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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자 Apr 21. 2019

모든 책은 헌책이다

tbs 교통방송 심야라디오 프로그램 '황진하의 달콤한 밤'의 책 소개 코너 '소설 마시는 시간'입니다.

매주 토요일에서 일요일 넘어가는 자정에 95.1MHz에서 들으실 수 있어요.


4월 14일 일흔다섯 번째 방송은 헌책을 만나는 다양한 방법을 주제로 진행했습니다.


↓소설 마시는 시간 멘트↓


ann 책 속에 담긴 인생의 지혜를 음미해 보는 <소설 마시는 시간> 오늘은 어떤 주제로 이야기 나눠볼까요?

오늘은 헌책에 대한 이야기를 가져왔습니다. 헌책을 만나는 여러가지 방법을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ann 옛날에는 헌책방이 동네마다 있었던 것 같은데 요즘에는 헌책방 보기도 어려워졌어요.      

유명한 헌책방이 많았는데 많이 사라졌죠. 헌책방도 온라인으로 사고 파는 게 가능해지면서 이제는 오프라인 헌책방이 많이 없어졌죠. 그래도 최근에는 헌책방만의 고유한 문화나 분위기를 좋아하고 아끼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조금씩 헌책방도 살아나는 기미가 보이고 있어요.


ann 그럼 헌책방을 만나는 여러가지 방법. 첫 번째 방법은 뭔가요?      

오늘은 조금 특별하게 책이 아니라 공간을 먼저 소개해드리려고 하는데요. 서울시가 운영하는 공공 헌책방 '서울책보고'가 헌책을 만나는 첫 번째 방법입니다.


ann 공공 헌책방, 서울책보고. 최근에 뉴스가 많이 나오던데요. 어떤 공간인가요?     

서울책보고는 서울시가 25개 헌책방과 함께 만든 공간인데요. 잠실나루역 1번 출구 인근에 비어있던 신천유수지 내 대형창고를 리모델링해서 헌책을 만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든 거죠. 1465 제곱미터 규모에 25개 헌책방이 입점해서 저마다가 소장하고 있는 헌책을 판매하는 공간인데요. 그냥 헌책만 파는 게 아니라 젊은 감각의 독립출판물이나 명사들의 기증도서까지 접할 수 있는 종합 책 문화공간으로 구성한 게 재밌습니다.


ann 지난달에 오픈했으니까 아직 문을 연지 한 달도 안 된 건데요. 책밤지기는 직접 다녀와보셨나요?     

청취자분들께 분위기를 생생하게 전달드려야 하니까요. 지난 주말에 직접 다녀와봤습니다. 서울책보고의 강점이 일단 지하철역에서 나오면 1분 거리에 있어요. 굉장히 접근성이 좋다는 게 큰 장점인데요. 그리고 헌책방이라고 하면 우리가 흔히 가지는 오해나 편견이 있죠. 비좁은 공간에 먼지 낀 책이 잔뜩 쌓여 있는 그런 분위기를 떠올리기 쉽죠. 찾는 책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없고 불편하고 그런 것도 있고요. 그런데 서울책보고는 굉장히 공간이 넓고 깔끔하게 정리가 돼 있어서 우리가 헌책방에 대해 가지는 편견을 깨줍니다. 물론 그런 고유의 분위기를 좋아하는 분은 너무 깔끔하고 대형서점 같아서 아쉽다는 말도 하지만, 헌책방이 새로운 독자를 만나는 중요한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데는 이게 더 좋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M1 잔나비 – 꿈과 책과 힘과 벽

https://youtu.be/SJUWooZnfVQ


ann 헌책을 만나는 다양한 방법. 먼저 서울시가 만든 공공 헌책방 서울책보고 이야기를 해보고 있습니다. 책밤지기가 직접 다녀온 서울책보고는 어떤 분위기던가요?      

