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bs교통방송 심야라디오 프로그램 황진하의 달콤한 밤'의 책 소개 코너 '소설 마시는 시간'입니다.
매주 토요일에서 일요일 넘어가는 자정에 95.1MHz에서 들으실 수 있어요.
1월 12일 백열세 번째 방송은 두 권의 인터뷰집을 소개했습니다.
↓소설 마시는 시간 멘트↓
ann 책 속에 담긴 인생의 지혜를 음미해 보는 <소설 마시는 시간> 오늘은 어떤 주제로 이야기 나눠볼까요?
j 오늘은 인터뷰를 모은 책을 두 권 가져왔는데요. 우리가 흔히 접하는 인터뷰는 신문이나 방송에서 뉴스의 형태로 다뤄지는 것들이잖아요.
ann 그렇죠. 인터뷰라고 하면 흔히 사건에 대한 관계자 인터뷰를 떠올리죠.
j 그런데 오늘 소개해드리는 인터뷰들은 그런 류의 인터뷰와는 전혀 다른 풍의 인터뷰를 담고 있습니다. 한 인물에 대해, 또는 어떤 주제에 대해 심도있고 깊이있는 대화를 담은 인터뷰들이에요. 지금 당장 화제가 되는 어떤 사건이나 주제가 아닌 우리 인생이나 삶에 대한 다양한 이야깃거리가 몇십 분, 또는 몇 시간에 걸친 인터뷰 동안 오가는 거죠.
ann 질문을 하는 사람이나 질문을 받는 사람 모두가 중요하겠네요.
j 각자의 역할을 충실하게 해내지 않으면 좋은 결과물을 기대할 수 없겠죠. 먼저 소개해드릴 인터뷰집은 '깨끗한 존경'이라는 제목의 책인데요. '일간 이슬아'로 유명한 이슬아 작가가 직접 진행한 인터뷰를 모은 인터뷰집입니다. 이슬아 작가는 아마 지금 한국 출판계에서 가장 핫한 인물 중 한 명이기도 할 텐데요. 기자 활동을 하다가 2014년 작가로 데뷔한 이후 파격적인 활동의 연속인데 그게 매번 화제가 되면서 지금은 엄청난 팬덤을 가지고 있기도 하죠.
ann 특히나 일간 이슬아라는 시리즈가 유명하죠.
j 자신의 글을 원하는 독자에게 본인이 쓴 글을 이메일로 보내주고 대신 구독료를 받는 서비스였는데요. 이 기획이 큰 성공을 거두면서 출판계의 스타로 떠올랐죠. 작년에는 헤엄출판사라는 출판사를 직접 차리고 수필집을 내기도 했고요. 오늘 소개해드릴 '깨끗한 존경'은 일간 이슬아에서 소개한 인터뷰 글을 한 권의 책으로 모아서 낸 건데요. 제가 아는 여러 지인들이 2019년의 책을 꼽으면서 빼놓지 않고 넣은 책이기도 합니다.
ann 2019년의 책으로 꼽힐 만큼 내용이 좋았다는 거죠? 인터뷰집이면 어떤 분들을 인터뷰한 책인가요?
j 보통의 인터뷰집은 10명 정도의 인터뷰가 실려있기 마련인데요. 이 책에는 딱 4명의 인터뷰만 실려 있습니다. CBS 라디오 피디이자 여러 편의 책을 직접 쓰기도 한 정혜윤 피디, 비건 작가로 유명한 김한민, 시인 유진목, 그리고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으로 유명한 김원영 변호사까지 모두 4명의 인터뷰가 이 책에 실려 있습니다. 특히나 저는 정혜윤 피디와 김원영 변호사를 전부터 좋아했던지라 이번 책에서도 그분들의 이야기에 더 눈길이 갔네요.
