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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자 Sep 25. 2019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tbs교통방송 심야라디오 프로그램 황진하의 달콤한 밤'의 책 소개 코너 '소설 마시는 시간'입니다.

매주 토요일에서 일요일 넘어가는 자정에 95.1MHz에서 들으실 수 있어요.


9월 15일 아흔일곱 번째 방송은 아버지가 자식을 위해 쓴 두 권의 책을 소개습니다.


↓소설 마시는 시간 멘트↓


ann 책 속에 담긴 인생의 지혜를 음미해 보는 <소설 마시는 시간> 오늘은 어떤 주제로 이야기 나눠볼까요?

명절에는 저희 방송에서 가족에 대한 책을 소개해드리고 있는데요. 작년 추석에는 엄마라는 이름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책을 소개해드렸고, 지난 설에는 남들과 조금 다른 가족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소개해드렸죠.


ann 입양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가족의 탄생’, 중증 발달장애인 동생과 동거를 택한 언니의 이야기를 담은 ‘어른이 되면’ 두 권을 같이 읽었죠.     

명절에는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는 책을 소개하는 저희 방송의 전통을 살려서 오늘도 가족에 대한 책을 두 권 가져왔는데요. 오늘은 아버지가 쓴 책 두 권입니다. 아버지가 자식을 위한 마음을 담아 쓴 책들인데요. 마음이 짠하기도 하고 아버지가 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에 대해서 되새길 수도 있고 그런 책들입니다.


ann 아버지에 대한 책. 어떤 책부터 만나볼까요?     

먼저 소개해드릴 책은 ‘내가 어릴 적 그리던 아버지가 되어’라는 제목의 책입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라는 영화가 있는데 그 영화 제목이 생각나죠. 이 책도 일본인 작가인 하타노 히로시라는 분이 쓴 책인데요. 이 책을 쓰게 된 사연이 특별합니다.

ann 어떤 사연이 있는 걸까요?     

작가분은 사진작가로 활동하고 있는데요. 2년 전인 2017년에 혈액암의 일종인 다발골수종 진단을 받았습니다. 서른다섯살의 나이에 찾아온 불행이죠. 병원에서는 3년의 시한부 선고를 내렸고요. 더 큰 불행은 작가에게 사랑하는 아내, 그리고 태어난 지 두 살밖에 안 된 아들이 있었다는 겁니다.


ann 두 살의 아들, 그리고 3년의 시한부 선고. 생각만 해도 마음이 아프네요.     

이 책의 작가도 처음에는 갈피를 못 잡았다고 합니다. 몇 날 며칠을 눈물로 지새우기도 하고, 자신이 떠나고 남겨질 아내와 아이를 생각하면서 견딜 수 없는 고통에 자살을 생각하기도 했다고 하고요. 사고로 위장해서 죽으면 남은 가족에게 얼마나 많은 보험금이 돌아갈 수 있는지를 계산하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그러다 문득 생각을 하게 됐대요. 남은 3년의 시간 동안 내가 남은 가족, 그리고 아이에게 남겨줄 수 있는 소중한 게 뭘까. 그게 돈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린 거죠. 아들이 인생을 살아갈 때 필요한 나침반 같은 조언. 아이들은 자라면서 아버지에게 많은 걸 듣고 배우잖아요. 그런데 자신의 아들은 그런 아버지가 없이 자라야 할테니, 미리 아들의 인생에 필요한 조언을 남겨놓자. 이런 결심을 하게 된 거죠.


ann 이 책이 그런 조언을 담고 있는 거군요.     

맞습니다. 아들의 이름의 의미, 고독과 친구, 꿈과 일, 그리고 돈, 삶과 죽음까지. 작가가 생각하기에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들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솔직하게 남겼거든요. 아들이 언젠가 자라서 이 책을 읽으면서 아버지의 조언을 들을 수 있게요. 이런 생각으로 책을 쓴 그 마음이 참 짠하죠.


