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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자 Apr 21. 2019

봄의 의미를 고민하게 하는 소설 두 권

tbs 교통방송 심야라디오 프로그램 '황진하의 달콤한 밤'의 책 소개 코너 '소설 마시는 시간'입니다.

매주 토요일에서 일요일 넘어가는 자정에 95.1MHz에서 들으실 수 있어요.


4월 21일 일흔여섯 번째 방송은 봄에 읽으면 좋을 소설을 두 권 소개습니다.


↓소설 마시는 시간 멘트↓


ann 책 속에 담긴 인생의 지혜를 음미해 보는 <소설 마시는 시간> 오늘은 어떤 주제로 이야기 나눠볼까요?

바야흐로 봄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벚꽃이 한창 피었다가 이제는 시들해지고 있는데요. 벚꽃이 지면 온 산천이 초록으로 변하기 시작하잖아요. 저도 지난주에 캠핑을 다녀왔는데 벚꽃이 진 자리를 초록이 가득 채우기 시작했더라고요. 여름 더위가 시작되기 전까지는 봄날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봄에 어울리는 소설을 두 권 가져왔습니다.


ann 정말 봄이 깊어가고 있죠. 봄에 어울리는 소설이라고 하면 어떤 소설일까요?     

먼저 소개해드릴 책은 조금 특별한 책인데요. 제목이 ‘소설 보다 봄-여름 2018’입니다. 이 책은 설명이 조금 필요한데요. 이 책을 낸 출판사는 문학과 지성사예요. 문학과지성사는 2011년부터 매년 문지문학상 수상작품집을 냈는데요. 이 수상작품집을 작년에 개편한 게 바로 소설 보다 봄-여름입니다. 분기마다 ‘이 계절의 소설’을 선정해서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나중에 문지문학상 후보로 삼는데요. 그걸 모아서 수상작품집을 한꺼번에 내는 게 아니라 이 계절의 소설을 바로바로 짧은 단편집으로 내는 방식을 택한 거죠. 이 책은 작년 봄과 여름에 이 계절의 소설에 선정된 작품들을 모아놓은 책입니다.


ann 문학과지성사는 우리 문학계를 대표하는 출판사 중 하나죠. 그런 곳에서 봄에 어울리는 소설을 고른 거네요.

그런 셈이죠. 이 상 자체가 젊은 작가를 발굴하는데 목적이 있다보니까 젊은 작가의 작품이 많은데요. 젊은 작가의 작품이라는 것도 왠지 봄이라는 계절에 잘 어울리기도 하죠. 

ann 그럼 지난해 봄에 어울리는 소설로 선정된 작품들은 어떤 게 있나요?     

두 편의 단편이 선정됐는데요. 김봉곤 작가의 ‘시절과 기분’이라는 단편이 있고요. 또 조남주 작가의 ‘가출’도 봄에 어울리는 소설로 선정됐습니다. 김봉곤 작가는 2016년에 신문사 신춘문예로 등단한 작가인데요. ‘여름, 스피드’라는 소설집으로 이미 문단과 대중의 사랑을 함께 받고 있는 젊은 작가고요. 조남주 작가는 최근 몇 년 사이에 한국 문단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를 몰고 온 작품이죠. ‘82년생 김지영’을 쓴 작가입니다. 두 분 다 한국 문단의 미래를 책임질 만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평가를 듣고 있습니다. 


ann 조남주 작가의 작품은 굉장히 강렬한 분위기잖아요. 봄은 어쩐지 사근사근한 느낌인데 조남주 작가의 작품이 선정되니까 흥미롭기도 하네요.     

