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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자 Jan 24. 2020

2020년이 기대되는 젊은 소설가들

tbs교통방송 심야라디오 프로그램 황진하의 달콤한 밤'의 책 소개 코너 '소설 마시는 시간'입니다.

매주 토요일에서 일요일 넘어가는 자정에 95.1MHz에서 들으실 수 있어요.


12월 29일 백열한 번째 방송은 2020년의 활약이 기대되는 젊은 소설가들의 작품을 소개했습니다.


↓소설 마시는 시간 멘트↓


ann 책 속에 담긴 인생의 지혜를 음미해 보는 <소설 마시는 시간> 오늘은 어떤 주제로 이야기 나눠볼까요?

오늘이 벌서 2019년 소설 마시는 시간의 마지막 방송이잖아요. 작년 마지막 방송 때 어떤 책을 소개했나 찾아보니 ‘나이 먹는 불안감을 떨쳐줄 수 있는 책’을 두 권 소개해드렸더라고요.


ann 이맘때에 딱 필요한 책이었네요. 어떤 책이었죠?     

인문학자 김경집 교수의 ‘나이듦의 즐거움’과 정신분석 전문의 김혜남 소장의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 였는데요. 아직 이 두 권을 안 보신 청취자분이라면 한 번 꼭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김경집 교수가 이런 말을 해요. ‘오늘이란 앞으로 살아갈 날들 중에 내가 가장 젊은 날이다’라고요. 한 살 나이를 더 먹는다고 우울해하기보다는 앞으로 살아갈 날들을 생각하면서 더 기운을 내는 게 역시나 좋은 방향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ann 올해의 마지막 방송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해볼까요?     

한 해를 마무리하는 동시에 다가올 새 해를 기다리는 시기니까요. 마음이 축 처져 있기보다는 뭔가 기대에 차고 힘을 내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요. 그래서 오늘은 2020년이 기대되는 젊은 작가 두 명의 소설을 가져왔습니다. 올해 혜성 같이 나타나 한국 문단을 깜짝 놀라게 한 젊은 작가들인데요. 올해의 등장만큼이나 내년의 활약이 더 기대되는 작가들입니다.


ann 내년의 활약이 기대되는 젊은 소설가들이군요.     

어느 분야든 멋진 신인의 등장은 모두를 설레게 하는 힘이 있잖아요. 야구나 축구에서 신인 선수가 깜짝 스타가 되면 종목 전체의 인기가 올라가는 것처럼, 문학계에도 가능성 있는 신인 작가의 등장이 꼭 필요한 거죠. 오늘 소개해드릴 두 명의 작가는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5년이든 10년이든 뒤에 우리 문학계를 이끌고 갈 재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ann 어떤 작가부터 만나볼까요?     

먼저 소개해드릴 작가는 김초엽 작가입니다. 우리 방송에서도 한 번 소개해드린 적이 있어요. ‘관내분실’이라는 단편 소설로 한국과학문학상 대상을 받으면서 이름을 알린 젊은 작가인데요. 올해 6월에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라는 소설집을 냈습니다. 이 소설집이 올해를 대표하는 소설로 거의 모든 시상식이며 순위 집계에 꼽혔거든요. 출판사 편집인과 마케터가 꼽은 올해의 소설, 소설가 50인이 꼽은 올해의 소설, 언론사가 선정한 올해의 책, 어디 하나 빠지지 않고 모두 들어가면서 단순히 SF 소설가가 아니라 소설가 김초엽이라는 이름이 우리 문단에 당당하게 소개된 한 해였습니다.


ann 김초엽 작가는 예전에 방송에서 한 번 소개해주실 때도 인상적이었던 기억입니다. 작가 본인이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도 기억에 남고요.     

맞습니다. 김초엽 작가 본인이 청각장애가 있다보니 장애인 문제, 소수자 문제에 관심이 많다고 합니다. 또 여성이잖아요. 여성인 동시에 장애인이다 보니 소설 속에도 늘 소수자성에 대한 문제에 대해 고민하는 이야기가 담기는 것 같아요. 그런 질문을 매끄럽게 풀어내고 우리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대답을 이끌어 내는 게 김초엽 작가의 능력이겠죠.