M1 윤종신 – O My Baby

https://youtu.be/6mgGjujDPik


ann 아버지가 자식들을 위해 쓴 책 만나보고 있어요. 먼저 시한부 선고를 받은 아버지가 어린 아들을 위해 남겨놓은 인생의 지침서. ‘내가 어릴 적 그리던 아버지가 되어’라는 책 만나보고 있습니다. 아들을 위해 어떤 이야기들을 남겼나요?     

작가의 아들 이름이 ‘유’라고 합니다. 온화하다는 뜻을 가진 한자를 이름에 붙인 건데요. 아들이 온화한 사람으로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었던 거죠. 작가가 아들과 함께 나이를 먹을 수 있다면 이런 이름의 의미, 그리고 어떻게 해야 온화한 사람이 될 수 있는지를 차근차근 설명해줄 수 있겠지만, 이 책의 작가에게는 그런 시간이 없잖아요. 그래서 조금은 다급한 마음으로 이름의 뜻을 알려주고, 어떻게 온화한 사람이 될 수 있는지를 자신의 경험을 살려서 조언해줍니다. 싫어하는 사람과 오랫동안 같이 있으면 그 사람을 닮게 되니 피하는 것이 좋다거나 가족에게는 솔직한 모습을 보여도 좋지만 모든 행동이 용서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거나. 어떻게 보면 뻔한 조언일 수 있지만, 꼭 필요한 말들을 하나하나 정성껏 모은 거죠.


ann 친구를 사귀는 법에 대해서는 어떤 조언을 남겼나요?     

학교 폭력이나 따돌림 같은 문제는 한국이나 일본이나 마찬가지로 심각하죠. 작가도 자신의 아들이 혹시나 그런 일을 당하지 않을까 걱정했던 것 같아요. 따돌림이나 괴롭힘에서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을 책에서 일러주는데요. 친구에게 애정을 쏟고, 자신의 의견을 힘껏 말하는 힘을 기르고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리고 특히 기억에 남는 건 도망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건데요. 작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스스로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나 해결할 수 없다면 도망치는 것이 현명하다. 싫은 사람에게서 도망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감을 갖는 것이다.”

많은 부모가 학교 폭력이나 괴롭힘에 시달리는 자식들을 오히려 학교로 내몰고는 하죠. 네가 좀 더 붙임성있게 지내봐라, 친구들이랑 잘 이야기해봐라. 그런 태도가 오히려 아이를 지치게 만들 수 있는데, 이 책의 작가는 도망치기 위해서는 자신감이 있어야 한다고 오히려 격려하는 거죠.


ann 아직 아이가 없지만, 이 책의 작가 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아이나 가족을 위해 남은 시간 동안 무얼 해야 할지 고민이 많을 수밖에 없겠어요.     

이 책에 대한 리뷰 중에 이런 글이 있어요. 

‘인생이 끝난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이 책을 읽고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닫게 됐다.’

우리는 보통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대해 잘 생각하지 않잖아요. 오늘, 그리고 내일이 평생 이어지기라도 할 것처럼 살죠. 그런데 죽음이라는 건 예고도 없이 갑자기 방문하기 마련이잖아요. 그제야 우리가 평소에 누리던 것들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깨닫고 후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책은 그런 후회를 미리 막을 수 있게 해주는 그런 책입니다.


ann 가족을 위해서, 내 아이를 위해서 나는 무엇을 남겨줘야 할지 미리 고민해보는 게 지금 이 순간을 더 행복하게 만들어줄 것 같아요.     

지금 내가 가진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 지 깨닫는 것만으로도 우리 인생은 훨씬 더 풍성해질 수 있을 겁니다. 책 이야기를 조금 더 하면, 이 책은 아이를 기르는 부모들에게도 도움이 될 만한 조언이 많은데요. 실패의 가치에 대한 조언이 그렇습니다.


ann 어떤 이야기죠?     

