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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자 Sep 12. 2019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삶의 의미를 묻다

tbs교통방송 심야라디오 프로그램 황진하의 달콤한 밤'의 책 소개 코너 '소설 마시는 시간'입니다.

매주 토요일에서 일요일 넘어가는 자정에 95.1MHz에서 들으실 수 있어요.


8월 25일 아흔네 번째 방송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를 소개습니다.


↓소설 마시는 시간 멘트↓


ann 책 속에 담긴 인생의 지혜를 음미해 보는 <소설 마시는 시간> 오늘은 어떤 주제로 이야기 나눠볼까요?

오늘은 에세이 두 권을 가져왔는데요. 남들보다 나이는 조금 많지만 그 누구보다 열심히, 그리고 재밌게 사는 분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에세이입니다. 읽다보면 재밌고 흥미진진하면서도 또 동시에 조금 부끄러워지기도 하는 그런 책이에요.


ann 남들보다 나이는 조금 많지만 누구보다 더 열심히 사는 사람들의 에세이. 머릿속에 몇몇 분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가네요.     

먼저 소개해드릴 책은 ‘박막례, 이대로 죽을 순 없다’라는 제목의 책입니다. 부제가 독보적 유튜버 박막례와 천재 PD 손녀 김유라의 말도 안 되게 신나게 뒤집힌 인생인데요. 부제만 봐도 어떤 책인지 한눈에 딱 알 수가 있죠. 특히나 책 표지가 파격적인데요. 박막례 할머니가 알통을 자랑하며 멋진 포즈를 취하고 있습니다. 한 번 보면 잊을 수가 없는 그런 책이죠.

ann 박막례 할머니 정말 유명하죠. 일흔의 나이에 유튜버로 데뷔해서 지금은 한국을 대표하는 그런 분이죠.     

맞습니다. 박막례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면 정말 인생이 길구나, 지금 조금 일이 잘 안 풀린다고 주저앉을 필요가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죠. 인생은 언제 어떻게 갑자기 새로운 길로 우리를 인도할지 알 수가 없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죠. 박막례 할머니를 잘 모르는 분도 많을 테니까요. 간단하게 소개해드리면, 1947년생이세요. 올해로 일흔셋이 되셨죠. 집안의 막내딸이라서 막례라는 이름을 받고 평생을 특별한 일 없이 집안일과 식당일로 보내셨어요. 본인 스스로 50년을 죽어라 일만 하고 살았다고 할 정도니까요. 그런데 박막례 할머니의 인생이 일흔한 살에 드라마틱하게 바뀌죠.


ann 손녀딸과 함께 유튜버가 된 거죠.     

할머니가 병원에서 치매 위험 진단을 받아요. 그걸 듣고 손녀인 유라 씨가 결심을 한 거죠. 할머니를 위한 효도여행을 다녀와야겠다. 그렇게 회사를 그만두고 할머니와 유라 씨가 함께 호주 여행을 가요. 그때 할머니와 추억을 기록하기 위해 찍은 영상을 동영상 공유 사이트에 올렸는데 그 영상들이 폭발적인 인기를 끈 거죠. 결국 할머니와 유라 씨가 함께 정식으로 유튜버로 데뷔를 하게 되는데요. 지금은 구독자가 100만명이나 되는 인기 유튜버로 자리를 잡았죠. 그리고 유튜브의 사장, 구글의 사장이 직접 박막례 할머니를 만나러 찾아올 정도로 세계적으로도 이름을 떨치게 되고요. 이 모든 일이 할머니가 일흔한 살 때 시작된 거예요. 그리고 이 책에 그 모든 이야기의 기록이 담겨 있고요.


M1 커피소년 - 꽃

https://youtu.be/it5KG16XMHY


ann 남들보다 나이는 조금 많아도 에너지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의 이야기. 먼저 박막례 할머니의 에세이 ‘박막례, 이대로 죽을 순 없다’ 만나보고 있어요.     

