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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자 Aug 22. 2019

봄을 빼앗겨서도 안 되지만 맛을 빼앗겨서도 안 된다

tbs교통방송 심야라디오 프로그램 황진하의 달콤한 밤'의 책 소개 코너 '소설 마시는 시간'입니다.

매주 토요일에서 일요일 넘어가는 자정에 95.1MHz에서 들으실 수 있어요.


8월 18일 아흔세 번째 방송은 소설가가 쓴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습니다.


↓소설 마시는 시간 멘트↓


ann 책 속에 담긴 인생의 지혜를 음미해 보는 <소설 마시는 시간> 오늘은 어떤 주제로 이야기 나눠볼까요?

오늘은 음식에 대한 책을 두 권 가져왔는데요. 소설가들이 쓴 음식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소설가는 단어를 다루는 사람들이잖아요. 아무래도 음식에 대해서 우리보다 더 재치 있고 깊이 있는 성찰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ann 소설가가 쓴 음식 이야기. 예전에 권여선 작가의 ‘오늘 뭐 먹지’를 잠깐 소개해주신 기억이 나네요.     

제가 정말 좋아하는 작가이자 책인데요. 권여선 작가는 굉장한 애주가로 알려져 있거든요. 술을 좋아하는 분이 다 그렇겠지만 음식에도 굉장히 조예가 깊어요. 제철 재료를 이용해서 직접 집에서 간단한 음식을 해 먹는 걸 좋아한다고 하고요. 실제로 권여선 작가의 책을 보면 음식이나 술에 대해 굉장히 인상 깊은 표현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술과 음식에 대해 새로운 차원의 표현을 배우고 싶다면 권여선 작가의 책을 읽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네요.

ann 오늘 소개해주실 책도 권여선 작가 못지않게 좋은 책들이겠죠?     

맞습니다. 먼저 소개할 책은 영국의 소설가 줄리언 반스의 음식 에세이 ‘또 이 따위 레시피라니’입니다. 줄리언 반스는 저희 방송에서도 몇 번 소개해드린 작가인데요. 영국을 대표하는 현대 작가인 동시에 맨부커상을 받기도 한 세계적인 명성의 작가입니다.


ann 책 제목이 굉장히 재밌는데요?      

그렇죠. 오늘 음식에 대한 소설가들의 책을 소개해드린다고 했는데요. 이 책은 엄밀히 말하면 음식에 대한 에세이라기보다는 음식 책에 대한 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요리책이 굉장히 많잖아요. 줄리언 반스도 집에 요리책만 100권은 있다고 하거든요. 그런데 아무리 요리책을 많이 읽어도 요리를 잘하게 되는 건 쉽지가 않죠. 이 책은 줄리언 반스가 요리를 책으로 배우면서 겪은 어려움과 고난, 역경을 담고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M1 Rachael Yamagata – Is It You

https://youtu.be/YDi0I0bt-c8


ann 소설가들의 음식 이야기. 먼저 줄리언 반스의 ‘또 이 따위 레시피라니’ 만나보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소설가의 음식 에세이.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나요?     

세계적인 소설가라고 하니까 뭔가 거창한 이야기가 있을 것 같죠. 그런데 이 책은 전혀 그런 책은 아닙니다. 영국의 노작가가 음식과 요리법에 대해 굉장히 재치있는 유머를 구현하는 책이라고 소개하면 적당할 것 같은데요.

일단 줄리언 반스는 요리책에 있는 레시피를 고스란히 재현하려고 노력해요. 그대로 따라하기만 하면 요리사 못지않은 음식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런데 그게 제대로 되는 적이 없습니다.


ann 요리책에 나오는 걸 그대로 따라하는데 왜 요리가 제대로 안 되는 거죠?     

줄리언 반스의 이야기가 재밌는데요. 도대체가 요리책에 나오는 단어나 표현을 그대로 따라할 수가 없다는 겁니다. 예컨대 요리책의 레시피를 보면 ‘한 덩어리’나 ‘한 꼬집’이런 식으로 재료를 계량하라고 하는데요. 한 덩어리나 한 꼬집이 도대체 얼마인지 알 수가 없다는 거죠. 잼을 만드는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줄리언 반스가 이렇게 투덜대요.

“두 손을 합쳐 최대한 덜어낼 수 있을 만큼의 딸기를 넣으시오, 라는 리처드 올니의 레시피는 어떤가? 정말 이러긴가? 하고 고 올니 선생의 저작관리인에게 편지를 써서 그의 손이 얼마나 컸는지 물어보기라도 해야 한단 말인가?”하고요.


ann 정말 그런 경우가 많죠. 요리책에 나오는 그대로 요리를 하려고 하는데 도무지 알 수 없는 표현에서 막히는 경우. 세계적인 소설가라고 해도 우리랑 똑같은 고민을 하는군요.     

