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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자 May 19. 2019

목숨 걸고 출근한 19세기 영국인들

책으로 보는 출퇴근의 역사

tbs 교통방송 심야라디오 프로그램 '황진하의 달콤한 밤'의 책 소개 코너 '소설 마시는 시간'입니다.

매주 토요일에서 일요일 넘어가는 자정에 95.1MHz에서 들으실 수 있어요.


4월 28일 일흔일곱 번째 방송은 우리가 몰랐던 역사 이야기를 전해주는 책 두 권을 소개습니다.


↓소설 마시는 시간 멘트↓


ann 책 속에 담긴 인생의 지혜를 음미해 보는 <소설 마시는 시간> 오늘은 어떤 주제로 이야기 나눠볼까요?

오늘은 역사책을 두 권 준비했는데요. 우리가 역사라고 하면 지루하고 어렵고 고루하고 이런 인상을 가지잖아요. 그런데 오늘 준비한 두 권의 역사책은 전혀 지루하지 않고 어렵지도 않은 역사책입니다.


ann 역사책이 어렵지도 않고, 재미있다. 어떤 역사책인가요?     

보통 역사라고 하면 국가나 왕의 이름부터 생각하기 쉽잖아요. 조선시대, 세종대왕 이런 식으로 역사를 공부하죠. 이런걸 왕조사라고 하는데요. 역사책을 보면 이런 왕조사가 아니라 아주 작은 부분에 주목하는 책도 있어요. 이른바 미시사라고 하는 건데요. 왕조나 왕의 역사에 주목하는 게 아니라 아주 작고 사소하다고 할 수 있는 것들의 역사를 탐구하는 학문이죠. 오늘 준비한 두 권은 그런 미시사를 다룬 책들입니다.

ann 먼저 소개해줄 책은 어떤 역사를 다룬 책인가요?     

먼저 소개할 책은 제목이 ‘출퇴근의 역사’입니다. 우리가 출퇴근이라고 하면 흔히 생각나는 게 지옥철, 만원버스, 도로 정체 이런 것들이잖아요. 이런 출퇴근이라는 게 언제부터 생겨났고, 어떤 역사를 가지고 있는지 알려주는 책입니다. 매일 출퇴근을 하는 직장인이 전세계에 5억명 정도는 된다고 하거든요. 최소한 5억명의 독자를 사로잡을 수 있는 책인 거죠.


ann 퇴근에도 역사가 있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는데요. 생각해보면 출퇴근이라는 개념도 어느 순간 생겼겠죠.     

맞습니다. 이 책에서는 출퇴근이라는 개념이 생긴 건 산업혁명 때라고 설명을 하는데요. 철도가 놓이면서부터 사람들이 사무실이 있는 도시와 집이 있는 교외를 오가는 생활을 시작하게 됐다는 거죠. 불과 200년 전만 해도 이런 식의 통근이라는 행위 자체가 굉장히 드문 일이었다는 설명입니다.


ann 열차가 생기면서 출퇴근이 시작됐다는 거네요.     

그렇죠. 19세기 당시에만 해도 유럽이든 미국이든 도시의 삶이라는 게 정말 끔찍했다고 해요. 지금은 위생이나 보건, 환경 이런 부분이 철저하게 지켜지지만, 19세기의 도시는 오히려 도시에 사는 게 건강을 위협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은 어떻게든 도시 밖 교외에서 살고 싶은데 그러자니 출퇴근을 할 만한 수단이 마땅치 않았던 거죠. 그러던 참에 열차가 등장하면서 사람들이 사무실과 집을 분리할 수 있게 된 겁니다. 바야흐로 출퇴근의 시대가 열린 셈이죠.     


M1 검정치마 – 한시 오분

https://youtu.be/g0DDihJF0Bk


ann 우리가 몰랐던 역사 이야기. 먼저 출퇴근의 역사를 만나보고 있어요. 그런데 과거의 출퇴근은 어땠나요?

