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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자 Dec 22. 2019

크리스마스를 구원하는 건 우리 맘 속의 작은 기적

tbs교통방송 심야라디오 프로그램 황진하의 달콤한 밤'의 책 소개 코너 '소설 마시는 시간'입니다.

매주 토요일에서 일요일 넘어가는 자정에 95.1MHz에서 들으실 수 있어요.


12월 22일 백열 번째 방송은 크리스마스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소개했습니다.


↓소설 마시는 시간 멘트↓


ann 책 속에 담긴 인생의 지혜를 음미해 보는 <소설 마시는 시간> 오늘은 어떤 주제로 이야기 나눠볼까요?

이제 크리스마스가 며칠 안 남았죠. 크리스마스에 사랑하는 연인이나 가족과의 약속이 있는 분들은 마음이 설레는 시기일 거고, 아무런 약속이 없는 분들은 마음이 가라앉고 왠지 모르게 힘이 빠지는 그런 시기죠. 오늘은 크리스마스를 맞아 크리스마스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돌아보고, 어쩐지 마음이 가라앉는 분들을 가볍게 위로해줄 수 있는 이야기를 담은 소설을 가져왔습니다.


ann 크리스마스에 약속이 없더라도 우울해하지 말고 읽으면 좋은 책들이겠네요.     

약속이 있는 분들도 바쁜 크리스마스이브를 보내고 크리스마스에는 집에서 푹 쉬고 싶고 그렇잖아요. 그럴 때 꺼내놓고 가볍게 읽기에 좋은 책들입니다.


ann 크리스마스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소설은 오 헨리의 ‘크리스마스 선물’인데요.     

사실 어떤 소설도 오 헨리의 크리스마스 선물만큼의 지위를 차지하지는 못하고 있죠. 가난한 부부가 크리스마스를 맞아 서로에게 선물을 준비하는데, 남편은 시계를 팔아 부인에게 줄 머리빗을 준비하고, 부인은 긴 머리카락을 잘라서 팔고 남편의 시계에 어울리는 시곗줄을 사고요. 비록 서로의 선물이 서로에게 쓸모가 없어졌지만, 서로의 마음에는 그 어떤 선물보다 깊은 감동을 남겼다는 이야기. 다 아는 이야기인데도 줄거리를 다시 되짚는 것만으로도 감동이에요.

ann 오늘 소개할 소설도 이런 감동을 주는 건가요?     

맞습니다. 먼저 소개할 책은 메이브 빈치의 ‘올해는 다른 크리스마스’라는 단편집입니다. 메이브 빈치는 아일랜드 출신의 작가인데요. 따뜻하고 인간에 대한 애정 어린 글로 잘 알려진 분입니다. 한국에서는 ‘그 겨울의 일주일’이라는 소설이 작년에 출간돼서 많은 사랑을 받았고요. ‘올해는 다른 크리스마스’는 메이브 빈치가 크리스마스를 주제로 쓴 열아홉 편의 단편소설을 모아놓은 소설집인데요. 한 편 한 편의 이야기가 짧은동시에 크리스마스에 필요한 감동과 위로의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ann 크리스마스에 필요한 감동과 위로의 메시지. 어떤 걸까요?     

출판사의 책 소개를 보면 이런 말이 나와요. 자칫 엉망이 될 수도 있었던 크리스마스를 구원하는 건 극적인 사건이나 엄청난 행운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작고 소소한 기적이다. 결심만 한다면 크리스마스를 구원하기에 아직 늦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다. 우리에게는 아직 올해를 만회할 시간이 남아 있다.

크리스마스 시즌은 사실 굉장히 아이러니한 시기죠. 지난 1년에 대한 후회가 몰려올 시기인 동시에 다음 1년에 대한 두려움이 가장 큰 시기이기도 하잖아요. 그런 시기를 온 가족이 함께 모여서, 사랑하는 연인이 함께 보내며 축복의 인사를 나누는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거겠죠. 지난 시간에 대한 후회도, 다가올 시간에 대한 두려움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라면 괜찮을 거라는 메시지를 주는 게 아닐까 싶어요. 그리고 그걸 깨닫는 순간 우리의 크리스마스가 180도 달라질 거라는 게 메이브 빈치가 소설을 통해 전하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M1 아이유 – 미리 메리 크리스마스

https://youtu.be/1UlmYrdctYc


ann 오늘은 크리스마스를 배경으로 한 소설 만나보고 있어요. 먼저 메이브 빈치의 ‘올해는 다른 크리스마스’ 이야기 중입니다. 열아홉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고 했는데 기억에 남는 이야기를 조금 소개해주세요.     

