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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자 Jan 24. 2020

0승 101패의 경주마 차밍걸 이야기

tbs교통방송 심야라디오 프로그램 황진하의 달콤한 밤'의 책 소개 코너 '소설 마시는 시간'입니다.

매주 토요일에서 일요일 넘어가는 자정에 95.1MHz에서 들으실 수 있어요.


1월 5일 백열두 번째 방송은 작지만 소중한 우리 곁의 행복을 일깨워주는 에세이를 소개했습니다.


↓소설 마시는 시간 멘트↓


ann 책 속에 담긴 인생의 지혜를 음미해 보는 <소설 마시는 시간> 오늘은 어떤 주제로 이야기 나눠볼까요?

행복이라는 게 멀리서 찾을 수 있는 게 아니라 늘 우리의 가까이에 있는 것이라고 많이 이야기하잖아요. 새해가 되면 다들 새로운 결심도 하고 다짐도 하고 행복을 찾아나서기 마련이죠. 바로 우리 곁에 있는 행복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먼 곳을 바라보는 시기잖아요. 오늘은 행복은 우리의 곁에 있다는 작지만 분명한 사실을 일깨워주는 책을 두 권 준비해봤습니다. 우리 곁의 작고 소소한 것들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게 도와주는 책입니다.


ann 우리 곁의 행복을 찾는데 도움을 주는 책. 어떤 책이죠?     

우리가 뭔가를 바라볼 때 안경에 희뿌연 게 묻어 있으면 제대로 볼 수가 없잖아요. 안경을 잘 닦고 관리해야 세상도 똑바르게 볼 수가 있겠죠. 오늘 소개해드리는 책은 그렇게 세상을 티 없이 투명하게 볼 수 있게 도와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먼저 소개해드릴 책은 안도현 시인이 쓴 ‘안도현의 발견’이라는 제목의 에세이입니다.


ann 안도현 시인은 많은 분이 좋아하는 작가죠.      

저는 안도현 시인의 시 중에서 ‘스며드는 것’이 가장 좋더라고요. 방송에서도 몇 번 소개된 시인데요. 간장게장이라는 우리가 좋아하는 음식을 소재삼아서 순간적으로 감동을 일으키는 그런 힘이 대단한 작품이죠. 조금 읽어드리면요.

‘꽃게가 간장 속에 / 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 있다 / 등판에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 / 꽃게는 뱃속의 알을 껴안으려고 / 꿈틀거리다가 더 낮게 / 더 바닥 쪽으로 웅크렸으리라 / 버둥거렸으리라 버둥거리다가 / 어찌할 수 없어서 / 살 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 한때의 어스름을 / 꽃게는 천천히 받아들였으리라 / 껍질이 먹먹해지기 전에 / 가만히 알들에게 말했으리라 // 저녁이야 / 불 끄고 잘 시간이야’

ann 이 시를 읽고나면 한동안 간장게장을 먹기가 쉽지 않아진다고 하죠.     

안도현 시인이 이런 걸 참 잘하시는 것 같아요. 일상 속에서 소재를 찾아내서 어떤 감동을 선사하는 시를 쓰는 거죠. 오늘 소개해드릴 ‘안도현의 발견’도 마찬가지인데요. 이 책은 시인이 한 신문사에 연재한 칼럼을 모아서 엮은 책입니다. 칼럼이라고 하지만 원고지 4매 정도 분량의 토막글을 연재한 거예요. 워낙 분량이 짧다보니까 주저리주저리 이야기를 풀어낼 수가 없잖아요. 그러니까 독자들이 친밀하게 느끼는 일상의 소재를 가지고 순간적인 감동을 끌어내는 이야기를 툭툭 던지는 식으로 글을 쓴 거죠.


ann 우리 주위의 소재를 이용해서 우리도 몰랐던 우리의 감정이나 감동을 끌어내는군요.     

맞습니다. 이 책의 작가의 말에서 시인이 이렇게 적어요. 

‘시인은 세상에 없던 것을 새로 만들어내는 사람이 아니다. 원래 있던 것 중에 남들이 미처 찾지 못한 것을 찾아내는 사람이다. 즉 시인은 발명하는 사람이 아니라 발견하는 사람인 것이다.’

