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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자 Jan 24. 2020

어른이들을 위로하는 만화 주인공들의 에세이

tbs교통방송 심야라디오 프로그램 황진하의 달콤한 밤'의 책 소개 코너 '소설 마시는 시간'입니다.

매주 토요일에서 일요일 넘어가는 자정에 95.1MHz에서 들으실 수 있어요.


1월 19일 백열네 번째 방송은 직장인을 위로하는 만화 캐릭터의 이야기를 소개했습니다.


↓소설 마시는 시간 멘트↓


ann 책 속에 담긴 인생의 지혜를 음미해 보는 <소설 마시는 시간> 오늘은 어떤 주제로 이야기 나눠볼까요?

새해에 할 일도 많고 바쁜 시기에 책 읽기 쉽지 않죠. 이럴 때는 복잡하고 두꺼운 책보다 조금 편하게 마음을 내려놓고 읽을 수 있는 책을 손에 쥐는 게 좋은데요.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만화나 웹툰 캐릭터의 이야기를 다룬 에세이를 두 권 가져왔습니다.


ann 만화나 웹툰 캐릭터의 에세이. 서점에서 큰 인기죠?     

아무래도 요즘 최고의 화제가 펭수잖아요. 펭수의 에세이 다이어리인 '오늘도 펭수 내일도 펭수'가 정말 공전의 히트를 치고 있고요. 요즘 출판계 사람들은 펭수 이야기만 한다는 말도 있더라고요. 펭수 말고도 다른 캐릭터를 내세운 에세이도 많아요. 저희 방송에서도 2018년 5월에 한 번 소개한 적이 있어요. 그때는 보노보노랑 곰돌이 푸의 에세이를 다뤘고요.


ann 보노보노와 곰돌이 푸. 생각만 해도 아기자기한 캐릭터들이죠.     

맞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만화 캐릭터를 내세운 에세이가 인기인 건 비슷한데요. 최근에는 조금 캐릭터의 양상이 다양해진다고 해야 할까요. 그런 분위기도 있어요. 곰돌이 푸나 보노보노 모두 귀엽지만 어디까지나 정말 만화 속의 이야기를 다루는 거고, 현실 사회가 배경은 아니잖아요. 나이가 조금 있는 직장인들이 공감하기에는 조금 먼 이야기를 다루고 있죠. 그런데 최근에는 이런 직장인들, 조금 나이가 있는 분들도 공감할 수 있는 만화 캐릭터의 에세이도 나오고 있어서 소개해드릴까 해요.

ann 어떤 책부터 만나볼까요?     

먼저 소개해드릴 책은 '유미의 일기장'이라는 제목의 에세이입니다. 이달 초에 출간된 따끈따끈한 신간이고요. 한 포털사이트에 연재 중인 '유미의 세포들'이라는 웹툰 주인공인 유미를 내세운 에세이입니다. 저도 이 웹툰 정말 좋아하고, 제 주위에도 좋아하는 분이 참 많아요. 30대 여성 직장인의 평범한 일상을 다루는데 대단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아닌데 정말 재밌죠.


ann 유미의 세포들은 정말 유명한 웹툰이죠. 영화 '인사이드 아웃'처럼 주인공 유미의 몸속에 있는 세포들을 내세워서 이야기를 끌고 가는 것도 참신했고요.     

맞습니다. 최근에 이야기가 어쩐지 마침표를 향해 달려가는 것 같아서 안타까운 마음이 큰데요. 이렇게 주인공 유미를 내세운 에세이가 나와서 팬들의 마음을 좀 달래주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 책은 웹툰 주인공인 유미가 직접 쓴 일기장이라는 컨셉을 내세우는데요. 웹툰 속에서 팬들이 많이 공감하고 사랑한 장면 50가지를 선정해서 그 장면에 대한 일기를 유미가 써내려가는 방식으로 책을 썼어요. 저도 쭉 읽으면서 이 웹툰을 볼 때의 감정이나 상황이 생각나서 참 추억이 돋기도 했습니다. 


M1 AKMU – 그때 그 아이들은

https://youtu.be/bKWN_MfsnOo


ann 오늘은 직장인이 공감할 수 있는 만화 캐릭터의 에세이 만나보고 있습니다. 먼저 웹툰 '유미의 세포들'의 주인공 유미가 직접 쓴 '유미의 일기장' 이야기 중입니다. 책에서 기억에 남은 장면들을 좀 소개해주세요.     