크리스마스의 첫 단계라는 제목의 단편이 가장 먼저 나오는데요. 제니라는 여자가 주인공인 단편이에요. 제니는 데이비드라는 남자와 결혼을 했는데, 데이비드는 한 번 결혼을 했던 사람이에요. 전처 사이에서 낳은 딸도 있고요. 제니는 데이비드의 전처와 그 딸은 신경쓰지 않고 지내려고 해요. 데이비드와 최근에 낳은 아들도 있거든요. 그런데 전처가 갑자기 죽게 되면서 의붓딸이 크리스마스 시즌을 앞두고 제니와 데이비드의 집으로 오게 된 거예요. 


ann 뭔가 반갑지 않은 손님인 거네요.     

그렇죠. 게다가 소설 속에 의붓딸은 굉장히 가시 돋친 10대 소녀로 묘사되거든요. 아빠가 자기를 버렸다고 생각하고 아빠가 재혼한 여자인 제니도 좋게 볼 리가 없죠. 그런 의붓딸이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한 집에 살게 됐으니 얼마나 불편하겠어요. 의붓딸과 제니가 집에서 처음 마주칠 때도 스파크가 파박하고 일어요. 그런데 그때 아주 작은 일이 둘 사이의 관계를 완전히 바꿔놓게 돼요.


ann 어떤 일인가요?     

제니가 크리스마스 파티를 위해 집을 꾸밀 전나무 열매와 호랑가시나무 가지를 대량으로 구매해놨는데요. 유럽에서는 크리스마스 시즌에 집을 장식하는 걸 당연하게 여기거든요. 그 짐을 의붓딸이 써야 할 방에 모아놨던 거죠. 그걸 뒤늦게 깨닫고 제니가 의붓딸한테 방의 상태에 대해서 말해요. 그런데 그때 의붓딸이 그 말을 다른 식으로 받아들여요. 집을 장식할 물건들이 자기 방에 있는 걸 보고 자기방이 창고처럼 쓰였다고 생각한 게 아니라, 제니가 자기를 위해 방을 꾸미려고 준비해놨다고 착각한 거죠. 그리고는 감동을 받아서 울먹이고요.


ann 자기를 위한 방을 새엄마가 꾸미려고 했다는 작은 착각이 심술쟁이 10대 소녀를 바꿔놓게 된 거네요.     

그렇죠. 그때까지는 의붓딸을 골치덩어리로만 생각하던 제니도 그 순간 깨달아요. 자기 앞에 있는 사람은 자기의 크리스마스를 망치려고 온 악마 같은 사람이 아니라 누군가의 관심과 보호가 필요한 어린애였다는 걸요. 그때 제니의 어린 아들이 방에서 나오는데 의붓딸이 먼저 달려가서 아이를 안아주고는 이렇게 말해요. ‘메리 크리스마스, 동생.’

작은 오해가 남남인 사람들보다 더 멀게 느껴지던 한 가족을 단단하게 묶어주게 된 거죠. 메이브 빈치의 이야기가 이런 식이에요. 크리스마스에 우리에게 필요한 이야기인 거죠. 모두가 늦었다고 다시는 되돌릴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도 사실은 끝이 아니다. 크리스마스에는 작은 반전이 가능하다고 우리 귀에 속삭여주는 겁니다.


ann 크리스마스라고 하면 언제인가부터 피곤하고 거추장스럽게 느껴지기도 해요. 그런데 크리스마스는 그런 게 아니다. 작고 소소한 기적이 가능한 시기라는 걸 이 책이 다시 일깨워주는군요.     

유럽에서 크리스마스는 우리로 치면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의 개념이거든요. 온 가족이 모여서 맛있는 걸 먹고 선물을 나누고 하는. 우리가 명절증후군이라는 게 있는 것처럼 유럽에도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집안일을 떠맡는 여성들의 스트레스가 정말 크다고 해요. 이 책에도 그런 이야기를 담은 단편이 하나 있는데요. ‘올해는 다를 거야’라는 제목의 단편입니다. 아일랜드에 사는 어느 워킹맘이 주인공인데요. 남편과 장성한 아이 셋과 함께 사는 부인이에요. 그런데 크리스마스가 되면 집을 꾸미고 음식을 장만하는 모든 일을 혼자서 하는 거예요. 친한 친구는 그런 주인공이 가족이 밟고 지나가는 깔개처럼 산다고 뭐라고 하고요. 그래서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주인공이 마침내 결심을 해요.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겠다고. 그랬더니 바로 효과가 나타나죠. 남편과 아이들이 갑자기 대책회의를 하고 하루는 그녀에게 늦게 퇴근하라고 해요. 주인공은 남편과 아이들이 올해는 나 대신 크리스마스 음식을 준비하려나 보다 하고 기뻐하고요.


ann 정말 그랬던 건가요?     

