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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자 Dec 22. 2019

인생은 내 맘대로 안됐지만 투병은 내 맘대로

tbs교통방송 심야라디오 프로그램 황진하의 달콤한 밤'의 책 소개 코너 '소설 마시는 시간'입니다.

매주 토요일에서 일요일 넘어가는 자정에 95.1MHz에서 들으실 수 있어요.


12월 15일 백아홉 번째 방송은 병을 이겨내며 희망을 이야기하는 에세이 두 권을 소개했습니다.


↓소설 마시는 시간 멘트↓


ann 책 속에 담긴 인생의 지혜를 음미해 보는 <소설 마시는 시간> 오늘은 어떤 주제로 이야기 나눠볼까요?

지난주에는 삶이 지칠 때 위로가 되는 에세이를 두 권 소개해드렸잖아요. 오늘도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책을 가져왔는데요. 연말이기도 하고, 최근에 안 좋은 뉴스들도 많다보니 가만히 있어도 힘이 빠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더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담은 책이 필요한 시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ann 희망을 담은 책. 어떤 책인가요?     

오늘 소개해드리는 책들은 만화나 그래픽노블인데요. 연말에 약속도 많고 책 읽을 시간이 없잖아요. 이런 책들이 더 유용하게 쓰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먼저 소개해드릴 책은 '사기병'이라는 제목의 책입니다. 부제가 '인생은 마음대로 안 됐지만 투병은 내 맘대로'인데요.


ann 부제를 보면 투병기를 다룬 책인 걸 알 수 있네요.     

맞습니다. 너무 슬프면서도 너무 밝아서 읽는내내 깜짝 놀라게 되는 책인데요. 그림책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윤지회 작가의 책이에요. 윤지회 작가는 굉장히 왕성하게 활동하던 30대의 젊은 작가였는데요. 작년 3월에 갑자기 배가 아파서 병원에 갔다가 느닷없이 위암 4기 판정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 이후로 수술을 받고 항암치료를 하고 그러면서 겪은 이야기를 모아서 올해 2월부터 소셜미디어에 웹툰처럼 연재하기 시작했어요. 사기병이라는 이름으로요. 이 웹툰이 큰 지지를 받으면서 지난 9월에 한 권의 책으로 나왔습니다.

ann 사기병이라는 제목은 어떤 뜻인가요?     

작가가 앓고 있는 병인 위암 4기니까요. 4기라는 말을 가져온 건데요. 건강하게 잘 지내다가 갑자기 위암 4기 판정을 받으니까 작가는 그게 믿기지 않았던 거예요. 그래서 마치 사기를 당한 것 같다는 의미에서 사기병이라는 말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누군가가 자신에게 사기를 치는 거였으면 좋겠다는 뜻이기도 하죠.


ann 소셜미디어에 올라온 웹툰을 찾아보니 작가가 처한 상황과는 딴판으로 참 밝고 긍정적인 기운이 넘쳐요.

위암 4기로 판정을 받고 항암치료를 받고 1년 6개월이 지나서 올해 9월에는 난소로 암이 전이됐다고 해요. 난소암 수술을 하다가 다른 부위에서도 또 암이 발견됐고요. 정말 어려운 상황인데도 작가의 웹툰이나 글을 보면 대단한 희망, 에너지가 느껴져요.

위암 4기 환자는 생존율이 7%라고 합니다. 이 말을 들으면 많은 사람이 93이라는 숫자가 주는 절망감에 휩싸일텐데 윤지회 작가는 7이라는 숫자가 주는 희망을 보고 하루하루 악착같이 버텨요. 책의 마지막에 이런 말이 나와요. '야호 1년 살았다!'

작가의 인터뷰에서 기억나는 말이 있는데요. 위암 4기 환자의 5년 이상 생존율이 7%라는 글을 소셜미디어에 올렸더니 어떤 분이 댓글을 달았대요. '의학적으로 살 확률은 7%라도 내가 살아있으면 생존율 100%에요. 살아내는 게 중요해요.'라고요. 이 말이 힘이 돼서 100% 생존율을 향해 계속 열심히 살고 있는 거죠.