M1 소향 – 바람의 노래

https://youtu.be/bMWqmn1CNvo


ann 오늘은 2020년이 기대되는 신인 작가들을 만나보고 있습니다. 먼저 SF 소설로 대중의 눈길을 사로잡은 김초엽 작가 이야기 중입니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어떤 소설인가요?     

이 소설집에는 모두 7편의 단편 소설이 나오는데요. SF 소설이라고 하면 어쩐지 거부감을 가지는 분들도 있잖아요. 허무맹랑한 이야기만 나오는 거 아니냐. 나는 스타워즈나 스타트랙도 안 좋아했는데 웬 SF 소설이냐. 이런 분들이 꼭 있어요. 그런데 김초엽 작가의 SF 소설은 형식만 SF일 뿐이지 이야기는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세계와 우리 자신에 대한 것들이에요. 공상과학적인 소재를 빌려 쓸 뿐 사실은 우리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거기에 대한 대답을 찾고 있는 거죠.


ann 예를 들면요?     

소설집의 첫 번째 이야기인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는 완벽한 유전자 편집이 가능해진 미래의 이야기를 다루는데요. 지구에서 태어나는 아이들은 모두 유전자 편집을 통해 태어날 때부터 모든 질병의 가능성이 사라지고 부모가 원하는 완벽한 모습으로 태어나게 돼요. 그런데 이 기술을 개발한 천재 과학자는 오히려 지구를 떠나서 다른 행성에 마을을 만들고 그곳에서는 장애나 신체적 결함을 가진 아이들이 그대로 태어날 수 있게 해요. 그리고 그곳을 유토피아라고 부르고요. 이 유토피아에서 태어난 아이가 마을을 떠나 지구로 향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담고 있는데요. 소설을 읽는 동안 독자로 하여금 혐오나 차별, 장애와 비장애 같은 문제들에 대해 자연스럽게 질문하고 답을 찾게 만들어요. 그리고 우리가 이 혐오와 모순으로 가득찬 세계에서 왜 마지막까지 고군분투하며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주고요.


ann 정세랑 작가의 추천평이 인상적이더라고요. 마음을 다 맡기며 좋아할 수 있는 새로운 작가를 만나서 벅차다.

저도 그런 마음이었는데요. 사실 김초엽 작가의 데뷔작이라고 할 수 있는 ‘관내분실’은 읽으면서 벅차다는 감정까지는 받지 않았거든요. 재밌다, 흥미롭다 정도였는데 이번 소설집은 지난 2년 동안 이 작가가 얼마나 더 앞으로 나아갔는지 여실히 보여주더라고요. 김초엽 작가의 소설에서 또 하나 눈에 띄는 건 여성 캐릭터들인데요. 보통 SF에서 주인공은 남자가 많잖아요. 스타워즈도 큰 줄기는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고, 블레이드 러너도 주인공은 남자죠. 그런데 김초엽 작가의 소설에서는 여성 주인공이 전면에 등장합니다.


ann 역시나 작가 자신이 여성 공학자니까요.      

그렇죠. 할머니 우주인, 여성 과학자, 엄마와 딸의 관계. 이런 식으로 여성이 주인공이 되는 SF 서사는 사실 다른 곳에서 접한 경험이 많지 않은데요. 김초엽 작가의 작품 속에서는 이런 이야기가 너무 당연하게, 오래전부터 그랬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느껴집니다. 예컨대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는 재경이라는 주인공이 등장하는데요. 나이가 많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비난 받는 여성 우주인의 이야기입니다. 결국 우주 여행에 성공하지 못하고 실패하는데, 재경의 존재만으로 누군가는 힘을 받고 의미를 찾는다는 이야기예요. 우주 미션에는 실패했지만 지구의 한 소녀를 응원하는 일에 성공했다면, 그녀의 삶은 성공일까 실패일까, 이런 질문을 던지는 소설이죠.

지금 우리의 시대정신이 무엇일까 하고 물어본다면 여러 대답이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페미니즘이겠죠. 김초엽 작가의 등장은 페미니즘이 우리 사회와 예술을 얼마나 풍성하게 해줄 수 있는지 보여주는 하나의 좋은 응답 같아서 더 기쁜 마음으로 책을 소개했습니다.


ann 마지막으로 소설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문장이 있다면 하나만 소개해주세요.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에 이런 문장이 나옵니다.