웹툰의 한 장면을 보여주고 그 장면과 관련된 일기가 나오는 방식인데요. 유미가 침대에 누워서 잠들어 있는데 그 위에 말풍선에 '근사한 어른이 될 줄 알았는데'라는 말이 나오는 에피소드가 있어요. 이 말만으로도 많은 사람이 공감하고 고개를 끄덕일테죠. 다들 비슷한 생각을 한번쯤은 해봤을 테니까요. 나는 어른이 되면 멋지고 대단한 사람이 될거라고 생각했는데 나이를 먹을수록 내가 생각했던 모습과는 멀어지네,, 하면서 씁쓸해한 적은 누구나 있지 않을까 싶어요.


ann 유미의 속 마음은 어떤가요?     

그 에피소드와 관련된 일기에서 유미가 이렇게 적어요.

'고등학교 대학교 시절 내가 어른이라 느꼈던 사람들은 감정을 잘 절제하고 갑작스러운 상황에도 잘 대처하며 무엇보다 더 강한 근사한 사람들이었다. 적어도 지금의 나 같지는 않았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그 강해 보이던 어른들의 나이가 지금 나와 얼마 차이 나지 않는다. 이걸 알았을 땐 눈물이 났다. 그들도 나와 비슷하게 불안하고 근사하지 않았지만 내게 그런 모습을 보일 수 없어 애써 아닌 척했을 거란 생각에...'

그러면서 그들이 근사해보인 건 실제로 근사한 삶을 살든 그렇지 않든 어떻게든 내 삶을 지키기 위해 버티고 노력했기 때문이라는 걸 이제는 깨달았다고 적어요. 지금의 내 모습이 어릴때의 기대와 달리 근사하지 않더라도 여전히 우리에게는 지켜내야 할 삶이 있다는 거죠.


ann 웹툰에서는 단 한 줄만 나왔는데, 책에서는 유미의 자세한 속마음이 나오니까 이해하는데 더 좋네요.     

이런 류의 에세이는 원작자가 직접 써야 캐릭터를 더 잘 살릴 수 있잖아요. 만화나 웹툰의 특성상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은데 유미의 일기장은 연재중인 웹툰 작가가 직접 썼으니까 이런 면에서는 훨씬 캐릭터의 속내를 더 잘 살릴 수 있는 거죠. 사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이게 꼭 유미라는 캐릭터의 일기장만은 아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어요. 유미라는 캐릭터가 대표하는 30대의 평범한 여성 직장인들의 일상이나 마음들이 어느정도 여기에 투영돼 있겠구나 싶은 거죠.


ann 유미 자체가 그런 캐릭터죠. 보통의 웹툰 캐릭터라고 하면 엄청 잘 생기고 예쁘거나 돈이 많거나 초능력이 있거나 할텐데, 유미는 전혀 그런게 없는 평범한 캐릭터로 나오니까요.     

우리 주위에 어디에나 있음직한 캐릭터죠. 그래서 더 많은 독자가 유미에게 공감하는 걸 수도 있구요. 다이어트를 하지만 매운 떡볶이 앞에서는 무너질 때도 있고, 나 하나만 참으면 모두가 좋을 거라는 마음에 많은 걸 참고 살기도 하고. 이런 캐릭터 만나기가 또 쉽지가 않잖아요. 그러면서도 유미의 일기장은 많은 독자들에게 조금 더 나 자신을 사랑하라는 메시지도 던져요.


ann 어떤 이야기가 나오나요?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은 부분이기도 한데요. 이런 장면이 나와요. 유미가 '그럼 남자 주인공은 누군데?'하고 물어요. 어쩌면 유미의 세포들에서 남자 주인공이 누구냐고 작가에게 묻는 것 같은 느낌이죠. 이 웹툰의 팬들이 늘 유미의 남자친구를 놓고 편이 갈리거든요. 그런데 이 장면에 대한 유미의 일기장의 대답이 참 좋죠. 

"남자 주인공은 따로 없어.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한 사람뿐이야."

