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기자 Apr 21. 2019

현장의 치열함을 전해주는 책 두 권

tbs 교통방송 심야라디오 프로그램 '황진하의 달콤한 밤'의 책 소개 코너 '소설 마시는 시간'입니다.

매주 토요일에서 일요일 넘어가는 자정에 95.1MHz에서 들으실 수 있어요.


4월 7일 일흔네 번째 방송은 현장의 치열함을 전해주는 책 두 권을 소개했습니다.


↓소설 마시는 시간 멘트↓


ann 책 속에 담긴 인생의 지혜를 음미해 보는 <소설 마시는 시간> 오늘은 어떤 주제로 이야기 나눠볼까요?

오늘은 급박한 현장의 이야기를 전해주는 책을 두 권 가져와 봤습니다. 책이라는 게 다양한 목적이 있지만 읽으면서 내가 전혀 몰랐던 분야의 이야기를 접할 수 있게 해주는 것도 그중 하나라고 생각하거든요. 오늘은 책이 아니면 웬만해서는 접할 수 없는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를 전해주는 책을 골라봤습니다.


ann 어떤 책부터 만나볼까요?     

먼저 소개해드릴 책은 신문 제작 현장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건데요. 제목이 ‘23시 30분 1면이 바뀐다’입니다. 조선일보의 편집기자 주영훈씨가 쓴 책인데요. 주씨는 한국일보에서 편집기자로 근무를 시작해서 2002년에 조선일보로 이직하고 2006년부터 1면 편집을 담당하고 있다고 합니다. 신문 1면은 뉴스로 치면 8시가 땡하고 나오는 첫 번째 뉴스처럼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거든요. 그런 1면을 10년 넘게 편집한다는 건 주 편집자의 실력이 대단하는 의미겠죠.

ann 제목이 재밌어요어떤 뜻인가요?     

우리가 아침에 받아보는 신문은 한 가지 버전이 아니에요. 조선일보만 해도 하루에 4~5번 정도 판을 바꾸거든요. 첫 번째 지면은 오후 6시에 완성이 돼요. 이건 실제 인쇄는 하지 않고 온라인에서 pdf 파일로만 볼 수 있어요. 따로 기업이나 정치인들, 다른 언론사가 돈을 내고 구독하는 초판이죠. 이걸 50판이라고 해요. 그리고 그다음 판부터는 51, 52, 53 이렇게 올라가요. 실제 윤전기로 신문을 찍는 51판은 오후 9시반에 나오고요. 이건 지방에 배달이 되는 버전이에요. 52판은 오후 11시 30분쯤 찍어요. 이게 시내판인데요. 본판이라고 불러요. 보통 여기서 끝이 나죠. 마지막 53판은 새벽 1시쯤 나오는데요. 52판을 찍고 나서 추가할 게 있으면 찍어요. 새벽에 갑자기 긴박한 일이 생기면 54판을 찍기도 하는데요. 이건 53판을 찍다가 윤전기를 멈추고 찍는 거죠. 23시 30분에 1면이 바뀐다는 건 51판과 52판 사이에 다른 일이 생기거나 더 중요한 뉴스가 생겨서 신문 1면의 편집이 바뀐다는 뜻이죠. 요즘 누가 신문을 보냐는 말이 나올 법도 한데요. 신문을 만드는 편집국에서는 아직도 이렇게 치열하게 1면을 놓고 고심을 하는 거죠. 이건 조선일보나 다른 신문사나 다들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ann 기자로 일하는 책밤지기는 남다르게 읽었을 것 같아요.     

맞습니다. 저는 신문기자는 아니니까 조금 다르긴 하지만요. 회사에서 야근을 하다보면 편집국 사람들이 자정이 넘어서도 뉴스를 넣을지 말지 어떻게 제목을 고칠지 고민하는 걸 보게 될 때가 있거든요. 그러면 왠지 모르게 좀 더 제가 하는 일의 의미를 되새기게 되죠. 그리고 저는 취재기자다 보니까 편집국 안에서 편집기자들이 어떻게 일하는지는 잘 모르는 게 많았거든요. 이 책은 신문의 제작 과정을 좀 더 세밀하게 보여줘서 제 개인적으로도 재미가 있고 도움도 많이 되기도 했어요.


ann 조선일보의 1면하면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팔짱 사진이에요.     