저는 헌책방을 좋아해서 서울이나 부산, 진주에 있는 헌책방을 많이 다녀봤거든요. 그런데 서울책보고는 다른 헌책방이랑은 전혀 다른 분위기예요. 일단 아이들이 정말 많아요. 제가 일요일에 갔는데 부모의 손을 잡고 온 아이들이 서울책보고 곳곳에서 헌책을 꺼내 보며 신기하게 읽고 있더라고요. 공간이 넓은데다 아이들이 신발을 벗고 편하게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도 따로 있거든요. 그렇다보니까 부모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편하게 올 수 있는 거죠.


ann 어릴 때 책과 친하게 지내는 게 중요하다고 하잖아요. 서울책보고가 아이들이 책과 친하게 지낼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하겠네요.      

그렇죠. 그리고 서울책보고의 장점 중에 또 하나가 전국 곳곳에 흩어져 있는 유명한 헌책방의 소장 도서를 한 곳에서 접할 수 있다는 거예요. 서울책보고에 입점한 헌책방 중에는 전국적으로 유명한 곳들도 많은데요. 예컨대 공씨책방이 있어요. 공씨책방은 1972년에 신촌에서 문을 연 헌책방인데요. 한때는 광화문 교보문고 옆에도 지점을 열 정도로 헌책방 중에는 가장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은 곳이에요. 저도 대학생 때 자주 들렀던 곳인데 이번에 다시 이름을 보니까 너무 반갑더라고요.

공씨책방 말고도 청계천변의 대광서림, 동아서점이 있고요. 1979년에 서교동 온고당에서 시작해 지금은 글벗서점으로 이름을 바꾼 헌책방의 책도 이곳에서 만날 수가 있어요. 


ann 그런데 그냥 헌책만 파는 공간인가요?      

그렇지가 않습니다. 4월 한 달 동안은 색다른 전시도 진행되는데요. '그때 그 책보고'라는 이름의 전시예요. 수십년 전에 출간된 시집이나 소설, 잡지의 초판본을 전시하는 이벤트인데요. 전시되는 책 중에는 1955년에 출간된 동시집도 있더라고요. 작가의 사인이 있는 1955년 초판본 동시집인데 이런 책을 어디서 또 만나겠어요. 1990년에 나온 키노나 주간야구 같은 잡지들도 편하게 볼 수가 있는데요. 저는 야구를 좋아하잖아요. '홈런왕은 나다 김성한' '3할의 예술 장효조' 이런 기사를 보는데 정말 재밌었습니다. 


ann 책만 파는 공간이 아니라 활자 매체에 대한 사랑과 애정이 듬뿍 느껴지는 공간이군요.      

j 여기에다 대형서점에서는 좀처럼 만나기 힘든 독립출판물도 한쪽에 열람할 수 있는 공간이 잘 정리돼 있고요. 명사의 기증 도서 공간도 있습니다. 작가나 아티스트, 학자 등 다양한 명사의 기증도서를 전시하는 공간이라고 하는데요. 지금은 한상진, 심영희 두 교수 부부의 기증도서가 전시돼 있어요. 두 분은 일생을 사회학자로 산 분들인데요. 헌책방을 돌면서 자신들이 구한 책들을 기증한 거예요. 이분들이 기증한 책이 서가 한쪽을 꽉 채우는데요. 이 많은 책을 읽었다는 생각을 하면 까마득해지기도 합니다. 


ann 서울시가 만든 공공 헌책방 서울책보고 이야기를 해봤는데요. 이렇게 책을 편하게 접할 수 있는 공간이 더 많이 생기면 좋겠어요.      

저도 그런 바람이 있습니다. 특히 어린아이들이 편하게 갈 수 있는 공간이 많았으면 싶은데요. 4월 한 달 동안 아이들을 데리고 갈 수 있는 책과 관련한 문화행사가 있어서 하나 잠깐 소개해드릴게요. 상암동의 문화비축기지에서 열리는 어린이책축제 '활짝! 숲속 책놀이터' 행사인데요. 생태와 예술을 주제로 그림책, 팝업북, 미디어북을 편하게 만날 수 있고, 가족들과 아이들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체험프로그램도 4월 한 달 동안 매주 주말마다 열린다고 합니다. 사전예약을 하면 작가들과 함께 하는 워크숍도 참가할 수 있다고 하니 아이가 있는 부모들은 꼭 메모해두세요.      