그렇죠. 아무래도 소설가이다 보니까 표현이나 단어에 대한 고민도 많은데요. 요리를 할 때 우리가 별생각 없이 쓰는 표현들이 많죠. 예컨대 썰다라는 단어가 영어로 두 가지가 있어요. chop이라는 단어와 slice라는 단어가 있는데, 이 두 단어의 요리법이 조금씩 다르다고 합니다. 그런데 요리책들이 이 단어를 섞어서 쓰는 걸 보면서 줄리언 반스가 또 분통을 터뜨리는 거죠.


ann 세계적인 소설가가 요리책 레시피를 보면서 분통을 터뜨리는 모습이 어쩐지 재밌네요.     

정말 어쩐지 사랑스러운 구석이 있는 책인데요. 특히나 이 책은 줄리언 반스의 일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요. 줄리언 반스는 자신이 아닌 친구나 가족을 위해 요리를 주로 했다고 하는데요. 그중에서도 자신의 뮤즈이자 아내인 팻 캐바나를 위해 요리를 한 이야기가 많이 나와요. 줄리언 반스는 굉장한 애처가였거든요. 아내 팻을 병으로 먼저 떠난 보낸 뒤에는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라는 제목의 책을 쓰기도 했죠. 이 책은 팻이 아직 건강할 때 줄리언 반스가 자신의 아내를 위해 열심히 요리를 한 이야기도 함께 담겨 있죠.


ann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있나요?     

손님으로 해군 제독이 찾아온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줄리언 반스가 부엌에서 요리를 하는데 바깥 식탁에서 말소리가 들려오는 거예요. 가만히 들어보니까 해군 제독이 반스의 아내인 팻에게 은근하게 추파를 던지고 있던 거죠. 반스의 마음이 얼마나 부글부글 끓었겠어요. 그래도 요리를 어서 마무리해야 하니까 꾹 참고 요리를 서두르는데, 갑자기 부엌에서 뭔가 펑하고 폭발을 합니다. 음식에 곁들이려고 준비하던 캐러멜 소스가 냄비에서 폭발해버린 거죠. 이 이야기를 전하면서 반스가 “이게 무슨 염병할 은유적 상황이란 말인가!”하고 말하는데요. 반스가 자신의 아내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도 알 수 있고, 그래서 더 흥미롭기도 한 책입니다.


M2 치스비치 – SUMMER LOVE

https://youtu.be/V5fGpFwqeq8


ann 소설가들의 음식 이야기. 먼저 줄리언 반스의 ‘또 이 따위 레시피라니’ 만나봤고요. 두 번째 책은 뭔가요?

이번에 소개해드릴 책은 ‘맛의 기억’이라는 제목의 책인데요. 조금 특별한 책입니다. 이 책은 저희 방송에서도 잠깐 소개해드린 적이 있는 서울국제도서전을 기념해서 올해 리미티드 에디션으로 나온 건데요. 따로 판매를 하는 책이 아니어서 구하기가 어렵습니다. 저도 올해 도서전을 방문한 자리에서 겨우 구한 책입니다.


ann 서울국제도서전에 직접 방문한 사람만 구할 수 있는 리미티드 에디션. 도서전을 방문한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선물이었겠네요.     

j 맞습니다. 도서전에서 2017년부터 매년 이런 식으로 리미티드 에디션을 내고 있는데요. 2017년에는 ‘서점의 시대’, 2018년에는 ‘서점들’이라는 제목의 책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올해 ‘맛의 기억’이라는 책이 나온 건데요. 이 책은 소설가나 유명 작가 10명이 저마다가 가지고 있는 ‘맛’에 대한 특별한 기억을 맛깔난 글솜씨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올해 도서전에서는 대전의 유명한 빵집도 팝업 매장을 내고 빵을 직접 구워서 팔았거든요. 매년 도서전이 더 발전하는 것 같아서 왠지 뿌듯하기도 하죠.

ann 참여한 작가들의 면면도 궁금하네요.     

지금 한국 문단을 대표하는 소설가들이 많이 참여했는데요. 제가 앞에서 잠깐 말씀드린 술과 음식 문학의 정수, 권여선 작가의 이름이 있고요. 소설가 중에는 김봉곤, 성석제, 이승우 같은 분들이 있습니다. 시인 중에도 오은, 안희연 같은 분들이 참여했고, 유명 작가로는 요리사이자 음식 에세이스트인 박찬일 셰프, 이용재 음식평론가 같은 분들이 있습니다.


ann 책밤지기가 좋아하는 권여선 작가도 빠지지 않는군요.     

‘잃어버린 맛을 찾아서’라는 제목의 짧은 산문이 실려 있는데요. 역시나 권여선 작가의 글은 재치와 깊이가 가득합니다. 아마도 맛깔난 글로는 한글로 글을 쓰는 작가 중에 최고가 아닐까 싶어요. 이번 산문은 우리가 사서 먹는 음식, 간편식에 길들여진 우리의 입맛에 대한 한탄과 그걸 극복하자는 다짐이 주된 내용인데요. 잘못하면 구태의연하기 쉬운 내용인데 이걸 권여선 작가는 너무나 재치있게 풀어냅니다. 이런 표현이 나와요.