우리가 농담 삼아하는 말로 목숨 걸고 출근한다고 하잖아요. 출근길이 그만큼 힘들고 어렵다는 이야기인데요. 그런데 과거에는 정말로 출근하는 길에 목숨을 걸어야 했다고 합니다. 19세기 초중반의 철도는 정말로 위험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요. 일단 열차 자체가 굉장히 허술하고 사고가 많았고요. 그리고 19세기 초중반만 해도 아직 공용시라는 개념이 없었던 거예요. 마을마다 제각각 다른 시간을 쓰다보니까 열차가 언제 들어올지 정확히 알 수가 없었던 거죠. 승강장에 있다가 갑자기 등장한 열차에 치여서 죽는 사람도 많았다고 합니다. 오죽 이런 경우가 많으면 19세기에는 열차 정기권을 판매할 때 생명보험도 함께 팔았다고 해요.


ann 목숨 걸고 출근하는 게 200년전부터 있던 문화군요.     

그렇죠. 책을 보면 과거의 출근길과 지금의 출근길이 상당히 비슷하다는 것도 알 수 있는데요. 19세기에 출간된 ‘철도 여행자 안내서’ 같은 책을 보면 철도를 이용해 출퇴근을 할 때 지켜야 할 에티켓이 나오거든요. 여기에서도 중요한 에티켓 중 하나가 열차 안에 있는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피하라는 거예요. 당시 타임스에 보면 이런 기사가 실려 있어요. 당신의 목소리는 당신의 귀에는 음악처럼 들릴 수 있지만, 당신의 동승자에게는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문구만 놓고 보면 요즘 공익광고에 나오는 거라고 봐도 어색할 게 없죠.


ann 또 어떤 재밌는 얘기가 있나요?     

아인슈타인의 이야기가 책에 나오는데요. 아인슈타인이 시간의 상대성 이론을 완성시킨 것도 출퇴근 덕분이라는 이야기가 재밌어요. 아까 19세기까지만 해도 도시마다 마을마다 시간이 제각각이라고 했잖아요. 서로 다른 시간을 쓰다보니까 열차가 a역에 있을 때도 8시, b역에 도착했을 때도 8시인 경우가 있었던 거죠. 만약 열차가 시계보다 더 빨리 움직일 수 있다면, 그래서 늘 시계바늘이 8시를 가리킬 수밖에 없다면 이라는 생각을 아인슈타인이 여기서 해낸 거죠. 우리가 충분히 빨리 움직인다면 시간은 정지할 수밖에 없을 거라는, 또는 거꾸로 갈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상대성 이론의 영감이 출퇴근 길에 탄생했다는 겁니다.


ann 출퇴근의 역사라면 19세기가 아니라 20세기, 21세기의 이야기도 나오나요?     

책이 총 3부로 구성돼 있는데요. 1부가 과거의 이야기라면 2부는 비교적 최근의 출퇴근길에 대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그중에서도 역시나 재밌게 볼 수 있는 건 러시아워와 푸쉬맨의 이야기를 다룬 부분인데요. 1960년대 일본 지하철에서는 ‘오시야’라는 사람이 있었어요. 우리말로 하면 승객 정렬 담당원인데요. 쉽게 말하면 푸쉬맨, 말 그대로 사람을 지하철 안에 밀어넣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었어요. 이것만 해도 대단한 건데, 인도는 이보다도 심하다고 합니다. 인도 뭄바이 통근 노선인 뭄바이 교외 철도에서는 매일 사망자가 10명씩 나오고 있다는 통계도 있으니까요. 이 책에 따르면 출퇴근 시간 뭄바이 지하철에는 1제곱미터에 열여섯 명이 탑승한다고 합니다. 우리가 출근길 2호선과 9호선을 지옥철이라고 하지만 일본이나 인도에 비하면 약과라는 생각도 들죠.


ann 출퇴근이라는 것에 이렇게나 다양한 이야기가 있을 줄은 몰랐네요.     