‘지구로 내려간 우리는 그 다른 존재들을 만나고, 많은 이들은 누군가와 사랑에 빠질 거야. 그리고 우리는 곧 알게 되겠지. 바로 그 사랑하는 존재가 맞서는 세계를. 그 세계가 얼마나 많은 고통과 비탄으로 차 있는지를. 사랑하는 이들이 억압받는 진실을. 올리는 사랑이 그 사람과 함께 세계에 맞서는 일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거야. 지구에 남는 이유는 단 한 사람으로 충분했을 거야.’


ann 지구에 남는 이유는 단 한 사람으로 충분하다.     

이 소설은 SF를 핑계 삼아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어요. 다른 사람을 완전히 이해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죠. 그런 불가능에 도전하게 만드는 계기가 사랑인 거고요. 문학평론가 인아영은 김초엽의 소설에 대해 그 불가능성을 껴안는 것이라고 표현했는데요. 어떻게 보면 이 소설은 올해의 SF 소설인 동시에 사랑에 대한 최고의 소설일 수도 있겠네요.


M2 선우정아 - 그러려니

https://youtu.be/Ng6poB4dX9o


ann 오늘은 2020년에 더 기대가 되는 신인 작가들을 만나보고 있습니다. 김초엽 작가 만나봤고, 이번에는 어떤 작가를 만나볼까요?     

이번에 소개해드릴 작가는 강희영 작가입니다. ‘최단경로’라는 장편소설이 문학동네소설상을 받으면서 새로 등단한 작가예요. 문학동네소설상은 걸출한 작가들의 등용문 같은 역할을 하는 상인데요. 은희경, 전경린, 천명관, 박진규, 김언수, 조남주, 황여정 같은 작가들이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죠. 이 상을 받은 것만으로도 문학계의 기대주라는 수식어가 어울리는 그런 상입니다.


ann 강희영 작가는 어떤 작가인가요?     

‘최단 경로’라는 소설로 처음 등단을 한 작가인데요. SBS 라디오 PD를 하다 지금은 네덜란드에 유학을 가서 커뮤니케이션 사이언스를 공부하고 있다고 합니다. 사실 강희영은 본명은 아니고 할아버지의 이름이라고 해요. 본인의 삶에서 큰 의미를 가지고 있는 할아버지의 이름으로 상에 공모를 했고 당선까지 된 거죠.


ann 할아버지의 이름으로 소설 공모전에서 당선. 꽤 멋진 이야기인데요.     

수상 소감도 그래요. 누군가의 삶을 부정하는 것이 내 삶을 긍정하는 길이 결코 아님을 일깨워준 당신의 이름에 이 기쁨을 바칩니다. 이런 가르침을 할아버지에게 받는다면 그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인생의 기쁨을 얻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죠.

ann 최단경로는 어떤 소설인가요? 제목만으로는 내용이 짐작이 안 가네요.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라디오 피디인 진혁이 갑자기 일을 그만두면서 혜서가 진혁의 프로그램을 이어받아요. 자료가 담긴 업무용 노트북을 받는데 인터넷을 열었더니 진혁의 아이디로 계정에 접속이 된 상태이고, 지도에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지명들을 검색한 흔적들이 보여요. 그리고 진혁이 남겨놓은 녹음 파일에는 알 수 없는 희미한 소리까지 있고요. 결국 혜서는 진혁을 찾아서 직접 물어볼 요량으로 휴가를 내고 암스테르담으로 갑니다. 그곳에서 진혁이 아닌 진혁의 옛 연인인 애영을 마주쳐요. 애영은 진혁과의 사이에 아기를 가졌지만 진혁은 애영을 떠나고, 애영은 네덜란드에 남아 엄마와 함께 아기를 키우고 있었죠. 그러다 교통사고가 나서 애영의 엄마와 아이는 죽고요. 혼자 남은 애영은 아이를 추모하는 동시에 안락사를 생각하고, 혜서와 애영의 다른 친구는 진혁에게 연락을 시도하려고 하고요. 이게 대략적인 이야기의 줄거리입니다.


ann 줄거리 속에 작가의 이력이 하나씩 담겨 있는 느낌이네요.     

