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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자 Dec 22. 2019

읽으면 마음에 약이 되는 에세이

tbs교통방송 심야라디오 프로그램 황진하의 달콤한 밤'의 책 소개 코너 '소설 마시는 시간'입니다.

매주 토요일에서 일요일 넘어가는 자정에 95.1MHz에서 들으실 수 있어요.


12월 8일 백여덟 번째 방송은 읽으면 힘이 되는 에세이 두 권을 소개했습니다.


↓소설 마시는 시간 멘트↓


ann 책 속에 담긴 인생의 지혜를 음미해 보는 <소설 마시는 시간> 오늘은 어떤 주제로 이야기 나눠볼까요?

최근에 안 좋은 소식들이 많았잖아요. 많은 사람이 힘들어하다 좋지 않은 선택을 하기도 했고요. 연말이면 어쩐지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하게 느껴질 때도 있고요. 오늘은 이런 분들을 위한 에세이 두 권을 가져왔습니다. 읽고 나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기운이 나는 보약 같은 글입니다.


ann 마음이 따뜻해지고 기운이 나는 글. 어떤 책일지 궁금하네요.     

힐링이나 위로를 내세운 에세이나 책이 정말 많죠. 그런데 알맹이가 없는 책도 많아서 읽고 나면 오히려 허탈할 때가 있거든요. 그래서 이런 책은 좋은 책을 고르는 게 정말 중요한데 오늘 제가 고른 책은 저 스스로가 읽고 나서 힘이 났던 책들입니다. 


ann 먼저 소개해줄 책은요?     

먼저 이야기할 책은 한동일 교수의 ‘라틴어 수업’이라는 책입니다. 한동일 교수는 한국인 최초로 바티칸 대법원인 로타 로마나의 변호사가 된 분인데요. 동시에 가톨릭 사제이기도 합니다. 한동일 교수가 2010년부터 2016년까지 서강대에서 라틴어 수업을 한 적이 있는데, 이 책은 그때의 강의 내용을 정리해서 묶은 책이에요.

ann 라틴어는 이름만 들어도 굉장히 복잡하고, 어려울 것 같은데요. 라틴어 수업이 어떻게 독자에게 위로가 되는 걸까요?     

그렇죠. 책에도 라틴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책만 읽어도 라틴어는 정말 어려운 언어구나, 하고 느낄 수가 있어요. 동사 하나의 변화형만 160개에 이른다고 하니까요. 어지간해서는 배우는 걸 시도도 할 수 없는 언어가 맞습니다. 그런데 이 책은 라틴어를 가르치려는 책이 아니라, 라틴어를 둘러싼 문화와 역사, 인생관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는 책이에요.


ann 라틴어는 지금 서양 문화의 뿌리 같은 언어죠.     

유럽에서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진학하려면 우리의 수능 시험 같은 시험을 치러야 하는데요. 그때 꼭 거쳐야 하는 시험 중 하나가 라틴어 수업이라고 해요. 라틴어를 제대로 못하면 유럽에서는 대학에 진학하는 것도 어려운 거죠. 그만큼 지금까지도 유럽 문화 전반에 라틴어의 영향력이 크다는 겁니다. 한동일 교수는 이 책에서 라틴어가 왜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서도 유럽 문화의 뿌리로 자리잡고 있는지 그 이유를 설명해주는데요. 그건 라틴어가 가지고 있는 인간 중심적인 사고방식, 다른 사람과 사회를 배려하는 마음 때문이라고 해요.


ann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을 배우는 책이라는 거군요.     

이 수업을 들은 학생들이 쓴 편지가 책의 말미에 실려 있는데요. 한 제자가 이렇게 표현했더라고요. “아직 꽃피지 못한 청춘, 그러나 라틴어 수업에서 배운 것은 꽃이 아니라 그 근본이 되는 뿌리였다.”

이 책은 뿌리를 가르치는 책인 거죠.


M1 강아솔 – 다 고마워지는 밤

https://youtu.be/gkaymwVHykk


ann 오늘은 마음을 위로해주는 에세이 만나보고 있습니다. 먼저 한동일 교수의 라틴어 수업 이야기 중이에요. 어떤 이야기가 마음을 위로해주나요?     

라틴어 표현을 소개하고 이 표현의 의미와 유래를 설명하는 식으로 구성돼 있는데요. 라틴어 중에 ‘숨마 쿰 라우데’라는 말이 있어요. 이 말은 최우등이라는 뜻이거든요. 이 표현을 이야기하면서 한동일 교수는 우리는 타인의 객관적인 평가가 나를 숨마 쿰 라우데라고 하지 않아도 우리는 숨마 쿰 라우데라는 존재감으로 살아야 한다고 말해요. 가뜩이나 세상은 우리를 위축되고 보잘것없게 할텐데, 나 자신마저도 스스로를 보잘것없는 존재로 대해서는 안 된다는 거죠. 우리는 이미 스스로에, 누군가에 ‘숨마 쿰 라우데’라는 메시지를 전하죠.


ann 우리는 이미 누군가의 최우등인 존재다.      