이 책에서 다루는 소재들은 정말 작고 소소한 것들이 많아요. 너무 작고 소소해서 우리가 매일 보면서도 잘 기억도 못하는 것들이죠. 그런데 그런 작은 것들에 얼마나 아름다운 순간과 아름다운 이야기가 숨어 있는지 안도현 시인이 찾아내서 보여주는 겁니다. 이 책은 시집이 아니지만 안도현 시인이 쓴 어떤 시에도 아쉬움이 없을 정도로 좋은 시, 좋은 이야기가 가득하죠.


M1 베란다 프로젝트 - 괜찮아

https://youtu.be/leAbG89Tao4


ann 오늘은 우리 주위의 행복을 찾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책 만나보고 있습니다. 먼저 ‘안도현의 발견’ 이야기 중입니다. 원고지 4매 분량의 짧은 글을 모아놓은 책이라고 했는데 그럼 분량이 그리 길지는 않겠네요?     

이야기 하나하나는 길지 않지만 짧은 이야기가 모이고 모여서 400쪽이 넘는 두꺼운 책으로 만들어졌어요. 모두 5개의 장으로 이뤄져 있는데요. 주제에 맞춰서 생활의 발견, 기억의 발견, 사람의 발견, 맛의 발견, 숨의 발견. 이렇게 다섯 가지 주제로 나뉘어 있습니다. 생활의 발견은 정말 우리 주위의 일상 속 소재를 이용한 글이고요. 사람의 발견은 안도현 시인이 만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맛과 숨은 각각 음식과 자연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ann 어떤 이야기에서 책밤지기가 감동을 받았을까요?     

이런 것에서 어떻게 글감을 찾아낼까 싶을 때가 있어요. ‘냄비받침 변천사’라는 글이 있는데요. 우리가 주방에서 매일 보는 냄비받침에 대해 쓴 글이에요. 시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주방용품 중에 제일 비천한 역할을 맡은 게 냄비받침이다. 평소에는 싱크대 구석에 웅크리거나 틈에 끼여 있다가 뜨거운 임자를 만날 때만 호출된다. 그것을 열을 받을 대로 받은 냄비만 말이다. 불기에 덴 자국은 그래서 필수다. 검은 상처를 문신처럼 몸에 새기고 산다. 냄비받침의 입장에서 보면 어떻게든 견디는 게 그의 삶이다.’


ann 냄비받침의 입장에서 보면 어떻게든 견디는 게 그의 삶이다. 냄비받침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는데 정말 맞는 말이네요.     

그렇죠. 특히 시인이 어릴 때는 지금처럼 냄비받침을 손쉽게 사거나 구할 수 있던 때도 아니었다고 해요. 물자가 귀하다보니까 콜라 병뚜껑을 모아서 철사로 꿰맨 다음에 냄비받침으로 쓸 때도 있었다고 하고요. 그런데 지금은 냄비받침도 흔해지고, 또 시인들끼리 모이면 자조 섞인 말로 시집만큼 냄비받침으로 쓰기 좋은 책이 없다는 말도 한다고 하고요. 그야말로 냄비받침 하나를 가지고 우리의 생활사의 변천사를 한달음에 정리해서 보여주는 거죠.


ann 그래서 냄비받침 변천사였군요. 냄비받침으로 이렇게 재밌는 이야기가 나올 줄은 몰랐어요.     

‘옆모습’이라는 글도 마음에 와 닿았는데요. 이 글은 춘향가의 한 대목으로 시작해요. 이리 오너라 앞태를 보자. 이런 대목이 있잖아요. 이 이야기를 하면서 시인은 사람들은 앞모습을 보고 다른 사람을 만난다고 적어요. 그런데 앞모습만 보고 살다가 가끔 균열의 시간이 찾아오기도 한다는 거죠. 사랑하던 사람에게 등을 돌릴 때도 있는데 그것 앞모습이 아니라 뒷모습을 보여준다는 거죠. 앞모습에 빠져 있다가 뒷모습을 쉽게 보여줄 수 있는 게 사랑의 속성이라는 시인의 말도 나오고요. 그래서 시인은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앞모습도, 뒷모습도 아닌 옆모습을 보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적어요.


ann 앞모습도 뒷모습도 아닌 옆모습. 옆모습을 보라는 건 어떤 뜻일까요?     

