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기자 Sep 25. 2019

소나기의 소년은 소녀에게 어떤 꽃을 선물했을까

tbs교통방송 심야라디오 프로그램 황진하의 달콤한 밤'의 책 소개 코너 '소설 마시는 시간'입니다.

매주 토요일에서 일요일 넘어가는 자정에 95.1MHz에서 들으실 수 있어요.


9월 22일 아흔여덟 번째 방송은 소설 속에 나오는 '꽃'과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모아놓은 책을 소개습니다.


↓소설 마시는 시간 멘트↓


ann 책 속에 담긴 인생의 지혜를 음미해 보는 <소설 마시는 시간> 오늘은 어떤 주제로 이야기 나눠볼까요?

오늘은 여러 편의 소설을 한 가지 주제를 가지고 묶어놓은 책들을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한 권은 소설 속에 나오는 꽃에 대한 이야기를 모아놓은 책이고, 다른 한 권은 소설 속에 나오는 음식들에 대한 이야기를 모아놓은 책입니다.


ann 소설이란 것도 결국 우리 삶을 그럴듯하게 재현한 것이니까요. 소설 속에 나오는 소재들도 우리의 일상에서 익숙한 것들이 많을 수밖에 없겠죠.     

저는 이런 류의 책을 소설 백화점이라고 부르는데요. 한 권의 책을 읽었을 뿐인데 책 속에 나오는 여러 편의 소설을 읽은 듯한 느낌이 나니까요. 줄거리만 읽는 게 아니라 소설 속에 나오는 인상적인 소재를 중심으로 다시 읽기를 하는 거잖아요. 이렇게 되면 훨씬 강렬하게 소설의 내용이 기억에 남는 거죠. 그렇게 관심이 가는 소설이 생기면 다시 찾아서 읽을 수도 있고요. 이런 류의 책을 안 좋아하는 분도 많은데, 저는 소설에 재미를 붙이는 한 가지 좋은 방법이라고 봐요.


ann 소설 속 꽃과 음식. 어떤 책부터 만나볼까요?     

먼저 소개해드릴 책은 소설 속의 꽃에 대한 책입니다. 현직 기자인 김민철 작가가 쓴 ‘문학 속에 핀 꽃들’이라는 제목의 책인데요. 이 분의 책은 전에도 한 번 소개해드린 적이 있어요. 기자로 활동하면서도 야생화에 큰 관심을 가지고 글을 쓰시는 분입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책은 우리 문학 속에 나오는 야생화에 대한 이야기를 모아놓은 거예요.

ann 소설 속에 나오는 야생화 이야기. 생각해보면 많은 소설에 꽃이 등장하기는 하는 거 같은데, 정작 어디에 어떤 꽃이 나왔더라? 하고 생각해보면 딱 생각나는 건 별로 없어요.     

저도 소설을 많이 읽는다고 하지만,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어떤 소설에 어떤 꽃이 나오는지 제대로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더 이 책을 읽고 놀라기도 하고 재밌기도 했습니다. 예컨대 우리가 소설 ‘소나기’하면 소녀와 소년이 비를 맞고 개울가를 건너고 이런 장면을 먼저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이 책에서는 소설 소나기에서 소년이 소녀에게 노란 양산을 닮은 ‘마타리꽃’을 꺾어주는 장면을 설명해주는 겁니다. 마타리꽃이 어떻게 생겼는지, 왜 마타리꽃이 등장했는지를 알려주는 거죠. 우리가 흔히 알고 있던 소설을 조금 다르게 볼 수 있게 해주는 거죠.


ann 흥미로운데요. 그런데 왜 소나기의 소년이 소녀에게 마타리꽃을 꺾어준 거죠?      