M1 위위 – 니 생각
ann 오늘은 인터뷰를 모아놓은 책을 만나보고 있습니다. 먼저 단 4명의 인터뷰만 실려 있는 인터뷰집. '깨끗한 존경' 어떤 이야기가 있나요?
j 정혜윤 피디의 이야기부터 해볼게요. 정혜윤 피디는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을 주로 만드는 피디인데요. 세월호 유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프로그램이 최근에는 많은 관심을 받았어요. 그런데 세월호라는 단어만 들어도 우리는 슬퍼지잖아요. 어떤 이야기를 더 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하고요. 하지만 정혜윤 피디는 이런 이야기가 우리에게 계속해서 필요하다고 말해요. 단지 세상에 나보다 슬픈 사람이 있다는 걸 기억하자는 게 아니라 누군가가 나보다 더 슬픈데, 그가 엄청난 용기를 내어 살아가고 있다는 걸 기억하자는 거죠.
ann 나보다 더 슬픈 누군가가 엄청난 용기를 내어 살아가고 있다는 걸 기억하자.
j 그걸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내일을 내다볼 힘을 얻을 수 있다는 거죠. 정혜윤 피디가 자신이 만든 프로그램 이야기를 해요. 예전에 화성 씨랜드 참사라는 게 있었죠. 청소년 수련원에 간 유치원 아이들이 화재로 죽음을 당한 사건인데요. 이 참사의 유가족 한 명과 세월호 유가족 한 명이 나란히 방송에 나와서 이야기를 하는 프로그램을 만든 적이 있어요. 이 두 분은 말도 안 되는 사고로 아이를 잃은 분들인데, 방송에서 두분이 서로를 위로하는 거예요. 세월호 유가족은 씨랜드 참사의 유가족에게 불에 타서 죽은 그 고통에 대해서는 상상도 못하겠다고 말하며 고개를 떨구고, 반대로 씨랜드 참사를 겪은 유가족은 세월호 아이들은 의식이 있는 채로 그 고통을 다 겪어야 하지 않았겠냐며 오히려 힘들어하는거죠.
ann 내가 더 힘들었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 상대방이 나보다 더 힘들었을 거라고 말하는 거군요.
j 어떻게든 상대방을 위로하려고 말하기도 힘든 자기 고통을 말하는 거죠. 이런 마음이 어떻게 보면 우리 사회를, 세상을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힘이 아닐까 싶어요. 정혜윤 피디의 인터뷰에 이 책의 제목도 나오는데요. 바로 '깨끗한 존경'이죠. 정혜윤 피디가 인터뷰를 하면서 많이 운다고 해요. 그런데 그때 느끼는 마음이 연인이나 이타심 같은 건 아니라고 해요. 자신을 움직이는 힘은 다른 무엇이 아닌 깨끗한 존경이라는 거죠. 그들은 슬프기는 하지만 불쌍한 사람들은 아니다, 나보다 훨씬 괜찮고 위대한 사람이다, 슬프지만 사람이 저렇게 용기있고 깊을 수 있구나 하는 마음이라는 거죠. 저는 이 말을 듣고 제가 세월호 유가족에 대해서 잘못 생각하고 있었구나 하는 반성도 했어요.
ann 김원영 변호사의 인터뷰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기억에 남나요?
j 김원영 변호사는 선청적인 장애를 가지고 있죠. 골형성부전증으로 휠체어를 타고 다녀야 하죠. 그런데 김원영 변호사가 쓰는 글이나 활동은 우리가 그의 신체만 봤을 때 가지기 쉬운 편견을 단번에 깨뜨려요. 김원영 변호사는 연극배우로 활동하고 있기도 하고,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이라는 에세이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기도 했고요. 이런 이력만 봐도 정말 다양한 이야기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죠. 이 중에서도 이슬아 작가가 집중한 건 몸에 대한 대화였더라고요.
ann 몸에 대한 대화.
j 김원영 변호사가 직접 배우로 나선 연극이 있어요. '사랑 및 우정에서의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에 관한 법률'이라는 긴 제목의 연극. 이 연극을 보고 난 이야기로 인터뷰가 시작되거든요. 한 남자 장애인이 외출 준비를 하는 모습에서 시작하는 연극인데요. 우리가 흔히 장애인이라고 하면 연극이나 춤 같은 신체활동과는 거리가 멀다고 여기잖아요. 실제로 그런 부분이 있기도 하고요. 김원영 변호사는 그런 편견을 자신이 직접 연극과 춤을 통해서 깨뜨리는 거죠. 이런 활동이 주는 놀라움이랄까, 신선함에 대한 이야기들이 인터뷰 내내 이어져요.
ann 기억 남는 문장이 있다면요?
j '왕좌의 게임'이라는 드라마가 있죠. 거기에 티리온이라는 장애인 캐릭터가 나와요. 그 티리온에 대해서 김원영 변호사가 이런 말을 해요.
