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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자 Apr 07. 2019

마음을 달래주는 피로회복제 같은 책 두 권

tbs 교통방송 심야라디오 프로그램 '황진하의 달콤한 밤'의 책 소개 코너 '소설 마시는 시간'입니다.

매주 토요일에서 일요일 넘어가는 자정에 95.1MHz에서 들으실 수 있어요.


3월 31일 일흔세 번째 방송은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피로회복제 같은 책 두 권을 소개했습니다.


↓소설 마시는 시간 멘트↓


ann 책 속에 담긴 인생의 지혜를 음미해 보는 <소설 마시는 시간> 오늘은 어떤 주제로 이야기 나눠볼까요?

뉴스를 보면 미담 뉴스만 따로 전하는 코너가 있잖아요. 보통 나오는 뉴스는 워낙 흉흉하거나 황당한 것들이 많죠. 사건 사고나 유명인의 부정부패 이런 게 보통 뉴스 지면을 장식하니까요. 그런 뉴스만 보다보면 세상에 대한 신뢰나 믿음이 사라지는 게 느껴지잖아요. 그러다보니까 언론사나 포털사이트에서도 따로 미담 기사를 볼 수 있게 코너를 만들어놓는 거죠.


ann 어린 아이가 지갑을 주워서 파출소에 가져다 주기도 하고요그런 뉴스들 보면 괜히 미소가 지어지죠.     

그런 뉴스를 보면 그래도 살만한 세상이다는 생각이 들죠. 미담 뉴스를 전하는 게 무슨 소용이야 싶으면서도 이런 걸 보면 가끔은 이런 게 꼭 필요하겠다 싶기도 해요. 책 중에도 그런 미담 뉴스 같은 역할을 하는 책이 있거든요. 읽다보면 괜히 세상에 대한 희망이나 믿음 같은 걸 다시 가질 수 있게 되는 책이 있어요. 마음이 따뜻해지는 그런 책. 오늘은 그런 책을 두 권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ann 피로회복제 같은 책이네요어떤 책부터 만나볼까요?     

먼저 소개해드릴 책은 임상철씨가 쓴 ‘오늘, 내일, 모레 정도의 삶’이라는 짧은 에세이집입니다. 이 책의 부제가 ‘빅이슈를 팔며 거리에서 보낸 52통의 편지’인데요. 부제를 보면 어떤 분이 쓴 책인지 짐작이 가죠.


ann 빅이슈는 우리가 노숙인이라고 하는 홈리스 분들이 파는 잡지죠그럼 이 책은 홈리스가 쓴 책이네요.     

맞습니다. 빅이슈는 영국에서 창간된 대중문화 잡지인데요. 홈리스에게만 잡지를 팔 수 있는 권리를 줘서 홈리스의 자활을 돕는 걸 목적으로 합니다. 한국을 비롯해서 전 세계 10개국에서 판매가 이뤄지고 있고요. 아마 서울 시내 주요 지하철역 근처에서 빅이슈를 파는 분들을 많이 보셨을 거예요. 저는 아주 가끔 사보곤 했는데 이 책을 읽고서 조금 더 자주 사야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이 책을 쓴 임상철 씨는 IMF 외환위기 때 직장을 잃고 그 이후 18년 동안을 일용직 노동자나 홈리스로 생활을 하다가 빅이슈 판매원이 됐다고 합니다.


ann 그러면 이 책은 빅이슈를 팔면서 생긴 여러 이야기를 담고 있는 에세이겠네요.     

그런 이야기들도 많이 있고요. 임상철씨가 나고 자라고 홈리스가 되기까지의 이야기도 담겨 있습니다. 또 홈리스 생활을 하면서 겪은 이야기들도 있고요. 임상철씨가 빅이슈를 팔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대요. 잡지만 파는 건 뭔가 부족하다. 그래서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 홈리스 시절, 빅이슈를 팔면서 겪은 이야기들을 짧은 편지 형식으로 써서 잡지 뒷면에 끼어서 같이 팔았다고 해요. 이 책은 그 뒷면에 함께 넣은 이야기들을 모아놓은 거라고 할 수 있죠.


ann 오늘 소개하는 책이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준다고 했잖아요이 책은 어떤 면에서 책밤지기 마음을 따뜻하게 해줬나요?     

