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50가지 풍경

38번째 리뷰_작가의 창

by 이기자

창은 시각과 기원을 표현한다. 작가의 창은 책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집필의 원초적 풍경'이다. 창 밖 풍경을 애써 무시하는 작가도 있고, 그 풍경을 적극적으로 마음에 담으려는 작가도 있다. 작가마다 창을 대하는 태도는 다를지언정, 창을 통해 세상을 대면하게 된다는 점만큼은 다를 수가 없다.

50가지 창이 있다. 50명의 작가가 작업하는 공간의 창이다. 마테오 페리콜리는 전 세계 작가 50명에게 받은 창 사진을 스케치로 바꿨다. 그의 손을 거친 작가들의 창은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이다. 여기에 작가들이 자신의 창에 대한 설명을 첨부했다. 우리가 작가의 창 밖 풍경을 엿본다고 해서 그의 글에 대해 알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작가의 시각 또는 그것에 최대한 가까이 다가간 지점'을 볼 수 있다. 앎은 여기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작가, 혹은 글쓰기에 관심 없는 이들에게도 좋은 책이 될 수 있다. 옮긴이의 말마따나 전 세계 40여개국의 일상 풍경을 접하는 것은 대리여정(vicarious journey)과도 같다. 나는 이 책을 통해 가보지 않은 터키 이스탄불의 풍경을 머릿속에 떠올릴 수 있게 됐다. 보스포루스해협과 마르마라 해로 열린 물길을 말이다. 자유를 꿈꾸던 소녀가 자란 레바논 베이루트의 바다와 소말리아의 바카라 시장, 이탈리아 로마의 성모마리아대성당 꼭대기 시계를 생생하게 그릴 수 있다. 침대에 누워 2시간 동안 이룬 성과 치고는 나쁘지 않다.


하지만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일상을 대하는 작가들의 마음가짐을 엿볼 수 있다는 점이다. 자칭 '작가지망생'인 내게 이런 기회는 놓칠 수 없다. 이름조차 생소한 작가들이 대부분이지만 이들의 일상과 발견은 전혀 생소하지 않았다. 그러한 일상과 발견을 새로운 언어로 빚어내는 작가들에게 경외감을 느끼게 된다.


이집트 카이로의 알라 알아스와니(Alaa Al Aswany)의 창 밖에는 도시 노동자들이 모여 사는 주택 건물이 놓여 있다. 그는 "가난에 맞서 싸우는 영웅적 노력이 눈에 들어온다"고 말한다. 그들은 갑자기 밀어닥친 고난의 파도에 잠겨버렸지만, 포기하지 않고 맞선다. 매일 이런 풍경을 바라보는 알라 알아스와니는 "가난은 비참하지만 그에 맞서다 보면 고귀함이 배어나온다. 그러므로 가난을 격렬하게 동정하지 않으려면 창을 열어 이웃집을 보기만 하면 된다"고 말한다.

DSC00671.JPG 이집트 카이로의 알라 알아스와니의 창 밖 풍경. 2층 빨랫줄에 걸린 옷들이 바람에 날린다. 그는 이 풍경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라고 설명한다.

독일 베를린의 다니엘 켈만(Daniel Kehlmann)의 창 밖에는 슈프레 강이 흐른다. 강을 따라 오가는 거대한 바지선에는 관광객들이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있다. 다니엘 켈만은 '눈물의 궁전'을 찍는 그 관광객들에게 날 선 말을 꺼낸다. 그는 "가장 중요한 건 사진에 담을 수 없다. 그건 베를린장벽이 놓였던, 보이지 않는 선이다. 최고의 카메라로도 부재는 포착할 수 없으니 관광객들은 쓸모없는 장비로 똑같은 창문이 줄지어 박힌, 새 건물의 회색빛 얼굴이나 찍어댈 뿐"이라고 말한다. 다니엘 켈만은 창을 등지고 앉아 일한다.


중국 베이징은 고층 아파트의 도시가 됐다. 경제성장의 속도 만큼이나 아파트가 올라가는 속도도 빠르다. 시 추안은 원룸아파트의 15층에서 일한다. 그는 창 너머의 건물들이 익숙해진 이후로는 좀처럼 밖을 내다보지 않는다고 고백한다. 그는 "15층 이상으로는 나무도 뻗어 올라오지 않으며 새도 서재 창을 찾아와 앉지 않는다. 내다보면 다리를 가로질러 건너는 자동차만 눈에 들어온다. 그게 전부"라고 쓸쓸히 말한다.

DSC00675.JPG 시 추안은 여섯권의 시집과 두권의 산문집을 낸 작가다. 그는 자신의 서재 창가에 더 이상 새들이 찾아오지 않는다고 말한다.

오스트레일리아 브루니 섬의 리처드 플래너건(Richard Flanagan)은 자연 속에 산다. 하지만 도시에서 지내는 다른 작가들보다 오히려 지구적 삶의 붕괴를 절실하게 느낀다. 우리가 자동차와 고층빌딩의 일상에 적응한 사이 그는 하얀 고무나무의 죽음과 큰 나방 크기의 새들의 멸종, 쇠푸른펭귄 무리의 실종을 경험했다. 우리에게 지구온난화는 신문 1면에서 볼 수 있는 단어에 불과하지만, 그에게 지구온난화는 마당의 친구를 죽이는 살인자다. 그의 창은 그 모든 죽음과 멸종과 실종의 목격자다. 리처드 플래너건은 "마지막 펭귄 무리가 6년째 돌아오지 않고 있으므로, 쇠푸른펭귄이 집 아래 둥지를 만들지 못하도록 막던 담장은 걷어버렸다. 아무도 돌아오지 않는 이유를 모르겠다. 담장은 사라지고 문만 남았다"고 적는다.


아프리카에 거주하는 작가의 창에는 새가 유독 많이 등장한다. 새는 우리 인간을 닮았다. 새를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이 또한 대리여정의 즐거움이다. 보츠와나나 소말리아, 케냐, 나이지리아를 내가 갈 수 있는 날이 올까. 책장을 넘기기 전에 그곳의 창 밖 풍경을 조금이라도 더 눈 안에 담아두려고 노력한다.


책을 다 읽고 나의 창을 열어보았다. 나는 나의 창 밖에서 사람을 본 적이 지금껏 단 한 번도 없다. 내가 지내는 원룸 오피스텔이 도시 외곽의 공업지역에 속한 관계로, 나의 창 밖에는 작은 공장과 오피스건물만이 들어온다. 조금 더 멀리는 전철에 전력을 공급하는 전깃줄도 있다. 더 멀리는 안양천 너머의 높은 오피스텔 건물이 있다. 사람의 존재는 가끔씩 술 취한 누군가가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댈 때나 인식할 따름이다. 혼자 집에 누워서 불을 끄고 있다 보면 취객의 고성방가가 반가울 때도 있다. 사람을 볼 수 없는 창이지만, 세상과의 연결통로라는 역할을 잊지 않고 종종 목소리라도 전달해주는 것 같다.


주말에 집에 있을 때면 해가 질 때 꼭 창을 열어둔다. 근처에 높은 건물이 많지 않아 4층 높이의 창에서도 해가 지는 모습을 온전히 볼 수 있다. 석양이 아름답다. 붉게 물들어가는 하늘을 보고 있으면 옷을 챙겨 입고 집 밖으로 나가고 싶어진다. 여행을 가고 싶어진다. 하지만 이내 갈 수 없음을 깨닫고 다시 창 밖을 바라본다. 공장들과 전철의 공중선과 석양을 보며 무엇을 쓸 것인지, 무엇을 쓰고 싶은지 고민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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