M1 검정치마 - Antifreeze

https://youtu.be/PGxcvForjuY


ann 오늘은 병을 이겨내며 노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 만나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암 4기 환자를 말기 환자라고 부르기도 하잖아요. 그만큼 생존이 쉽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죠.     

작가도 그 이야기를 해요. 그러면서 대부분 병원의 무신경함에 대해 아쉬운 마음을 토로하기도 합니다. 4기 환자는 치료가 쉽지 않으니까 병원에 가도 몇 분 만에 쫓겨나오듯 나오는 경우가 많다고 해요. 궁금한 게 누구보다 많을텐데 병원에서는 다른 환자에 더 신경을 쏟는 거죠. 그런 대응이 오히려 암 환자의 마음을 더 아프게 하고 절망감을 심어주는 게 아닌가 싶어요.

윤지회 작가는 위암 4기 진단을 받을 때 의사가 냉정하고 딱딱한 말투로 말기라고 하던 게 너무 큰 상처가 됐다고 합니다. 그래서 항암 치료를 시작할 때는 친절한 의사로 바꿨다고 하고요.


ann 우리가 별생각 없이 위로한다고 건네는 말이 오히려 상처가 되는 경우가 많겠죠.     

항암치료를 하면서 작가도 그런 걸 많이 느꼈다고 해요. 예컨대 '요즘 암은 별거 아니래' '억지로라도 먹어' 이런 말들이요. 작가 자신은 암이라는 병 때문에 세상이 무너질 것 같은데 요즘 암은 다 고친다더라, 별거 아니라더라 이런 말을 쉽게 툭툭 던지는 사람들은 사실 돌멩이를 던지는 거나 마찬가지인 거죠. 물만 마셔도 장이 꼬여서 토하고 고통스러워하는 사람한테 잘 먹어야 낫는다며 억지로라도 먹으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사람은 본인이 한 번도 아파본 적도 없고, 가까운 누군가의 병간호를 해본 적도 없는 사람인 거죠. 이런 메시지는 힘이 되기는커녕 힘 빠지게 만드는 거죠.


ann 그럼 어떤 메시지가 힘이 될까요?     

꾸준히 보내는 메시지. 힘내라. 고맙다. 미안해. 같은 이야기들이었다고 해요. 남편에 대한 이야기도 재밌는데요. 남편이 무뚝뚝한 사람이어서 많이 싸웠다고 해요. 암 진단을 받고 이야기했을 때도 별 감정 기복이 없었대요. 그래서 처음에는 참 서운했다고 합니다. 병원에 입원했을 때도 옆 병상에 있는 환자의 신랑은 매일 아내 손 잡고 우는데 남편은 멀뚱멀뚱하게 있다가 가더래요. 그런데 이제는 그런 게 고맙다고 해요. 세상 모두가 나를 환자 취급하는데 남편은 환자가 아니라 그냥 한결같은 아내로 봐준다는 게 너무 고맙다는 거예요.


ann 윤지회 작가는 어떤 꿈을 가지고 있나요?     

할머니 되는 게 꿈이라고 해요. 그리고 아들인 건오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대학생이 되는 모습까지 보는 게 소원이라고 하고요. 그런 말이 있죠. 내가 살고 있는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간절하게 원하던 내일이었다. 이 말이 그냥 들을 때는 참 뻔하고 구태의연해 보였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이 바뀌었어요. 내게 주어진 하루하루를 정말 소중하게 여겨야 하는구나. 얼마 전 윤지회 작가가 소셜미디어에 짧은 글을 올렸어요.

