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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자 Sep 12. 2019

작가들의 일기 쓰기

tbs교통방송 심야라디오 프로그램 황진하의 달콤한 밤'의 책 소개 코너 '소설 마시는 시간'입니다.

매주 토요일에서 일요일 넘어가는 자정에 95.1MHz에서 들으실 수 있어요.


9월 8일 아흔여섯 번째 방송은 소설가가 쓴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습니다.


↓소설 마시는 시간 멘트↓


ann 책 속에 담긴 인생의 지혜를 음미해 보는 <소설 마시는 시간> 오늘은 어떤 주제로 이야기 나눠볼까요?

오늘은 작가들이 쓴 에세이를 두 권 가져왔는데요. 그냥 에세이가 아니라 작가들이 하루하루 그날의 기억과 단상을 기록해놓은 일기를 모아놓은 책으로 골라봤습니다.


ann 어릴 때는 매일매일 일기 쓰는 걸 빼먹지 않고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일기 쓰는 게 어려워졌어요.     

일기라는 게 참 어렵죠. 어릴 때는 별생각 없이 썼는데 나이를 먹으면서 뭔가 더 거창하게 느껴지기도 하잖아요. 그러다보면 일기 한 줄 쓰는 것도 쉽지가 않고. 차일피일 미루다 보면 다이어리나 일기장을 사놓고도 결국은 안 쓰게 되죠. 


ann 작가들은 글 쓰는 게 직업이니까 일기 쓰는 것도 조금 다르겠네요.     

그렇게 생각하기 쉬운데요. 사실 작가들이라고 해도 일기 쓰는 게 쉽거나 휙휙 써지는 건 아니라고 합니다. 일기 쓰는 게 어려운 분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작가가 있는데요. 바로 프란츠 카프카입니다. 변신 같은 소설로 유명한 작가죠. 카프카가 직접 쓴 일기가 잘 알려져 있는데 세계적인 소설가의 일기니까 뭔가 대단한 게 있을 것 같잖아요. 그런데 카프카의 일기는 말 그대로 그날그날의 일이나 떠오른 생각을 아무런 형식 없이 짧게짧게 메모해놓은 것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그저께 저녁, 우티츠와 함께” 이런 식으로 짧게 하루를 기록해 놓은 일기도 있다고 하고요.

ann 정말로 하루하루 빼먹지 않고 적는데 집중한 거네요.     

j 그게 정말 중요하다고 하는데요. 오늘 처음 소개해드릴 책이 소설가 김연수의 ‘시절일기’라는 에세이입니다. 이 에세이에 보면 이런 말이 나와요.

“사전에서는 일기를 날마다 그날그날 겪은 일이나 생각, 느낌 따위를 적는 개인의 기록이라고 정의하지만 나라면 읽는 사람이 없는, 매일의 글쓰기라고 말하겠다. 일기를 쓰는 가장 중요한 목적은 쓰는 행위 그 자체에 있기 때문이다.”

일기는 잘 쓰기 위한 글쓰기가 아니라 자주 쓰기 위한 글쓰기라는 게 김연수 작가의 설명인 겁니다.


ann 잘 쓰기 위한 게 아니라 자주 쓰기 위한 것.     

글쓰기를 하다보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나 자신도 몰랐던 부분을 이해하게 되는 순간이 오는데요. 일기는 그런 목적의 글쓰기 중에 가장 적합한 형식의 글쓰기인 거죠.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기 위해서라면 굳이 거창하게 꾸며쓸 필요가 없겠죠. 그래서 소설가들은 일기를 쓸 때 마음대로 쓰라고 조언을 합니다. 마음대로 꾸준히 쓰다보면 어느 순간엔가 잘 쓸 수 있게 된다는 거고요.     


M1 센티멘탈 시너리 – 추억을 걷다

https://youtu.be/bvicED4kXHI


ann 작가들이 쓴 일기를 모아놓은 책 만나보고 있습니다. 먼저 김연수 작가의 ‘시절일기’ 이야기해볼게요.     

이 책은 김연수 작가가 2003년 1월부터 2017년 6월까지 쓴 글들을 모아놨는데요. 기간을 보면 알 수 있다시피 이 기간동안 쓴 일기를 모두 모아놓은 건 아닙니다. 몇 가지 기준에 따라서 일기를 추렸다고 보시면 되는데요. 일기의 소재나 주제에 따라 모두 다섯 가지 부분으로 나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ps로 단편 소설 한 편이 실려있는 형식이고요.


ann 김연수 작가는 책밤지기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가이기도 하니까요. 어떤 글이 실려 있을지 궁금하네요.     

첫 번째 장은 ‘장래희망은, 다시 할머니’라는 소제목으로 이뤄져 있는데요. 이 부분에서는 김연수 작가가 생각하는 문학과 소설의 역할, 그리고 작가 자신이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그리고 작가 자신이 읽은 소설이나 영화에 대한 감상도 많이 나오는데요. 참 인상 깊은 표현이 많습니다.


ann 어떤 표현이 그런가요?     

