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이 없어서 행복해요"

50번째 리뷰_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

by 이기자
한국의 미래를 절망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간단하다. 왜냐하면, 이곳저곳에 불안한 요소가 넘쳐 나고 있기 때문이다. 여러 지표를 통해 드러난 최악의 재정 적자, 저출산과 고령화로 인한 사회보장비용의 증가, 경직된 기업 조직과 노동 시장이 초래한 폐해......

이제껏 한국은 경제 성장만 하면 어떻게든 된다는 생각으로 계속 달려왔는데, 돌연 경제 성장이 멈춰 버린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주의의 전통이 없는 한국은 모두가 망연자실한 상태로, 그렇게 우두커니 서 있게 된 것이다. 나는 이런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민주주의를 희생하면서 경제 성장을 선택한 한국, 어쨌든 세계 유수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어쩌면 지금의 우리는 '그때' 잃어버린 것들을 벌충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몇 번을 읽어도 어색하지 않다. 2016년 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비판하는 글처럼 읽힌다. 하지만 이 글은 한국에 대한 글이 아니다. 2011년 일본에서 출간돼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에 나오는 내용이다. 물론 원문에는 위에 있는 글의 '한국'이 모두 '일본'이다. 일본 사회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해부한 책의 내용이 5년이 지난 지금 한국 사회에 조금의 어색함도 없이 딱 들어맞는다.


(일본 사회의) 젊은이들은 행복하다고 말한다. 일본 내각부에서 발표한 '국민 생활에 관한 여론 조사'에 의하면, 2010년 기준으로 20대의 70% 정도가 현재 생활에 '만족하고 있다.'고 답했다. 책에 따르면, 20대 남성의 65.9%, 20대 여성의 75.2%가 지금 생활에 만족한다고 답한 것이다.


저자인 후루이치 노리토시는 그 이유를 분석한다. 거품경제가 붕괴한 이후 일본 사회는 거대한 늪에 빠진 것처럼 활기를 잃어가고 있다. 저자는 일본을 '절망의 나라'라고 단정한다. 그런데 절망의 나라에서 앞으로 수십 년을 살아야 할 젊은이들은 오히려 생활에 만족하고 있다. 도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사회학을 전공한 저자는 젊은이들의 생각을 하나하나 파헤쳐 나간다.


"희망이 없으니 불행할 것도 없잖아요."

저자는 일본의 젊은이들이 희망을 버렸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이제 자신이 '이보다 더 행복해질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때, 인간은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하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즉, 인간은 미래에 더 큰 희망을 걸지 않게 됐을 때, "지금 행복하다." 혹은 "지금의 생활에 만족한다."라고 대답하게 되는 것이다."라고 설명한다.


일본의 젊은이들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접었다. 그들은 중국의 농민공과 다를 바가 없다. 중국의 대도시에서 하급 노동자로 일하는 농촌 출신의 농민공들은 생활 만족도가 매우 높다. 한 조사에 따르면 농민공의 85.6%가 지금 생활에 만족한다고 답했다. 수백만 원짜리 버버리 프로섬 코트가 날개 돋친 듯 팔리는 거리에서 시급 1500원을 받고 일하는 농민공들의 대다수가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이다. 농민공들의 생활수준은 매우 열악하지만, 그들은 자신이 떠나온 농촌에 비해 한결 쾌적한 생활을 즐기는 현재에 만족한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버버리 프로섬 코트를 살 수 없지만, 어차피 그런 것을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불행할 이유도 없다. 자포자기의 심정이 그들을 행복하게 한다. 일본의 젊은이들이 현재에 만족하고 행복하다고 대답하는 것도 중국의 농민공과 다를 바가 없다.


지금 당장 일본의 젊은이들이 가난한 것도 아니다. 가족이라는 최강의 인프라의 보호를 받으며 Wii나 PSP를 구입할 정도의 여유는 있다. 프리터들에 대한 일본 사회의 인식도 많이 좋아져 당장의 생계를 걱정해야 할 젊은이는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 2009년 일본 전체 아사자 수가 1656명이었는데 이중 20~30대는 19명에 불과(?)했다고 한다.


