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크의 삶과 역사가의 책무

40번째 리뷰_마르크 블로크

by 이기자

1944년 6월 16일, 프랑스 리옹 교외에서 마르크 블로크는 28명의 프랑스 사람들과 함께 독일군의 일제사격을 받고 죽음을 맞이한다. 58세의 나이였다. 초로의 나이에 항독 레지스탕 운동에 뛰어든 역사가는 그렇게 죽었다. 살아남은 동지 조르주 아르트만은 마르크 블로크의 저서 '기묘한 패배' 서문에 이 순간을 묘사한다.


"그 신사 옆에서 16살 소년이 떨고 있었다. ‘아플 거야.’ 마르크 블로크는 부드럽게 소년의 팔을 잡고 한마디 했다. ‘아니야. 조금도 아프지 않아.’ 그러고는 ‘프랑스 만세!’를 외치며 맨 먼저 쓰러졌다.

이 소르본의 교수는 도시의 지하 저항운동이라는 ‘들개’와 같은 소모적인 생활을 놀라울 정도의 냉정을 견지한 채 우리와 함께 견뎌냈다. ‘만일 구사일생으로 살아남는다면 다시 강의를 시작하자.’ 그는 종종 우리에게 그런 말을 했다. 그는 나아가 모든 걸 인간의 척도로, 그리고 정신의 가치로 되돌리려 했다. 경보, 추적, 황급한 출발, 지하생활의 검거 사이에 그에게 필요했던 것은 흔히 얘기하듯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진정한 영역, 즉 사상과 예술의 장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역사가이자 대학교수이자 육군대위이자 레지스탕스였던 마르크 블로크. 그의 전기를 쓴 뒤물랭은 '역사가 된 역사가'라는 호칭으로 마르크 블로크를 설명한다.


역사, 그리고 역사가. 지난 1년 동안 한국 사회에서 역사만큼 경박스럽게 다뤄진 주제는 없을 것이다. 아니다. 애당초 경박스러운 것들은 언제나 그렇듯 경박스럽게 다뤄졌지만, 역사라는 고고한 주제가 이렇게 경박스럽게 다뤄진 적은 없었다. 역사학자들의 세미나 장소에서 욕설이 난무했고, 여러 역사학계의 거장들이 추락을 경험했다.


사람들은 이제 역사에 대해 다들 한 마디씩 한다. 역사란 우리가 배워 알고 있고, 삶에서 체득해 알고 있는 것이기에 모두에게 발언권이 있는 토론대회와 같다. 무제한의 토론. 역사가라는 진행자가 위신을 잃은 토론대회는 공허하고 지루할 뿐이다. 을미년의 이 모든 논란을 지켜보며 나는 역사란 무엇인가, 역사가의 역할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역사를 전공한 한 동생은 마르크 블로크를 읽어볼 것을 추천했다. 역사가 된 역사가라는 책 표지가 거부감을 일으켰지만, 그의 추천을 믿고 책을 읽어냈다.(읽어냈다는 것은 의지의 표현이다. 이 책은 비역사학도가 읽기에 굉장히 어렵다.)


학술적인 부분들을 소화하기에는 내게 서양사학, 특히 중세사학에 대한 기초지식이 너무 없었다. 미시사라는 개념을 얼핏 알고 있었을 뿐인 나에게 페브르와 블로크의 차이를 구분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공부하는 마음으로 아날학파의 역할과 중세사학, 프랑스 사학계의 지식 계보도를 조금씩 그려나가며 책을 읽었다.


마침내 내 마음속에 흐릿하게나마 완성된 블로크의 초상화는 인상적이었다. '단정한 얼굴에 반백의 머리칼, 안경 너머에는 날카로운 시선을 빛내며 왼손에는 서류 봉투를 또 한 손엔 지팡이를 쥐고 있는, 50살의 훈장 받은 신사'. 블로크는 자신의 삶을 살았다. 역사를 사랑했기에 역사가가 되었다.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학계와 지지자들과 틀어지는 일도 잦았다. 그의 육체는 게슈타포의 총성으로 사라졌지만, 그의 존재는 프랑스 역사학계에 의해 사라졌다. 잊혀진 역사가를 다시 불러낸 것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인 변화였다.

timthumb.png

블로크에게서는 현재에 대한 관심, 보통 사람들의 삶에 대한 사랑을 발견할 수 있다. 1960년대 이후 유럽과 서구사회의 지성, 문화적 흐름이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생각하면 블로크의 부활은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블로크의 목소리를 들어보자.


"계속해서 중세를 열심히 공부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한 제국 안의 제국으로 중세를 국한하는 것은 그만두자. 잘못 동결된 그 얼굴에서 벗어나 이제 그토록 젊은 영혼을 중세에 되돌려줘야 하지 않나?"라고 결론지었다. 역사가란 과거나 파고드는 시들어버린 중세사가가 아닌 것이다. 있는 그대로 인정되기를 원하는 순수한 갈망만이 있었을 뿐이다.

59p


"나는 역사가의 첫 번째 과제는 '삶'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라는 피렌 선생님의 말씀을 항상 생각했기 때문이다. 농촌에 관해 연구하면서 특히 내가 주의한 것은, 그리고 결국 나 자신을 설득하기에 이른 것은, 현재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절대 과거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농촌을 연구하는 역사가에게는 오래된 마법서 같은 알 수 없는 글들을 해독하는 능력보다 논밭을 유심히 바라보고 명상할 줄 아는 좋은 눈이 더 필요하다. 비평이나 관찰에도 이 같은 습관을 들여야 한다. 비극적 사건들을 연구하면서 나는 그 안에서 소소한 배우 역할이나마 하고자 애썼다."

80p


블로크의 삶은 현재를 살아가는 한국 사람들과 역사가들에게 하나의 이정표가 된다. 역사가 새로 쓰여지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블로크가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오랫동안 우리는 더 넓고 더 인간적인 역사학을 위해 함께 싸워왔습니다.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우리가 함께한 작업은 수많은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의 잘못 때문은 아닙니다. 우리는 잠시 불의한 운명에 짓눌려 있을 뿐입니다. 저는 우리가 예전처럼 공개적으로 그리고 자유롭게, 다시 힘을 모아 일할 수 있는 날이 오리라 진심으로 확신합니다."(역사를 위한 변명 中)



매거진의 이전글보이지 않는 무언가와 계산할 수 없는 목적지에 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