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bs교통방송 심야라디오 프로그램 황진하의 달콤한 밤'의 책 소개 코너 '소설 마시는 시간'입니다.
매주 토요일에서 일요일 넘어가는 자정에 95.1MHz에서 들으실 수 있어요.
1월 26일 백열다섯 번째 방송은 결혼하지 않고도 행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소개했습니다.
↓소설 마시는 시간 멘트↓
ann 책 속에 담긴 인생의 지혜를 음미해 보는 <소설 마시는 시간> 오늘은 어떤 주제로 이야기 나눠볼까요?
j 저희 방송에서 명절에는 가족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이야기를 했죠.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가족이 한 자리에 모이는 시간이니까 이럴 때 가까운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깨달아보자는 의미였는데요. 오늘은 다른 명절 때와는 조금 다른 주제를 가져왔습니다.
ann 가족에 대한 책이 아니라 다른 주제군요. 어떤 책을 가져왔나요?
j 오늘 소개할 책은 가족이 아니어도 괜찮아, 라는 주제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요즘 2030 세대 사이에서는 결혼이 선택이라는 말이 많잖아요. 꼭 본인의 선택이 아니더라도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 결혼을 미루거나 늦추는 경우도 많고요. 이런 분들에게는 사실 명절이 참 고역이죠.
ann 명절에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어떻게 보면 힘든 일이겠죠.
j 맞습니다. 저도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30대이기도 하고요. 오늘은 이런 목소리를 반영해서 결혼을 하지 않고 사는 사람들, 우리가 전통적인 가족이라고 부르는 공동체 대신 다른 방식의 삶을 선택한 사람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책으로 한 번 만나볼까 합니다.
ann 가족이 아니어도 괜찮아. 어떤 책부터 볼까요?
j 먼저 소개해드릴 책은 ‘하고 싶으면 하는거지... 비혼’이라는 제목의 책입니다. 두 명의 저자가 함께 쓴 책인데요. 41년생 독신주의자 김애순과 88년생 비혼 꿈나무 이진송씨의 대화와 글을 엮어놓은 책입니다. 이 책은 1년 전에 출간됐는데요. 비혼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이 커질 때 나와서 실제 비혼을 살아온 사람과 비혼을 꿈꾸는 사람의 솔직담백한 대화로 주목받은 책이기도 합니다.
ann 요즘 젊은 여성 중에 비혼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잖아요. 그런데 이 책은 이미 비혼으로 인생을 살아온 41년생 김애순씨의 이야기가 들어 있어서 더 새롭게 느껴지네요.
j 그렇죠. 김애순씨는 국내 최초의 독신여성단체인 한국여성한마음회라는 곳을 만들어서 싱글의 존재와 삶의 지향을 알린 분이라고 합니다. ‘독신 그 무한한 자유’ ‘싱글들의 파라다이스’ 같은 책을 썼는데요. 비혼이라는 말이 나오기도 전부터 이미 비혼주의자들의 대모 같은 삶을 살아온 거죠. 김애순씨와 함께 책을 쓴 이진송씨는 연애하지 않은 자유를 주장하는 독립잡지 ‘계간홀로’를 발행하고 있는 젊은 비혼주의자고요. 세대를 뛰어넘어서 두 사람이 비혼을 이야기하는 게 정말 흥미진진합니다.
M1 데이브레이크 – 꽃길만 걷게 해줄게
ann 오늘은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이야기해주는 책 만나보고 있어요. 먼저 두 명의 비혼주의자 이야기를 다룬 ‘하고 싶으면 하는거지... 비혼’ 이야기 중입니다. 이 책의 저자 두 분은 왜 비혼을 선택한 건가요?
