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다섯 번째 리뷰_제발트 현기증.감정들
제발트의 <현기증.감정들>을 읽다보면 내가 어디쯤 걷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게 되는 순간이 찾아온다. 잘 아는 길을 걷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문득 정신을 차려보면 다음 코너에서 어떤 풍경이 펼쳐질지 예상조차 할 수 없는 복잡한 골목길을 걷고 있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그럴 때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는데 심지어 좁다란 골목길에는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 하늘마저 제대로 볼 수가 없다. 그 순간 나는 심장이 쿵쾅거리고 발끝이 왠지 모르게 저려오는 걸 느끼는데 제발트를 읽다가 그런 느낌을 받았다.
제발트는 스탕달과 카프카의 발자취를 쫓는다. 하지만 스탕달과 카프카가 남겨 놓은 기록들, 기억들을 더듬는 그 과정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모호하고 흐릿해질 뿐이다.
흑백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내가 피사체의 모든 것을 이해한다는 생각이 들지만, 정작 나는 피사체가 어떤 색의 옷을 입고 있는지조차 모른다. 내가 당연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나의 기억이 만들어놓은 허상일뿐이었다는 것을 깨달을 때, 사람마다 다르지만 다들 어떤 식으로든 좌절과 흥분을 표출하게 된다. 한 번 흐려진 기억은 더욱 모호해진다. 기억이란 얼마나 불안정한가.
<현기증.감정들>은 두 편의 짧은 이야기와 두 편의 긴 이야기로 이뤄져 있다. 두 편의 짧은 이야기는 각각 스탕달과 카프카의 이야기다. 두 편의 긴 이야기는 스탕달과 카프카의 발자취를 쫓는 제발트 자신의 이야기다. 1813년의 스탕달과 1913년의 카프카, 그리고 제발트의 이야기다. 네 편의 이야기는 서로 다르지만 연결돼 있다.
바늘 구멍 같이 좁고 좁은 글의 미로를 이리저리 솜씨 좋게 헤쳐 나오는 데 성공하면 W시가 나타난다. 제발트의 고향이다. 번역을 맡은 배수아는 제발트가 부모와 살았던 바로 그 여관에 투숙하는 부분을 '제발트식 기억의 기술을 음미할 수 있는 정수'라고 말한다. 제발트가 어린 시절 살았던 집의 거실에 해당하는 여관방에서 제발트는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는데, 이 과정에서 제발트를 읽는 사람들은 '기억하기'와 '문학이라는 행위'에 대해 진지한 성찰을 할 수 있게 된다.
<현기증.감정들>은 화자인 제발트 자신의 불안과 고독이 끊임없이 이어지며 읽는 이 마저도 늪으로 끌어들이는 작품이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소설은 희망, 혹은 구원에 대한 메시지를 놓치지 않는다. W시에서 이뤄진 제발트와 루카스의 재회, 그리고 대화는 이런 모호함 속에 정체를 알 수 없는 희망이자 구원의 끈으로 다가온다.
“나는 이어서 말했다. 과거에서 끌어올린 그림들을 더 많이 모으면 모을수록 그것들이 과연 내가 기억한 대로 흘러갔던 것인지가 더욱 모호해질 뿐이라고, 왜냐하면 과거에 속한 그 무엇도 평범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또한 설사 그렇지 않다 해도 최소한 경악스러운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깊고 깊은 밤, 주위에 날 도와줄 이가 아무도 없는데 늪에 발을 잘못 디뎠다면, 밤새 조금씩 늪 안으로 빨려들어가 죽게 될 것이다. 늪이 조금씩 내 호흡기와 피부를 침식할 때, 내게 남겨진 유일한 선택지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는 것이다. 아무도 없는 늪지대의 밤하늘에는 수많은 별들이 빽빽하게 빛나고 있을 테고, 나는 별을 바라보며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와는 무관하게 나의 마지막 죽음의 순간만은 찬란하다는 느낌에 사로잡힐 것이다. 아름다운 죽음, 죽음을 통한 정신의 해방과 치유. 그런 소설이다. 내게, 제발트는.
