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데서 추락하는 게 더 위험해"

서른세 번째 리뷰_장강명 한국이 싫어서

by 이기자

"높은 데서 떨어지는 사람은 낙하산 하나가 안 펴지면 예비 낙하산을 펴면 되지만, 낮은 데서 떨어지는 사람한테는 그럴 시간도 없어. 낙하산 하나가 안 펴지면 그걸로 끝이야. 그러니까 낮은 데서 사는 사람은 더 바닥으로 떨어지는 걸 조심해야 해. 낮은 데서 추락하는 게 더 위험해."


계나는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의 왕팬이다. 소매치기 전과 2범인 양동근은 시한부 인생을 산다. 인디밴드의 키보디스트인 이나영은 그런 양동근을 사랑한다. 계나는 왜 '네 멋대로 해라'의 왕팬이었을까. 비극적인 환경과 운명 속에서도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 둘의 모습에서 어떤 판타지를 느낀 게 아닐까.

99.jpg 계나가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의 왕팬인 이유를 알 것 같다. 나 자신도 그러하기에.

하지만 현실에는 판타지가 없다. 계나의 남자친구인 지명의 누나는 계나와 같은 취향으로 엮이는 것을 거부한다. 잘 나가는 집안에서 자란 지명의 누나에게 '네 멋대로 해라'는 감동적인 동화일 뿐이다. 그런 판타지에 의지해야만 매일매일 지옥철을 버틸 수 있는 계나와는 '네 멋대로 해라'의 효용 자체가 다르다. 지명의 누나는 "나 그 드라마 좋아한 적 없는데"라며 계나를 거부한다.


장강명의 소설 '한국이 싫어서'는 이 사회에서 거부당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우리 사회가 거부한 사람들이라고 해서 무언가 거창한 타이틀을 달고 있는 것이 아니다. 공부를 조금 못 하고, 집안이 조금 나쁘고, 가진 게 조금 적은 사람들일뿐이다.


왜 대한민국, 우리 사회는 이들을 거부하는가? 계나는 독백한다.

"내 고국은 자기 자신을 사랑했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그 자체를. 그래서 자기의 영광을 드러내 줄 구성원을 아꼈지. 김연아라든가, 삼성전자라든가. 그리고 못난 사람들한테는 주로 '나라 망신'이라는 딱지를 붙여 줬어. 내가 형편이 어려워서 사람 도리를 못하게 되면 나라가 나를 도와주는 게 아니라 내가 국가의 명예를 걱정해야 한다는 식이지."


계나는 자신의 고백대로 조금 까칠하고 까탈한 면이 있지만, 우리 사회가 요구한 모든 것을 나름대로 성실하게 수행하며 살아왔다. '스카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서울 4년제 대학인 홍익대를 나왔고, 취업에도 큰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매일 출근 시간 지하철에서 지옥을 경험한다지만, 역삼역으로 향하는 그 시간을 부러워하는 수많은 이태백들에 비하면 그래도 행복한 시간이었으리라.

그런 계나는 한국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왜 떠나느냐, 두 마디로 요약하면 '한국이 싫어서', 세 마디로 요약하면 '여기서는 못 살겠어서'다. 그렇게 떠난 호주가 지상 낙원이나 천국은 아니다. 하지만 계나는 호주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하고, 영어 공부를 하면서 조금씩 성장한다. 한국의 금융회사에 다니고, 기자지망생인 지명과 사귈 때는 불가능했던 일이다. 계나의 성장은 환경의 변화 때문에 가능했다. 계나의 인생을 옥죄고 있던 한국이라는 사회와 환경이 변화하면서 계나는 가능성의 문을 열고 그 밖으로 나간다.


장강명은 '한국이 싫어서'를 어떤 의미에서 애국 소설이라고 말한다. 장강명은 오히려 "자살이나 이민이 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는 "카타르시스는 그 자체가 목적이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끝나버린다. 그러면 대화할 수가 없다"고 지적한다.


계나의 이야기는 장강명이 던지는 질문이다. 대화는 질문에서 시작된다. 누군가는 질문을 던져야 했는데 장강명이 적절한 타이밍에 적절한 질문을 꺼냈다. 이제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은 대답을 고민해야 한다.


왜 지명의 누나는 '네 멋대로 해라'를 좋아하면서도 계나 앞에서 싫다고 했는지에 대해,

왜 계나의 친구들은 다른 사람을 욕하면서 시간을 보내는지에 대해,

왜 계나는 한국이 아닌 호주에서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발견했는지에 대해,

왜 우리 사회와 나라가 이들을 저버리는지에 대해서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어떻게' 바꿔야 할 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계나가 원했던 것은 비싼 레스토랑의 정식이 아니라 남편과 함께하는 치킨이나 떡볶이, 족발이었다. 큰 집도 명품백도 필요하지 않다. 계나는 남편과 매일매일 웃으면서 살고, 한 달에 한 번쯤 연극을 본다거나 바다를 본다거나 하는 데이트를 원했을 뿐이다.

우리 사회가 왜 이런 것들을 계나에게 주지 못했는지 고민해야 한다. 이 짧은 책은 질문과 고민에 대한 책이다. 대답은 원고지 500매로는 불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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