“섬세한 맛을 익히고 즐기고 표현하고 구분하는 능력을 갖지 못한 채, 달고 짜고 매운 자극만 남은 맛의 사막에 버려진 우리는, 맛을 잃어버린 게 아니라 강탈당했다. 조리도 이제 투쟁과 결단이 필요한 영역이 되었다. 봄을 빼앗겨서도 안 되지만 맛을 빼앗겨서도 안 되니까.”     


M3 데이브레이크 – 넌 언제나(디깅클럽서울 Ver.)

https://youtu.be/p-E9zpWZxZA


ann 소설가들의 음식 이야기. 두 번째로 서울국제도서전의 리미티드 에디션인 ‘맛의 기억’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권여선 작가의 산문 이야기했는데 또 어떤 글이 기억에 남나요?     

요리사이자 음식 칼럼을 쓰는 박찬일 셰프의 글도 좋은데요. ‘명태의 맛’이라는 제목의 에세이입니다. 이 글은 오장동의 한 냉면집에서 시작하는데요. 오래된 노포인 이 냉면집은 노인 단골이 많대요. 그런데 냉면집은 2층에 있거든요. 어느 날인가는 아는 노인 단골손님이 주인을 불러내서는 냉면 한 그릇만 내려 달라고 했대요. 노인이 나이를 먹어서 더는 가파른 계단을 올라갈 수가 없었던 거죠. 그래서 몇 번 그렇게 1층으로 냉면을 내려보내서 배달 아닌 배달을 했다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 어느 가족이 냉면을 먹고는 주인한테 정중하게 인사를 하더래요. 누구냐고 물으니까, 1층에서 냉면 달라고 하던 노인을 기억하느냐, 그분이 선친이다라고 한 거죠.


ann 돌아가신 선친을 대신해서 감사 인사를 하러 온 거군요.     

참 등골이 찌르르한 이야기죠. 우리네 냉면 장사라는 게 노인 단골이 많으니까 그 사람들의 맛의 기억을 지켜줘야 하는 소중한 일이기도 한 거죠. 이 글은 이런 식으로 사람들의 기억에 행복하게 남아 있는 맛의 기억을 따라가는 데요. 저자인 박찬일 셰프에게는 명태가 그런 음식이었대요.


ann 유명한 셰프이고 음식 칼럼을 쓰는 작가면 더 좋은 음식도 많이 먹을텐데 왜 명태가 기억에 남는 걸까요?

박찬일 셰프가 어린 시절을 보낸 1970년대 서울은 참 추웠대요. 집이 형편이 안 좋아서 더 그랬겠죠. 그렇게 추운 겨울날에는 박찬일 셰프의 어머니가 늘 동태찌개를 끓였다고 합니다. 리어카 장수한테서 동태며 물미역이며 콩나물을 사서 동태찌개를 팔팔 끓인 거죠. 그런데 동태 한 토막에 두부는 두 모씩 넣는 거예요. 그래야 여러 식구가 찌개 한 번 끓인 걸로 밥을 먹을 수 있으니까요.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그렇게 맛있을 음식도 아닐텐데 박찬일 셰프의 기억에는 그 겨울날 온 가족이 둘러앉아서 동태 한토막에 두부만 가득한 그 찌개가 영영 잊지 못할 음식으로 남아 있는 거죠.


ann 하루에 세 번씩은 꼬박꼬박 밥을 챙겨먹는 게 우리 일상인데요. 이렇게 우리가 먹는 음식, 밥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해볼 기회가 많지는 않은 것 같아요.     

그렇죠. 하지만 매일 반복되는 일이라고 해서 그 의미를 제대로 곱씹지 않으면 안 되겠죠. 밥을 먹는 게 얼마나 중요하고 의미있는지 깨닫는 것에서부터 우리의 일상을 더 알차게 바꿀 수 있는게 아닐까 싶어요.

권여선 작가가 집밥에 대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집밥은 소박하지만 맛깔난 손맛이 담긴 밥상을 의미한다. 집밥이란 말을 들으면 누구나 향수에 젖은 표정을 짓고 입속에 고인 침을 조용히 삼키는데, 이건 순전히 집밥을 하지는 않고 먹고만 싶어 하는 사람들의 환상이 아닐까 싶다. 집밥이 무조건 맛있다고 확신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임에는 분명하지만, 옳지는 않다.”

권여선 작가의 이 말에 음식에 대해 우리가 가져야 할 고민과 태도가 모두 담겨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M4 윤종신 – Night Drive

https://youtu.be/_Sqmm8e4R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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