아쉽게도 그렇게 되지는 않았어요. 남편과 아이들은 전혀 엉뚱한 해결책을 찾은 겁니다. 주인공이 일하는 부엌에서 TV를 볼 수 있도록 TV를 새로 설치한 거예요. 자기들 딴에는 아내와 엄마를 위한 해결책이라고 제시한 건데, 사실 말도 안 되는 거죠. 아내와 엄마는 여전히 부엌에서 음식을 준비하면 된다는 거니까요. 주인공은 가족들한테는 고마운 척을 합니다. 그런데 그 순간 결심하는 거죠. 이제부터는 정말 모든 게 달라질 거라고. 크리스마스가 온 가족이 모여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기간이지만, 그걸 준비하는 노력도 모두가 동등하게 써야 서로의 사랑이라는 것도 의미가 있는 거겠죠. 이 이야기는 그런 걸 굉장히 재치있게 풍자하고 있는데요. 명절증후군이라는 말까지 있는 한국 독자들에게는 더 다가오는 바가 많겠죠.


ann 그냥 감동적인 이야기만 모아놓은 소설집이 아니었네요.     

맞습니다. 크리스마스라는 배경을 가지고 정말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거죠. 크리스마스에 나를 위로해줄 수 있는 사람이 꼭 가족이나 연인일 필요도 없고, 길에서 처음 만나는 낯선 사람일 수도 있고요.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제시하기도 하고요. 1940년생의 작가가 썼다고 믿기 힘들 정도로 2019년의 이야기들이 가득한 흥미진진한 소설집입니다.


M2 토이 – 크리스마스 카드

https://youtu.be/9SsiYyeMT6E


ann 오늘은 크리스마스를 배경으로 한 소설 만나보고 있습니다. 먼저 메이브 벤치의 ‘올해는 다른 크리스마스’ 만나봤고요. 이번에는 어떤 책 이야기해볼까요?     

이번에 소개해드릴 책은 ‘마더 크리스마스’라는 제목의 책입니다. 소설이 아니라 동화책인데요. 동화책이라고 해서 꼭 어린아이만 봐야 하는 건 아니죠. 이 책은 어른들이 봐도 손색없을만한 내용의 동화책이라 소개하려고 가져왔습니다.


ann ‘마더 크리스마스’. 어떤 동화책인가요?     

작가가 굉장히 유명한 소설가인데요. 일본 추리소설계의 거장인 히가시노 게이고가 쓴 동화책입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국내에도 팬이 정말 많은 분이죠. ‘비밀’이나 ‘용의자 X의 헌신’ ‘백야행’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같은 소설이 국내에서 큰 인기를 얻기도 했고요. 그런 히가시노 게이고가 전혀 어울리지 않게 크리스마스를 배경으로 한 동화책을 썼다는 게 저도 처음에는 믿기지 않았습니다.

ann 그런데 바로 그 일이 일어났군요. 추리소설의 거장인 히가시노 게이고의 크리스마스 이야기. 도대체 어떤 이야기를 다루나요?     

작가만 보면 왠지 어둡고 음울한 분위기의 이야기가 아닐까 싶은데요. 전혀 그렇지가 않고요. 산타클로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제목이 ‘마더 크리스마스’잖아요. 마더는 엄마라는 뜻이죠. 산타 이야기에 엄마가 왜 나오는 걸까 싶은데, 바로 이 책에서는 여자 산타의 이야기가 나와요. 우리가 흔히 산타클로스를 산타할아버지라고 하는데 이 책에서는 산타 아줌마가 나오는 거죠.


ann 산타에 대한 고정적인 이미지가 있잖아요. 새하얀 수염을 기른 뚱뚱한 백인 남성 할아버지. 그런데 그런 산타를 중년의 여자가 한다는 건가요?     

