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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자 Apr 07. 2019

황석영, 맨부커, 몇 권의 소설

tbs 교통방송 심야라디오 프로그램 '황진하의 달콤한 밤'의 책 소개 코너 '소설 마시는 시간'입니다.

매주 토요일에서 일요일 넘어가는 자정에 95.1MHz에서 들으실 수 있어요.


3월 24일 일흔두 번째 방송은 황석영 작가의 맨부커 인터내셔널 노미네이트를 축하해 황석영 작가와 맨부커에 대한 소설들을 소개했습니다.


↓소설 마시는 시간 멘트↓


ann 책 속에 담긴 인생의 지혜를 음미해 보는 <소설 마시는 시간> 오늘은 어떤 주제로 이야기 나눠볼까요?

얼마 전에 우리 문학계에 좋은 소식이 전해졌죠. 영국의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에 한국 문단의 큰 어른 중 한 명인 황석영 작가가 이름을 올렸거든요. 맨부커상은 노벨문학상, 프랑스 공쿠르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입니다. 여기에 한국 작가가 이름을 올린 거니까 굉장히 뜻깊은 일이라고 할 수 있죠.


ann 맨부커상은 소설가 한강 씨도 수상한 적이 있죠?     

맞습니다. 3년 전이죠. 2016년에 한강 작가가 '채식주의자'로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한강 작가가 아시아 작가로는 처음으로 맨부커 인터내셔널 부문에서 수상을 한 거였죠. 굉장히 큰 화제가 됐는데 이번에 3년 만에 다시 황석영 작가가 후보에 이름을 올리면서 한국 문학의 저력을 세계에 알리게 됐죠.


ann 그런데 맨부커상이랑 인터내셔널 부문은 다른 건가 보죠?     

j 맨부커상에 대해서 조금 설명을 드리면요. 이 상은 원래 영어를 사용하는 영연방 작가들을 대상으로 상을 주는 문학상입니다. 영어로 원작이 쓰인 작품만 맨부커상을 받을 수가 있죠. 그런데 채식주의자는 한글로 원작이 쓰였잖아요. 한강 작가가 받은 건 맨부커상 인터내셔널입니다. 이건 비영연방 작가의 번역작품을 대상으로 작가와 번역가에게 함께 상을 주는 겁니다. 2016년에 한강 작가뿐 아니라 번역가인 데버러 스미스도 함께 상을 받았고요.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최종 결과는 5월에 발표되는데요. 이번에 공개된 최종 후보는 모두 13명이고요. 심사위원들이 이 가운데 다음달 중에 6명 정도로 후보를 추린 뒤에 5월 21일에 최종 발표하게 됩니다. 황석영 작가가 최종 수상자로 선정되면 굉장한 일이 되겠죠.

ann 황석영 작가는 여러 작품이 많잖아요이번에 후보에 오른 건 어떤 소설인가요?     

'해질 무렵'이라는 이름의 소설입니다. 2015년에 출간된 비교적 근작인데요. 인생의 황혼 무렵에 선 성공한 건축가 박민우와 젊은 연극 연출가 정우희의 목소리를 교차해서 보여주면서 근대화, 산업화, 도시화가 한국 사회에 남긴 흉터를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어쩐지 박민우라는 인물에게서는 황석영 작가가 스스로를 투영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는 작품입니다. 


ann 이 작품이 이미 해외에서는 인정을 받고 있는 거죠?     

이미 유럽에 번역돼 현지에서는 많은 찬사를 받고 있는데요 2018 에밀 기메 아시아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아무래도 맨부커상에 대한 수상의 기대감을 높이는 부분이죠. 맨부커상 후보에 올랐다는 소식에 최근에 해질 무렵이 하루에 200권씩 판매될 정도로 사람들의 관심도 커지고 있는데요. 꼭 수상하기를 기대해봅니다.


M1 페퍼톤스 - salary

https://youtu.be/p8U4b9yVyx4


ann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후보에 오른 황석영의 '해질 무렵이야기해보고 있습니다어떤 내용인지 자세하게 이야기해보죠성공한 노건축가와 젊은 연극 연출인의 목소리가 교차한다고 했는데요줄거리부터 소개해주세요.