유미의 세포들, 유미의 일기장, 그리고 유미의 삶에서 주인공은 오로지 유미밖에 없다는 거죠. 웹툰의 팬들도 자주 하는 말인데 책에서 만나서 반가웠어요. 어쩌면 이 말이 참 당연하고 유일한 진리일텐데 우리가 자주 까먹고 잊어버리는 말이기도 하죠.


ann 내 삶의 주인공은 나 하나다.     

유미가 웹툰 속에서 이별을 겪기도 하고 많이 아프기도 하지만, 결국 회복하고 일어나고 다시 사랑하잖아요. 유미는 늘 자기자신이라는 중심을 잃지 않고 있기에 가능한 게 아닌가 싶어요. 책에 이런 말이 나와요.

'불행이 늘 불행은 아니듯, 좋은 일도 영원한 행복의 주문은 아니라고. 그 덕에 미래에 대한 큰 환상 없이 나름 현실적으로 살아오고 있다. 그럼에도 꿈은 늘 비현실적이라, 지금과 다른 나를 꿈꾸기도 하고 일탈도 가끔 한다. 이런 꿈들이 다시 나를 좌절시키고 내가 발붙이고 있는 현실을 번쩍 자각하게도 하지만, 그 과정이 하나하나 모여 오늘의 나를 만들어가는 기분이 꽤나 생생하다.'

아픈 날도 있고 좋은 날도 있고 그저그런 날도 있다는 것. 그런 날들에 일희일비할 필요 없이 모든 날들이 결국 나라는 사람을 만드는 하나의 과정이라는 걸 일깨워주는 참 좋은 이야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M2 스웨덴세탁소 - 목소리

https://youtu.be/nytKKH4JSYI


ann 오늘은 직장인이 공감할 수 있는 만화 캐릭터의 에세이 만나보고 있습니다. '유미의 일기장' 다음으로 어떤 책을 만나볼까요?     

이번에는 인기 만화였던 '아기공룡 둘리'에 나오는 캐릭터인데요. 둘리에는 정말 많은 캐릭터가 나오잖아요. 주인공인 둘리부터 도우너, 또치, 마이콜, 희동이.. 사람마다 좋아하는 캐릭터도 다들 다를 텐데요. 그중에서도 오늘 소개해드릴 책은 아기공룡 둘리가 머물게 되는 만년과장 고길동의 이야기를 다룬 에세이입니다. 제목은 '고길동, 힘들었을 오늘도'이고요. 저자는 아기공룡 둘리죠.


ann 둘리도 아니고 마이콜도 아니고 고길동이 주인공인 책이군요.     

사실 어릴 때 둘리를 보면 고길동은 악당처럼 묘사되잖아요. 늘 둘리 일행을 혼내고 소리치고 그러다가 크게 혼쭐이 날 때도 있고요. 그런데 막상 나이가 먹고 난 뒤에 아기공룡 둘리를 보면 고길동에 가장 크게 공감하게 되죠.


ann 고길동이 불쌍해보인다면 어른이 된 것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어릴 때는 둘리와 그 일행의 모험에만 집중해서 보다보니 고길동이라는 인물을 놓친 거죠. 한 가정의 가장이고, 직장에서는 만년 과장으로 불리는 처지가 얼마나 힘든 건지 사실 어린 마음에는 알 수가 없죠. 그런데 나이를 먹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고길동의 상황과 처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된 거죠. 이 책이 작년 봄에 출간이 됐거든요. 둘리 시리즈로는 두 번째 책으로 나온 거예요. 출판사에서도 둘리에 기대를 걸었지 고길동 에세이에 큰 기대를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책이 예상을 깨고 작년에만 5쇄를 찍었다고 합니다. 보통 이런 캐릭터 에세이는 여성이 많이 보는데 이 책은 3040 남성독자들에서 인기가 많은 것도 특징이었다고 하고요.

ann 고길동의 에세이를 보면서 가장이라는 무게감에 대해 공감한 거네요.     

아기공룡 둘리는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하잖아요. 지금이랑 시대도 다르고 상황도 많이 다르지만, 삶의 애환이랄까 이런 것에서는 차이가 없는 것 같아요. 사실 고길동이라는 캐릭터가 가만히 뜯어보면 우리의 편견과는 다르게 참 따뜻한 사람이었구나 하는 생각도 들거든요. 둘리나 마이콜 같은 식객을 집에 들인 거잖아요. 책에보면 이런 말이 나와요.