숲의 나무를 예로 드는데요. 나무와 나무는 서로 애써 마주보려고 하지 않고 다투다가 등을 돌리는 일도 없이 그저 일생 동안 서로의 옆에 서서 옆모습만 슬쩍 보여준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멀어질 일도 떨어질 일도 없다는 거죠. 앞모습과 뒷모습이 반반씩 들어앉아 있는 옆모습을 보려고 노력하다보면 파국을 피할 수 있다는 조언이죠.


ann 안도현 시인이 만난 사람에 대한 이야기 중에서는 기억에 남는 게 있을까요?     

김남주 시인의 이야기가 재밌었는데요. 김남주 시인은 굉장히 정치색이 강한 시인이었죠. 지금은 돌아가신 지 오래됐지만. 김남주 시인의 아들 이름이 ‘김토일’이라고 합니다. 왜 그런가 보니까 노동하는 사람이 금토일 쉬는 날이 많았으면 하는 바람을 이름에 담았다고 해요. 아들 이름까지 자신의 소망을 담는 그릇으로 써야 했을까 싶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만큼 사람에 대한 애정이 컸구나 하는 것도 느낄 수 있죠. 올해는 다들 금토일 가리지 않고 편히 쉬는 날이 많은 한 해가 됐으면 좋겠네요. 


M2 넬 - 청춘연가

https://youtu.be/r2lffy84yQE


ann 오늘은 우리 주위의 행복을 찾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책 만나보고 있습니다. 안도현 시인의 ‘안도현의 발견’ 이야기했고요. 두 번째로 소개해줄 책은 어떤 책인가요?     

이번에 소개해드릴 책은 ‘101번의 아름다운 도전’이라는 제목의 책입니다. 요즘 사회가 굉장히 치열하잖아요. 한 번의 실패도 도저히 용납하지 않을 것 같은 그런 분위기고, 우리 스스로도 실패하면 안 된다는 마음가짐, 늘 절벽 끝에 서 있는 것 같은 마음으로 살아가죠. 그런데 이 책은 사실은 우리가 사는 세상이 그런 곳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해줍니다. 그렇게 각박하지만은 않은 곳이라는 이야기를 해줘요. 이 사실을 알고 나면 조금 더 여유를 가지고 행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골라봤습니다.


ann 101번의 아름다운 도전. 어떤 책인가요?     

이 책은 한 경주마의 이야기를 다룬 책인데요. 차밍걸이라는 이름의 경주마가 2005년에 제주에서 태어나요. 혈통도 보잘것없고 체격도 작은데 우여곡절 끝에 어찌어찌 경주마가 돼서 서울경마공원에 입성하게 됩니다. 경마공원 가보시면 아시겠지만 주말마다 엄청난 경주가 펼쳐지잖아요. 거기에서 뛰게 된 거죠. 그런데 성적이 어땠을까요. 성적이 처참해요. 2008년 데뷔해서 2013년 은퇴경주까지 모두 101번의 경기를 뛰었는데, 총 101패를 합니다. 0승 101패를 기록하고 은퇴한 경주마인 거예요.

ann 0승 101패. 성적만 봐도 너무 암담해지는데요.      

우리나라에 경주마 한 마리를 주인공으로 삼은 책이 딱 두 권이 있다고 합니다. 제가 알기로는요. 차밍걸의 이야기를 다룬 ‘101번의 아름다운 도전’이 있고, ‘미스터파크’라는 책도 있어요. 미스터파크는 한국 경마 사상 처음으로 17연승에 성공한 입지전적인 경주마거든요. 차밍걸과 미스터파크의 이야기는 정말 양 극단에 서 있는 거죠.


ann 차밍걸은 한국 경마사상 가장 많이 진 경주마라는 거죠?     

