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번째 리뷰_러브 레플리카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겼다. 두 번째 대국은 이세돌의 완패였다. 이세돌은 소극적이었을지 언정 실수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중반 이후 무난하게 졌다. 모든 수가 알파고의 계산에 들어가 있었던 것처럼 무난하게 조금씩 밀리다가 결국 졌다. 알파고는 터미네이터의 스카이넷이 아니다. 인공지능이라는 표현을 쓰지만, 그보다는 수학적인 알고리즘에 가깝다. 스카이넷처럼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다. 굳이 비유하자면 세탁기라고 해야 하나. 전원을 키면 돌돌돌 드럼통을 돌리며 알아서 빨래를 해주는 똑똑한 세탁기. 세탁기가 나오면서 빨래 때문에 사람이 하루 종일 고생할 필요가 없어졌다. 인간의 삶이 편리해졌다는 의미다. 세탁기 때문에 인류가 파멸하지는 않았다. 알파고를 만든 하사비스도 "알파고는 메시가 아니라 실험실 조수"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세돌의 패배를, 알파고의 승리를 지켜보며 불안하고 혼란을 느낀다.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그 영역을 미지의 존재에게 침범당한 것 같은 불안감이다. 로봇에게 일자리를 뺏기지 않을까? 인공지능이 영화에서처럼 인류를 파멸로 몰고 가지 않을까? 종교는 어떻게 될 것인가? 질문들이 쏟아진다. 그리고 빠질 수 없는 질문이 하나 더 있다.
사십 대에 접어든 윤이형 작가의 새 소설집 <러브 레플리카>를 읽었다. 평소 소설에 SF나 판타지, 게임 등을 접목해 독창적인 세계관을 보여줬던 윤이형 작가는 이번 소설집에서도 자신의 스타일을 고수한다. 안드로이드 베이비시터가 등장하고, 자신의 육신을 불태우고 기계 몸에서 살기로 결심하는 과학자가 나오며, 외계 행성의 원주민들을 강제 이주시키는 일을 하는 소녀도 있다. 그의 소설은 언뜻 보면 알파고의 승리와 맞닿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알파고가 가져올 미래 사회를 칼로 잘라보면 윤이형 작가의 소설 속 세상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하지만 이 책에 실린 8편의 소설들을 읽다 보면 갑자기 아찔해지며 기시감을 느끼게 된다. 지금, 여기에 없는 가상의 세계라고 생각하며 읽었던 내용들이 어느 순간 내 삶의 한 부분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대니>에는 안드로이드 베이비시터와 손자를 돌보는 할머니 사이의 사랑을 다룬다. 안드로이드 베이비시터, 스물네 살 청년의 외모로 만들어진 안드로이드 베이비시터는 놀이터에서 함께 아이를 돌보던 예순아홉 살의 할머니에게 "아름다워"라고 말한다. 육아에 내몰린 할머니는 "나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늘 혼자 되뇌었다. 그러다 진짜 기계가 나타나 아름답다고 말한다. 외로움에 내몰린 그녀에게 "아름다워"라고 말한 것은 그녀의 딸도, 손자도, 친구들도 아닌 기계다.
"아름다워"라는 말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소설은 그 말이 안드로이드 소유자의 장난이었을 가능성을 언급한다. 그러나 끝까지 진실은 밝혀지지 않는다. 대니의 입에서 나온 그 말이 어떻게 시작됐는지는 온전히 독자의 판단에 맡겨진다. 나는 그 말이 '시선'에서 출발했으리라 믿는다. 대니는 할머니를 바라봤고 아름답다고 말했다. 어느 날 오후 놀이터에서 있었던 일이다. 대니는 할머니에게 고백한다. 자기와 함께 만들어진 다른 안드로이드 로봇들이 어디에 있는지 궁금하다고. 그러다 자신과 같은 일을 하는 할머니에게서 무언가 동질감을 느낀 것이다.
동질감, 연대, 바라보기, 이런 것에서 사랑이 시작되기도 한다. 지금, 여기에 존재했던 것들이다. 우리 인간의 영역이었던 것들이다. 그러나 우리가 조금씩 무난하게 잃어버리고 있는 것들이기도 하다. 할머니와 대니가 살았던 도시의 주거지역에서는 대화도 시선도 사라졌다. 대화는 불필요한 것으로 간주돼 엘리베이터의 공지사항란이 그 자리를 대신했고, 시선은 위험한 것으로 간주돼 사람들은 이웃과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면 고개를 숙인다.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것을 안드로이드 로봇은 아름답다고 여긴다.
변화는 어떤 사람들의 삶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고 윤이형 작가는 말한다. 알파고의 승리는 과학 발전의 특기할 만한 이정표가 되겠지만, 어떤 사람들의 삶에는 조금의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 사랑을 고백했다 거절당하고 불법체류자로 신고돼 추방당한 어느 외국인 노동자나, 무섭다는 이유만으로 외국인 노동자를 경찰에 신고하고 그의 자살 소식을 접한 뒤 허언증을 갖게 된 여대생은 알파고와 무관하게 사랑의 상실을 경험했다. 동남아로 놀러 간 딸을 대신해 손자를 돌보는 할머니나 폐지 줍는 삶이 싫어 박카스를 들고 탑골공원으로 향하는 할머니에게도 알파고는 아무 관계가 없다.
우리는 무난하게 조금씩 사랑을 잃어가고 있다. 로봇이든 인공지능이든 사람보다 계산이 빠르고 정확하다면, 사랑의 상실이 초래할 파국을 알 것이다. 로봇 시대에 오히려 사랑이 번창할 수 있다.
일어날 일은 결국 일어난다. 시간을 되감은 일은 어둠이 선사하는 환상 속에서나 가능하며 우리는 어떤 곳으로는 결코 돌아갈 수 없다, 고 윤이형 작가는 말한다. 그래도 아직 아주 늦지는 않았다.
윤이형 작가 인터뷰 http://h2.khan.co.kr/2016022509433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