이 소설의 주인공은 두 명인데요. 일단 성공한 60대의 건축가 박민우가 있습니다. 박민우는 겉보기에는 성공한 건축가지만 실상은 삶의 막바지에 외톨이처럼 남아 있는 사람이에요. 사랑 없는 결혼을 한 끝에 아내와 아이들은 모두 곁을 떠나 해외에 있고요. 늙어가는 몸을 이끌고 혼자 남아 있죠. 그리고 정우희가 있습니다. 박민우가 기성세대를 대변하는 인물이라면 정우희는 청년 세대를 대변하는 인물이에요. 연극 연출가인 정우희는 연극만으로는 생계를 해결할 수가 없어서 닥치는 대로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계를 해결하고 있는 인물인데요. 이 두 인물의 목소리가 교차하면서 앞선 세대인 기성세대가 남긴 도시의 풍경, 우리 사회의 풍경은 뒷세대인 지금의 청년 세대에게 어떤 모습으로 보이는지를 그려내고 있는 소설이라고 할 수 있죠.


ann 나이만 보면 30년 이상의 차이가 나는 두 인물이 바라보는 한국 사회는 완전히 다르겠죠.     

건축가인 박민우는 지금의 한국, 지금의 도시를 만든 기성세대의 일원이잖아요. 그런데 자신이 만든 사회에 살고 있는 자신의 자식 세대인 정우희 같은 청년들이 이 사회를 '헬조선' 같이 좋지 않은 말로 표현하는 걸 보면서 여러 생각이 많을 수밖에 없겠죠. 이 소설의 백미는 이 두 목소리가 이어지는 지점에 있는데요.

박민우가 어느날 강연장에서 낯선 여자에게 쪽지를 하나 받아요. 그 쪽지에는 오랫동안 잊고 있던 고향 동네의 첫사랑 이름이 적혀 있죠. 그때부터 박민우는 지난 수십 년의 시간 동안 잊고 지냈던 자신의 과거, 자신의 고향을 떠올리게 되는데요. 바로 그 쪽지를 건넨 사람이 정우희입니다. 정우희는 박민우의 첫사랑인 차순아의 아들과 친한 사이였거든요. 그런데 건설 일용직을 전전하던 차순아의 아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얼마 지나지 않아 차순아도 죽음을 맞이하게 돼요. 정우희는 두 사람의 남은 짐을 정리하다 차순아가 남긴 일기를 보게 되고, 거기에 나오는 박민우라는 사람이 궁금해져서 찾아본 끝에 건축가 박민우라는 걸 알게 된 거죠. 도저히 이어질 구석이 없어 보이는 박민우와 정우희라는 두 인물이 얽혀 있는 복잡한 관계 속에 사실은 한국 현대사의 흉터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는 겁니다.


ann 기성세대인 박민우나 청년세대인 정우희나독자 입장에서는 어느 쪽이든 공감이 갈 수밖에 없을 것 같네요.

그렇죠. 아무래도 황석영 작가는 박민우의 시각에서 자신의 세대가 걸어온 길이 남긴 흉터에 대한 회한을 드러내는 편인 것 같은데요. 저희 같은 청년 세대 입장에서는 회한 같은 한가로운 소리를 하고 있을 시간이 없죠. 저희처럼 안정적인 직업이 있는 경우라면 그나마 낫겠지만 청년 세대 중에 취업도 제대로 하지 못해서 하루하루 밥벌이를 고민하는 사람이 적지 않으니까요. 앞선 세대의 업보는 결국 다음 세대가 지는 것이겠죠. 이 소설에서 박민우의 첫사랑 차순아의 아들 이름이 김민우로 나오거든요. 차순아가 일기에 이렇게 적어요. 

"나는 그 애가 우리처럼 어렵고 가난해도 행복했으면 했지요. 그런데 우리가 뭘 잘못한 걸까요. 왜 우리 애들을 이렇게 만든 걸까요"

아들의 이름을 첫사랑의 이름을 따서 지었지만, 그 아들은 결국 공사판을 전전하다 목숨을 끊죠. 첫사랑은 그 수많은 공사판의 설계를 맡았던 건축가고요. 이런 구조가 어쩐지 섬뜩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죠.     


ann 책에서 인상 깊은 구절 있으면 소개해주세요.     