대단한 사진 특종이었죠. 2016년 11월 7일자 신문이었는데요. 그 날 1면 편집 과정에 대한 뒷이야기도 책에 실려있어요. 원래 그날 1면에 들어갈 사진은 우병우 전 수석의 레이저 눈빛 사진이었대요. 우 전 수석이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출석하다가 질문을 던진 방송사 기자를 쏘아본 사진을 쓰기로 했던 거죠. 그 사진에 ‘국민 분노 쏘아본 우병우’라는 제목을 달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날 밤 10시 30분에 52판 강판까지 1시간을 남긴 즈음에 갑자기 사진부에 연락이 와요. 우병우 사진을 찍었다고 보고가 온 거죠. 조선일보의 사진기자 한 명이 서초동 검찰청사 반대편 빌딩 옥상에 올라가서 한 밤 중에 망원렌즈로 찍은 사진을 보낸 거예요. 그 사진을 보자마자 편집부에서는 1면을 교체하기로 한 거죠. 레이저 눈빛 사진은 이미 전 국민이 봤지만 이 사진은 아무도 못 본 특종이니 당연히 1면에 들어갈만하다고 판단하고요. 그런데 원본 사진은 너무 흐릿하니까 그걸 화상부에서 사진을 바꾸는 작업만 여섯 차례를 했다고 해요. 이게 모두 52판을 찍는 11시 30분 전에 단 한 시간 동안 일어난 일이었던 거죠.     


M1 장기하와 얼굴들 – 거절할 거야

https://youtu.be/aHhACNlwHgE


ann 치열한 현장을 소개하는 책들 만나보고 있어요먼저 신문사 편집자가 쓴 ‘23시 30분 1면이 바뀐다입니다분초를 다투는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많을 것 같아요.     

그렇죠. 책에 나오는 에피소드 중 하나인데요. 하루는 밤 12시 15분에 일본의 NHK 뉴스에서 1보가 뜬 거예요. 53판을 찍을 준비를 한참 하고 있을 시간이었는데 북한이 미사일 추정 비행체 발사 정보라는 짧은 속보가 나온 거죠. 추정, 정보 같은 막연한 단어가 들어가니까 판단이 어렵죠. 북한이 미사일을 쐈으면 1면 톱 기사가 바뀌어야 할 일이니까 당장 난리가 났죠. 야간국장에 정치부장에 국방부 출입기자가 총출동이 돼서 자정이 넘은 시간에 취재가 시작된 거죠. 그러다 연합뉴스에서 12시 22분에 한줄짜리 속보가 또 떠요. 합참이 북한이 전날 밤늦게 미사일을 발사했다는 속보가 나온 거죠.


ann 실제로 미사일 발사가 확인됐으면 그걸로 된 거 아닌가요?     

미사일의 종류에 따라서 또 발사가 실패했는지 성공했는지에 따라서 천차만별이 되니까요. 미국을 노릴 수 있는 ICBM 발사 실험이었다면 당장 난리가 날 큰 뉴스가 되는 거죠. 그러다 3분 정도가 지나서 좀 더 자세한 내용을 전하는 속보가 계속 뜨고요. 결국 오전 1시가 되기 전에 기사가 완성돼서 1면이 통째로 바뀝니다. 사드배치 공론화위원회의 내용을 전하는 1면 톱 기사가 북한 한밤에 탄도미사일 발사 기사로 바뀐 거죠. 이렇게 바뀌기까지 불과 45분이 걸린 거니까요. 한밤 신문사 편집국의 치열함을 잘 알 수 있죠.


ann 또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을까요?     

신문 편집자들과 야간 당직자들이 전에 없이 하는 행동이 하나 있거든요. 불과 1, 2년 사이에 새로 생긴 업무인데요. 바로 트럼프 대통령의 트위터를 실시간으로 체크하는 겁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요한 뉴스를 갑자기 트위터에 한 마디 올리는 경우가 워낙 많다 보니까 아예 트위터를 직접 확인하게 된 거죠.

트럼프 대통령 때문에 신문 1면이 휙휙 바뀌는 경우가 실제로 많은데요. 지난해 싱가포르 정상회담을 놓고도 그런 일이 있었죠. 밤 10시가 막 지난 시간에 갑자기 정치부 외교 담당 기자가 편집국장한테 헐레벌떡 뛰어가요. 무슨 일인가 하고 봤더니 백악관에서 주요 외신 기자들에게 싱가포르 회담을 취소한다는 전문을 보낸 거죠. 미북 정상회담이 열린다는 전제로 만들어진 1면을 싹 갈아엎어야 할 일이었죠. 1면뿐만 아니라 2면, 3면, 4면, 사설까지 미리 써둔 기사를 밤 10시가 넘어서 다 고치게 돼요.


ann 트럼프 대통령의 한마디가 신문 편집자들에게는 공포겠네요.     

