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신문에는 비로드와 중절모 광고도 있었다

47번째 리뷰_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

by 이기자

"먹고 살 것만 있으면 이놈의 짓을 오늘이라도 그만두겠다."


이것은 어떠한 월급쟁이치고 아니해본 적이 없는 말이며 그 실현을 바라지 아니하는 사람이 없는 것이다.

그들의 생활은 결코 넉넉치 못하다. 3십5원짜리 월급쟁이는 그것이 다달이 모자라니까 좀더 받았으면 하며 6십원이나 7십원짜리 월급쟁이를 부러워한다. 그러나 3십5원짜리 월급쟁이가 가령 5십원을 받게되면 그의 생활이 3십5원 시대보다 나아졌는가 하면 결코 그렇지 아니하다. 또 같은 월급쟁이로 6,7십원짜리 월급쟁이가 3십5원짜리보다 생활이 훨씬 나으냐 하면 그도 그렇지 않다.


그러므로 월급쟁이는 그가 월급쟁이인 이상 하늘에서 금덩어리가 뚝 떨어져 내려오기 전에는 숙명적으로 가난뱅이를 벗어나지 못한다- 운수가 좋아서 돈 많은 집으로 데릴사위나 들어가면 모르지만.

월급쟁이와 양복. "양복쟁이 거동보소. 양말 뒤꿈치 빵꾸가 났네." 우리가 길로 지나다니노라면 이러한 노래를 흔히 듣는다. 이것은 가난한 양복세민을 표현한 눈물겨운 풍평이다. 과연 월급쟁이로서 양복을 아니 입는 사람이 몇이나 되며 또 월급쟁이로서 양복생활을 하는 사람치고 양말 뒤꿈치에 빵꾸가 나지 아니하여 본 사람이 몇이나 되는가? 양복쟁이, 월급쟁이, 발뒤꿈치 빵꾸는 삼위일체다.

-월급쟁이의 철학, <혜성>, 1931년 8월호


1931년 어느 잡지에 실린 글이다. 월급 액수를 제외하고 보면 이 글이 1931년에 쓰인 글인지, 2016년에 쓰인 글인지 구분하기 힘들 정도다. 지금도 평일 저녁 무교동의 대폿집에 들어가면 술에 취해 "먹고 살 것만 있으면 이놈의 짓을 오늘이라도 그만두겠다"고 외치는 직장인이 태반이다. 쥐꼬리만큼 오르는 월급에 대한 불만, 양말 뒤꿈치에 난 빵꾸를 보며 오늘 저녁 회식 장소가 좌식인지 따져보는 일은 1931년이나 2016년이나 다를 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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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1920~30년대를 머나먼 과거라고 생각한다. 불과 100년도 지나지 않았지만, 우리에게 1920년대 서울의 모습은 낯설기만 하다. 가끔씩 그때를 배경으로 한 영화나 드라마 세트장, 그리고 비분강개에 젖은 독립운동의 현장들 정도만 떠올릴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1920년대는 지금도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는 현재의 연장선상이지, 결코 흘러가버린 과거가 아니다. <서울에 딴스홀을 許하라>는 1920년대와 1930년대의 서울 사람들의 일상을 파헤친다. 저자는 "현대가 시작될 무렵의 과거는 과거가 아니다. 어쩌면 잊힌 현대의 과거 속에 더 정확한 우리의 모습이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 현대가 이미 익숙한 현재보다 현대가 낯설었던 그곳에서는 우리의 현대적 일상이 보여주는 모든 것이 새롭다"고 말한다.


현재의 연장선상으로서의 과거. 1920년대의 모습들은 월급쟁이 신세를 한탄하는 글처럼 우리에게 익숙하기도 하고, 새롭기도 하다. 1926년 <별건곤> 1월호에 실린 글은 스포츠 세계에 만연한 부정행위를 지적하고 있다.


'스포츠맨'의 돈 있는 사람에게 노예화, 운동경기장이 도박판이 된대서야 좀 거북한 일이다. 홈런. 볼. 볼 한 개에 ?만원의 도박금이 대롱 매어 달리고 번연한 스트라이크볼을 '볼'이라고 선언하는 한 마디에 ?천원의 입씻기는 돈이 양복주머니 속으로 들어가게 되어서야, 기관 속에... 구역이 치밀어 오른다.

-라디오, 스포츠, 키네마, <별건곤>, 1926년 1월호


여성들의 단발머리에 대한 논쟁도 있었다. 봉건사회에서 막 벗어난 1920년대의 서울 사람들에게 여성의 단발머리는 단순히 머리카락을 자르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봉건사회를 지배했던 윤리의식과의 작별, 그리고 그 과정에서 피할 수 없었던 진통을 의미한다.


현대를 3S시대(스포-쓰, 스피-드, 쎈쓰)라고 부른 일이 있었지만 나는 차라리 우리들의 세기의 첫 삼십년은 단발시대라고 부르렵니다. <호리즌탈>, <싱글컷트>, <뽀이쉬컷> 등 단발의 여러 모양은 또한 단순과 직선을 사랑하는 근대감각의 세련된 표현이기도 합니다. 지금 당신이 단발하였다고 하는 것은 몇천년 동안 당신이 억매여 잇던 <하렘>에서 아주 작별을 고하고 푸른 하늘 아래 나왓다는 표적입니다.