한국어와 라틴어의 차이점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는데요. 우리가 존댓말로 쓰는 표현 중에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같은 말이 사실은 라틴어에 뿌리를 둔 말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명령형이 아니라 상대방을 존중하면서 요청하는 표현이죠. 이렇게 라틴어에는 상대가 누구든지 간에 내려다보지 않고, 수평적인 존재를 전제로 한다고 해요 한국어는 그렇지가 않잖아요. 명령형도 많고요.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배려, 수평성을 전제로 언어를 써야 다른 사람을 말로 상처입히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ann 최근에 함부로 내뱉은 말 때문에 다른 사람이 상처를 입는 걸 우리가 모두 많이 봤으니까요.     

행복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말도 있잖아요. 이 말도 사실은 따지고 보면 라틴어에서 나온 말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베아티투도’라는 라틴어가 있어요. 이말은 행복을 뜻하는 말이라고 하는데요. 베오라는 동사와 아티투도라는 명사의 합성어예요. 베오는 행복하게 한다는 뜻이고, 아티투도는 말만 보면 어떤 영어 단어가 떠오르죠. 태도라는 영어 명사의 라틴어 어원이에요. 이 두 말을 합치면, 베아티투도가 되는거죠. 태도나 마음가짐에 따라 복을 가져올 수 있다는 뜻을 가진 말이 되고요.


ann 여러 라틴어 표현 중에서도 젊은이들을 위한 메시지를 골라서 가르쳐준 느낌이 있네요.     

책을 쓰면서 그런 강의를 위주로 정리한 거겠죠. 그리고 이 책이 인상 깊은 건 좋은 말, 그럴듯한 말만 늘여놓은 게 아니라 라틴어라고 하는 세계 문화의 근본적인 뿌리 중에 하나를 소개하면서 거기에서 2019년의 우리에게 의미있는 말을 전달해주는 데 있어요. 뿌리가 없는 말은 허무하죠. 그냥 말의 성찬일 뿐이고요. 그런데 이 책이 전하는 위로의 메시지는 인류 문명의 뿌리 중 하나인 라틴어 세계에서 수천년 전부터 있었던 말에서 가져온 거예요. 뿌리가 분명하기에 말은 흩어지지 않고 묵직하게 독자의 마음까지 이어지는 거죠.


ann 꽃보다 뿌리를 찾게 해주는 수업이라는 제자의 편지가 생각나네요.     

‘혹 쿠오퀘 트란시비트!’라는 라틴어가 있어요.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뜻의 말인데요. 지금의 고통과 절망이 영원할 것 같지만 언젠가는 끝이 있다는 말입니다. 한동일 교수는 이 말을 전하면서 끝이 언제일지 알 수 없지만, 반드시 끝은 있다고 전해요. 그러니까 오늘의 절망을 내일로 조금씩 미뤄두면서 하루하루를 지내자고 하는 겁니다. 이 책의 마지막 강의는 희망에 대한 건데요. 라틴어 경구로 된 희망에 대한 말들을 하나씩 읽어주면서 끝나요. 삶이 있는 한 희망은 있다, 숨 쉬는 동안 나는 희망한다, 같은 말들요. 


ann 삶이 있는 한 희망은 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의 삶에 대해 책임을 지고, 어떤 희망을 가질지 고민하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M2 이승열 – 스물 그리고 서른

https://youtu.be/GKCJY2A7yeU


ann 오늘은 위로가 되는 메시지를 담은 에세이 만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어떤 책을 만나볼까요?     

이번에 소개할 책은 ‘그 사랑 놓치지 마라’는 제목의 에세이입니다. 시 쓰는 수녀로 유명한 이해인 수녀의 새 산문집이 최근에 나왔거든요. 바로 그 책을 가져와봤습니다.


ann 이해인 수녀의 글은 정말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죠.      

이번 산문집에도 참 좋은 글이 많이 실려 있습니다. 시 산문 44편이 실려 있는데요. 한 편 한 편이 이해인 수녀의 글이라는 걸 알 수 있게 따뜻하고 섬세합니다. 이번 책은 계절별로 글이 나눠져 있는데요. 봄과 여름, 겨울 같이 계절별로 글을 쓴 시기에 맞춰서 분류를 해놓은 겁니다.

ann 이해인 수녀의 시는 평소에 좋아하셨어요?     

사실 자주 찾아 읽지는 못했어요. 이해인 수녀가 다작이시잖아요. 매번 책을 찾아서 읽지는 못했거든요. 그래서 이번에 책을 읽으면서 모처럼 수녀님의 글을 읽었는데 저도 모르게 울컥할 때가 많았어요. 이게 수녀님의 힘이구나. 독자들이 자기도 모르게 힘들고 아팠던 부분을 드러낼 수 있게 해주는 힘이 있는 거죠. 그리고 이번 책에는 이해인 수녀님의 인터뷰와 배우 이영애씨의 편지도 담겨 있어요.


ann 이영애 배우의 편지요?     

