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bs교통방송 심야라디오 프로그램 황진하의 달콤한 밤'의 책 소개 코너 '소설 마시는 시간'입니다.
매주 토요일에서 일요일 넘어가는 자정에 95.1MHz에서 들으실 수 있어요.
12월 1일 백일곱 번째 방송은 역사 속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책을 소개했습니다.
↓소설 마시는 시간 멘트↓
ann 책 속에 담긴 인생의 지혜를 음미해 보는 <소설 마시는 시간> 오늘은 어떤 주제로 이야기 나눠볼까요?
j 오늘은 역사 속에 남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을 두 권 가져왔습니다. 흔히 우리가 인물 평전이라고 부르는 장르의 책들이죠.
ann 인물 평전이라고 하면 위인전 같은 책이 제일 먼저 떠올라요.
j 우리가 평전을 지루하게 느끼는 이유가 어릴 때 읽은 위인전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어린 학생들이 읽기 좋게 편집한 위인전은 사실 뻔한 이야기가 많잖아요. 교훈적이고 교육적인 목적에서 만든 책이다보니까 그 인물의 진짜 삶을 보여주기보다는 보기 좋고, 그럴싸한 이야기만 포장해놓기 마련이죠.
ann 조금만 나이를 먹어도 그런 이야기에는 질리기 십상이죠.
j 요즘은 10대 때도 인생의 희로애락을 다 알아버린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위인전에서는 보기 좋고 성공한 이야기만 담겨 있으니 재미를 느낄 수가 없죠. 실제 그 인물의 삶은 훨씬 다채롭고 흥미로운데 위인전 때문에 그런 삶을 보고 배울 수 있는 기회조차 놓치게 되는 거죠.
ann 오늘 소개할 책은 진짜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책들인가요?
j 맞습니다. 먼저 소개해드릴 책은 월터 아이작슨이 쓴 '레오나르도 다빈치'입니다. 월터 아이작슨은 타임지 편집장으로 일하기도 한 미국의 인물 평전 전문작가죠. 우리에게는 스티브 잡스의 공식 인물전기를 쓴 걸로 유명해진 분이고요.
ann 월터 아이작슨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인물 전기도 썼군요.
j 올해 3월에 국내에 출간이 됐는데요. 마침 올해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500주기라고 해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1519년 5월 2일에 서거했거든요. 500주기에 맞춰서 한 명의 인간으로서 다빈치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좋은 책이 나온 거죠.
ann 그런데 스티브 잡스 평전도 굉장히 두꺼웠던 기억이 나요. 이 책도 그런가요?
j 국내에 출간된 책은 720페이지에 달하니까요. 꽤나 두꺼운 책이죠. 그런데 막상 책을 펼치는 순간 720쪽이라는 분량은 머릿속에서 싹 사라질 겁니다. 다빈치의 삶과 예술이 굉장히 흥미롭기도 하고 월터 아이작슨의 글이 아주 쑥쑥 읽히기도 하고요. 다빈치를 굉장히 좋아해서 그의 유품을 모으기도 하는 빌 게이츠는 이 책에 대해서 "이만큼 다빈치의 삶과 작품을 만족스럽게 다룬 책은 없었다"며 극찬하기도 했습니다.
M1 적재 – 잘 지내
ann 오늘은 역사 속 인물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들 만나보고 있어요. 먼저 월터 아이작슨이 쓴 ‘레오나르도 다빈치’ 이야기 중입니다. 다빈치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 같아요. 모나리자나 최후의 만찬 같은 작품도 마찬가지고요. 그런데 막상 생각해보면 다빈치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제대로 찾아본 적은 없는 것 같아요.
j 다빈치를 천재라고 보통 많이 부르잖아요. 그 말이 틀린 건 아니지만 천재라고 부르는 순간 마치 그 사람은 하늘에서 뚝 하고 떨어진 것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같은 인간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죠. 그 사람의 업적으로만 생애를 평가하게 되고요. 우리처럼 매일 삼시세끼 밥을 먹고 잠도 자고 술도 마시고 했을 텐데요. 이 책이 재밌는 건 우리가 전혀 몰랐던 다빈치의 이런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준다는 점입니다.