대신 일본의 젊은이들이 매달리는 것은 승인 욕구다. 젊은이들을 괴롭히는 것은 미래의 '빈곤'보다 현재의 '외로움'이다. 책에 따르면 일본의 18세부터 34세의 미혼 남녀 가운데 '이성의 연인이 있는 비율'은 남성이 27.2%, 여성은 36.7%에 불과했다. 책에 나오는 쓰무라 기쿠코는 저자와의 인터뷰에서 "얼굴이 못생겼다면 화장으로 고칠 수 있고, 일이 없으면 불경기라고 변명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친구가 없다는 사실만큼은 변명할 수가 없다. 친구가 없다면, 어려서부터 형성되어 온 모든 인격을 부정당하는 느낌을 받게 된다."고 말했다. 그래서 요즘의 젊은이들은 인터넷 공간에서 자신을 인정해줄 사람들을 찾아 나선다. 확실히 현실 세계보다 인터넷 공간이 관계를 맺기에 더 손쉽기 때문이다. 트위터나 소셜미디어의 댓글을 통해 소통하면서 '외로움'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하지만 이런 방식에 대해 저자는 비관적이다.

트위터나 소셜 미디어가 '사회를 바꾸는 도구'가 될 것이라고도 생각지 않는다. 그러한 것들이 개인의 승인 욕구를 충족시켜 주기 쉬운 매체라는 점을 생각하면, 오히려 그 기능은 '사회 변혁'과 반대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트위터에 마치 사회의식이 있는 것처럼 적당히 글을 올려 팔로워들의 칭찬을 유도하고, 많은 수의 리트윗에 만족한다. 사람들은 바로 그런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298p)
still_p01.jpg 프리터 족의 생활을 담은 일본 다큐멘터리 <조난 프리터>의 한 장면.

저자는 씁쓸하게 내뱉는다. 행복한 계급사회가 오는 게 아니냐고. 젊은이들의 행복은 뒤틀린 것이기에 불안할 수밖에 없다. 젊은이들은 행복하면서 불안하다. 저자의 마지막 독백은 그래서 씁쓸하다.

"돌아가야 할 '그때'도 없고, 눈앞에는 처리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다. 게다가 미래에는 '희망'조차 없다. 하지만 현재 상황에 달리 불만이 있는 것도 아니다. 왠지 행복하고, 왠지 불안하다."


책을 덮고 거울 속의 나를 보게 된다. 서른한 살에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나온 나의 삶은 어떤가. 행복한가? 행복하다. 불안한가? 불안하다. 나의 친구들은 어떤가. 나의 후배들과 나의 선배들은 또 어떤가.


지난해 조선비즈에서 진행한 20대 인식 조사 결과를 찾아봤다. 한국 사회의 20대 남녀 7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서 '본인의 삶에 만족하나요'라는 질문에 30.6%가 '만족한다'고 답했다. '10년 후 상황이 지금보다 좋아질까'라는 질문에는 64.6%가 '좋아질 것'이라고 답했다. 일본의 젊은이들과는 조금 다른 결과다. 한국의 젊은이들은 아직 미래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 당장의 삶에 만족한다고 답한 사람의 비율도 일본보다는 적게 나온 것일까.

1.jpg 20대 인식 조사 결과. 출처 조선비즈
2.jpg 20대 인식 조사 결과. 출처 조선비즈

일본과는 상황이 다르지만 5년 뒤, 10년 뒤에 일본을 똑같이 따라가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지금도 한국의 젊은이들은 거대한 장벽 앞에서 무력감을 느끼고 있다. 젊은이들은 술자리에서 수저 계급론을 입에 올리며 자조 섞인 웃음을 짓고 있고, 정치나 사회, 경제 문제에는 조금씩 흥미를 잃어가고 있다. 우리 손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깨달음이 점점 확산되고 있다.


책을 읽고 있는데 TV에서 2월 청년 실업률이 12.5%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아직도 희망을 버리지 못하고 있을까. 희망을 버리지 못했다면 지금의 현실이 더 가혹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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