M2 에피톤 프로젝트 - 어른

https://youtu.be/0Et8WD6YXDI


ann 헌책을 만나는 여러 가지 방법에 대한 이야기해보고 있어요. 서울시가 운영하는 대형 공공 헌책방 서울책보고 다녀온 이야기를 했는데요. 이번에는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이번에는 헌책과 헌책방에 대한 애정이 깊게 묻어 있는 책을 한 권 소개해드리려고 하는데요. 오래전부터 헌책방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해온 것으로 유명한 최종규 씨가 쓴 '모든 책은 헌책이다'라는 제목의 책입니다. 이 책은 저자가 직접 찾아다닌 40여곳의 헌책방과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요. 읽고 있으면 수십년에 걸친 헌책방들의 역사나 그곳을 운영하고 있는 주인 분들의 이야기가 눈 앞에서 자연스럽게 펼쳐지는 느낌이 듭니다.


ann 모든 책은 헌책이다, 라는 제목이 인상적이에요.     

결국 헌책, 헌책방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데요. 우리가 책을 사기 위해서 서점을 가잖아요. 그런데 요즘 대형 서점을 갈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필요한 책, 원하는 책을 정해놓고 가지 않으면 서점에서 책을 찾는 게 참 어렵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미로 같다는 느낌이죠. 그에 비하면 헌책방은 내가 사고 싶은 책이 뭔지 잘 몰라도 일단 가서 찾아보다 보면 눈에 확 띄는 책이 있거든요. 책 고르는 걸 미로찾기에 비유하면 대형 서점은 정말 길을 잃고 헤매는 기분인데, 헌책방은 미로찾기를 게임처럼 해놔서 즐길 수 있는 거죠. 이 책의 저자인 최종규 씨도 같은 이야기를 하는데요. 세상에 있는 좋은 책은 우리가 아는 책보다 모르는 책에 훨씬 많기 때문에 헌책방을 찾아가면 그런 우리가 몰랐던 좋은 책을 발견할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ann 우리가 몰랐던 좋은 책을 발견하는 기쁨. 정말 보물찾기 하는 기분으로 헌책방을 다니는군요.     

그렇죠. 요즘 시대에 누가 헌책방을 가겠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의외로 그런 분들이 참 많은데요. 이 책에도 저자가 헌책방을 다니다가 만난 유명인들 이야기가 나와요. 대표적인 분이 성공회대의 한홍구 교수인데요. 하루는 저자가 신촌의 한 헌책방에 갔는데 배불뚝이 아저씨 같은 사람이 헌책방 수십권을 신중하게 골라서 사가더래요. 그래서 저 사람이 누구냐고 주인에게 물었더니 한홍구 교수라고 이야기를 해준 거죠. 그 이후로도 몇 번 서울 곳곳의 헌책방에서 서로 책을 찾다가 우연히 마주치면서 인사를 하는 사이가 됐다고 하는데요. 헌책방을 다니다보면 이렇게 남들이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헌책을 보물 찾듯이 찾아다니는 사람들끼리의 은밀한 유대감이 생기나 봅니다.


ann 정말 보물을 찾는 경우도 있겠죠.     

잘 간직하고 있으면 수십 배의 값어치를 하는 책을 발견할 수도 있겠죠. 헌책방에 있는 책을 보다보면 저자의 사인이 있는 책이 은근히 있어요. 그런 사인이 있는 책은 또 나름의 소장 가치가 있죠. 또 값어치를 따지기는 어렵지만 책 말머리 같은 곳에 책의 옛 주인이 메모해둔 것들이 있기도 합니다. 책에 대한 단상이나 누군가에게 보내는 편지 같은 게 적혀 있기도 한데요. 그런 글이 책 본문보다 더 흥미로울 때도 있고요. 이 책의 옛 주인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생각하는 재미도 쏠쏠하죠.     