배우 이영애씨가 이해인 수녀의 오랜 팬이라고 합니다. 2014년에도 문학사상이라는 잡지에 이영애씨가 이해인 수녀의 글에 대한 감상평을 실은 적이 있거든요. 그때 이영애씨가 이해인 수녀의 글을 가리켜서 ‘수녀님의 시는 마음이 힘들고 지칠 때 쉴 수 있는 마음의 집 같았다. 연예계라는 또 다른 사회를 살아가면서 나에게는 산소 같았다’고 말했습니다.


ann 이번 편지에서는 어떤 말을 남겼나요?     

이런 말이 나와요. 얼마 전 여성 연예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근거 없는 말과 험한 댓글로 오랫동안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저도 마음이 혼란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이상한 오해와 쉽게 단정 짓는 말들이 내게 던져지는 순간이 있지요. 그럴 때마다 조용히 수녀님의 시와 말씀을 새겼습니다. 평온하게 나를 다독이는 시를 읽으며 괜찮다고 위로받았습니다.


ann 같은 여성 연예인으로서 이영애 배우도 최근의 뉴스에 마음이 아팠던 거네요.     

그럴 때마다 힘이 되고 의지할 수 있는 누군가가 옆에 있으면 좋겠지만, 그게 힘들면 좋은 책 한 권이라도 꼭 안고 의지해야 할 것 같아요. 우리 사회가 그런 험한 말을 다른 사람에게 함부로 내뱉지 않는 사회가 될 때까지요.


M3 에피톤 프로젝트 - 회전목마

https://youtu.be/Y9UA5oC07Q4


ann 오늘은 마음을 위로해주는 에세이 만나고 있어요. 이해인 수녀의 ‘그 사랑 놓치지 마라’ 이야기 중인데요. 어떤 글이 마음에 남았나요?     

‘종이에 손을 베고’라는 시가 있는데요. 몇 소절 읽어드릴게요.

눈 부시게 아름다운 흰 종이에 손을 베었다

종이가 나의 손을 살짝 스쳐지나간 것뿐인데도 피가 나다니 쓰라리다니

나는 이제 가벼운 종이도 조심조심 무겁게 다뤄야지 다짐해본다

내가 생각없이 내뱉은 가벼운 말들이 남을 피 흘리게 한 일은 없었는지

반성하고 또 반성하며...


ann 앞에 이영애 배우의 편지도 생각나네요.     

우리가 혼자서도 힘든 일이 참 많은 세상인데, 다른 사람의 말 때문에 상처 입을 때가 많잖아요. 이해인 수녀도 그렇게 상처받는 사람들을 위해, 그리고 그런 사회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글을 쓴 게 많은 것 같아요.

마음에 대한 글이 참 인상깊었는데요. 마음이란 나를 살게 하는 뿌리 같아서 조심조심 다뤄야 한다. 마음이 안정되면 바깥의 현상에도 더 민감하게 조응할 수 있고, 더 진한 감동을 느낄 수 있다. 선한 마음, 사랑의 마음으로 세상을 더 낫게 만들거나 구원할 수 있다고 적습니다.


ann 사랑의 마음으로 세상을 더 낫게 만들 수 있다.     

그런 식으로 사랑에 대한 글도 참 많은데요. 책의 제목도 그 사랑 놓치지 마라잖아요. 이해인 수녀가 책에 실린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판단은 보류하고 사랑은 빨리하라”고요. 사랑을 말하고 글로 쓰는 건 쉽지만 더 중요한 건 실천하는 거죠. 평범하고 사소한 것부터 실천하다보면 차츰 넓어지는 사랑을 느낄 수 있다는 겁니다.


ann 결국 사랑이군요.     

이해인 수녀는 신에게 사랑을 바친 분이잖아요. 그래서인지 하루하루의 삶을 신께 드리는 하나의 기도이자 이웃에게 바치는 러브레터라고 말해요. 우리가 서로를 사랑하고 아껴줄 수 있는 시간이 우리의 생각만큼 많이 남지 않았다는 것도 이야기하고요. 이번 책에는 이해인 수녀가 병원에 입원하면서 겪었던 일들, 생각했던 것들에 대한 이야기도 솔직하게 실려있거든요. 그때의 경험으로 살아있는 순간의 아름다움, 소중함을 다시금 느낀 게 아닌가 싶어요. 우리의 시간이 그렇게 길지 않은데, 그 짧은 시간을 다른 사람을 해치고 아프게 하는 말을 하면서 살아서는 안 되잖아요. 사랑으로 채우기에도 부족한 시간인데요.


M4 하비누아주 – 마지막인 것처럼

https://youtu.be/5rHLXkTAyZ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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