저도 같은 생각을 했는데요. 이 책에 실린 ‘가출’이라는 작품도 만만치 않아요. 이 작품은 칠순을 넘긴 아버지가 갑자기 가출을 하면서 가족에 닥친 변화를 다루고 있는데요. 칠순의 아버지는 우리 사회에서 가부장을 대변하는 존재잖아요. 그런 가부장이 부재한 상황에서 과연 남은 가족들은 어떻게 살아나가는가. 그런데 막상 가부장이 없는 상태에서도 남은 가족들은 별다른 어려움 없이 삶을 살아가거든요. 그럼 가부장이라는 게 애초에 필요한 게 아니지 않았을까. 이런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죠. 그럼 이게 어떻게 봄이라는 계절에 어울리는 걸까. 이건 각자가 답을 찾을 필요가 있을 텐데요. 제 생각에는 지금 한국 사회에서 페미니즘, 그리고 가족이나 사회 안에서 여성들의 권리 찾기가 이제막 시작되는 단계라고 보거든요. 그런 점에서 보면 봄이라는 계절에 어울리는 게 아닐까도 싶습니다.     


M1 데이브레이크 - 살랑

https://youtu.be/vF2j3w1gh1M


ann 오늘은 봄에 읽으면 좋을만한 봄에 어울리는 소설을 만나보고 있습니다. 문학과지성사에서 봄에 어울리는 단편 소설로 뽑은 작품을 싣고 있는 ‘소설 보다 봄-여름 2018’ 만나보고 있어요. 조남주 작가의 ‘가출’ 이야기해봤고요. 김봉곤 작가의 ‘시절과 기분’은 어떤 작품인가요?     

김봉곤 작가에 대해서 먼저 간단하게 소개해드려야 되는데요. 김봉곤 작가를 설명할 때 늘 붙는 수식어가 커밍아웃한 첫 게이 소설가라고 하거든요. 최근에 게이 소설가의 작품이 한국 문단에서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어요. 젊은 작가상을 받은 박상영 작가도 있고, 김봉곤 작가도 그중 한 명이죠. 김봉곤 작가는 늘 자신의 이야기를 소설로 풀어낸다고 하는데요. 그러다 보니 소설의 이야기도 게이의 사랑에 대한 게 많고 ‘시절과 기분’도 마찬가지입니다.


ann 최근에 많아졌다고 해도 게이 러브를 그린 소설은 여전히 접하기 힘들죠.     

그렇죠. 여전히 어려운 건 마찬가지인데요. 그래서 이런 작품이 더 신선하고 재밌게 읽히는 거죠. 이 소설의 줄거리는 간단한데요. 지금은 동성애자가 된 주인공이 이성애자이던 시절에 사귀었던 여자친구를 만나러 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여자친구를 사귀던 시절의 나는 지금 동성애자가 된 나와는 많이 다른 사람일 수도 있고, 의외로 다른 게 없을 수도 있잖아요. 그러니까 이건 현재의 내가 과거의 나를 만나러 가는 이야기로 볼 수도 있는 거죠.


ann 다른 정체성을 가진 나를 찾는 여행이네요.     

소설을 읽다 보면 이게 소설인지 일기인지 헷갈리는 부분이 많은 게 재밌는데요. 소설 속 주인공의 설정이 직장 생활을 하면서 글을 쓴다거나 하는 부분들이 실제 김봉곤 작가와 유사하다고 하거든요. 그러니까 소설 같기도 한데 어느 순간에는 김봉곤 작가의 일기를 슬쩍 훔쳐보는 느낌도 들고요. 여러 가지로 재밌는 소설이죠.


ann 이 소설은 왜 봄에 어울리는 작품으로 꼽혔을까요?     

역시나 봄에는 사랑 이야기가 빠질 수 없잖아요. 이 소설은 소설 속의 이야기도 그렇고, 작가가 던지는 질문도 그렇고 사랑이 중심이 되는 이야기거든요. 지금 만나는 사랑, 그리고 과거에 만났던 사랑에 대해서 무덤덤하면서도 섬세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참 좋거든요. 이 책을 보면 소설이 있고 그 뒤에 작가의 인터뷰가 같이 실려 있는 방식인데요. 인터뷰에서 김봉곤 작가가 이렇게 말해요.

“사랑을 제외한 소설 쓰기는 잘 상상할 수가 없어요. 어찌 되었든 제가 글을 쓰는 이유는 다시 알고 싶고 더 잘 알고 싶기 때문이고,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럴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면 글로 써지지 않을 거거든요. 억지로 사랑하기 힘든 것처럼 말이에요.”