-'미쓰 코리아'여 단발하시오, <동광>, 1932년 9월호


1920~30년대 서울은 치열한 변화의 공간이었다. 일본의 식민지배와 더불어 갑자기 밀려 들어온 서구 문명, 새로운 사상들은 사람들의 생활과 생각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학창 시절에 배웠던 이 시기는 독립운동의 시대였다. 하지만 이 책은 보통 사람들의 일상에 집중한다. <시일야방성대곡>의 비분강개한 흐느낌 대신 <황성신문>에 줄기차게 반복된 비로드와 중절모 광고를 주목한다. 윤동주 시인 같이 자신의 목숨을 던져가며 제국주의에 항거한 지식인도 있었지만, 이 책은 데카당에 빠져들고 집안에서 점지한 구식 아내를 버리고 연애결혼을 택한 룸펜들에 관심을 가진다.


어쩌면 일제강점기 보통 사람들의 삶은 구한말과 다를 바 없었을지 모른다. 그들에게 1920년대와 1930년대는 모던의 등장, 모던 보이와 모던 걸의 시대였지, 독립운동은 조금 먼 이야기였을지 모른다. 영화 <동주>의 줄거리 소개글은 "이름도, 언어도, 꿈도, 모든 것이 허락되지 않았던 일제강점기"라는 말로 시작하지만, 사실 보통 사람들에게는 구한말이나 일제강점기나 다를 것이 없이 억압받던 시대였다. 오히려 여성들에게 1920년대는 단발머리를 하고, 학교에서 정식으로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된 해방의 시기였다. 이런 변화에 대한 욕망과 변화로 인한 혼란이 뒤섞인 시대가 1920~30년대였다.


물론 일본은 이런 변화로 인한 혼란까지도 제국주의 지배에 활용했다. 서구 문명을 소개하는 박람회는 수탈의 현장을 가리기 위한 허울 좋은 가리개였고, 세계대전이 격화되면서 해방의 기쁨을 누렸던 새로운 직업군의 여성들(카페 마담, 여급, 배우...)은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


이 책은 우리에게 비극과 고통으로만 기억된 1920년대, 1930년대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심어준다. 우리는 그 시기를 일제강점기라고 이름 붙인 채 극복하고 넘어서야 할 과거로만 여긴다. 하지만 1920년대는 아직까지 계속되고 있는 현재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왕조가 몰락하고, 침략자들로부터 독립하고, 새로운 나라를 세우고, 헌법을 만들고... 이런 것들도 중요하지만, 직접 살아 숨 쉬며 변화를 온전히 몸으로 견뎌야 했던 사람들에 대한 관심도 필요하다.


현대가 시작될 무렵의 과거는 과거가 아니다. 어쩌면 잊혀진 현대의 과거 속에 더 정확한 우리의 모습이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 현대가 이미 익숙한 현재보다 현대가 낯설었던 그 곳에서는 우리의 현대적 일상이 보여주는 모든 것이 새롭다.

18p


현대성의 역사상의 한 시대로 고려하는 것보다 일종의 태도로 생각해보려 한다면, 1930년대의 '모던'은 서구적인 삶의 패턴을 지향하려는 의식적인 태도이자 행동방식이라고 말할 수 있다.

24p


'현대'라는 말이 사용된 것은 191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며 그 의미는 우리가 지금 현대라는 말을 그렇게 사용하듯이 '동시대'란 뜻을 지니고 있었다. 물론 그것은 단순히 동시대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당시의 현대란 '동시대' 그리고 '바깥쪽'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현대물리학'이라고 말하면 동시대 나라 밖에서 발전되어 온 새로운 물리학이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현대라는 말은 적어도 시간적으로는 존재하지만 조선에서 공간적으로는 부재하는 이율배반적인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 새로운 단어였다.

25p


"외국으로 돌아다닐 때에 소위 신풍조에 띠어 까닭없이 구식여자가 싫었었고 그래서 나의 일즉이 장가든 것을 매우 후회하였다" 현진건 <빈처>

현진건이 까닭없이 구식아내가 싫었던 것은 아니다. 그들의 현대화된 의식(연애결혼)은 맨 먼저 봉건적 상황(구식아내)과 부딪혀 갈등하고 있었던 것이다. 바로 봉건과 현대의 갈등은 지식인으로부터 그리고 그의 집안에서부터 균열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것은 곧 사회와의 균열로 이어졌다.

117p


표면적인 '새로운 직업군'의 여성들의 또다른 이면에는 비극적인 결말 또한 예고되어 있었다. 카페나 바와 같은 일본 스타일의 술집들, 그리고 거기서 종사했던 여성들은 후에 위안부라 불리는 강제된 성적 노예로 내몰린 상황과도 관련이 있다.(중략) 낙후된 경제적 상황에서 내몰린 식민지 조선여성들은 모던과 함께 열린 새로운 시대를 비극으로 마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223p


성곽은 도시를 폐쇄적으로 만들어 지켜내는 봉건사회의 단적인 흔적이다. 성곽허물기는 바로 '도성'이라는 봉건 도읍이 '도시'라는 근대로 변모하기 위한 허물벗음이었지만 그것은 곧바로 공간이 지녔던 권위의 해체작업이기도 한 것이다.

24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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