ann 다빈치도 우리 같은 인간이었다. 책에는 어떤 이야기가 나오나요?
j 다빈치가 천재였다고 하지만 사실 다빈치는 학교 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라틴어도 배운 적이 없는데 당시 이탈리아를 생각하면 라틴어는 지금의 영어 같은 거였거든요. 그리고 복잡한 수학 계산도 못했다고 해요. 우리가 생각하는 천재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죠. 대신에 다빈치가 두각을 나타낸 건 끊임없는 관찰과 호기심, 연구였다고 합니다. 다빈치를 가리켜서 천재의 대명사, 창의력의 대명사처럼 부르는데 사실 그 밑바탕은 천재적인 두뇌가 아니라 노력과 연구가 깔려 있는 셈인 거죠.
ann 다빈치가 모나리자의 미소를 그릴 때도 끊임없는 연구와 노력이 있었다고 하죠?
j 책에 그때의 이야기가 자세하게 나오는데요. 다빈치가 병원 영안실에 가서 시체의 피부를 직접 벗겨내고 그 안의 근육과 신경 모양을 일일이 관찰하면서 어떤 미소를 그릴지 고민했다고 합니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을 때까지 계속해서 영안실을 찾은 거죠. 이렇게 주위를 관찰하고 그 관찰을 통해 얻은 결과를 예술에 접목한 게 다빈치인데요. 바다 생물의 화석이 높은 고산지대에서 발견되는 것을 보고 지각이 융기한 것을 추측하기도 하고, 달이 스스로 빛나는 게 아니라 태양의 빛을 반사한다는 걸 눈치챈 흔적도 있다고 합니다. 모두 최소 100년에서 길게는 300년이 지나서야 증명이 된 것들이죠.
ann 아이작슨은 이런 이야기를 어떻게 알고 쓴 거죠?
j 다빈치 노트라는 게 있습니다. 다빈치가 매일 관찰하고 고민한 것들을 기록해둔 노트인데요. 그 분량이 7200페이지에 달한다고 합니다. 세월이 지나면서 사라진 것들이 많아서 남아 있는 7200페이지는 전체 다빈치 노트의 4분의 1정도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아이작슨은 이걸 통해서 다빈치의 전체 삶을 다시 그려낸 거죠. 여담으로 빌 게이츠가 남아 있는 다빈치 노트의 100분의 1 정도인 72페이지를 구입한 적이 있는데요. 당시 빌 게이츠가 쓴 돈이 350억원이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비싼 노트가 아닐까 싶어요.
ann 아이작슨의 꼼꼼한 취재 덕분에 모나리자의 탄생 배경부터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몰랐던 삶을 알 수 있게 된 거네요.
j 사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건 다빈치라는 인물을 받아준 15세기 이탈리아 피렌체의 사회 분위기였어요. 다빈치는 지금의 기준으로 보더라도 우리가 평범하다고 말하는 것에서 조금 벗어나 있는 사람이거든요. 사생아였고 동성애자이고 채식주의자고 왼손잡이에다 ADHD로 볼 수 있을 정도로 주의가 산만했고 무엇보다도 당시로서는 쉽지 않은 이단적인 면모도 있었거든요. 그런데도 피렌체 사회는 다빈치의 다양한 면모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그가 연구와 작업에 몰두할 수 있게 배려해준 거죠. 그 덕분에 다빈치라는 세기를 뛰어넘는 예술가가 탄생할 수 있었고, 피렌체에서 르네상스가 꽃을 피운 게 아닐까 싶습니다.
ann 지금 우리 사회에서도 참고할 게 많은 이야기네요.
j 이 책을 읽고 다빈치에 대해서 바뀐 생각 중에 하나가 있다면, 다빈치가 홀로 활동을 한 게 아니라는 건데요. 천재라는 이미지 때문에 다빈치가 혼자 외롭고 홀로 활동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거든요. 그런데 책을 보니 다빈치는 늘 다른 사람들을 모아서 토론하고 함께 이야기하는 걸 즐겼다고 해요. 또 성격 자체도 다정한 구석이 있어서 인기가 많았다고 하고요. 여러가지로 우리가 몰랐던 다빈치의 진짜 모습을 만날 수 있는 책인 것 같습니다.