이 책에 실린 추천사를 보면요, 출퇴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책을 통해 매일의 여정이 활기차고 유익해졌음을 깨달을 것이라고 나오는데요. 이 책을 읽고도 출근길이 활기차지 지는 않았지만, 최소한 약간의 위안이라고 할까요. 나만 출근길에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아니었구나 하는 위안을 얻을 수는 있습니다.     


M2 스텔라장 - 월요병가

https://youtu.be/VQvA0RAPyJY


ann 우리가 몰랐던 역사 이야기해보고 있어요. 먼저 출퇴근의 역사를 이야기해봤고요. 이번에는 어떤 역사를 만나볼까요?     

이번에 소개해드릴 책은 ‘만화로 보는 비디오 게임의 역사’라는 책입니다. 부제가 엄청 긴데요. 1970년대의 동전 오락기에서 미래의 가상현실 게임까지, 전자 게임의 혁명이 이뤄낸 상상력과 기술 융합의 놀라운 판타지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어요. 부제는 이렇지만 사실 이책이 다루는 역사는 훨씬 오래됐는데요. 19세기에 진공관과 브라운관이 만들어질 때의 이야기부터 시작됩니다. 게임 산업의 아주 오래된 뿌리부터 시작하는 거죠.


ann 비디오 게임의 먼나라 이웃나라 같은 느낌의 책이네요.     

딱 그런 느낌인데요. 아무래도 비디오 게임의 역사를 다루는 것이다 보니 훨씬 재밌고 흥미진진합니다. 비디오 게임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푹 빠질 수밖에 없는데요. 지금은 너무나 유명한 게임 회사들의 시작이 어땠는지도 알 수가 있어요. 예컨대 세가라는 게임 회사가 있죠. 이 회사는 일본 회사로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데 사실 미국인인이 설립자라고 할 수 있는데요. 미국인인 데이비드 로젠과 마티 브롬리가 1950년대에 미국에서 남아돌던 슬롯머신을 일본에 가져와서 판매하던 회사가 게임 회사로 발전하게 되고 지금의 세가가 됐다고 해요. 미국인들이 처음 만든 회사 이름은 서비스 게임즈였는데 이 이름을 두 글자로 줄인 세가로 회사 이름이 바뀌었던 거죠.

일본을 대표하는 또다른 게임 회사인 닌텐도도 외국의 영향을 받은 건데요. 화투는 일본의 카드놀이라고 알고 있잖아요. 그런데 이 화투가 원래는 유럽에서 온 사람들의 카드놀이를 일본식으로 바꾼 거예요. 그러다가 19세기말에 야마우치 후사지로라는 사람이 화투를 공개적으로 판매하기 시작해요. 이때 야마우치 후사지로가 화투를 팔면서 만든 회사가 바로 닌텐도예요. 세가도, 닌텐도도 처음 시작은 비디오 게임과 거리가 멀었던 거죠.

ann 역사상 최초의 비디오 게임은 뭘까요?     

이 책에는 우리가 전혀 몰랐던 게임들도 많이 나오는데요. 그중에서도 단연 이 모든 게임 역사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건 ‘스페이스워!’라는 게임이라고 합니다. 1962년에 출시된 게임인데요. MIT 과학 공개 행사에서 첫 선을 보인 게임이라고 해요. 그런데 이 게임은 아무나 할 수가 없죠. 1960년대에 게임을 즐 길 수 있는 컴퓨터를 가진 사람 자체가 거의 없었으니까요. 그러니까 MIT나 큰 연구소에서 일하는 사람들만 이 게임을 즐길 수 있었던 건데, 이때 이 게임을 즐긴 컴퓨터 천재들이 훗날 수많은 비디오 게임을 탄생하게 됩니다. 모든 것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거죠.