그렇죠. 재밌는 건 그다음 날 밤에도 똑같은 일이 반복된 다는 건데요. 이번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계속해서 하겠다고 이야기를 한 거예요. 그것도 우리 시간으로는 밤 10시가 넘는 시간이었죠. 이번에는 정상회담을 안 한다는 내용으로 신문 1면이 만들어졌는데 트럼프의 한 마디에 갑자기 또 1면을 통째로 바꿔야 하는 상황이 된 거죠.


ann 이런 책이 아니면 정말 알 수 없는 신문사 편집국의 1면 제작기네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들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는데요. 2017년 11월 20일자 1면이에요. IMF 20년을 맞아서 임창렬 전 경제부총리의 인터뷰 기사가 실렸어요. 제목이 ‘한국경제, 서서히 죽어가는 암에 걸려있다’는 기사가 1면에 있었죠. 그런데 그다음 날 독자서비스센터에 항의 메일이 온 거예요. 암 환자가 있는 독자가 보낸 메일이었는데요. 이런 제목을 본 암 환자의 심정이 어떻겠냐. 암의 완치율이 얼마나 높은데 서서히 죽어간다는 표현을 써도 되냐. 정서적 테러가 아니냐. 이런 내용의 항의였어요. 사실 우리가 무감각하게 쓰는 비유잖아요. 그런데 그 비유가 신문에 실려서 공적인 공간에 배치되면 누군가에게는 심각한 마음의 상처로 남을 수도 있다는 거죠. 책을 쓴 편집자도 굉장히 마음이 아프다고 했고요. 이건 저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부분이라서 앞으로 기사를 쓰거나 할 때 더 신경을 써야겠다는 다짐도 하게 됐어요.     


M2 스텔라장&플레인 - Voyager

https://youtu.be/zqBKjBVVcHE


ann 현장의 치열함을 느낄 수 있는 책 이야기하고 있어요두 번째로 만나볼 책은 뭘까요?     

이번에 소개해드릴 책은 이국종 아주대병원 외상외과 과장이 쓴 ‘골든아워’입니다. 이국종 교수는 더 설명드릴 필요가 없을 정도로 유명하죠. 2011년에 아데만 여명 작전 도중 총상을 입은 석해균 선장을 살려내면서 중증외상 치료의 중요성을 알리는데 큰 역할을 했죠. 이 덕분에 2012년에 전국 거점 지역에 권역외상센터가 설립될 수 있었죠. 아직도 부족한 게 많다고 하지만 중증외상 치료에 있어서 한국에서 선구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분입니다.


ann 최근에 윤한덕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이 별세했죠그걸 계기로 응급의료 분야의 현장이 얼마나 치열하고 열악한지 다시금 조명이 됐어요.     

윤한덕 센터장은 국내 응급의료 분야의 이국종 교수 같은 분이었다고 하더라고요. 응급환자 전용 헬기인 닥터헬기 도입을 진두지휘했다고 하고요. 돌아가실 때도 설 연휴에 응급의료 공백을 막기 위해서 센터장인 윤 교수가 직접 퇴근을 미루고 초과근무를 하다가 과로사하신 거죠. 윤 센터장이 돌아가시고 이국종 교수도 어깻죽지가 떨어져 나간 것 같다며 괴로워하기도 했습니다.

ann 이국종 교수의 골든아워에는 이런 의료계의 치열한 현장 이야기가 담겨 있겠네요.     

이 책은 모두 두 권으로 나뉘어 있는데요. 1권은 이국종 교수가 외상외과에 처음 발들 들여놓은 이야기에서 시작해 전 국민의 관심이 집중됐던 석해균 선장을 살린 이야기까지가 나옵니다. 2002년부터 2013년까지의 이야기인데요. 2권에서는 2013년부터 2018년까지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1권이 과거 외상외과 분야가 열악하던 때의 이야기 위주라면 2권은 지금 현재의 상황이 보다 잘 담겨 있어요. 중증외상센터가 도입된 이후에도 고쳐지지 않는 현실들, 척박한 환경에 대한 암담함... 이런 이야기들이 2권에서 주로 나오게 되죠.


ann 석해균 선장 때의 뒷이야기는 어땠을지 궁금해요.     