작가의 말에 이런 말이 나와요.

"지난 세대의 과거는 업보가 되어 젊은 세대의 현재를 이뤘다. 어려운 시절이 오면서 우리는 진작부터 되돌아봐야 했었다."

그리고 소설 막바지에 박민우가 이런 말을 합니다. "컴퓨터에 지도를 띄워놓고 새로운 주택 부지를 찾으며 맞춤한 곳에 집 짓는 상상을 하는 게 요즘의 내 유일한 낙이다. 그런데 그 집에는 함께할 가족이 없다"고요.

도대체 가족은 어디로 간 걸까요. 가족이 사라진 건 누구의 잘못일까요. 이 소설을 읽다보면 지금의 한국 사회를 만든 기성 세대의 자책, 후회, 회한 같은 감정이 느껴집니다. 그게 옳은 건지, 그른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M2 PD – 봄 날버스 안에서

https://youtu.be/vFyAAZrmUpI


ann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후보에 오른 황석영 작가의 '해질 무렵'에 대해 이야기해봤어요오늘은 이야기가 나온 김에 맨부커상 수상작들을 몇 권 더 소개해주신다고요.     

먼저 소개해드릴 소설은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입니다. 앞에서 잠깐 소개해드린 대로 2016년에 맨부커상 인터내셔널을 아시아 작가 최초로 수상했죠. 채식주의자는 표제작인 '채식주의자'와 '몽고반점' '나무불꽃' 이렇게 세 편의 경장편으로 이뤄진 연작 소설인데요. 기본적인 줄거리는 어느날 갑자기 육식을 거부하면서 나무보 변해가는 영혜와 그걸 바라보는 남편, 그리고 영혜의 언니인 인혜, 비디오아티스트인 인혜의 남편의 이야기로 이뤄져 있습니다.


ann 사람이 나무로 변해간다는 상상력 만큼이나 소설 속 여러 장면들도 굉장히 충격적이라고 할까인상적인 것들이 많죠.     

왜 식물인가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는데요. 이 소설을 비롯해서 한강 작가에게 식물적인 상상력이라는 건 인간의 폭력에 거부하는 어떤 선언 같은 게 아닌가 싶습니다. 소설 속에서 영혜는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걸로 나오는데요. 영혜가 어릴 때 개에 물린 적이 있거든요. 그런데 영혜의 아버지가 영혜를 문 개를 잡아서 죽여요. 영혜는 그 장면을 잊지 못하고 꿈에서 계속 시달리죠. 그러다 결국 육식을 거부하게 되는 거고요. 이런 장면들은 폭력에 대한 비유인데요. 사실 영혜의 아버지가 폭력을 행사한 건 개한테만이 아니라 다른 가족들 특히나 어린 여자아이였던 영혜였고요. 그런 폭력의 트라우마가 영혜의 인생 전반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던 거죠.


ann 비단 채식주의자뿐 아니라 한강의 작품에는 식물로 변하는 주인공의 이야기가 자주 보이는 것 같아요.     

한강 작가가 2000년에 발표한 '내 여자의 열매'라는 단편에도 같은 설정이 나오죠. 하루하루 희망없는 삶을 살던 여자가 어느날 베란다의 나무로 변해가게 되고, 그녀와 함께 살던 남자는 나무로 변하는 그녀를 화분에 심고요. 채식주의자의 원전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인데요. 여자가 나무로 변하기 전에는 남편과의 관계가 무미건조하기 그지없었지만 나무로 변하는 이후에 오히려 둘의 관계가 회복되기 시작하죠.


ann 작년에 잠깐 소개해준 한강의 책 중에도 사람이 눈사람으로 변하는 이야기가 있었죠.     