j 일단 김애순씨는 41년생이잖아요. 비혼이라는 말도 없을 때였죠. 비혼이라는 걸 선택한 게 아니라 그냥 결혼을 거부하고 1인가구로 살아온 거예요. 왜 결혼을 거부했냐고 물으니까 김애순씨는 이렇게 답해요. “하기 싫으니까”. 김애순씨가 젊을 때만 해도 결혼을 하지 않는다는 게 정말 이상한 일이었던 거죠. 뭔가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안 좋은 시선도 계속 쏟아지고요. 그래서 김애순씨는 가족들이 나의 선택을 신뢰할 수 있도록 믿음을 심어주는데 많은 힘을 썼다고 합니다. 하기 싫은 건 어쩔 수 없지만, 다른 가족이나 주위의 친구들에게는 믿음을 준 거죠.
ann 이진송씨도 같은 이유인가요?
j 이진송씨는 우리가 좀 더 자주 만나는 요즘의 비혼주의자와 비슷해요. 자신의 행복과 만족감을 우선시하는 거죠. 결혼이라는 사회적인 시스템에 억압당하는 순간 그런 행복과 만족감이 깎일 테니 결혼을 선택하지 않는 거죠. 이진송씨는 편하려고 결혼하지 않는 게 왜 안 되는지 모르겠다고 말하고요.
ann 어느 통계를 보니 여성 50명 중 20명은 비혼을 결심한다고 하는데요. 막상 주위에 비혼을 당당하게 말하는 사람을 찾는 건 쉽지가 않죠. 이렇게 비혼을 실천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읽는 건 도움이 되겠네요.
j 비혼을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할 생활수칙 같은 것들도 재밌는데요. 김애순씨는 비혼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첫째도 둘째도 경제력이 중요하다고 해요. 돈 빌려달라는 말에 취약하고, 내 돈 돌려달라는 말을 강하게 못 하는 게 혼자 사는 사람의 약점이라는 거죠. 처자식이 있으면 기어코 빚을 받아내려고 하는데 부양할 가족이 없고 큰돈이 아니면 까짓것 또 벌지 하고 넘어가기 마련이라는 거죠. 기본적인 마음가짐 자체를 단단하게 먹지 않으면 자칫 경제적으로 힘들어지기 쉽다는 겁니다.
ann 개그우먼 김숙씨도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죠. 혼자 사는 여자는 소득을 공개하면 주위에서 돈 빌려달라는 연락이 쏟아진다고.
j 그렇죠. 경제적인 자립과 돈 관리가 어떻게 보면 비혼의 성패를 가를 수도 있다는 겁니다. 또 한 가지 김애순씨는 곁에 사람을 두는 게 정말 중요하다고 하는데요. 비혼주의자라고 하면 뭔가 우리의 편견 같은 게 있잖아요. 자기중심적이고 혼자 지내려고 하고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요. 그런데 김애순씨는 그렇지가 않아요. 결혼을 안 하고 나이가 들면 부모님이 죽고 그러고나면 막막해진다는 겁니다. 그래서 친척이든 친구든 사람을 곁에 두는 게 중요하다는 조언을 해요. 결혼을 하지 않는다고 혼자 사는 게 아니라 친척들 모임에 참여하고 하면서 꾸준히 연락할 사람을 곁에 둬야 오랫동안 비혼을 유지할 수 있다는 거죠.
ann 비혼계의 대모다운 현실적인 조언이네요.
j 요즘 저출산이 사회적인 현상이잖아요. 이 문제의 해결책으로 결혼이나 출산에 대한 부담을 덜어주는 방향의 정책이 얘기되죠. 신혼부부에 대한 지원을 늘리는 것도 있고요. 이런 것도 한 사회가 유지되기 위해서 필요하지만, 비혼이라는 선택에 대해 우리가 너무 색안경 끼고 볼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책에 이런 말이 나와요.
