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인수 부장을 만나다
2019년 출간된 '이웃집 부자들'에 실린 인터뷰 내용을 간추려서 정리한 글입니다.
기업 임원, 은행 간부, 언론사 데스크까지. 자칭타칭 경제전문가라는 이들의 집을 점찍어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부동산 좀 잘 안다고 자부하는 이들도 뒤에서는 이 사람을 찾아가 어떤 집을 사는 게 좋을지 묻고는 합니다. 부동산 전문가들을 매일 만나며 분석 기사를 쓰는 부동산 담당기자들도 정작 자기가 사야 할 집을 고를 땐 다른 전문가가 아닌 이 사람을 찾아갑니다.
바로 전인수 KB국민은행 브랜드전략부장의 이야기입니다. 평범한 은행원이지만 부동산 시장에서는 재야 최고수로 통합니다. 은행원을 하면서 쌓은 탄탄한 금융·세무 지식에 더해서 부동산에 대한 오랜 공부와 임장을 통해 쌓은 현장 경험이 전인수 부장을 재야의 고수로 만들어줬습니다.
2019년 '이웃집 부자들'을 쓰면서 전인수 부장을 몇 차례 만나 인터뷰했습니다. 전인수 부장은 인터뷰 외에도 종종 연락하며 보는 사이였지만, 부동산 투자에 대한 전인수 부장의 철학을 자세하게 들은 건 이때가 처음이었습니다. '이웃집 부자들'이 나오고 전인수 부장도 자신의 부동산에 대한 투자 철학을 책으로 정리해보고 싶다고 했는데, 마침 얼마 전에 그 책도 나왔습니다. '집 살까요? 팔까요?'라는 제목의 책입니다. 내 집 마련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읽어두면 좋을 책입니다.
전인수 부장이 처음부터 부동산 전문가였던 건 아닙니다. 은행원이 되고 2000년대 초반에 발령받은 곳이 세검정지점이었다고 합니다. 평창동이나 홍지동, 구기동의 부자들이 많이 찾는 곳이죠. 자산가들을 만나면서 전 부장도 부동산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다고 느꼈다고 합니다. 때마침 고객 중에 부동산학과 교수가 있어서 부동산대학원에 진학하게 됐죠. 하지만 부동산을 공부하면 할수록 현장에서는 부족함을 느꼈다고 전 부장을 털어놨습니다. 대학원에서 이론으로 배우는 것만으로는 자산가들이 원하는 생생한 투자 조언이나 컨설팅이 불가능했던 거죠. 그렇게 전 부장은 현장으로 뛰어들었습니다. 그때가 2000년대 후반이었습니다. 이후 십수년 동안 전 부장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주말 아침이면 현장으로 갑니다. 남들은 내집 마련을 할 때나 잠깐 하는 임장을 십수 년째 매주 하고 있는 겁니다.
전 부장은 부동산 이야기를 할때 임장의 중요성을 셀 수 없이 강조합니다. 눈으로 직접 보고 골라야 한다는 겁니다. 얼마나 집요하게 가야 하느냐고 묻자 '프락치로 몰릴 정도로 가야 한다'고 답합니다. 헬리오시티가 생기기 전인 2000년대 후반에 전 부장이 발바닥이 닳도록 임장을 갔던 곳이 가락시영입니다. 처음에는 부동산 중개업소에서도 반갑게 맞아주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줬다고 합니다. 그런데 전 부장이 매주 가락시영을 찾아가자 어느 날인가부터 연락도 받지 않고 냉대했다고 합니다. 알고 보니 전 부장이 송파구청에서 나온 프락치라는 소문이 일대 중개업소에 돌았던 겁니다. 매물을 사지도 않으면서 매주 중개업소를 돌아다니며 정보를 물으니 그런 소문이 날 법도 합니다. 오해를 푼 뒤에는 중개업소 사장님들이 더 잘 대해줬다고 합니다.
지금도 전 부장에게 어느 어느 동네에 관심이 있다고 하면 바로바로 중개업소 사장님 이름이 튀어나옵니다. 마래푸에 관심이 있다고 하면 "거북이부동산을 가보세요" 하고, 영등포 이야기를 꺼내면 "아크로타워에 그동네 빠꼼이 사장님이 있어요" 하고 일러줍니다.
내가 아무리 발품을 팔아도 모든 지역을 다 알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지역마다 내 편을 심어두는 겁니다. 그 지역을 잘 아는 중개업소를 찍어서 여름에는 아이스커피 사들고 가고, 빵집에서 롤케이크도 가져가고, 그러면서 접점을 만들어가는 겁니다.
어떤 중개업소를 찾아가야 하는 걸까. 그는 형님, 누님, 어머님 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중개업소를 들어가면 자격증명서부터 찾아보고 한 동네에서 20년은 일한 중개업소를 찍으라고 합니다. 그런 곳을 찾았으면 최소 1년은 꾸준히 찾아가서 얼굴을 터야 그제야 알짜배기 정보를 먼저 얻을 수 있다는 겁니다.
부동산 최고 전문가인 전 부장은 어디에 살고 있을까요. 지금 전 부장은 평창동에 본인의 집을 짓고 있습니다. 작은 건물을 짓고 사는 건 전 부장의 오랜 꿈이었죠. 그 꿈이 실현되고 있습니다. 전 부장이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거나 한 것도 아닙니다. 평범한 월급쟁이 직장인이었죠.
전 부장이 처음 부동산을 산 건 5000만원짜리 다세대 빌라 원룸이었습니다. 거기서 시작해서 돈을 모아 홍제동에 17평짜리 아파트를 샀고, 다시 돈을 모아 무학동에 있는 24평짜리 아파트로 옮겼습니다. 부인과 함께 열심히 월급을 모았던 거죠. 부인의 꿈이었던 34평짜리 브랜드 아파트에 들어가기 위해 온가족이 반지하 원룸에 들어가서 지낼 때도 있었습니다. 중도금을 내기 위해 말 그대로 허리띠를 꽉 줄였던 거죠. 그렇게 34평짜리 아파트에 입주했으니 이제는 살만하다 싶었겠지만 전 부장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는 "인간의 욕망은 늘 계단을 오르는 심정 같다"고 말합니다.
우여곡절 끝에 들어간 34평짜리 아파트를 전세를 주고 24평짜리 아파트에 전세로 나와서 살기로 합니다. 고생 끝 행복 시작인 줄 알았는데 다시 고생이었던 거죠. 전 부장은 남은 돈으로 아파트 상가에 투자를 합니다. 임대수익으로 단순수익률만 8%가 넘게 남았다고 합니다. 이후에는 오래된 빌라를 매입해서 리모델링하고 되파는 일로 수익을 냈습니다. 모두 가만히 자리에만 앉아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죠. 주말이면 서울 전체가 내 집인 것처럼 임장을 다니고, 수많은 사람과 쉴 새 없이 연락을 주고받고, 리모델링을 위한 공부거리도 한가득인 삶이었습니다. 그래도 목표가 있었기에 전 부장은 꾸준히 포기하지 않고 해야 할 일을 해왔습니다.
전 부장은 지금까지 총 12번의 이사를 했다고 합니다. 올 가을 완공될 집에 들어가면 13번째 이사인 셈이죠. 12번의 이사를 하는 동안 많은 유혹이 있었지만, 당시 자금계획에 맞춰서 차근차근 한 단계씩 올라간 게 오늘을 가능하게 한 비결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집값이 얼마나 올랐다거나 아는 사람이 집을 샀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조급한 마음이 앞섭니다. 이러다 영영 뒤처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죠. 그럴때면 전인수 부장의 이야기를 되새기며 힘을 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