다이애너 애실이라는 영국의 유명한 출판 편집자가 쓴 책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다이애너 애실이 쓴 책에 보면 알리스 헤르츠좀머라는 100살이 넘는 할머니의 인터뷰 이야기가 나옵니다. 유럽에서 태어난 알리스 할머니는 나치 수용소에도 갇혔다가 살아난 분인데요. 그녀가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남겼대요.

“인생은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늙으면 그 사실을 더 잘 알게 됩니다. 나이가 들면 생각하고 기억하고 사랑하고 감사하게 돼요. 모든 것에 감사하게 되죠. 나는 악에 대해 잘 알지만 오직 선한 것만 봅니다.”

나치 수용소에서 살아 돌아온 100세 할머니의 고백인 겁니다. 이런 말을 자기 전에 되새기면서 일기에 한 자 한 자 적어둔 거죠.


ann 악에 대해 잘 알지만 오직 선한 것만 본다는 말이 정말 대단한 울림이 있어요.     

책의 두 번째 장은 오로지 세월호 참사에 대한 글로만 이뤄져 있는데요. 참사가 벌어지고 한 달 뒤에 쓴 글도 있고, 1주기나 2주기, 3주기를 맞아서 쓴 글도 있습니다. 세월호는 사실 우리 사회의 많은 이들에게 그랬겠지만, 예민한 감수성을 가진 소설가들에게는 더 큰 타격이었을 수밖에 없는데요. 김연수 작가도 책에서 이렇게 적습니다.

“소설가는 기승전결로 세상을 바라보는데, 세월호 사건은 논리를 한참 건너뛰는 어처구니없는 비극이었다.”


ann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이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죠.     

김연수 작가의 글을 보다보면 세월호 같은 큰 참사를 맞아서 소설가, 그리고 예술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잘 느껴지는데요. 책에 보면 이런 표현이 나옵니다. 

“타자에 대한 윤리의 기본은 그냥 불편한 채로 견디는 일이다. 이렇게 견디기 위해서 소설가들은 소설을 쓰고 감독들은 영화를 만든다. 애도를 완결짓기 위해서가 아니라, 애도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들은 날마다 읽고 써야만 한다.”

세월호 참사는 어떤 형식이든 한국 사회를 살고 있는 모두에게 영향을 끼쳤을 텐데요. 나 자신에게 어떤 영향이 있었는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넘어간 사람은 사실 많지가 않죠. 김연수 작가의 글을 보면 일기라는 글쓰기가 나 자신을 돌아보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ann 어떤 삶을 살 것인가. 김연수 작가는 답을 얻었을까요?     

그건 잘 모르겠지만 책에는 이런 말이 나옵니다. 김연수 시인은 미당의 시를 노래로 만든 황병기의 ‘국화 옆에서’를 듣다가 문득 세상에 대한 어떤 사실을 깨닫습니다. 거울을 보는 늙은 누이의 얼굴에 답이 있었다는 거죠.

“이 세계는 그 거울과 같다. 세계는 늘 그대로 거기 있다. 나빠지는 게 있다면 그 세계에 비친 나의 모습일 것이다.”


M2 슈퍼키드 – 그리 쉽게 이별을 말하지 말아요

https://youtu.be/mql2ikMOzJA


ann 작가들이 쓴 일기를 모아놓은 책 만나보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 만나볼 책은 뭔가요?     

이번에는 철학자 김진영 선생이 쓴 책인데요. ‘아침의 피아노’라는 제목의 책입니다. 이 책에는 부제가 있는데요. 철학자 김진영의 애도 일기라는 부제입니다.


ann 애도 일기. 어떤 걸 애도한다는 뜻일까요?     

이 책에 대해서 조금 설명을 드려야 하는데요. 김진영 선생은 독일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한국에 돌아와 홍익대, 중앙대, 한양대 같은 곳에서 철학을 가르친 분입니다. 철학아카데미 같은 인문학 기관에서 일반인을 상대로도 철학을 가르치는 일도 많이 하셨고요. 그런데 이 분이 정작 본인이 쓴 책은 없었거든요. 그러다 2017년 7월에 암 선고를 받게 됩니다. 이 책은 그때부터 2018년 8월까지 1년여에 걸쳐서 김진영 선생이 쓴 일기를 모아놓은 책인데요. 선생이 본인의 이름으로 쓴 첫 번째 책이자 유고작이 된 책이기도 합니다.

ann 본인의 삶에 대한 애도의 기록이기도 하군요.     

그렇게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이 책에 김진영 선생이 남긴 일기는 모두 234편인데요. 암 선고를 받은 날부터 시작해서 임종 3일 전에 쓴 글까지 이어지거든요. 책에 실린 첫 글은 이렇게 시작해요.