마타리꽃은 1미터 넘게 자라는 꽃인데요. 책을 쓴 저자가 이 꽃은 피어있다는 표현보다 서 있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라고 쓸 정도로 가늘고 얇은 꽃입니다. 여름 끝자락에 피기 시작해서 가을을 알리는 대표적인 들꽃 중에 하나인데요. 이렇게 얇은 마타리꽃을 들고 소나기의 소녀가 양산받듯이 하는 장면이 소설에 나오거든요. 소나기의 소녀는 굉장히 여리고 병약한 이미지잖아요. 마타리꽃이 그런 소녀의 이미지에 딱이었던 거죠. 아마도 황순원 선생도 그런 이미지를 생각해서 마타리꽃을 소설에 넣은 게 아니겠느냐는 게 이 책의 설명입니다.


M1 피터팬 콤플렉스 - 모닝콜

https://youtu.be/Uia4wC2Wmf8


ann 소설 속에 나오는 꽃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책. ‘문학 속에 핀 꽃들’ 만나보고 있습니다. 어떤 소설들이 주로 나오나요?     

모두 33편의 소설이 나오는데요. 한국 문학을 대표한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소설들 위주로 실려 있습니다. 김유정의 ‘동백꽃’을 시작으로 마지막에는 공선옥 작가의 ‘영란’으로 끝이 나는데요. 김유정의 ‘봄봄’ 같이 굉장히 오래된 문학 작품부터 김훈의 ‘칼의 노래’나 정유정의 ‘7년의 밤’처럼 비교적 최근에 나온 소설 작품까지 망라돼 있습니다.


ann 김유정 작가의 작품에는 야생화가 나올 법한데요. 김훈의 칼의 노래나 정유정의 7년의 밤에는 어떤 꽃이 나왔죠? 꽃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지는 작품들이잖아요.     

두 편의 작품 모두 조금은 우울하고 비장한 그런 느낌이잖아요. 이런 작품에 꽃이 어울릴 만한 구석이 있을까 싶은데, 꽃이라는 게 꼭 화려하고 아름다운 것만 있는 건 아니니까요. 이순신 장군의 생애를 그린 칼의 노래나 한국형 서스펜스의 진수라고 불리는 7년의 밤, 두 편의 작품 모두 암울하고 침울한 현장의 분위기를 묘사하기 위해 꽃이 사용됩니다. 예컨대 칼의 노래에는 임금이 서울로 환도하는 장면을 묘사하는 문장이 나오는데요. 이런 표현이 나옵니다. 

‘불타버린 대궐과 관청 자리에 쑥부쟁이가 뒤엉켰고 갓 죽은 송장들이 불탄 대궐 앞까지 가득 널렸다.’

폐허로 변한 서울의 모습을 쑥부쟁이가 아무렇게나 자란 풍경을 통해서 보여준 거죠. 쑥부쟁이가 뭐지 하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실 텐데요. 우리가 흔히 들국화라고 부르는 연보라색 꽃잎에 노란 중앙부를 가진 꽃이 바로 쑥부쟁이입니다.

그런데 이 책에 보면 칼의 노래에 야생화에 대한 묘사가 잘못됐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 부분도 재밌어요.


ann 김훈 작가는 철저하게 취재해서 글을 쓰는 걸로 유명한데 묘사가 틀렸다고요?     

이순신 장군이 서울에서 풀려나 남해로 내려가는 장면 묘사가 나오는데요. 4월에 풀려나 남해로 내려가는 한 달 동안 백일홍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다는 묘사가 나와요. 그런데 백일홍이 흐드러지게 핀다는 묘사가 맞으려면 7~9월은 돼야 한다는 겁니다. 백일홍이 4월에 피는 상황은 없으니 이건 잘못된 묘사라는 거죠.

그리고 칼의 노래에는 옥수수의 긴 잎이 우거졌다는 묘사도 나오는데요. 사실 옥수수는 임진왜란 때 명나라 병사들이 식량으로 가져왔다 퍼진 작물이라 이때 이미 옥수수가 우거져 있을 순 없는 거죠. 