그러다 마침내 비디오 게임이 대중화되는 계기가 찾아오는데요. 바로 1972년에 출시된 ‘퐁’이라는 게임입니다. 이 게임은 동전을 투입해서 즐기는 게임이었는데요. 스티브 잡스가 일한 적이 있는 걸로 유명한 ‘아타리’라는 게임 회사가 만든 게임이었죠. 동전을 넣고 즐기는 게임이었는데 그야말로 출시가 되자마자 초히트작이 되죠. 퐁은 일종의 탁구게임인데요. 전에 없던 스포츠 게임의 등장이었죠.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 비디오게임의 시대가 열렸다는 걸 알리는 본격적인 신호탄이 바로 ‘퐁’이었습니다.     


M3 윤덕원 - 두계절

https://youtu.be/S7kGVlSr5Fs


ann 한국에선 게임을 안 좋은 걸로 보는 분위기가 있잖아요. 그래서인지 이런 게임의 역사 이야기를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았던 것도 같아요.     

그렇죠. 여전히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요. 이 책을 보면 게임은 사회와 함께 발전하는 거라는 걸 알 수가 있어요. 예컨대 1960년대부터 비디오 게임이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하는데요. 그게 가능했던 이유는 2차 세계대전 때 발전했던 기술 때문이거든요. 수많은 첨단 기술이 이때 발명되고 발전했는데 전쟁 이후에 일부 기술이 비디오 게임 분야에도 응용이 된 거죠.


ann 게임의 발전에 전쟁이 오히려 도움이 됐던 거네요.     

나중에는 게임 산업의 발전 속도가 군수산업에 비할 바가 되기도 하는데요. 2000년에 출시된 플레이스테이션2는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콘솔 게임기로 기록돼 있거든요. 성능이 도저히 게임용이라고 볼 수 없을 만큼 어마어마하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런데 실제로 이 콘솔을 다른 용도로 쓰려고 한 사람도 있었다고 합니다.

바로 이라크의 독재자 사담 후세인인데요. 후세인은 미사일 발사 시스템에 이 콘솔 게임기를 응용할 수 있다고 보고 엄청나게 많이 사놨다가 나중에 이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죠.


ann 책에서 인상 깊은 구절이 있나요?     

우리가 게임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많이 하죠. 실제로 중독자들로 인한 사회적인 문제가 생기기도 하니까 이런 부정적인 시선이 있는 건데요. 하지만 게임이 가지는 긍정적인 부분들도 적지 않아요. 이 책의 마지막에 게임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 나오는데요. 이렇게 적습니다.

‘지난 수천 년 동안 만들어진 발명품을 모두 살펴보아도, 비디오 게임에 버금갈 정도로 감각적이고 실험적인 도구 상자는 없었다. 비디오 게임을 통해 우리는 끊임없이 우리 밖에 무엇이 있는지를 알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이 세상을 우리가 원하는 느낌대로 만들기 위한 끝없는 노력 속에서, 우리가 현실이라 인식하는 것을 이용해 플레이할 것이다.’


ann 비디오 게임을 통해 우리 밖에 무엇이 있는지 알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는 말이 인상적이네요.     

게임을 그저 즐기고 마는 걸로만 여기는 게 아니라 게임이 우리의 상상력을 현실 세계에 구현하고, 이를 통해서 우리도 미처 몰랐던 어떤 가능성을 발견하는 계기가 될 수 있는 거죠. 작년에 개봉한 영화죠. 스티븐 스필버그가 게임에 몰두하는 오타쿠 소년의 이야기를 ‘레디 플레이어 원’이라는 영화로 만들어서 큰 인기를 모았죠. 그 영화에 이런 대사가 나와요. ‘세상을 만드는 건 몽사가다.’ 만화로 보는 비디오 게임의 역사를 보면 정말 몽상가들이 어떤 게임을 만들었고 그 게임들이 우리와 사회에 어떤 영향을 줬는지 한눈에 파악할 수가 있습니다.     


M4 Bee Gees – Stayin’ Alive

https://youtu.be/I_izvAbhEx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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