“아침의 피아노. 베란다에서 먼 곳을 바라보며 피아노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마지막 234번째 일기는 딱 한 문장입니다.

“내 마음은 편안하다.”

책의 첫 일기에서 마지막 일기까지를 차근차근 읽어나가다 보면 김진영 선생의 인생 전체가 이 책에 담겨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ann 생의 마지막 순간에 ‘내 마음은 편안하다’라고 쓸 수 있는 마음은 어떨까요. 대단한다는 생각도 한 편에서는 들고요.     

한국 철학계의 큰 어른이었거든요. 철학자가 생의 마지막 순간에 남겨놓은 일기라면 얼마나 대단할까, 얼마나 멋진 말들이 많을까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는데요. 막상 이 책을 읽다보면 그렇게 거창하거나 멋들어진 말은 많지가 않아요. 그보다는 굉장히 사소하고, 편안하고, 그런 말들이 대부분이거든요. 괜히 멋있어 보이려는 겉멋이라고 하죠. 그런 게 완전히 사라진 문장들이 계속 이어져요. 김진영 선생도 이 책에 대해서 이렇게 적습니다.

“2017년 7월 암 선고를 받았다. 그동안 이어지던 모든 일상의 삶들이 셔터를 내린 것처럼 중단되었다. 병원 생활이 시작되었고 환자의 삶을 살기 시작했다. 그렇게 꼭 13개월이 지났다. 이 글은 그사이 내 몸과 마음 그리고 정신을 지나간 작은 사건들의 기록이다. 이 기록은 오로지 나만을 위해 써진 사적인 글이다.”     


M3 술탄 오브 더 디스코 – 숱한 밤들(radio edit)

https://youtu.be/NjmIeRwlV4E


ann 작가들이 쓴 일기 만나보고 있어요. 두 번째로 철학자 김진영 선생이 암 선고를 받고 임종 전까지 써내려 간 일기를 모아놓은 ‘아침의 피아노’ 이야기 중입니다. 마음에 남는 문장이나 일기가 있으면 소개해주세요.     

이 책에 실린 일기는 어떻게 보면 병중의 기록이기도 하잖아요. 동시에 삶을 마감하면서 내 평생의 인생을 돌아보는 시간의 기록이기도 하죠. 그래서 더 의미심장하게 느껴지는 글들이 많은데요. 책에 보면 이런 글이 나옵니다.

“아침 산책, 또 꽃들을 들여다본다. 꽃들이 시들 때를 근심한다면 이토록 철없이 만개할 수 있을까.”

짧지만 삶과 죽음에 대해서 이보다 더 적절하게 표현하는 글이 있을까 싶죠. 다가온 죽음에 대해 생각하면서도 남아 있는 삶에 대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도 느껴지고요.


ann 죽음이 다가왔기에 삶의 소중함을 더욱 절실하게 느끼는 거네요.     

이런 글도 나옵니다.

“살아 있는 동안은 삶이다. 내게는 이 삶에 성실할 책무가 있다. 그걸 자주 잊는다.”

앞에서 소개해드린 글과 이어지는 내용이죠. 삶에 대한 진한 애정이 느껴지는 글이기도 하고요. 이런 글도 나오는데요.

“내가 끝까지 살아남아야 하는 이유는 그것만이 내가 끝까지 사랑했음에 대한 알리바이이기 때문이다.”


ann 살아남아야 하는 이유는 사랑했음에 대한 알리바이이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글이네요.     

이 책에 대한 추천사를 쓴 은유 작가는 이렇게 적어요. 

김진영의 말은 문장으로 된 악보다. 강의에서 필기를 시작하면 중단할 수 없다. 마치 아름다운 음악을 듣다가 멈춤 버튼을 누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죽음을 맞이한 사람은 삶에 밀착한 사람이다. 하루하루 투명하게 소멸하면서 그가 낚아챈 생의 진면목은 아포리즘으로 남았다.

사랑에 대해, 아름다움에 대해, 감사에 대해서 이보다 더 아름다운 글을 쓸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ann 하루하루 투명하게 소멸한다는 게 참 어려운 일인데요.     

누구나 소중한 사람을 잃은 기억이 있기 마련이죠. 이 책을 읽다보면 내 곁에 있던 소중한 사람이 자연스럽게 생각나는데요. 조금은 아프고 힘들었을 그 기억들도 이 책을 읽으면서 조금은 좋은 기억으로 바뀌는 것도 같습니다. 일기라는 게 얼마나 아름답고 의미 있는지 가장 잘 알려주는 책이기도 하고요. 어떤 일기를 써야할까 하는 고민을 갖고 계신 분이라면 한 번 꼭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M4 어반자카파 - 비틀비틀

https://youtu.be/R54SM7Kpd6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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