그가 그려내는 과거의 기억이라는 것이 어느 부분에서는 회색빛 들판으로 이루어진 황량함이 전부다가, 또다른 부분에서는 장면들이 갑자기 그 스스로도 믿기 힘들 만큼 매우 이례적인 선명함을 띠고 떠오르는 것이다.
10p
벨은 몇 년 전 오래된 서류들을 뒤지다가 우연히 이브레아 풍경이라는 제목이 붙은 동판화와 마주치게 되었을 때 엄청난 실망감을 맛보았다고 썼다. 자신의 기억 속에 각인된, 저물어가는 저녁빛 속에 고즈넉이 잠긴 도시 이브레아의 풍경이 다름아닌 그 그림 속 도시 풍경과 판박이처럼 똑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벨은 여행지에서 본 아름다운 풍경을 모사한 그림들을 사지 말라고 충고한다. 그런 그림들은 우리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지니고 있는 고유한 인상과 기억을 순식간에 장악해버릴 뿐 아니라, 심지어 완전히 파괴한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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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도시에서 지인들에게 헛되이 통화를 시도하는 행위는 참으로 큰 공허함을 자아냈다.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을 때의 감정은 단순한 실망을 넘어섰고, 다이얼을 돌리는 이 행위가 마치 삶과 죽음을 결정하는 도박인 듯이 느껴졌다. 그러므로 전화기에서 다시 튕겨나온 동전을 집어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아무런 계획 없이 밤이 될 때까지 다시 거리를 헤매고 돌아다니는 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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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사노바는 인간 이성의 한계를 생각한다. 인간이 실제로 미쳐버리는 일이 흔하지는 않지만, 그럴 만한 계기는 삶의 도처에 널려 있다는 생각이 든다. 원래의 자기 자신에 아주 약간의 균열이 일어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카사노바는 인간의 명확한 판단력을 저 홀로는 깨지지 않는 유리에 비유한다. 단지 외부의 충격에 의해서만 깨지지만, 일단 깨질 때는 또 얼마나 쉽게 깨지고 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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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도 아시는지요, 하고 살바토레가 말을 이었다. 오늘밤 원형극장에서 공연되는 <아이다>의 의상과 무대장치가 전부 1913년 베로나 오페라 축제 개막공연 때 에포레 파주올리와 오귀스트 마리에트가 구상한 원본을 정교하게 모방했다는 사실을요. 역사는 이미 종말을 향해 다가가는데도, 사람들은 시간이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고 착각하고 있는 듯합니다. 실제로 나는 종종 우리 사회 전체가, 카이로의 오페라하우스에 앉아 멈추지 않는 진보를 여전히 찬양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느낌에 휩싸인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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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그러나 고백하건대 이제는 거의 완전히라고 해도 좋을 만큼 무의미해진 경로를 따라 걷고 또 걸었다. 온종일 이런 산책을 마친 뒤 저녁이면 기진맥진한 상태로 엥겔비르트로, 그리고 상반되는 내용이 담긴 나의 글로 돌아왔다. 단상을 적는 작업은 최근 들어 어느새 나의 정신적인 지지대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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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특히, 세월이 흐르면서 많은 일이 내 안에서 저절로 설명되고, 그럼에도 그 일들이 더욱 선명해지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더욱 수수께끼처럼 변해간다는 말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나는 이어서 말했다. 과거에서 끌어올린 그림들을 더 많이 모으면 모을수록 그것들이 과연 내가 기억한 대로 흘러갔던 것인지가 더욱 모호해질 뿐이라고, 왜냐하면 과거에 속한 그 무엇도 평범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또한 설사 그렇지 않다 해도 최소한 경악스러운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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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창밖으로 내다보고 있으니 불현듯 가슴을 파고드는 독특한 인상이 있었는데, 빗물에 젖은 시골길조차 자욱하게 물보라를 일으키는 자동차들로 가득했음에도 거리에는 그 어디에도 보행자를 보기 힘들었다는 점이다. 심지어 도심 한가운데조차 사람보다는 자동차가 훨씬 더 많았다. 이제 우리 인간 종은 다른 종에게 자리를 내주고 물러나 앉았거나, 적어도 좁은 공간에 갇혀서 살아가는 식으로 생존의 양태를 바꾸어버린 듯이 보였다.
235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