'어차피 항암은 끝이 없고 매번 힘들다. 그렇다고 죽을 날만 기다리면서 절망하며 시간을 보낼 것인가. 까짓거 살아있는 동안은 최선을 다해야 후회가 없지. 정신차리고 물이라도 넘기자. 건오 스무살 될 때까지.'

이 책은 단순한 암 투병기가 아니라 우리가 그 가치를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있는 일상의 소중함을 전해주는 책인 거죠.


ann 암 투병기라고 하면 진지하고 무거운 분위기를 떠올리기 쉬운데 이 책은 그런 분위기가 아니군요. 일상의 순간들을 전하면서도 거기에 놓치지 말아야 할 메시지가 있는 그런 책이네요.     

맞습니다. 자기성찰적인 메시지를 담은 투병기를 많이 봐왔죠. 그런 책들도 누군가의 진솔한 자기고백을 담고 있는 거지만, 그 무게감 때문에 쉽게 책을 펼치기 어렵잖아요. 윤지회 작가의 사기병은 웹툰 형식인데다 일상의 이야기를 잔잔하게 전하고 있어서 그런 면에서는 확실히 편하게 읽을 수 있어요. 대신에 몇 컷의 그림과 짧은 글 속에 우리가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가족과 일상의 소중함이 깊이 스며들어 있죠. 이 책에서 제일 인상깊었던 그림은 침대에 누워있는 작가가 눈을 뜨면서 "오늘도 살아있네!"하는 장면이었어요. 오늘도 살아있다. 이 한마디면 그 어떤 힘든 일도, 절망도 이겨낼 수 있는 에너지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M2 야광토끼 – 조금씩 다가와 줘

https://youtu.be/ZuvCZJ_CBnI


ann 오늘은 희망을 전해주는 투병기를 담은 책 만나보고 있어요. 먼저 윤지회 작가의 '사기병' 이야기해봤고요. 이번에는 어떤 책 만나볼까요?     

이번에 소개해드릴 책은 '3그램'이라는 제목의 책인데요. 그래픽노블 같은 형식의 책이에요. 그래픽 노블은 만화와 소설의 중간 정도에 있는 장르라고 보시면 되는데요. 만화보다는 철학적이고 진지한 주제를 다루고, 스토리가 있고 한 권의 단행본으로 보통 이야기가 끝납니다. 그리고 만화처럼 그림 컷이 빠지지 않고요.


ann '3그램'이라는 책은 처음 들어보는 것 같네요.     

작가는 아마 들어본 적이 있는 것에요. 신지수 작가의 책인데요. 신지수 작가는 '며느라기'라는 작품으로 잘 알려져 있죠. 며느라기는 2017년 오늘의 우리만화 수상작에 선정되기도 했고, 신혼인 여성이 우리 사회의 가부장적인 문화 속에서 어떤 폭력을 당하는지 담담하게 그려낸 작품이죠.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과 함께 페미니즘 열풍의 한 축을 맡기도 했던 작품이고요. '3그램'은 신지수 작가가 며느라기를 그리기 전에 작가 생활 초기에 그린 작품입니다.

ann 3그램도 투병기인 거죠? 신지수 작가는 어떤 병을 앓았던 건가요?     

신지수 작가가 스물일곱 살때 자신이 직접 겪은 이야기를 담은 책인데요. 배가 너무 볼록하고 나왔대요. 임산부 저리 가라 할 정도로요. 그래서 동네 병원을 갔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처음 갔던 동네병원에서는 배에 똥이랑 가스가 가득 차 있는 거라고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를 했다고 해요. 그런데 어쩐지 예감이 좋지가 않아서 큰 병원을 찾아갔더니 거기에서 난소암이라는 진단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 책은 난소암 증상을 느끼면서부터 병을 치료하고 퇴원하기까지의 이야기를 하나하나의 에피소드로 정리해놓은 책인데요. 우리가 흔히 투병기라고 생각하면 눈물 콧물 쏙 빼놓는 신파를 생각하기 쉬운데 이 책은 그런 느낌이 아니라 솔직 담백한 병원 생활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ann 솔직 담백한 병원 생활기. 억지 위로나 억지웃음이 아니라 작가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툭 털어놓은 거네요.