'작별'이라는 단편소설인데요. 홀로 아이를 키우는 싱글맘이 어느날 갑자기 눈사람으로 변하면서 생기는 일을 다루고 있어요. 아이와 작별 인사를 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작별 인사를 하고 그렇게 세상과 이별을 고하죠. 사랑하는 사람들의 곁을 떠나게 되는데도 오히려 미련이 없어하는 모습을 보여요. 눈사람은 고통을 느끼지 않죠. 눈사람이니까 온기를 느끼며 더 빨리 사라지게 되잖아요. 그런 아이러니한 상황 속에서 인간의 조건에 대해 되묻게 만드는 소설이기도 하고요. 카프카가 '변신'을 쓴 이후로 사람이 사람이 아닌 무언가로 변하는 이야기는 문학계의 단골 소재지만 한강만큼이나 섬세하고 서늘하게 글을 풀어낸 사람은 없는 것도 같아요.     


M3  이효리 - Seoul

https://youtu.be/89Rq4_QcBkw


ann 황석영씨가 수상 후보에 오른 맨부커상 이야기를 해보고 있어요한국 작가로는 한강 작가가 2016년에 받은 적이 있죠그런데 맨부커상이 노벨문학상에 비해서는 한국에 아직 덜 알려진 것 같아요.     

확실히 그런 분위기가 있는데요. 이유를 좀 고민해보니까요. 맨부커상을 받은 작품들이 한국에 별로 소개된 적이 없더라고요. 한강 작가가 수상한 맨부커 인터내셔널상 수상작품 중에 한국에 번역된 소설이 딱 하나입니다. 아무래도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은 비영연방 작가의 작품 중에 선정이 이뤄지다 보니까 한국에도 번역돼서 소개될 일이 적었던 것 같아요.

ann 바로 그 한 작품은 어떤 소설인가요?     

다비드 그로스만이라고 하는 이스라엘의 거장이 쓴 ‘말 한 마리가 술집에 들어왔다’라는 제목의 소설입니다. 2017년에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받은 작품인데요. 작년 4월에 번역 출간됐으니까요. 비교적 빠르게 한국 독자들을 만날 수 있게 된 거죠.

이 소설은 이스라엘의 한 도시에 있는 작은 클럽에서 스탠드업 코미디언이 두 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스탠드업 코미디 공연을 하는 걸 소설로 전달하는 방식입니다. 사람들을 웃기는 직업을 가진 코미디언이 사실은 평생 동안 폭력에 희생당한 사람이었다는 게 그 코미디언의 이야기를 통해서 전달돼요. 스탠드업 코미디라는 게 무대 위에 홀로 서서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오로지 말로만 사람들의 웃음을 끌어내는 직업이잖아요. 그런 스탠드업 코미디언이 사실은 폭력의 희생자였다는 걸 보여주는 블랙코미디의 하나인 거죠.


ann 오늘 소개해준 다른 소설들도 그렇고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은 굉장히 묵직한 소설들을 많이 다루는 것 같아요.     

어쩌다 보니 그런 소설들만 골라서 소개를 해드린 것 같은데요. 비영어권 국가의 문학 중에 그만큼 슬프고 묵직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가 많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도 들죠. 그만큼 주변부에 밀려나 있는 역사, 핍박받은 역사가 많을 테니까요. 이 소설만 해도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유대인들이 어떤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살아가는지, 그런 트라우마가 어떻게 다른 사람들에게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에 대해 다루거든요. 굉장히 유쾌하면서도 끝내 우리 존재의 의미에 대해 깊이 반추할 수밖에 없는 그런 소설입니다.


ann 오늘 맨부커 인터내셔널상 후보에 오른 황석영 작가의 작품을 비롯해서 맨부커 인터내셔널상 수상작품들을 돌아봤는데요황석영 작가가 꼭 좋은 소식을 들으면 좋겠네요     

저는 굉장히 낙관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올해 상이 더 의미있는 건 맨부커라는 이름을 달고 받는 마지막 상이 될 수 있어서 거든요. 원래는 이 상이 부커상이었는데 맨그룹이라는 금융회사가 후원을 하면서 맨부커상이 된 거거든요. 그런데 맨그룹이 올해를 끝으로 후원을 중단하기로 했다고 하더라고요.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의 마지막 주인공이 황석영 작가가 됐으면 또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M4 윤상 – city life

https://youtu.be/bVxv__EF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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