우리가 삶에 치이다보면 종종 다른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는 법을 잊을 때가 있잖아요. 가족이나 친구야 그렇다 쳐도 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수많은 사람들을 사람이 아니라 그냥 사물처럼 대하고 쓱 지나가기 마련이죠. 홈리스 분들도 그렇고 지하철역 입구에서 전단지를 나눠주는 할머니 분들이나 편의점에서 물건을 계산할 때 마주치는 아르바이트생이나. 다 같은 사람이지만 우리는 그냥 쓱 지나가기 마련이잖아요. 이 책은 그런 분들 한 분 한 분이 우리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이야기를 가진 사람이라는 걸 다시 일깨워줍니다. 내가 누군가를 무시할 때가 있는 것처럼 누군가가 나를 무시할 때도 있잖아요. 그럴때면 우리의 자존감이 바닥을 찍기 마련인데, 이 책을 읽으면 우리 모두가 누구 하나 그런 대접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걸 다시금 깨닫게 되죠.     


M1 카더가든 명동콜링

https://youtu.be/b_jxjsii-kE


ann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피로회복제 같은 책 만나보고 있어요먼저 홈리스 임상철씨가 쓴 오늘내일모레 정도의 삶’ 이야기해볼게요.     

이 책을 쓴 임상철씨는 제주에서 태어났는데 어릴 때 돌멩이에 맞아서 한쪽 눈을 실명했어요. 어머니는 병으로 일찍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가정을 돌보지 않았고요. 결국 보육원에 보내져서 어린시절을 나게 되죠. 중학교를 졸업하고 보육원을 떠나 사회로 나왔는데 특별히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거죠. IMF 외환위기 전까지는 이런저런 일을 하면서 그래도 생계를 이어갔는데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일용직 노동자로 거리로 내몰려요. 고시원, PC방, 쪽방 생활을 전전하다가 홈리스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고요. 이 책에 나오는 52개의 에피소드 중에는 빅이슈와 관련된 것보다 그런 어린 시절과 홈리스 시절의 이야기가 많습니다.


ann 어떤 이야기들이 기억에 남나요?     

책을 읽다가 인상 깊은 구절이 나오면 책 귀퉁이를 접잖아요. 그걸 개의 귀를 닮았다고 해서 도그즈이어라고 부르는데요. 좋은 책은 그렇게 접은 자국이 많죠. 그런데 정말 좋은 책은 접은 자국이 하나도 없을 때가 있어요. 왜 그런가 하면 문장 하나, 문단 하나를 기억해야 하는 게 아니라 책 전체를 기억해야 하는 경우가 있거든요. 굳이 말하자면 이 책이 그런 경우인데요. 임상철이라는 한 명의 인간의 목소리가 너무 담담하게 담겨 있는 책이에요. 어떤 사람이 진심을 다해서 자신의 온 인생을 나한테 말한다고 생각해봐요. 거기서 특별히 좋은 이야기만 골라서 들을 수는 없는 거죠.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정말 놀라운 책이라고 할 수 있죠.


ann 거리의 홈리스들을 보면서 그 사람이 우리만큼이나 기나긴 삶을 살아오고희로애락을 느꼈을 순간이 있었으리라고 짐작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죠.     

그렇죠. 책의 초반부에 보면 이런 말이 나와요. 임상철씨가 “예전에 본 영화의 한 장면이 생각납니다. 라이프 오브 파이란 제목의 영화인데 젊은 주인공이 죽음의 위험에 처해 절박해지자 신이여 이때껏 살아오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며 울부짖던 장면을 기억하고 있습니다”라고 적거든요.

그런데 이 장의 내용보다 제가 더 깜짝 놀란 건 무의식 중에 홈리스는 영화를 보지 않았을 거야라고 생각하고 있던 제 선입견이었거든요. 홈리스들에게도 한 때는 영화를 보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시절이 당연히 있었을 텐데 저는 그걸 간과하고 있었던 거죠. 이 책은 이런 식으로 제가 가지고 있던 너무나 게으른 편견을 조금씩 부숴줍니다.


ann 생각해보면 홈리스도 처음부터 집이 없었던 건 아니니까요인생의 어느 순간에 무언가가 잘못되면서 그렇게 거리에 내몰린 것뿐 그들도 저마다의 삶이 있고 사연이 있을 텐데 말이에요.     