책은 시간 순서대로 진행되는 데요. 제일 먼저 손녀인 유라 씨와 박막례 할머니가 호주 여행을 가는 이야기에서부터에요. 할머니도 해외여행을 가본 적은 있지만, 단체여행으로 우르르 가는 여행만 가본 거예요. 일정을 직접 짜고 가고 싶고 먹고 싶은 것만 먹어도 되는 자유여행은 처음이었던 거죠. 헬멧을 쓰고 패러글라이딩을 하고 바다에도 들어가 보고 모래보드도 타면서 자신이 몰랐던 세상의 다른 부분들, 인생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게 된 거죠. 그렇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할머니를 괴롭혔던 치매의 위협에서도 벗어나게 되고요.


ann 손녀와의 여행으로 건강을 되찾은 거네요.     

책에 이런 말이 나와요.

“치매는 의미의 병입니다.”

이 문장을 손녀가 인터넷에서 발견하고는 깨달은 거죠. 할머니를 치매에서 낫게 하려면 좋은 병원, 비싼 약을 구하는 게 능사가 아니라 할머니가 왜 살아야 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삶의 의미를 찾게 해야겠구나. 이 사실을 깨달은 거예요. 호주 여행은 그 첫걸음이었던 거죠. 할머니 스스로 자신도 몰랐던 세상을 향해 한 걸음 내딛게 하는 계기. 그리고 운명적으로 동영상 공유 서비스에 뛰어들면서 할머니는 이제는 치매를 걱정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활기찬 모습을 되찾게 된 겁니다.


ann 삶의 의미를 되찾는 것. 이건 꼭 나이가 많은 분들만 필요한 건 아닌 것 같아요. 나이가 어리고 젊어도 의미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사람이 많잖아요. 그런 사람들에게도 신선한 충격을 줄 수 있는 책이겠네요.     

우리가 지레짐작 포기하는 순간들이 있잖아요. 내 노력으로 될 일이 아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포기하는 때요. 그런데 행운이라는 것도 끝까지 자신을 돌보는 사람에게 찾아오는 법인 것 같아요. 박막례 할머니가 처음 동영상 공유 서비스에 제대로 올린 영상은 화장하는 법이에요. 아침밥 손님을 위해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식당에 일 나갈 때 어떻게 화장하는지를 찍어서 올린 거예요. 이게 뭔가 싶은 영상인데 가만히 보고 있으면 거기에 70 평생을 살아온 한 사람의 솔직한 얼굴, 그리고 삶이 담겨 있는 거예요. 그 모습에 많은 사람들이 감동하고 마음이 움직인 거죠.


ann 박막례 할머니의 영상은 정말 솔직하고 어딘지 모르게 힘을 주는 그런 게 있어요. 보는 사람을 슬쩍 미소짓게 만드는 매력이 있죠.     

이 책도 마찬가지입니다. 할머니의 영상처럼 책도 톡톡 튀고 재미있어요. 글이 한 페이지 가득한 그런 책이 아니라 할머니와 손녀 유라 씨가 함께한 순간들을 찍은 사진도 많고, 두 분의 대화체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부분도 많고요. 읽는데 전혀 부담이 되지 않는 그런 책입니다. 그렇다고 내용이 빈약하냐고 하면 그렇지도 않아요. 할머니의 영상처럼 별 것 아닌 이야기들인데 읽다보면 코끝이 찡해지고, 어쩐지 용기를 얻게 되는 순간들이 참 많죠. 할머니처럼 나도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얻게 되는 그런 책입니다.


ann 기억에 남는 부분이 있나요?     