우리가 사랑해야 되는 이유에 대한 근사한 정답이 아닐까 싶어요.


ann 소설 보다 봄-여름 편을 만나봤는데요. 이게 작년 여름에 나왔으니까요. 그 이후에도 계속 계절마다 나오고 있는 건가요?

가을 편과 겨울 편이 나왔고요. 조만간 2019년 봄 편이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책은 표지도 참 예쁘고 부담 없이 읽기도 좋거든요. 또 가격이 3500원밖에 안돼요. 웬만한 잡지 한 권보다 싼 가격이죠. 부담없이 편하게 소설을 읽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하는 책입니다.


M2 Regina Spektor – Older And Taller

https://youtu.be/5zB3fwHX83k


ann 오늘은 봄에 읽으면 좋을만한 봄에 어울리는 소설을 만나보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 만나볼 책은 뭔가요?

이번에는 대만 작가의 소설을 한 권 소개해드릴 건데요. 왕딩궈라는 작가가 쓴 ‘적의 벚꽃’이라는 제목의 장편소설입니다. 왕딩궈는 열일곱 살에 소설을 쓰기 시작해서 단숨에 주목을 받은 작가였는데요. 그 이후에 절필을 선언하고 공무원을 하다가 건설업에도 뛰어들었다가 25년 만에 다시 글을 썼다고 합니다. 이후 꾸준히 소설을 쓰면서 지금은 대만을 대표하는 작가 중에 한 명에 올랐다고 하고요.


ann 책의 표지를 봤는데요. 하늘색 배경에 벚꽃잎 3개가 떨어지는 모습이 굉장히 처연해보여요.      

표지의 느낌이 소설 전체를 대변한다고 보면 되는데요. 출판사의 책 소개를 보면 ‘위대한 개츠비’에 비견될 만한 처연한 아름다움이 있다고 쓰여있거든요. 출판사야 책을 많이 팔려고 과장하기 마련인데 이 소설은 실제로 읽어보면 정말로 처연한 기분이 듭니다. 책에 보면 이런 문장이 나오는데요.

‘맑게 갠 하늘도 언젠가는 구름이 피고, 흐드러지게 핀 벚꽃도 시드는 운명을 피할 수 없다. 적의 벚꽃도 그렇다.’

책을 소개하는 이 문장이 보여주는 것처럼 이 소설은 피할 수 없는 운명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고 할까요. 사랑을 시작하지만 결국 언젠가 끝이 올 수밖에 없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죠.

ann 그렇게 아름답게 피었던 벚꽃도 정말 이제는 거짓말처럼 다 지고 말았죠. 소설의 줄거리를 좀 소개해주세요.

이 소설은 아내를 잃은 남자의 이야기인데요. 대만의 한 소도시에서 주인공은 아내와 함께 살고 있어요. 그런데 어느날 아내가 갑자기 실종됩니다. 도시에서 명망있는 남자 뤄이밍과 불륜을 저지른 뒤에 갑자기 사라진 거죠. 아내가 사라진 뒤에 주인공은 회사를 그만두고 바닷가에 작은 카페를 열어요. 그리고 아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면서 시간만 죽이면서 지내죠. 어느날 여자 한 명이 카페에 찾아오는데 바로 아내와 불륜을 저질렀던 뤄이밍의 딸이에요. 이 소설은 주인공과 뤄이밍의 딸 뤄바이슈의 대화로 이뤄져 있는데요. 대화 속에서 사랑의 본질, 그리고 사랑하는 존재를 잃은 슬픔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엿볼 수가 있는 거죠.


ann 오지 않을 사랑을 기다리고 있는 남자의 이야기라는 게 확실히 ‘위대한 개츠비’를 떠올리게 하네요.     