그렇죠. 라디오 피디 이야기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이 배경인 것도 그렇고요. 무엇보다도 강희영 작가가 네덜란드에서 유학을 하면서 배우는 과목 중에 하나가 빅데이터와 지도와 관련된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휴대폰 지도 앱을 켜면 어느 지점까지 가는 최단경로를 보여주는 기능이 있잖아요. 그런 기능을 만드는 걸 배우고 있는 거죠. 그런데 지도 속의 최단경로는 하나지만 사실 목적지까지 갈 수 있는 길은 수없이 많잖아요. 지도가 제시하는 최단경로가 최적의 경로가 아닐 때도 있고요. 최단경로라는 제목이 상징하는 것도 그런 거죠. 아무래도 본인이 직접 배우고 했던 일에 대한 이야기이다보니까 굉장히 현실적이고 꾸밈이 없어서 전문적인 지식이 많이 등장하는 소설인데도 불구하고 읽는데 큰 어려움이 없습니다.


M3 김사월 - 누군가에게

https://youtu.be/11mxnvHowTY


ann 오늘은 2020년에 더 기대가 되는 신인 작가들 만나보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 ‘최단경로’로 문학동네소설상을 받으며 등단한 강희영 작가 이야기 중입니다.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더 해볼까요?      

이 소설의 중요한 계기가 되는 사건은 애영의 엄마와 아이의 죽음인데요. 그건 교통사고였어요. 사실 누구의 잘못인지 따지기도 쉽지 않은 사고였죠. 암스테르담은 교통법규를 정말 잘 지키는 곳이다보니 교통사고로 누군가가 죽는 일이 거의 없다고 하거든요. 그런데 사망사고가 생긴 거죠. 그건 내비게이션의 지도 데이터에 실제로 있는 횡단보도가 표시돼 있지 않았기 때문이였어요. 횡단보도가 지도 데이터에 없다보니 운전자는 내비게이션 표시만 믿고 운전을 하다가 횡단보도를 건너던 사람들을 보지 못하고 사고를 낸 거죠. 지도 데이터가 업데이트되지 않은 건 누구의 잘못인지 따지기도 쉽지 않잖아요. 그런데 그 잘못으로 인한 피해자는 분명한 거죠.


ann 결국 시스템의 문제였던 거네요. 시스템의 문제로 아이를 잃는 이야기는 우리 모두 익숙하죠.     

중요한 건 그걸 어떻게 받아들일 것이냐. 어떻게 애도할 것이냐의 문제인 것 같아요. 주인공인 애영이 네덜란드에서 안락사를 하려고 해요. 자살이 아니라 안락사라는 게 중요한 테마인데요. 강희영 작가는 이 차이에 대해 이렇게 설명해요. 애영이 죽음을 택한다면 그건 좌절과 분노속에 갑자기 맞이하는 죽음이 아니라 자신의 죽음에 대해 사회적으로, 개인적으로 설명하고 설득하는 형식이 돼야 한다고요. 그게 안락사인 거죠. 소설 속에서 애영은 이렇게 말해요.

“아이에게 말해줘야 하거든요. 어떻게 해서 그런 일이 생긴 건지. 내 아이는 어쩌면 손을 들지 않고 횡단보도를 건너다 그렇게 됐다고 생각할지도 몰라요. 자기가 엄마 말을 안 들어서 그렇게 됐다고 말이죠. 그러니까 나는 배우고 죽어서 아이랑 엄마한테 얘기해줘야 해요. 그런 게 아니라고. 그게 그런 게 아니라고.”


ann 아이에게 너의 잘못이 아니라고 이야기해주는 게 중요하다. 최선을 다해 설명하는 게 남겨진 우리의 의무라는 거죠.     

그렇죠. 그 길이 목적지까지 가는 최단경로가 아닐 수는 있지만 우리가 반드시 찾아야 할 최적의 경로라는 거죠. 이 소설은 장편소설치고는 비교적 분량이 짧습니다만 읽는데 꽤나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단어 하나, 문장 하나, 등장인물의 대사 하나 허투루 쓰이는 게 없어요. 굉장히 밀도 있는 작품이고요. 그래서 다 읽고 났을 때 느끼는 감동의 크기도 더 큰 것 같습니다.


M4 강아솔 – 나의 대답

https://youtu.be/eIemelUNoy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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