임상철씨는 원래 미술이 꿈이었다고 해요. 그래서 IMF 전에는 조형물 만드는 회사에서 일하기도 했다고 하고요. 일용직 노동자와 홈리스로 살면서는 미술에 대한 꿈을 이어갈 길이 없었는데 지금은 다시 조금씩 그림을 그리시는 것 같아요. 이 책에도 중간중간 임상철씨가 직접 그린 삽화가 실려 있거든요. 글만큼이나 그 그림들도 정말 인상적이에요.

책에 나오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는데요. 임상철씨가 홍대입구역 3번 출구에서 빅이슈를 팔고 있거든요. 하루는 감기 때문에 오후 늦게 나가서 빅이슈를 팔았대요. 그런데 늦게 시작했다 보니까 잘 팔리지 않는 거죠. 그런데 밤늦은 시간에 한 사람이 지나가다가 다시 돌아와서는 잡지를 산 거예요. 그런데 한 권이 아니라 스물여덟 권을 달라고 한 거죠. 놀라서 되물으니까 그 청년이 이렇게 말해요.

“제가 오늘 스물여덟 번째 맞이하는 생일인데요. 친구들이 마련한 생일 축하 모임에 가는데 친구들에게 선물로 주고 싶어서 사려고 합니다.”

빅이슈를 팔면서 처음 겪는 기적 같은 일이었다고 적어요. 스물여덟 권이면 14만원이니까 적은 돈은 아니죠. 하지만 누군가에게 절대로 일어날 일 없을 것 같던 기적을 선사한 거라면 또 큰돈은 아니죠. 임상철씨가 이 이야기를 적으면서 누군가에게 기적 같은 하루를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적는데 저도 같은 생각을 해봤습니다.     


M2 Jason Mraz – I Won’t Give Up

https://youtu.be/O1-4u9W-bns


ann 마음을 따뜻하게 만드는 피로회복제 같은 책 만나보고 있어요두 번째로 소개해줄 책은 뭔가요?     

이번에 소개해드릴 책은 김경미 시인의 에세이 ‘그 한마디에 물들다’라는 책입니다. 김경미 시인은 198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서 시 ‘비망록’으로 등단한 시인인데요. 비망록이라는 시도 굉장히 좋아요. 아직 안 보신 분들은 꼭 한 번 찾아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김경미 시인이 KBS 클래식 FM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문구를 소개하는 라디오 코너를 맡아서 진행했거든요. 이 책은 그 코너의 방송 원고를 모아서 정리한 책입니다.


ann 라디오 방송원고를 책으로 내는 경우가 종종 있잖아요이 책은 어떤 점이 특히나 책밤지기의 마음에 들었나요?     

저는 이 책을 몇 달에 걸쳐서 읽었는데요. 침대 머리맡에 두고 자기전에 대여섯쪽 정도만 읽고 자고, 다음날 또 대여섯쪽만 읽고 자고 그런 용도로 썼어요. 일종의 천연 수면제 같은 거죠. 그날 무슨 일이 있었든, 기분이 안 좋거나 화가 나거나 그런 일들이 있었어도 이 책을 몇쪽 읽다보면 자연스레 마음이 차분해지거든요. 이해인 수녀가 이 책의 추천사를 이렇게 썼어요. “두고두고 가슴과 영혼을 물들이는 인생의 지혜서.” 정말 이 말이 그대로입니다.

ann 책밤지기의 개인적인 책장에 꽂혀 있는 책이군요.     

그렇죠. 제가 책장이 크게 두 개가 있는데요. 침대 바로 앞에 작은 책장이 있고 다른데 큰 책장이 있어요. 작은 책장에는 제가 정말 좋아하는 책만 꽂아둬요. 자다가도 일어나서 바로 찾아볼 수 있게요. 이 책은 그중에 하나고요. 약간 비장의 카드처럼 가져왔습니다.


ann 어떤 게 그렇게 좋았는지 하나만 먼저 소개해주세요.     

일본의 소설가 온다 리쿠의 소설 ‘네버랜드’를 소개하는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네버랜드의 한 문장을 소개해요. 이게 굉장히 인상적인 문장인데요.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라고? 그런 타락이 또 있을까?’ 라는 문장입니다. 짧으면서도 가슴에 확 와닿는 그런 문장이죠. 김경미 시인도 해피엔딩은 타락이라고 정의한 온다 리쿠의 설명에 공감하면서 이런 말을 해요.