M3 Lady Gaga&Bradley Cooper - Shallow

https://youtu.be/bo_efYhYU2A


ann 헌책을 만나는 다양한 방법. 이번에는 헌책방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 '모든 책은 헌책이다' 이야기해보고 있습니다. 아까 40여개의 헌책방 이야기가 있다고 했는데요. 그중에 책밤지기가 다녀본 곳도 있겠죠?

앞에서도 잠깐 말씀드렸던 신촌의 공씨책방이 이 책에도 나오는데요. 공씨책방은 창업주라고 할 수 있는 공진석씨가 40년 넘게 힘들여서 키운 서점이거든요. 공진석씨가 갑자기 돌아가시면서 한동안 어려움을 겪다가 지금은 다시 자리를 잡고 있고요.

저는 가보지 못했지만 책에서 보고 여기는 꼭 가봤으면 좋았겠다 싶은 헌책방도 있는데요. 외대앞에 있던 최교수네 헌책방이라는 곳이에요. 여기는 2002년에 문을 닫았다고 하는데요. 실제로 서라벌예대에서 교수로 있던 분이 만들어서 말년까지 가게를 지킨 곳이라고 합니다. 둘레둘레 책을 보다보면 얼마 걸리지 않아 다 볼 수 있을 만큼 크지 않은 가게였다고 하는데요. 책을 따로 잘 팔리게 진열하는 게 아니라 들어오는 대로 자기들 모냥대로 쌓아둔다는 가게 주인 최교수님의 이야기가 인상 깊더라고요. 요즘 서점 가보면 도서 검색대도 있고 북 마스터가 추천도 해주죠. 굉장히 현대적인 서비스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 헌책방을 가면 책방 주인이 검색대 역할도 하고 북 마스터 역할도 하는 거거든요. 그런 분이랑 책 이야기를 두런두런 나누면 참 좋을텐데 하는 생각도 들고요.


ann 어쩐지 노팅힐 같은 영화도 생각나는 이야기네요.     

그런 꿈과 환상이 현실이 되는 공간이 바로 서점이 아니겠습니까. 책에 보면 서울뿐 아니라 전국의 헌책방들을 정리해놓은 부분도 있는데요. 제가 가본 곳도 꽤 나오더라고요. 예컨대 부산의 보수동 헌책방 골목은 서울 못지않게 많은 사람이 찾는 헌책방 가게들이 몰려 있고요. 저도 여기서 이성복 시인의 시집 초판본을 하나 득템한 적이 있는 좋은 추억이 있는 곳입니다. 

또 제 고향인 경남 진주의 헌책방들 이야기도 나오는데요. 의외로 진주에 헌책방이나 고서점이 많거든요. 예로부터 양반의 도시여서 그런 게 아닌가 싶은데 굉장히 반가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인천이나 대전에 있는 헌책방들에 대한 정보도 쏠쏠하고요. 이 책이 나온 지 10년이 넘게 지난 책이라 업데이트가 필요하지만 여기에 나오는 정보를 바탕으로 검색을 해서 나만의 헌책방 라이브러리를 만드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ann 돌아오는 주말에는 아이들 손잡고 서울책보고나 가까운 헌책방을 한번 찾아보는 건 어떨까 싶기도 하네요.     

맞습니다. 헌책을 왜 읽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요. 바꿔서 보면 누군가가 이 책은 읽을 가치가 있다고 판단해서 돈을 주고 샀기 때문에 그 책이 헌책이 된 거잖아요. 그러면 헌책이라는 건 누군가가 읽다 버린 책이 아니라 다시 읽힐 만한 책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거죠. 대형 서점의 획일적인 책 배치에 질린 분들이라면 헌책방에서 보물찾기 하는 즐거움을 꼭 경험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M4 계피 - 2019

https://youtu.be/FnnDNFz9T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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