침 무너졌던 건강 덕분에 생의 유한함을 절실히 목도한 후 비로소 삶에 생명력과 애착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에 끝이 없다면 과연 지금 이 사람에게 최선을 다 할 수 있을까.”

이런 말을 정말이지 아무렇지 않은 듯 툭툭 던지는 게 이석원씨의 글이 가진 매력이 아닐까 싶어요.


ann 사랑에 끝이 없다면 지금 이 사람에게 최선을 다할 수 있을까누구나 한 번쯤 해봤을 생각이지만 쉽게 말하기는 어려운 이야기죠.     

희망에 대한 이야기도 그런데요. 다시 한번 책에 적힌 글을 읽어드리면요.

“저는 하루하루가 희망으로 넘쳐흐른다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로 의아한 생각이 들어요. 희망이란 절망 속에서 생기는 것인데 저렇게 희망만이 가득한 사람의 희망이란 대체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드는거죠.”


ann 희망이란 절망 속에서 생기는 것인데 라는 말이 와닿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하고요.     

언니네이발관의 음악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공감하실 수 있을 텐데요. 희망이란 절망 속에서 생기는 것이라는 말이 어쩌면 언니네이발관이 해온 음악을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는 말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그렇게보면 이석원씨는 밴드를 해체했지만 그 이후로도 자기만의 방식으로 음악을 계속해오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이석원씨가 이런 말을 하거든요. “우리가 아무리 사랑한다 해도 결국에는 보통의 존재로 밖에 기억되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을 읽지 않고 이 말을 들었을 때는 이 말이 기분이 나빴는데요.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이 말을 곱씹어보면 이 말이 얼마나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지 모릅니다. 보통의 삶이라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얼마나 힘든지.


M4 언니네이발관 – 산들산들

https://youtu.be/cB2xyEY_J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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