M2 김윤아 – 비밀의 정원
ann 오늘은 역사 속 인물들을 다룬 책 만나보고 있어요. 이번에는 어떤 책 이야기해볼까요?
j 오늘은 역사 속 인물들의 삶을 다룬 책을 소개해드린다고 했는데요. 앞서 소개해드린 '레오나르도 다빈치' 같은 인물 전기를 생각하기 쉽죠.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특이한 책을 가져왔습니다.
ann 어떤 책인가요?
j 제목부터 특이한데요. '뉴욕타임스 부고 모음집'이라는 책입니다. 이 책은 미국 일간지인 뉴욕타임스의 1851년 9월 18일 창간호부터 2016년까지 165년 동안 보도한 부고 기사 중에서 거물급 인사 160명의 부고를 따로 뽑아서 실어놓은 책입니다.
ann 신문에 실린 부고를 모아서 한 권의 책을 냈다는 거군요. 굉장히 특이하네요.
j 이게 가능한 이유는 뉴욕타임스의 부고 기사가 그만큼 탁월하다고 정평이 났기 때문인데요. 뉴욕타임스 부고 기사는 미국에서 작은 평전이라고 부를 만큼 정확도가 높고, 그 인물의 삶을 잘 요약하는 걸로 유명합니다. 2016년에 '오빗'이라는 영화가 나온 적이 있어요. 부고 기사를 뜻하는 오비추어리의 줄임말인데 뉴욕타임스 부고 담당 기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예요. 영화를 보면 세계 최연소 비행기 조종사 면허 취득자였던 엘리노어 스미스가 2010년에 타계한 이야기가 나오거든요. 이때 뉴욕타임스 부고 기자들이 무려 80년 전인 1931년에 미리 써둔 엘리노어 스미스의 부고 기사를 꺼내서 다듬어요. 비행기 사고로 죽을 것에 대비해서 80년 전에 이미 부고 기사를 써둔 거죠.
ann 영화 '클로저'의 남자 주인공도 부고 기자잖아요. 영화를 보면 미리 유명인사의 부고 기사를 써두던 게 기억나네요.
j 한국은 부고 기자를 전담으로 두는 경우가 많지 않은 걸로 아는데요. 이런 책을 낼 정도로 많은 정보가 쌓였다는 거니까 부럽기도 하죠.
ann 160명의 부고 기사를 모은 책이라고 했는데 정말 굵직한 거물들이 나오겠군요.
j 정치인, 과학자, 기업인, 예술가 같이 다양한 분야에 망라돼 있는데요. 아인슈타인이나 피카소, 마이클 잭슨, 찰리 채플린, 마르크스, 존 레넌 같이 이름만 들어도 한 시대의 아이콘인 사람들의 부고가 쭉 나옵니다. 히틀러나 스탈린, 처칠, 레닌 같은 정치인들의 이름도 나오고요. 책을 읽지 않고 이름만 쭉 훑어봐도 20세기 세계 역사를 총망라하는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M3 롤러코스터 - 습관
ann 오늘은 역사 속 인물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 만나보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 뉴욕타임스의 부고기사를 모아 놓은 책 이야기 중이에요. 그런데 부고 기사라는 게 부음이랑은 완전히 다른 거죠?