그런데 이 책을 쓴 김민철 기자가 김훈 작가를 직접 만날 일이 있어서 물어봤다고 합니다. 왜 이런 오류가 있었는지. 그랬더니 김훈 작가가 “그 장면에는 쑥부쟁이가 나와야하고, 옥수수잎이 서걱거려야 하는데 어떻게 하겠느냐”고 반문을 했다고 합니다. 문학적인 표현을 위해 어쩔 수 없었다는 거죠.


ann 또 재밌는 이야기가 있나요?     

이승우 소설가의 ‘식물들의 사생활’이라는 소설도 책에 나오는데요. 이 소설에서는 소나무를 껴안은 때죽나무가 중요한 소재로 등장합니다. 원래 두 나무가 하나로 감싸 안으면서 자라는 건 전생에 인연이 깊은 거라고들 많이 이야기하거든요. 소설에 나오는 그런 나무를 직접 보고 싶어서 찾아간 거죠.

책을 쓴 작가가 이 때죽나무를 보려고 실제로 나무가 있다는 남양주 홍유릉을 찾아가요. 그런데 소설 속에 나오는 나무를 못 찾은 거죠. 그래서 다음번에 다시 홍유릉을 찾아가서 이번에는 이승우 작가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고 합니다. 그 나무가 어디에 있는지 직접 물어본 거예요. 그리고는 그 나무를 결국 찾아서 사진까지 찍어서 책에 싣기도 합니다.


ann 나무 사진을 위해 두 번이나 남양주를 찾아간 정성이 결국 통했군요.     

우리 현대문학은 사실 꽃이나 식물이랑 굉장히 관련이 깊은 경우가 많아요. 예컨대 한강 작가만 해도 등장인물이 나무가 되거나 식물이 되는 내용의 소설을 여러 편 쓰기도 했고요. 권여선이나 정유정, 윤대녕, 이승우, 신경숙 같은 한국 문단을 대표하는 작가들도 꽃이나 식물을 소설 안으로 가져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거든요. 소설 속에 등장하는 꽃에 대해 공부하는 것만으로도 소설, 그리고 작가의 생각에 대해 한층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M2 보드카 레인 – 바람 불어 좋은 날

https://youtu.be/G6RpzG_L1jE


ann 이번에는 소설 속에 나오는 음식들에 대한 책이죠? 어떤 책인가요?     

이번에 소개해드릴 책은 세계 명작 소설 속에 나오는 요리를 재현한 책입니다. 제목이 ‘문학의 맛, 소설 속 요리들’인데요. 모두 50편의 소설에 나오는 음식들을 재현해서 책으로 소개하는 책입니다. 다이나 프라이드라는 미국의 작가이자 디자이너가 쓴 책입니다. 


ann 소설에 나오는 음식을 재현한다는 게 어떤 건지 잘 이해가 안 가는데요?     

정말 말 그대로 소설 속 음식과 요리 과정에 대한 묘사를 똑같이 따라 하는 거예요. 그리고 배경 장소도 비슷한 곳을 골라서 거기에 실제로 요리한 음식을 차려놓고 소설 속 주인공이 이런 음식을 먹었을 겁니다, 하고 보여주는 거죠. 요리가 끝난 음식은 사진으로 담아서 책에서 보여주고요.

ann 소설 속 장면을 그대로 재현하는 게 쉽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이 책에 나오는 소설 속 음식들이 거창한 것들만 나오는 게 아니거든요. ‘로빈슨 크루소’의 한 장면도 나오는데요. 크루소가 무인도에 난파되고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잖아요. 그러던 중에 무인도에서 난파된 지 16일째 되는 날에 먹은 음식들에 대한 묘사가 나오거든요. 멜론과 포도가 풍성한 곳을 발견한 거죠. 이 책의 저자가 그 장면을 그대로 재현하려고 해변에 멜론과 포도를 놓고 사진을 찍었다고 하는데요. 과일을 해변에 놓으니까 거의 갈매기 수백마리가 달려들어서 가장 힘든 촬영 중에 하나였다고 합니다.


ann 갈매기 한 마리만 달려들어도 쉽지 않을텐데, 정말 악전고투했을 풍경이 상상이 되네요.     