‘비혼을 바라볼 때 결혼의 문제점에만 초점을 맞추면 결국 대안은 ‘좋은 결혼’ ‘문제점이 개선된 결혼’이 돼요. 저는 그보다 비혼이 다양한 삶의 방향 중 하나로 여겨지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삶의 방향을 스스로 결정하고 내가 결혼을 선택하지 않더라도 차별이나 제약에 부딪히지 않는 세상을 원해요.'
ann 좋은 결혼이 아닌 비혼도 하나의 선택이 되는 사회.
j 저는 개인적으로 비혼주의자도 아니고, 결혼해서 행복한 가정을 꿈꾸는 사람인데요.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비혼이라는 것이 하나의 당당한 선택지라는 걸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무엇보다 책의 저자인 김애순씨, 이진송씨가 굉장히 쿨해요. 그 쿨한 매력 덕분에라도 책을 꼼꼼하게 읽게 된다고 할까요. 김애순씨는 죽어도 장례식은 안 하겠다고 하거든요. 누가 오거나 말거나 죽은 나는 아무것도 모르니까 혼자라는 상황이나 조건에 구애받지 말라는 김애순씨의 조언은 비혼주의자가 아니라도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죠.
M2 페퍼톤스 - 공원여행
ann 오늘은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이야기해주는 책 만나보고 있어요. 이번에는 어떤 책 이야기해볼까요?
j 이번에는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라는 책입니다. 이 책도 작년 초에 출간된 책이고요. 그러고 보면 비혼이나 새로운 가족의 형성이라는 주제에 대해서 2019년 한 해 동안 참 많은 이야기가 오고갔다는 걸 어떤 책이 나왔는지만 봐도 알 수가 있네요.
ann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이 책은 어떤 책인가요?
j 이 책의 출판사 설명을 보면 ‘이 땅의 모든 1인가구에게 보내는 듀엣 응원가!’라고 나와요. 이 문장을 보면 두 가지가 중요한대요. 1인가구, 그리고 듀엣 응원가라는 부분이죠. 말그대로 1인가구로 살고 있던 두 명의 저자가 살림을 합치면서 생기는 일을 쓴 책이거든요. 저자는 김하나 작가와 황선우 작가가 함께 썼는데요. 두 분 다 부산 출신으로 서울에서 작가와 에디터로 일하며 서울에서 1인가구로 오랫동안 살았던 40대 여성들이에요.
ann 1인가구로 각자 살고 있던 두 작가가 함께 살면서 생긴 일이군요.
j 우리가 가족을 이룬다고 하면 너무 당연하게 결혼을 생각하죠. 남자와 여자가 결혼을 하면서 가족을 이루는 것만 하나의 공동체라고 여기기 마련인데요. 이 책에서는 그런 걸 거부해요. 이런 말이 나와요.
‘1인 가구는 원자와 같다. 혼자 충분히 즐겁게 살 수 있다. 그러다 다른 원자와 결합해 분자가 될 수도 있다. 원자가 둘이 결합할 수도 있고, 셋, 넷, 열둘이 결합한 분자도 생길 수 있다. 단단한 결합도, 느슨한 결합도 있을 것이다. 앞으로 무수히 다양한 형태의 분자 가족이 생겨날 것이다. 이를테면 우리 가족의 분자식은 ’W2C4’쯤 되려나. 여자 둘 고양이 넷. 지금의 분자 구조는 매우 안정적이다.'
ann 여자 둘 고양이 넷이 모인 가족. 정말 남녀가 모여야만 가족이 된다고 말하는 시대는 끝나가는 것 같아요.
j 저출산으로 고민하던 프랑스 같은 유럽 국가들이 다양한 형태의 가족 공동체를 인정하면서 위기를 극복했죠. 이런 당연한 흐름을 거스를게 아니라 우리도 사회나 시스템으로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미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만들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으니까요.
ann 앞에서 읽은 책이 혼자 사는 비혼이라는 선택에 대해 일러준다면, 이 책은 남녀간의 결합이라는 전통적인 가족만이 정답은 아니라는 이야기를 해주네요. 둘 다 전에 없던 새로운 선택지들이고요.
j 둘 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던 결혼이라는 선택지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는 건 똑같죠. 이 책에 보면 이런 말이 나와요.