그때는 정말 긴박했죠. 그런데 아마도 의료계에 대해서 잘 모르는 분들, 저를 포함해서 다들 비슷한 생각을 할 텐데요. 왜 아주대병원에 있던 이국종 교수가 석해균 선장을 치료하러 간 걸까. 사실 국내 최고의 병원이라고 홍보하는 곳들은 따로 있잖아요. 서울에 있는 유명한 병원들이 많은데 그런 병원을 제치고 아주대병원의 이국종 교수가 치료를 위해 비행기에 오른 이유가 뭘까 궁금했던 거죠. 책에 보면 그런 사정이 소상하게 나오는데요. 대략 정리하면 국내에는 유명한 병원이라고 해도 총상을 치료할 만한 중증외상 전담 의사가 거의 없고, 그중에 미국에서 연수를 한 이국종 교수가 거의 유일하게 총상 치료가 가능했던 거죠. 그런데 국제적으로 큰 이슈가 된 사건인데도 이국종 교수팀이 한동안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해서 어려움을 겪었다고 하고요. 나중에 정치적인 사건으로 커지고 나서야 지원이 본격화됐다고 하는데요. 참 읽는 내내 화도 나고 분통이 터지기도 하고 그래요.     

M3  임헌일 – 힘든 하루

https://youtu.be/fAXmcRaJxZs


ann 현장의 치열함을 느낄 수 있는 책 만나보고 있어요두 번째로 이국종 교수의 골든아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인상 깊은 문구가 있으면 소개 좀 해주세요.     

석해균 선장을 치료하려고 결심한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이런 말이 나와요.

“떨어지는 칼날은 잡지 않는 법이다. 석 선장은 무겁게 떨어지는 칼날이었다. 환자의 상태가 극도로 나쁠 때 의사들은 섣불리 나서지 않는다. 그가 살아날 가능성은 희박했고, 최악의 경우 내가 짊어져야 할 책임은 상상 이상의 것이었다.”

누구도 하지 않으려는 치료에 나서는 부담감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말이죠.


ann 떨어지는 칼날이라는 말이 마음에 와 닿네요.     

이 일을 같이 하는 간호사, 의사들에 대한 마음도 큰데요. 이국종 교수는 이 일을 계속하는 유일한 장점은 좋은 사람들과 같이 일할 수 있다는 거였는데, 그걸 위한 대가가 너무 컸다고 책에 적어요. 팀원들이 모두 아프고 아픈 것이 기본이 돼서 아픔을 일상으로 여기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고 할 정도예요. 쉴 새 없이 고꾸라지는 팀원들을 볼 때마다 억장이 무너져나갔다고 하고요.

이 책에서 인상 깊은 부분 중에 하나가 2권의 마지막 부분인데요. 부록으로 인물지가 실려있어요.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실존인물들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적은 건데요. 인물을 소개하는 것만 60페이지에 달할 정도로 길거든요. 저는 이걸 보고 그런 생각을 했죠. 이국종 교수는 자기에게만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야 할 사람은 따로 있다고 생각하는구나. 받아야 마땅한 이들에게 돌려주고 싶어 하는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죠.     


ann 자기 부하 직원들팀원들에 대한 마음이 느껴지네요.     

그렇죠. 책을 읽다보면 환자를 치료하는 건 이국종 교수에게 힘든 일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어요. 석해균 선장 때도 그렇고 북한 귀순 병사를 치료할 때도 그렇고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면 여러 논란이 있지만 그런 건 이국종 교수는 꿋꿋하게 견뎌내죠. 그런데 변하지 않는 의료 현장의 참담한 현실, 말로만 지원을 약속하고 실제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정부나 국회의 무능함 같은 것들이 이국종 교수를 정말 힘들게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국종 교수가 이렇게 적거든요. 

“막을 수 있었던 수많은 죽음을 목격하고도 왜 우리는 변하지 못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 다 같이 고민하게 하려는 게 이국종 교수가 펜을 든 이유가 아닐까도 싶어요.


M4 Linkin Park – New Divide

https://youtu.be/ysSxxIqKNN0



매거진의 이전글 마음을 달래주는 피로회복제 같은 책 두 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