할머니가 스노클링을 할 때 에피소드가 기억에 남는데요. 옆에 있던 남자가 할머니를 툭 치는 바람에 할머니가 제대로 준비도 하기 전에 바다에 빠져요. 다른 남자들이 도와주셔서 바다에서 겨우 빠져나오죠. 할머니가 충격을 받아서 다음날에 헬멧을 쓰고 하는 다이빙도 거절해요. 그때 가이드와 손녀 유라씨가 계속 설득하죠. 바다에 들어가면 엄청 아름다운 세상이 펼쳐진다고요. 계속 고민하다 결국 할머니가 바다에 들어가는데요. 70 평생에 처음 보는 바닷속 풍경에 깜짝 놀라서 너무 행복한 시간을 보내게 되죠. 

손녀 유라씨가 이 모습을 보고 이렇게 적어요. 

“내가 할머니처럼 70세 노인이었다면 다시 저 두려운 바닷속으로 걸어 들어갈 수 있었을까? 아니, 나는 죽음이 두려워 가만히 앉아 있었을 거다. 그러니까 박막례의 인생 역전은 내가 옆에서 등 떠민 게 아니라 이날 다시 바다로 직접 그 두 발로 걸어 들어간 할머니의 용기에서 시작된 기적이었을 것이다.”

우리가 박막례 할머니의 영상이나 책에서 받는 에너지는 바로 이 용기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M2 아이유 – 사랑이 지나가면

https://youtu.be/yWmtXDh7Vqg


ann 남들보다 나이는 조금 많아도 에너지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의 이야기. 두 번째로 만나볼 책은 어떤 건가요?     

이번에 소개해드릴 책은 사진 에세이인데요. 제목이 '나는 이스트런던에서 86과 2분의 1년을 살았다'입니다. 런던의 한 동네인 이스트런던 지역에 살았던 조지프 마코비치라는 노인의 모습을 사진과 짧은 글로 남겨놓은 에세이입니다.

ann 책 표지를 잠깐 찾아봤는데, 노인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게 멋진 영국 신사의 모습이 있더라고요.     

'노인'이라는 단어에 대해 우리가 갖고 있는 어떤 선입견이 있잖아요. 몸은 노쇠하고 온화한 표정을 짓고 있고, 옷은 그저 편하게만 입고 패션 감각은 없을 것 같고.. 그런데 이런 생각들이 모두 편견이라는 걸 깨닫게 되는 순간들이 있죠. 예컨대 우리나라에서는 김칠두 할아버지가 유명하죠. 1955년생에 순댓국집을 운영하던 할아버지가 지금은 당당하게 런웨이를 활보하는 유명 모델이 됐으니까요. 올해로 77세지만 패션 모델로 활동하는 최순화 할머니도 있고요. 가수 손담비의 노래 '미쳤어'를 불러서 할담비라는 별명을 얻게 된 지병수 할아버지도 있죠. 이런 분들을 보면 노인에 대해 우리가 갖고 있는 편견이 정말 잘못된 생각이었구나 하고 깨닫게 되죠.


ann 이분들은 젊은 사람들보다 오히려 더 젊게 사는 사람들이죠. 육체가 늙는다고 마음까지 늙는 건 아니라는 걸 보여준 분들.     

이번에 소개해드리는 책의 주인공인 조지프 마코비치도 그런 분입니다. 마코비치는 영국 런던의 이스트런던 혹스턴에서 1927년 1월 1일에 태어났는데요. 태어난 이후 엄마의 손을 잡고 바닷가에 한 번 가본 적을 제외하고는 돌아가실 때까지 87년 동안 이스트런던 지역을 떠난 적이 없어요. 말 그대로 이 지역의 터줏대감이었던 거죠. 이 책은 마코비치 할아버지의 마지막 10년 동안의 모습을 사진과 그가 남긴 글을 통해서 보여주는 데요. 그의 패션 감각이며 센스, 그리고 삶과 일상에 대한 짧은 소회까지 우리가 흔히 노인에게 가지고 있는 편견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깨닫게 해줍니다.


ann 이 책이 사진 에세이라고 했는데 그럼 사진가가 따로 있는 거겠네요.     