‘이 나이가 되도록 결혼을 안 하고 있어서 좋은 점은, 세상이 말해주지 않는 비밀을 하나 알게 되었다는 거다. 그게 뭐냐면, 결혼을 안 해도 별일 아니라는 사실이다. 내가 결혼 안 해봐서 아는데, 정말 큰일 나지 않는다. 결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앞으로 생길 수 있을 별일 큰일을 곰곰 생각해봐도, 앞으로 점점 더 결혼할 확률이 낮아질 것 같다는 정도 외엔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예전에는 이런 생각이 별종처럼 들렸을 수 있는데, 이제는 이런 생각이 너무 당연한 선택지의 하나로 들리기 시작했다는 게 우리 사회가 달라졌다는 걸 보여주는 신호가 아닐까 싶습니다.
M3 선우정아 - 고양이
ann 오늘은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이야기해주는 책 만나보고 있어요. 두 명의 싱글 여성이 함께 살면서 생긴 일을 다룬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이야기 중입니다.
j 사실 저는 처음 소개한 비혼에 대한 책보다 이 책에 더 공감이 갔는데요. 아무래도 혼자서 사는 삶은 너무 외롭고 지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저는 결혼을 꿈꾸고 있지만, 그게 어려워진다면 이 책의 저자들처럼 좋은 동거인을 만나서 주거 공동체를 이루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고요.
ann 하나보다는 둘이 낫다는 거죠?
j 그렇죠. 그 방법이 꼭 결혼일 필요는 없지만, 내 옆에서 나를 응원해주고 격려해주는 가까운 친구 같은 존재는 필요하다는 거죠. 책에 보면 이런 말이 나와요.
‘누군가와 같이 살게 되면서 가장 좋은 점 중 하나는, 타인이 강력한 주의 환기 요인이라는 사실이다. 지나치게 골똘해지거나 불안에 잠식당할 확률이 현저하게 줄어든다. 집 안 어디엔가 누군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얻게 되는 마음의 평화 같은 것도 있다. 아니, 꼭 집 안에 있을 필요도 없다. 누군가 집으로 항상 돌아온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렇다.’
ann 누군가 집에 돌아온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의 평화를 얻게 된다. 이건 정말 맞는 말 같아요.
j 이 책이 좋은 건 두 사람의 동거생활에 대해 솔직하게 고백한다는 데 있는데요. 두 사람이 의기투합해서 함께 살게 됐지만 서로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들인 거예요. 바디클렌저를 딱 하나만 쓰는 사람과 열두 개가 넘는 사람이 함께 살게 됐으니 얼마나 다르겠어요. 그리고 한 공간을 공유해야 하니 싸울 일도 적지 않겠죠. 그렇게 싸우게 되는 일, 그리고 화해하고 공존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까지. 책에는 자세하게 나와서 참 좋아요.
ann 전혀 다르게 살아온 두 사람이 함께 살게 되는 건 쉬운 일이 아닐테니까요.
j 이런 말이 나와요.
우리는 계속해서 싸우고, 곧 화해하고 다시 싸운다. 반복해서 용서했다가 또 실망하지만 여전히 큰 기대를 거는 일을 포기하지 않는다. 서로에게 계속해서 기회를 준다. 그리고 이렇게 이어지는 교전 상태가, 전혀 싸우지 않을 때의 허약한 평화보다 훨씬 건강함을 나는 안다.
싸우지 않을 때의 허약한 평화보다 서로에게 기대를 걸면서 싸우고 용서하는 교전상태가 훨씬 건강하다는 말이 참 마음에 와닿죠. 어떻게 보면 부부관계나 가족관계에 그대로 써먹을 수 있는 말이기도 하잖아요. 이 책은 비혼 같은 것에 관심이 없는 분이더라도 인간관계에 고민이 많은 분이라면 한번 읽어볼만한 필독서 같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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