부모가 자녀의 실패를 용납하지 않으면 아이가 자라서 성인이 된 뒤에도 그저 실패하지 않기 위한 선택만 할 수 있을 거라고 지적을 해요. 학교를 택하고 전공을 정하고 하는 것에서부터 옷이나 취미까지 부모가 일일이 간섭하면서 실패하지 않는 방향으로 조언하다 보면 아이에게 오히려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거죠. 이런 부모들은 자신이 아이에게 관심이 많고 다정한 부모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건 정이 많다는 면에서 다정한 건 맞지만 ‘다정한 학대’일 수 있다는 게 작가의 설명입니다. 그저 부모는 아이에게 길잡이 역할만 하면 충분하다는 거죠.  


M2 김현철 – 아빠와 함께 왈츠를(duet with 홍수연)

https://youtu.be/LxVLUO87B9o


ann 아버지가 아이들을 위해 쓴 책 만나보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 만나볼 책은 뭔가요?     

두 번째로 소개해드릴 책은 제목이 재밌는데요. ‘딸에게 자전거를 가르쳐 주는 아빠를 위한 매뉴얼’이라는 제목의 책입니다. 예신형 작가의 책인데요. 작가 프로필이 재밌어요. 형제만 있는 집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3학년 이후로는 단 한 번도 여자 짝꿍과 앉지 못했다. 육군 장교로 복무한 뒤 대기업에 관리직으로 입사한 평범한 한국 남자라고만 저자 소개가 돼 있습니다. 전문 작가가 아니라 평범한 직장인이 딸을 위해 쓴 책인 거죠.


ann 전문 작가가 아닌 평범한 직장인 아빠가 딸을 위해 쓴 자전거 타기 매뉴얼. 설명만 보면 어떤 책일지 감이 안 잡히는데요?     

웬 자전거 타기? 자전거 가르쳐주는 걸로 책 한 권을 쓸 수 있어? 이런 생각을 하기 마련인데요. 사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자전거 타기는 딸이 한 명의 사람으로서 우리 사회에서 당당하게 설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걸 의미하기도 합니다. 어떻게 자전거를 탈 수 있는지 가르쳐주는 게 사실은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나갈 수 있는지 가르쳐주는 것이기도 한 거죠.

ann 그런데 딸과 함께 할 수 있는 일이 많을텐데 왜 하필 자전거 타기인가요?     

작가는 우리 사회가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표현하는데요. 철저한 한국 남자로 커온 작가가 딸을 기르면서 처음으로 한국 사회가 얼마나 여성들에게 불편한 사회인지 깨닫게 된 거죠. 책의 도입부에 작가가 여덟 살 된 딸과 여자 피겨를 보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여자 피겨가 파란색 옷을 입고 있었대요. 그런데 딸이 그걸 보고는 “남자는 파랑, 여자는 핑크야!”이렇게 외친 거예요. 그 말을 듣고 작가가 충격에 빠진 거죠. 여덟 살 밖에 안 된 딸이 성별에 대한 고정관념에 빠져있는 걸 보고요. 그리고 결심한 게 자전거를 가르치는 거였다고 합니다. 자전거는 한 번 배우면 타는 법을 잊지 않잖아요. 그런 것처럼 남자나 여자가 아닌 나답게 사는 법을 자전거를 통해서 가르치고 싶었다는 거죠.


ann 나답게 사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딸에게 자전거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이 아빠도 뭔가 비범한 구석이 있네요.

작가 스스로는 자신을 평범한 한국 남자라고 표현하지만, 사실 이렇게 하기가 쉽지 않죠. 딸에 대한 애정, 그리고 사회를 바르게 바라보려는 노력, 공부, 이런 것들이 필요한 일인데요. 이런 비슷한 말들을 최근에 쉽게 접할 수 있죠. 페미니즘 책들이나 뉴스, 강연에서 성별 고정관념을 버려야 한다는 말을 많이 하죠. 그런데 이 책이 특별한 건 그런 메시지를 한 가정의 아버지가 자신의 딸을 위해 한다는 데 있겠죠. 작가가 책에서 이런 말을 해요.