'연민이 없다면 식객들을 들이지 않았을 거예요. 사랑이 없다면 식객들의 말썽을 참지 않았을 거예요. 하지만 그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을 몰라요. 지난날 우리 아버지가 그랬듯. 아버지가 된 당신이 그러하듯. 아버지가 될 당신이 예감하듯.'

이런 글들이 고길동의 이야기에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이게 만든 포인트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M3 신치림 - 퇴근길

https://youtu.be/Vdb1FUzCZx0


ann 오늘은 직장인이 공감할 수 있는 만화 캐릭터의 에세이 만나보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 아기공룡 둘리에 나오는 고길동의 속마음을 알 수 있는 '고길동, 힘들었을 오늘도' 만나보고 있어요. 어른이 된 우리의 공감을 자아내는 이야기들이 많은 것 같아요.     

맞습니다. 사실 책에 글이 많은 편은 아니고요. 이런 캐릭터 에세이가 대부분 그렇듯이 글보다는 만화 캐릭터의 그림이 책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다만 중간중간 나오는 고길동과 관련된 글들이 핵심을 찌른다고 할까요. 뼈를 때리는 그런 부분이 있어요. 예를 들면 고길동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과일나무를 비유하는데 이게 굉장히 마음을 울리는 부분이 있습니다.


ann 고길동과 과일나무. 어떤 부분이 닮은 거죠?     

책에 이렇게 나와요.

'뿌리를 박고 서 있는 과일나무는 항상 두 팔을 벌리고 있죠. 온갖 새가 날아들고 때가 되면 열매도 맺어요. 그런데 누가 알까요? 열매를 맺기 위해 나무는 비바람을 견뎌 내고 가문 날 뜨거운 태양에 허덕인다는 걸요.'

나무는 자리를 옮길 수 없잖아요. 뿌리를 내린 곳에 단단히 자리잡고 비바람을 견뎌내면서 열매를 맺어야 하죠. 이런 모습이 고길동, 그리고 우리네 가장들의 모습을 연상케 하는 것도 같고요.


ann 이런 만화 캐릭터를 내세운 에세이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이야기네요.     

3040 남성이 이 책을 많이 사는 이유를 알 수 있죠. '혼자 힘내지 말고 함께 힘내요'라는 글에는 이런 말도 있어요.

'가장은 홀로 견디는 사람이 아니라 가족과 함께 사는 사람이에요. 힘을 함께 모으면 모래밭의 거대한 배도 물 위에 가볍게 띄울 수 있지요.'

한 가정을 이끄는 아버지와 어머니들을 보면 세상 근심걱정을 혼자 다 떠안고 살 때가 많죠. 언제인가부터 자식들, 가족들과 대화하는 법도 까먹기도 하고요. 사실 그렇게 소통하는 게 내가 지고 있는 짐을 나눠지는 걸 뜻하는 건데 그걸 못하는 거죠. 가족은 나와 함께 사는 존재라는 걸 깨닫기만 해도 가장의 무게감이 훨씬 가벼워질 텐데요.


ann 고길동의 삶에서 이런 명언들이 나올 거라고는 생각 못했네요.     

제가 가장 좋았던 문구는 이거예요.

'잘 견뎌 냈어요. 이른 아침 출근한 일터에서 얼마나 많은 사건들이 당신의 마음을 다치게 했을까요. 그래도 오늘 하루 잘 견뎌 냈어요. 떠날 자격 있지만 안 떠난 당신. 그래서 위대해요.'

떠날 자격이 충분하지만 떠나지 않고 오늘도 일터에서 묵묵히 내 할 일을 한 당신, 그래서 더 위대하다는 이 칭찬이 읽으면서 참 고맙고 좋더라고요.


ann 고길동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모든 직장인을 위한 위로네요.     

앞에서 소개해드린 '유미의 일기장'도 그렇고 이 책도 그렇고. 유미나 고길동 모두 평범한 우리 사회의 직장인이잖아요. 하루하루 내게 주어진 것에 감사하며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고요. 이런 사람들이 우리 사회를 한 발자국이라도 앞으로 전진할 수 있게 만드는 원동력이 아닐까 싶어요.


M4 더블유 앤 웨이 – 월광

https://youtu.be/vtCJijsbyp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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