이 책은 영국의 사진가인 마틴 어스본이 찍은 사진을 담고 있는데요. 2007년 여름에 마틴이 이스트런던의 자기 스튜디오에서 창밖을 내다보는데 거기에 마코비치 할아버지가 있었던 겁니다. 처음에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노숙인이나 정신이 이상한 노인이 아닐까 생각을 했다고 해요. 그런데 거리에 나가서 할아버지의 사진을 찍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서 마코비치 할아버지가 이 지역의 누구보다 오랫동안 이스트런던을 지켜왔고, 또 그 누구보다 제정신으로 세상을 살고 있는지 깨달은 거죠. 이후 6년에 걸쳐 마틴과 마코비치 할아버지는 이스트런던을 배경으로 함께 사진 작업을 하는데요. 그 결과물을 담고 있는 책입니다.     


M3 Coldplay – the scientist

https://youtu.be/RB-RcX5DS5A


ann 남들보다 나이는 조금 많아도 에너지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의 이야기 책으로 만나보고 있어요. 두 번째로 ‘나는 이스트런던에서 86과 2분의 1년을 살았다’ 이야기 중입니다. 그런데 80년이 넘는 세월을 한 동네에서 산다는 게 요즘 같은 시대에는 정말 상상하기 힘든 일이죠.     

요즘에는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는 것도 쉬워지고, 또 동네라는 개념도 사라졌으니까요. 이 책의 배경이 되는 이스트런던 지역은 런던에서도 굉장히 젊고 힙한 느낌의 동네라고 해요. 젊은이와 예술가들이 많이 몰려 있고 아기자기한 카페와 식당도 많은 동네죠. 우리로 치면 홍대나 망원동 같은 느낌일 것 같은데요. 마코비치 할아버지는 이스트런던이 이렇게 변하기 전부터 이 동네를 지켜온 거예요. 말 그대로 동네의 모든 역사를 기억하고 알고 있는 거죠.


ann 이스트런던이 젊고 힙한 동네가 되기 이전부터 한 동네를 지켜온 산 증인이군요.     

80대의 할아버지가 젊은이들과 한데 어울린다는 게 생각만으로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데, 마코비치 할아버지에게서는 그런 어색함이 없어요. 거기에는 한 동네에서 오랜 세월을 살아온 것도 있을 거고, 그리고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려고 하는 마코비치 할아버지의 개인적인 노력 덕분이기도 한 것 같고요.


ann 어떤 이야기가 있나요?     

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마코비치 할아버지는 20년 동안 가방을 만드는 일을 했거든요. 그 이야기를 하다가 할아버지가 자신의 진짜 꿈 이야기를 해요. 자신이 더 똑똑했다면 아마도 회계사가 됐을 거다. 그리고 조금만 더 가벼웠다면, 그랬다면 아마도 발레 무용수가 되고 싶었을 거라고요. 그게 내 꿈이 됐을 거라고 이야기합니다. 별 것 아닌 이야기지만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어린 시절의 꿈을 잊지 않고 간직하고 있다는 게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ann 앞에서 박막례 할머니 이야기에서도 나왔지만 무엇이 되고 싶은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잊지 않는다면 나이는 상관이 없다는 생각이 드네요.     

지금의 환경이나 상황도 마찬가지겠죠. 마코비치 할아버지는 평생을 태어난 동네에서 떠나지 않았지만 사진가인 마틴과 대화할 때면 아마존의 열대 우림이나 미국의 할리우드에 대한 이야기도 막힘 없이 술술 풀어내요. 매주 도서관에 가서 자신이 가보지 않은 나라와 지역에 대한 책을 읽었던 거죠.

마코비치 할아버지가 슬픔에 대해서 남긴 말로 오늘 인사를 대신하면 좋을 것 같은데요.

"세상일에 울어봤자 소용없어요. 아무리 슬퍼해도 사람들은 알아주지 않아요. 가장 좋은 건 그냥 계속 걷는 겁니다."


M4 이능룡 – 끝없는 이야기

https://youtu.be/7807JyQxuw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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