j 부음은 장례식장 같은 단순한 정보만 담고 있다면, 부고 기사는 하나의 완결된 이야기라는 게 다른 데요. 하나의 기사이기 때문에 그 안에는 인물에 대한 정보도 있고, 취재원의 멘트도 나옵니다. 예를 들면 마릴린 먼로의 부음 기사가 보면요. 먼로가 죽은 채로 발견되는 장면을 굉장히 상세하게 묘사를 해요. 가정부가 새벽에도 방에 불이 켜진 걸 보고 먼로를 부르지만 대답이 없자 먼로의 정신과 의사를 부르고, 의사가 창문을 깨고 잠긴 방 안으로 들어가고 거기서 먼로가 사망한 걸 발견하고요. 그 뒤에는 먼로의 성공과 먼로를 둘러싼 논란들, 연기력과 진지한 영화에 대한 갈망 같은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쭉 나옵니다. 빌리 와일더 같은 감독의 코멘트가 나오고 먼로의 생전 인터뷰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고요.
"행복에 익숙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행복한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 적도 없었다"라는 인터뷰 속 멘트를 인용하는데 마음이 짠하기도 하죠. 부고 기사 하나만 읽어도 마릴린 먼로라는 사람에 대해 분명한 인상을 가질 수 있도록 꼼꼼하게 쓰였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ann 혹시 한국인 부고 기사도 나오나요?
j 그 점도 흥미로운데요. 한국 번역본에서는 한반도의 운명을 쥐었던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책 말미에 한국인 부고 기사도 따로 모아놓고 있습니다. 이승만 전 대통령, 김일성, 박정희 전 대통령, 김대중 전 대통령, 노무현 전 대통령 등 주로 정치인들이 이름을 올리고 있는데요. 전직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아무래도 한국 사회에서 민감한 주제잖아요. 정치적으로 편 가르기도 심하고. 뉴욕타임스라고 하는 외부의 시선으로 전직 대통령에 대한 평가를 읽어보는 재미가 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ann 예를 들어서 어떤 이야기가 나오나요?
j 최근에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를 놓고 의견이 엇갈리잖아요. 뉴욕타임스는 이승만 전 대통령 부고 기사를 이렇게 적어요. "4000년 민족 역사를 통틀어 최초로 한반도에 자유 투표 정부를 수립한 인물이었다" 동시에 이런 평가도 내립니다. "세 번째 연임에 성공한 후 출세를 욕망하는 정치인들이 그의 곁에서 정신을 흐려놓았고 부패는 점점 더 많은 부패를 낳으며 이 전 대통령의 현실 감각을 마비시켰다". 긍정적인 부분과 부정적인 부분을 모두 분명하게 기록해둔 거죠.
ann 우리는 부고라면 하면 좋은 이야기, 좋은 기억만 담는 게 대부분인데 뉴욕타임스의 기사는 그렇지 않은 것 같네요.
j 굉장히 신랄하게 비판하는 것도 많아요. 예를 들면 미국의 석유왕이자 엄청난 재벌인 록펠러의 부고 기사에서는 그가 철도 리베이트로 돈을 벌었고, 경쟁사에 스파이를 심어서 부당한 범죄를 저지른 배후라는 것도 꼼꼼하게 기록을 합니다. 코코샤넬에 대해서는 "듣는 이들을 하얗게 질리게 할 만큼 타고난 독설가"라고 평가하고, 피카소에 대해서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충실하면서도 바람둥이였으며, 돈 계산에 음흉했고 대중의 관심에 늘 목말라하는 스페인 남자"라고도 적습니다.
ann 이렇게 부고 기사를 통해 역사 속 인물들에 대해서 돌아보는 것도 재밌네요.
j 참 뉴욕타임스 답다라는 생각이 드는 건 책의 마지막 부분인데요. 이 책에서 다루는 인물들 대부분이 백인이고 남자들이거든요. 그만큼 미국 주류 사회가 백인 남성 위주로 돌아갔다는 이야기죠. 뉴욕타임스는 이 책에서 그 부분을 반성한다고 쓰면서 앞으로는 이런 불균형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다짐해요. 참 멋진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M4 박봄 – 봄(feat. 산다라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