“타락하지 않기 위해서는, 혹은 타락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소설에서고 영화에서고 인생에서고 모든 결론은 무조건 행복한 해피엔딩이어야 한다는 행복유일사상의 동화적인 타락과 집착에서 벗어나야 합니다”라고요.

요즘식으로 풀어내면 이런 거죠. 조금 덜 행복하게 살아도 괜찮아. 너는 아무 문제없어. 이런 응원을 읽고 잠이 들면 얼마나 마음이 편하겠어요.     


M3  캐스커 – 새벽 한 시

https://youtu.be/kzsgUfVnrJA


ann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책들 만나보고 있어요김경미 시인의 그 한마디에 물들다’ 이야기 중인데요또 책밤지기 마음을 물들인 문장이 있으면 소개해주세요.     

정말 이 책에는 너무 좋은 이야기가 많은데요. 미국의 유명 저널리스트인 앨런 와이즈먼의 ‘가비오따쓰’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를 소개한 부분이 있어요. 볼리비아의 한 인디언 마을에 관한 이야기인데요. 2차세계대전 직후에 칠레 정부와 아메리카대륙개발은행의 후원단이 볼리비아의 오지에 있는 작은 인디언 마을을 방문해요. 후원단 사람들이 마을 원로들을 만나서 필요한 게 있으면 지원해줄테니 얘기해달라고 합니다. 그러자 인디언 원로들이 마을회의를 연 뒤에 이야기를 해요. 가장 필요한 게 하나 있다고. 그게 뭘까요.


ann 그게 뭘까요     

인디언 원로들이 “가장 시급한 건 새로운 악기입니다”라고 말해요. 후원단 사람들은 전기나 하수도, 전화 같은 것들이 더 시급해보인다고 하니까 인디언 원로가 다시 이렇게 답해요.

“우리 마을에서는 누구나 악기를 연주합니다. 일요일에는 미사 후에 음악회를 열고 연주가 끝나면 공동체의 문제를 의논해요. 그런데 우리들의 악기가 오래돼서 망가져갑니다. 음악이 없으면 우리도 그렇게 될 겁니다”하고요.

김경미 시인은 이 이야기를 언급하면서 우리에게 늘 시급한 것도 문명의 이기가 아니라 악기와 음악이라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고 부탁해요.


ann 음악이 없으면 우리도 망가져 갈 거라는 인디언 원로의 말이 인상적이에요.     

대단할 것 없는 이야기인데 뭔가 마음을 휙 하고 후려치는 게 있죠. 뭐랄까 심쿵하게 만드는 포인트라고 할 수 있는데요. 김경미 시인이 소개해주는 다른 책 속의 글귀 중에도 좋은 게 정말 많아요. 대표적인 것 중에 하나가 움베르트 에코의 ‘책의 우주’라는 책에 나오는 글귀인데요. 이 책은 에코가 프랑스계 지성인 장클로드 카리에르와 대담을 나눈 걸 기록한 책입니다. 이 책에서 에코가 이런 말을 해요.

“책은 수저나 망치나 바퀴 또는 가위 같은 것입니다. 일단 한번 발명되고 나면 더 나은 것을 발명할 수 없는 그런 물건들 말이에요. 수저보다 더 나은 수저를 발명할 수는 없습니다.”

이 글귀를 본 뒤로 저는 종이책의 종말을 말하는 사람이 있으면 수저가 종말하기 전에는 종이책도 없어지지 않을 거라고 소리치고 있죠. 정말 천재적인 비유가 아닐까 싶어요.


ann 마음이 따뜻해지기도 하면서 유쾌해지기도 하는 그런 책이네요.     

이 책은 삶에 대한 낙관으로 가득한데요. 그렇다고 해서 현실을 모르는 철부지의 낙관이 아니라 이미 삶의 모든 걸 경험한 뒤에 오는 현명한 낙관이죠. 책에 이런 말이 나와요. ‘삶은 반짝거리는 우연에 의해 지배당하는 것’이라는 말인데요. 삶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지 우리는 알 수 없지만, 그걸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은 우리가 정할 수 있는 거니까요. 그런 힘일까요, 응원을 주는 책입니다.     


M4 LouReed – Perfect Day

https://youtu.be/QYEC4TZsy-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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