그렇죠. 책에 나오는 음식을 재현하는 게 마냥 편한 작업만은 아니었던 거죠.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도 나오는데요. 변신은 벌레로 변한 주인공의 이야기잖아요. 벌레가 사람들이 먹는 신선한 음식을 먹지는 않죠. 상하고 시간이 지난 그런 음식을 좋아하기 마련이니까요. 이 장면을 재현하려고 먹다 남은 음식을 몇 주 동안 모으기도 했다고 합니다.


M3 클래지콰이 – gentle rain

https://youtu.be/Bqvv3phbkEM


ann 소설 속 음식들을 재현한 책, 문학의 맛 소설 속 요리들 만나보고 있습니다. 명작 소설 속 요리들을 재현했다고 했는데 어떤 작품들이 나오나요?     

정말 명작 소설들의 향연인데요. 모비딕에서 시작해서 비밀의 화원, 롤리타, 허클베리 핀의 모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호밀밭의 파수꾼, 앵무새 죽이기..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명작들이 책을 가득 채웁니다. 다만 아쉬운 건 미국 작가가 서양의 명작 소설들만 대상으로 썼다는 건데요. 한국 소설을 대상으로 한 이런 작품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ann 책에 나오는 음식 중에 어떤 게 인상적인 가요?     

인상 깊게 읽은 소설에 나오는 음식이 아무래도 기억에 남는데요. 허먼 멜빌의 모비딕에 나오는 장면을 재현한 게 가장 기억에 남아요. 고래를 잡는 노인의 이약기를 다룬 소설이잖아요. 조개와 건빵 가루, 돼지고기를 넣은 크림수프를 먹는 장면이 소설 속에 나오거든요. 그 장면을 그대로 재현했는데 사진만 봐도 모비딕의 한 장면에 쑥 들어가는 느낌이 납니다. 모비딕을 다시 한번 읽어보고 싶어져서 결국 책을 꺼내 들게 됐죠.


ann 소설을 다시 읽게 만들 정도면 성공한 셈이네요.     

빨간머리 앤의 한 장면을 재현한 부분도 재밌었는데요. 앤이 절친인 다이애나 베리랑 같이 라즈베리 코디얼을 먹는 장면이 나오거든요. 라즈베리 코디얼은 으깬 라즈베리에 설탕, 레몬주스를 섞어서 만드는 음료인데 소설 속에서 앤과 앤의 친구가 정말 맛있게 마시는 장면이 나오죠. 소설 속에 라즈베리 코디얼의 옅은 빨간색에 대한 묘사가 나오는데, 이 책에 재현된 라즈베리 코디얼이 딱 그 옅은 빨강이거든요. 소설 속에서 이 음료를 마시는 앤과 앤의 친구가 절로 생각나는 순간이죠.


ann 소설 속 음식만으로도 한 권의 책이 나올 정도로 이야기가 많다는 게 놀랍기도 하네요.     

이 책의 추천사를 쓴 박찬일 셰프가 이런 말을 했어요. 인간이 쓰고 읽었던 문자는 결국 모두 삶에 대한 기록이며, 그것은 이처럼 음식이 되어 생생하게 빛나기도 한다. 

우리는 하루도 무언가를 먹지 않고는 살 수 없잖아요. 삶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게 문학의 역할이라면, 음식과 요리야말로 고스란히 재현돼야 할 가장 중요한 삶의 한 부분이 아닐까 싶어요. 이 책은 그렇게 문학 속에 재현된 우리 삶의 일부분을 보여준다는 데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M4 토이 – 피아니시모(with 김예림)

https://youtu.be/KsTpczy5s5I



매거진의 이전글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