"드라마의 시즌이 거듭될수록 사람이 선명해진다는 게 이런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너무나 선명하고, 그 선명도가 형태를 압도한다는 느낌이요."
이 말이 저는 너무 와닿더라고요. 그 사람의 선명도가 형태를 압도하는 순간. 그 사람의 외모, 생김새, 차림새와 상관없이 그 사람의 매력과 어떤 모습이 있는 그대로 내게 전해지는 순간이 있죠. 그런 선명도를 찾아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M2 리쌍 - 회상
ann 오늘은 인터뷰를 모아놓은 책을 만나보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 만나볼 책은 어떤 책인가요?
j 이번에 소개해드릴 책은 은유 작가의 인터뷰집인 '출판하는 마음'이라는 제목의 책입니다. 은유 작가는 노동이나 삶의 경험에 대한 논픽션 글을 많이 쓰는 작가죠. 산문집인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나 '쓰기의 말들' 같은 책으로 유명한 분이기도 하죠.
ann 제목을 보면 어떤 분들을 인터뷰한 책인지 바로 나오네요.
j 그렇죠. 이 책은 출판인 10명을 인터뷰하고 쓴 책인데요. 열 명의 젊은 출판인을 만나서 책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팔리는지에 대해 적은 책이에요. 베테랑 문학편집자이자 출판사 대표인 김민정씨부터 책을 출간하는 저자, 번역자, 북디자이너, 온라인 서점 MD, 1인출판사 대표까지 출판계에서 일하는 굉장히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서 솔직하게 이야기를 전해듣고 그걸 책으로 풀어낸 거죠.
ann 우리가 이 방송에서 책 이야기를 한 지도 3년은 된 거 같은데요. 책을 만드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해본 적은 없는 것 같아요.
j 그만큼 출판인은 책 뒤에 가려져서 잘 보이지 않는 존재죠. 책을 쓰는 저자나 서점을 운영하는 사람들에 비하면 그 노동의 가치가 잘 드러나지 않죠. 은유 작가도 이 책을 쓴 이유 중에 하나로 책을 만드는 노동을 하는 사람들의 가치를 다시 찾아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고 해요. 이런 말이 나와요 '레드카펫 위 주인공보다는 그 레드카펫을 준비하고 갈고 치우는 사람들에게 시선이 간다'고요. 책을 만드는 출판사의 편집인, 디자이너야 말로 이런 사람들인 거죠.
ann 사실 책을 만드는데 얼마나 많은 노동이 필요한지 잘 모르잖아요.
j 저도 작년에 두 권의 책을 내기 전에는 사실 잘 몰랐어요. 그냥 작가가 글을 써서 보내면 뚝딱하고 책이 나오는 줄 알았죠. 그런데 전혀 아니더라고요. 이 책에도 자세하게 나오지만, 편집자가 작가와 조율하며 책의 내용을 써가고, 북디자이너가 책의 전반적인 형태와 표지를 정하고, 마케터는 책을 판매할 일정을 정하고, 서점 MD는 어떤 책을 어디에 배치하고 얼마나 노출할지 정하고.. 이런 일련의 과정이 톱니바퀴 돌듯이 맞아 돌아가야 한 권의 책이 나오는 거죠.
은유 작가도 10명을 인터뷰한 뒤에 가장 크게 배운 건 '책만 좋으면 알아서 팔린다는 생각을 버린 것'이라고 말하고요.
ann 좋은 책이라고 알아서 잘 팔리는 건 아니라는 거네요.
j 인터뷰를 한 출판사 마케터가 편집자에게 이런 말을 했대요. "100퍼센트의 힘을 다 쓰지 말고 마케팅과 함께 할 10퍼센트는 남겨주길 부탁합니다."하고요. 책을 만드는데 온 힘을 다 쓰고 책이 나온 뒤에 퍼져있지 말고, 책이 나온 뒤에 함께 책을 팔 수 있는 힘을 남겨달라는 부탁을 한 거죠. 책이라는 게 그냥 글을 쓴다고 다 되는 건 아니구나 하는 걸 알 수 있는 부분이죠.