“앞으로도 수많은 사람이 너의 안장 뒤를 붙잡고 훈수를 두거나 아예 페달을 대신 밟아준다고 나설 수 있어. 하지만 네 자전거는 너의 페달질로만 가는 거야. 아빠는 너에게서 이 세상이 바뀌고 있다는 희망을 봐. 그러니 계속해서 페달을 밟으렴.”

왜 아빠가 딸에게 자전거를 가르치려고 하는지가 이 말속에 담겨 있는 것 같아요.     


M3 에피톤 프로젝트 – 반짝반짝 빛나는

https://youtu.be/Aq28VPWKzHU


ann 아빠가 아이들을 위해 쓴 책 만나보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 평범한 직장인 아빠가 딸을 위해 쓴 ‘딸에게 자전거를 가르쳐 주는 아빠를 위한 매뉴얼’ 만나보고 있어요.     

이 책은 자전거 타는 법을 모두 7단계에 걸쳐서 알려주는데요. 딸에게 자전거를 가르쳐주기로 결심하는 순간에서부터 자전거 구하기, 연습장소 물색하기, 안전장구 챙기기, 페달 밟기, 단독 주행 연습하기, 그리고 일반도로 주행 실습하기까지. 모두 일곱 단계에 걸쳐서 아빠와 딸이 자전거를 타는 장면들이 이어집니다.


ann 처음 자전거를 배우던 때가 생각나요. 아빠나 엄마나 뒤에서 자전거를 붙잡아 주고 있으면 비틀비틀하면서 조금씩 움직이다 넘어지곤 했죠.     

저는 tbs 교통방송 사옥 근처인 수색역 광장에서 처음 자전거를 배웠는데요. 아빠가 자전거를 뒤에서 잡아줬던 기억이 있어요. 그런데 자전거라는 게 누가 뒤에서 잡고 있으면 오히려 더 비틀비틀하거든요. 내가 내 힘으로 온전히 페달을 밟아야 자전거도 중심이 잡히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죠. 이 책의 작가도 이 점을 이야기하는데요. 많은 아이들이 처음에 자전거의 중심을 제대로 못 잡는 건 아빠가 뒤에서 자전거를 잡고 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오히려 아빠가 자전거를 손에서 놓으면 아이가 알아서 페달을 밟고 앞으로 나갈 수 있는데, 많은 아빠가, 부모가 그걸 손에서 놓지 못한다는 거죠.


ann 정말 자전거 가르치기가 아이를 기르는 좋은 비유가 되네요. 때로는 아이를 보호하려는 마음을 놓아야 아이가 앞으로 전진할 수 있다는 거죠?     

그렇죠. 우리가 딸바보라는 말을 많이 하잖아요. 이 책을 쓴 작가도 아마 우리 사회의 딸바보 중 한 명일 텐데요. 정말 딸을 위한 게 어떤 일인지 작가가 쓴 글을 따라 읽으면서 많은 고민을 할 수 있는 책입니다. 진짜 아빠가 되는 건 참 어려운 일인데, 이 책에 나오는 매뉴얼을 따라가다 보면 최소한 나쁜 아빠는 되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ann 책에서 인상적인 문장 하나만 마지막으로 소개해주세요.     

이런 말이 나옵니다. 

“딸은 이제 자전거를 타고 반포종합운동장을 벗어나 나와 함께 한강 둔치 자전거 전용도로를 달릴 수 있게 됐다. 이렇게 몇 년이 지나면 딸은 자전거가 아닌 자동차를 몰고 도로 위로 나서게 될 거고, 무수한 사람에게 자신의 원래 것이 아닌 ‘김씨’라는 성씨를 부여받게 될 것이다. 문득 마음이 급해졌다. 이 아이가 커서도 여전히 ‘김여사’라고 불리는 세상을 맞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많은 것이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에.”

진짜 딸바보라면, 아빠라면, 이렇게 생각하는 게 당연한 게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모두 추석 연휴의 마지막날 행복하게 잘 마무리하시길 바랍니다.


M4 봄여름가을겨울 – 10년전의 일기를 꺼내어

https://youtu.be/9SX9lUp4gw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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