맞습니다. 줄거리를 잠깐 소개하면요. 성탄절을 20일 정도 앞두고 핀란드에서 산타협회 회의가 열려요. 미국을 담당하는 산타가 은퇴하게 되면서 뒤를 이을 새로운 산타를 정하는 회의인 거죠. 이 자리에 미국 지부 산타가 자신의 후임자로 추천할 사람을 데려와요. 그런데 데려온 사람이 중년의 여성이었던 거죠. 산타협회에서는 새 산타를 뽑을 때 만장일치로 뽑는다고 하거든요. 이 중년의 여성을 과연 새 산타로 인정해야 할지를 놓고 산타협회에 모인 전 세계 산타들이 난상토론을 벌입니다. ‘마더 크리스마스’는 이 이야기를 다루고 있고요.


ann 여자 산타는 왜 없을까에 대한 궁금증을 동화라는 형식으로 풀어낸 거네요.     

기발하죠. 그냥 옛날부터 그랬다는 이유만으로 산타는 당연히 뚱뚱한 백인 남성 할아버지라는 인식이 있는데 전혀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담은 선물을 주는 일을 여성이라고 못 할 건 없으니까요. 산타들의 대화를 통해서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편견을 드러내고 그걸 여성 산타라는 존재를 통해 화합하는 결말까지 굉장히 대가의 작품답다는 생각이 들어요.


M3 태티서 – Dear Santa

https://youtu.be/CL34w0xql7s


ann 오늘은 크리스마스를 배경으로 한 책 만나보고 있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여성 산타를 등장시켜 쓴 동화책 ‘마더 크리스마스’ 이야기 중입니다. 회의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나오나요? 다른 산타들이 왜 여자 산타에 반대하는 거죠?     

정말 다양한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일단 여자 산타는 수염이 없지 않냐는 지적이 나와요. 우리가 생각하는 산타의 이미지에 어울리지 않다는 거죠. 하얀 수염, 하얀 눈썹, 빨간 옷. 그랬더니 다른 나라의 산타들이 반박해요. 오세아니아를 담당하는 산타는 자신은 빨간 털옷 대신에 알로하 셔츠를 입고 다닌다고 하고, 아프리카를 담당하는 산타는 빨간색 옷을 입고 있으면 사자가 공격을 해서 초록색 옷을 입고 다닌다고 하고요.


ann 아프리카 담당 산타도 있군요.     

산타들의 면면을 보면 작가의 메시지가 드러나는데요. 흑인 산타나 동양인 산타도 있어요. 이 사람들은 여자 산타 이전에 차별을 뚫고 산타가 된 사람들인 거죠. 흑인 산타는 피부색 때문에 자신이 산타로 인정받기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요. 이런 면면을 보면 우리 사회의 다양성이 조금씩 넓어지고 있었다는 게 눈에 보이죠. 마지막으로 허물어야 할 차별의 벽이 여성에 대한 차별인 거고요.


ann 사실 산타의 이미지가 고정화돼 있었다는 것 자체가 생각 안 해본 문제였는데, 이렇게 보니까 우리가 아이들에게 너무 한쪽 방향만 바라보게 하고 있었네요.     

그렇죠. 백인 중심, 남성 중심의 상징 중 하나가 산타일 수 있다는 거니까요. 그런 걸 히가시노 게이고는 비틀어서 보여주는 거죠. 어떻게 보면 히가시노 게이고가 동화책을 썼다는 것에 놀라는 것도 편견일 수 있어요. 추리소설 작가가 웬 동화책? 이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편견이라는 거죠. 우리가 가지고 있는 편견에서 벗어나면 세상의 훨씬 다양한 측면들을 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고요.


ann 산타에 대한 이야기가 최근에는 많이 없잖아요. 아이들도 산타를 믿지 않고. 어떻게 보면 이런 편견어린 시선이 산타를 구태의연한 존재로 만든 걸 수도 있겠어요.     

흑인 산타, 동양인 산타, 여자 산타의 존재는 21세기에 산타의 존재를 우리에게 다시 돌려주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이 책은 20분 정도면 휘리릭하고 읽을 수 있거든요. 20분이라는 시간을 써서 얻을 수 있는 건 그게 비할 수 없이 많고요. 크리스마스에 모처럼 동심으로 돌아가서 동화책 한 권 읽어보는 건 어떨까 싶습니다.


M4 Ariana Grande – Santa Tell Me

https://youtu.be/jnXxxKZ57T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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