M3 이병현 – 잘 가라 구름아
ann 오늘은 인터뷰를 모아놓은 책 만나보고 있습니다. 은유 작가가 10명의 출판인을 만나서 인터뷰한 책 '출판하는 마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책에서 인상 깊은 부분이 있었으면 소개해주세요.
j 이런 말이 나와요.
"글의 총합이 책이 아니라는 것. 좋은 글이 많다고 좋은 책은 아니라는 것. 한 권의 책은 유기적인 구조를 갖고 있으며 책을 관통하는 하나의 메시지와 목소리를 가져야 한다는 것, 그 일을 과단성 있게 솜씨 좋게 해내는 사람이 편집자라는 것."
책이라는 건 그 자체로 하나의 생명 같은 게 아닐까 싶어요. 예전에 그런 게 있었죠. 유명한 배우들의 얼굴 부위만 모아놓으면 세계에서 제일 잘생기고 예쁜 사람이 나오지 않겠냐고요. 그런데 그 결과물이 영 이상했죠. 예쁜 눈, 예쁜 코, 예쁜 귀만 모아놓는다고 예쁜 얼굴이 나오는 게 아닌 것처럼 좋은 글만 모아놓는다고 좋은 책이 나오는 건 아니에요. 이런 생각을 어렴풋이 가지고 있었는데 이 책에서 이 글을 보고 끄덕끄덕했습니다.
ann 좋은 글이 많다고 좋은 책은 아니라는 것. 이렇게 생각해본 적은 없었는데 정말 맞는 말이겠구나 싶네요.
j 출판인은 역시나 책을 많이 읽는 사람들이잖아요. 나름의 책을 고르는 비결이나 비법 같은 것도 중간중간 나오는데요. 문학편집자인 김민정 편집자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이 나와요. 김민정 편집자는 박준 시인을 발굴한 걸로도 유명한 분이죠. 이분이 시집을 고를 때 처음에는 이렇게 했대요. 대학생 때 시집코너에 갔는데 너무 막막해서 시인들의 약력을 쭉 봤대요. 거기서 인천 출신 시인들의 시집만 골라서 산 거예요. 김민정 편집자가 인천 출신이거든요. 인천 시인의 시에는 인천의 풍경, 내가 아는 풍경이 있지 않을까. 그러면 시를 이해하는 데 더 도움이 되지 않겠냐는 생각에서 그랬다는 거죠. 실제로 그랬다고도 하고요.
ann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의 풍경이 담겨 있는 시를 고르라는 거네요. 정말 실용적인 조언이군요.
j 은유 작가가 노동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아다니는 분이라고 말했는데요. 실제로 은유 작가는 자신을 소개하는 글에 '일하는 사람들이 글을 써야 세상이 좋아진다는 믿음으로 여기저기 글쓰기를 전파하고 다닌다'고 적어요. 이 책도 출판일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작가가 대신 받아적어서 책으로 펴낸 거죠. 저도 이 말에 정말 공감하거든요. 작가라는 게 대단한 존재가 아니에요. 누구나 자기 이야기가 있기 마련이고, 다른 사람보다 자신있는 자기만의 분야나 전공이 있기 마련이죠. 그런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다보면 한 권의 책이 만들어지는 거잖아요. 작가가 어떤 특권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노동에 대해 솔직하고 담백하게 풀어내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선물 같은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ann 이 책을 읽으면 그런 선물에 한걸음 더 가깝게 다가설 수 있는 거겠네요.
j 맞습니다. 우리가 책을 쓰고 싶다고 막연하게 생각하다가도 어떻게 써야 할지 감을 못 잡고 포기할 때가 있죠. 뭐든 하고 싶은 게 생기면 어떻게 할지 찾아보고 검색해보고 그래야 하는 데요. 출판계는 도제식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보니 검색해도 나오는 정보가 별로 없거든요. 그런데 이 책은 출판의 A TO Z를 제법 꼼꼼하게 다루고 있어서, 내가 책을 쓰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단순한 에세이가 아니라 실용정보서처럼 읽을 수도 있는 거죠. 이 책을 읽고 책을 쓰는 작가에 도전하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더 늘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네요.
M4 언니네이발관 - 산들산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