맞습니다. 사실 차밍걸에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게 된 게 계속 지면서도 빠지지 않고 계속 경기를 나왔다는데 있어요. 경마는 돈을 거는 게임이잖아요. 이기지 못하는 말은 퇴출되기 마련이죠. 그런데 차밍걸은 이기지 못하면서도 계속 경기에 나온 거예요. 보통 경주마는 세 살에 데뷔해서 일곱 살쯤 은퇴한다고 하는데요. 평균적으로 50경기 정도 출전한다고 해요. 차밍걸은 그 두배를 뛴 거죠. 우승은 못했지만 101번의 경기를 뛰면서 꾸준히 조금씩 돈도 벌었다고 해요. 가끔씩 상위권에 가면 상금도 벌고 10위안에 들어오면 주는 출전장려금도 받고요.


ann 큰돈을 벌지는 못하지만 월급 받는 평범한 직장인처럼 성실하게 꾸준하게 뛰었던 거네요.     

그렇죠. 차밍걸을 보면서 많은 사람이 처음에는 왜 이렇게 못 하냐고 하다가 갈수록 오히려 차밍걸을 응원하게 됐다고 합니다. 주목받지 못하면서 자기보다 몸도 크고 혈통도 좋은 다른 말들 사이에서 어떻게든 이를 악물고 마지막까지 완주하는 모습을 보면서 평범한 소시민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 거죠. 그러면서 따지 못할 걸 알면서 차밍걸에 베팅을 하고 응원하는 팬들도 생겼다고 하고요. 어떻게 보면 작은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 거죠. 


M3 브로콜리너마저 – 잊어야 할 일은 잊어요

https://youtu.be/X2hEHdJX-WY


ann 오늘은 우리 주위의 행복을 찾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책 만나보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 101번의 패배를 기록한 경주마 차밍걸의 이야기를 다룬 ‘101번의 아름다운 도전’ 이야기 중입니다.     

차밍걸이 은퇴 경기를 할 때는 언론에서도 취재를 많이 가고 했다고 합니다. 한 자리에서 꾸준히 달리기만 한 걸 결국 인정받은 게 아닐까 싶어요. 1등은 한 번도 못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는 자세를 인정받은 거죠.


ann 차밍걸이 계속 지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경기에 나설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요?     

차밍걸의 노력도 있었겠지만 주위의 격려와 응원, 그리고 포기하지 않고 지켜본 사람들 덕분인 것도 있는데요. 책에서는 차밍걸을 둘러싸고 포기하지 않고 응원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나와요. 예컨대 마주인 변영남씨는 차밍걸이 이기지 못하는데도 계속 지원해서 경주에 뛸 수 있게 해주고요. 최영주 조교사는 차밍걸을 계속 응원하고 보살펴주죠. 유미라 기수는 차밍걸이 뛴 101번의 경주 중에 82번의 경주를 함께 뛰었고요. 주위의 응원과 노력이 있었기에 차밍걸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뛸 수 있었던 거죠.


ann 경마는 사실 도박이라는 생각을 많이 하잖아요. 그런데 경마장에서 이런 감동적인 이야기가 태어나다니 놀랍기도 해요.     

어떻게 보면 경마장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축소판이 아닐까 싶어요. 우리가 사는 경쟁 사회는 1등이 아니면 의미없다고 엄포를 놓잖아요. 경마장에서는 실제로 1등이 아니면 2등이든 3등이든 꼴등이든 모두 패자가 되는 거니까요. 그런데 차밍걸이 보여준 역주에는 이런 경쟁 사회에서도 꼭 1등이 아니어도 괜찮다는 위로의 메시지가 담겨 있는 거죠. 우리 사회가 1등만 기억한다고 많이 말하지만 차밍걸을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구나. 각자 자리에서 열심히 하면 되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죠.


ann 경주마에게서 인생을 배우네요.     

차밍걸을 관리하는 조교사가 차밍걸의 장점으로 빠른 회복을 꼽더라고요. 경주를 뛰고 패배한 다음날에도 곧장 기운을 차리고 활발하게 움직인다고요. 어떻게 보면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자질이나 덕목이 아닐까요. 패배나 실패에 좌절하기보다는 기운을 차리고 다음 도전을 준비하는 거요. 새해를 시작하면서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 아닐까요.


M4 오지은 - 서울살이는

https://youtu.be/xB6HB3iauo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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