그렇죠. 개츠비나 이 소설의 주인공이나 힘든 인생을 살아왔고 그 목적이 결국 사랑이었던 건데요. 그런데 끝내 자신이 원했던 사랑이 이뤄지지 않고 사라져 버린 거죠. 작가는 이걸 봄날의 벚꽃에 비유하고 있고요. 우리가 아무리 벚꽃을 아끼고 매일 찾아보더라도 벚꽃은 결국 질 수밖에 없잖아요. 우리의 인생에는 피할 수 없는 순간이 언젠가 찾아온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어요. 그 순간에 모든 걸 빼앗겼단 생각에 주저앉고 무너지지 말고 어떻게든 견뎌내야 다음 봄을 맞이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작가가 하고 싶은 건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M3 심규선 – 너의 꽃말

https://youtu.be/ceZ3raTSivA


ann 오늘은 봄에 읽으면 좋을만한 봄에 어울리는 소설을 만나보고 있습니다. 대만 작가 왕딩궈의 ‘적의 벚꽃’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앞에서 줄거리를 잠깐 소개해주셨는데요. 결국 주인공을 떠난 아내는 돌아오지 않는 거죠.

그렇죠. 주인공은 아내가 떠난 게 아내와 불륜을 저지른 남자의 탓이라고 생각을 하는데요. 그 남자를 적으로 생각하고 남자의 파멸을 꿈꿔요. 그런데 자신이 바랬던 순간이 찾아왔는데도 막상 잠깐의 희열을 제외하고는 행복도, 기쁨도 없는 거예요. 적의 벚꽃이 시들고 땅에 떨어진 뒤에도 나의 벚꽃은 피지 않으니까요. 적이 파멸한다고 이미 사라진 아내가 내게 돌아오는 건 아니잖아요. 책에서는 이렇게 묘사합니다.

‘털끝 하나 다치지 않고 적을 파멸시키고 마침내 벚꽃이 나만을 위해 피도록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내게 얼마나 위안이 되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다락방으로 올라가 누웠을 때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운 건 그 동이 트지 않은 새벽이었다. 추쯔가 또다시 어둠을 더듬어 나가고 있었다.’


ann 복수를 성공해도 아내는 돌아오지 않고, 주인공은 결국 아내가 떠난 그 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거네요.

그런 셈이죠. 그렇다고 해서 이 소설을 쓴 왕딩궈가 오로지 사랑을 잃은 슬픔과 처연함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려는 건 아닌데요. 결과적으로는 굉장히 슬픈 소설이 됐지만요. 사실 작가가 그런 슬픔 속에서 더 이야기하고 싶었던 건 언젠가 일어날 수밖에 없는 슬픔을 견디고 다음 발걸음 내디뎌야 하는 것의 중요성이 아닐까 싶어요. 이 책의 주인공처럼 아내가 떠난 날에만 사로잡혀 있으면 사실 그 자신의 인생마저 파멸로 몰아넣는 셈인 거죠.


ann 책에서 인상 깊은 구절이 있나요?     

주인공이 ‘노인과 바다’를 좋아한다고 이야기하는 부분이 있는데요. 노인과 바다도 굉장히 슬픈 소설이잖아요. 어렵게 잡은 청새치가 상어한테 뜯어 먹혀서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상황. 그럼에도 노인은 그런 상황을 긍정하죠. 이 소설의 주인공도 이 이야기를 하면서 이렇게 말해요.

“내가 비극을 좋아해서 노인과 바다를 읽은 건 아니었다. 나와 그 노인 사이에 늘 어떤 선 하나가 이어져 있었다. 비극이 일어나야 인간의 가치가 드러나는 법이다.”


ann 비극이 일어나야 인간의 가치가 드러나는 법이다..     

사실 이 책이 화사한 봄에 어울린다고 말하기는 어렵겠지만, 화무십일홍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봄이 아무리 화려하고 아름다워도 결국 끝이 있기 마련이죠. 그런데 그 끝이 영원한 끝이 아니거든요. 다가올 여름과 가을, 그리고 겨울을 지낸 뒤에는 다시 봄이 오니까요. 그런데 봄이 끝나는 순간에 슬픔에 빠져서 멈춰버린다면 다음 봄을 기약할 수도 없겠죠. 이제 4월도 끝이 보이니까요. 이런 마음가짐을 가져보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M4 안녕바다 - 담담

https://youtu.be/Fm9OyQHFy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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