그 와중에 암이라는 무서운 병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극복했는지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이야기를 전하는 거죠. 책의 제목인 3그램은 난소 하나의 무게라고 해요. 3그램은 정말 아무것도 아닌 가벼운 무게잖아요. 그런데 이 난소에 암이 생기는 순간 우리가 짊어져야 할 삶의 무게는 어마어마하게 무거워지는 거죠. 그 무게를 견디고 살기 위해서 하루하루 힘을 내고 기운내는 그런 이야기라서 더 공감되는 것 같아요.


M3 마이 앤트 메리 - 원

https://youtu.be/hi7mjGU1Evs


ann 오늘은 희망을 전해주는 투병기 담은 책 만나보고 있습니다. 신지수 작가의 '3그램'도 앞에서 소개한 '사기병'처럼 마냥 우울한 투병기가 아니라는 점이 특징이네요. 요즘 젊은 작가들의 투병기는 확실히 과거와는 달라진 느낌이에요.     

신지수 작가도 그렇고 사기병의 윤지회 작가도 그렇고 두 분 다 소셜미디어를 기반으로 작품 활동을 하니까 더 그런 느낌이 있죠. 암이라는 큰 병 앞에서 절망하고 어두워지기보다는 오히려 밝고 긍정적인 힘을 내려고 노력하는 모습도 인상적이고요. '3그램'을 보면 책 속의 책 같은 형식으로 새장에 갇힌 작은 새의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이 이야기가 인상적이에요. 


ann 어떤 이야기인가요?     

새장에 갇힌 작은 새가 날갯짓을 여러번 하지만 새장 밖을 못 벗어나요. 그런데 새장의 문이 열려요. 한 번만 더 날갯짓을 하면 새장을 벗어날 수 있을텐데 작은 새는 그냥 포기하고 가만히 있는 거죠. 이 이야기를 전하면서 신지수 작가는 이렇게 적습니다.

'만약 한 번 더 날갯짓을 했다면?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나는 새장 안의 슬픈 새가 되고 싶지 않았다. 절대 포기하지 않을거야.'


ann 절대 포기하지 않을거라는 마음가짐.     

그 마음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아마도 오늘 소개해드린 책의 작가들이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도 그런 게 아닐까요. 포기하지말자. 절대 포기하지말자. 

책에 보면 이런 대화가 나와요.

"저 문을 나가는 날이 올까?" 작가는 병원을 작은 섬이라고 표현하거든요.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를 둥둥 떠다니는 외딴섬. 그 섬을 나갈 수 있을까 고민하는 거죠. 그리고는 이렇게 답해요. "응. 정말 끝나는 날이 있어."

그 말대로 작가는 투병 생활을 무사히 지나올 수 있었죠. 이 책은 갑자기 찾아온 불행에 힘들어하고 외로워하는 사람들이 읽으면 좋은 책이에요. 당신의 불행이 언젠가는 끝이 날 거라고. 그러니까 절대 포기하지말라고 용기를 주는 책입니다.


ann 암이라고 해서 죽음의 두려움에 시달리기보다는 일상의 소중함과 행복에 더 집중하라는 메시지가 확실하네요.

최근에 젊은 암 환자가 늘고 있잖아요. 2030 세대 중에도 암에 걸리는 사람이 많으니까 아무래도 암에 대한 인식이나 대처도 과거와는 조금 달라지는 게 아닐까 싶어요. 큰 병에 걸렸다고 해서 자신을 자책하거나 괴로움에 시달리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투병기를 적극적으로 찾아보고 절망의 늪에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더 많아지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런 태도나 자세가 암이라는 큰 병을 이기는데 더 도움이 될 것도 같고요.


M4 U2 - One

https://youtu.be/ftjEcrrf7r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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