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문화인류학자의 제주도 보고서

54번째 리뷰_제주도

by 이기자

제주도는 늘 새롭다. 여름의 제주와 겨울의 제주가 다르고, 바다와 산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또 다르다. 제주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기 위해 매년 많은 사람이 제주를 찾는다. 나 또한 한 해에 한 번씩은 꼭 제주에 간다. 작년에 동쪽에 머물렀다면, 올해는 서쪽에, 작년에 바다를 갔다면 올해는 산으로. 늘 제주의 새로운 얼굴을 찾아다닌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나. 제주에 대한 새로운 모습을 찾을 수 있는 곳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책이다. 서점의 여행 코너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책들이 아니다. 일본의 문화인류학자가 제주도의 모든 것을 일목요연하게 분석한 보고서다. 아마도 이 책을 읽기 전과 읽고 난 후에 제주가 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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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미 세이치


일본의 문화인류학자인 이즈미 세이치는 30년에 걸쳐 제주도를 분석한 결과를 <제주도>라는 한 권의 책에 담아냈다. 그는 1915년에 태어나 1935년 제주도를 처음 방문했다. 같은 해 12월에 이즈미 세이치는 경성제국대학 산악부 대원들과 함께 적설기의 한라산 정상에 오른다. 그 전까지는 공식적으로 적설기의 한라산 정상을 밟은 이가 없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산악부 대원 한 명이 눈보라 속에 조난을 당해 목숨을 잃었다. 이즈미 세이치는 이 사건을 계기로 전공을 국문학(일문학)에서 문화인류학으로 바꾸고, 제주도에 대해 탐구하기 시작했다.


<제주도>는 크게 3부로 나눠진다. 이즈미 세이치가 1930년대 제주도에 대해 탐구한 결과를 다룬 1부, 1950년대 일본 도쿄에 거주하고 있던 제주도인에 대한 연구를 담은 2부, 1965년 이즈미 세이치가 다시 제주도를 방문해 30년 간의 변화에 대해 적은 3부다. 이즈미 세이치가 제주도에 대한 연구를 시작한 1935년부터 다시 제주를 방문한 1965년까지 30년 동안은 모두가 알다시피 동아시아의 정치적 격랑기였다. 이 과정에서 이즈미 세이치도 연구자료의 상당 부분을 잃었다고 적고 있다. 그럼에도 이 책은 제주도를 다룬 책들 중에 단연 역작이라고 할 수 있다. 제주도에 대한 저자의 사랑이 느껴지는 책이다.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 이즈미 세이치에 대한 평이 나온다. 짧게 옮겨 본다.

이즈미 세이치가 30년에 걸쳐 써낸 <제주도>는 내게 큰 감동이었다. 그의 학자적 자세에 존경을 보내지 않을 수 없었고, 인류학적 사고의 총체적 시각이 갖는 인식의 힘이 무엇인지를 말해주는 듯했다.(중략) 이 책은 제주도에 관한 연구서를 넘어서 인류학적 조사 방법과 분석, 서술의 한 전범을 제시한 명저로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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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해녀는 만주까지 진출했다


<제주도>는 피상적으로 알고 있던 제주도에 대한 새로운 모습들을 제시해준다. 하나하나가 흥미롭고 재미있는 이야기들이지만, 그중에서도 제주 해녀에 대한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제주 해녀는 '잠녀'라고 불렀다. 이즈미 세이치의 조사에 따르면 1936년 잠녀가 나잠으로 얻은 연간 수입이 33만2797원으로 제주도 내 남자가 어업으로 벌어들인 총수입을 훨씬 능가했다. 잠녀들이 바다 속에서 주로 채취한 것은 해조류였다. 우뭇가사리, 미역, 감태, 모자반 등이다. 농사에 거름으로 쓰는 둠북도 주 채취물이었다. 제주 해녀 하면 지금은 소라나 전복 같은 패류를 주로 떠올리지만, 과거에는 채취물이 조금 달랐던 셈이다. 이즈미 세이치는 나잠이 농사와 관련이 있다고 분석했다.


일본에도 해녀가 있는데 제주 잠녀와 일본 해녀가 한 때 경쟁관계에 있었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강원도 부근에서 일본의 이세 지역 해녀들과 제주 잠녀가 치열하게 경쟁을 벌였는데 결국 제주 잠녀가 주도권을 잡았다는 것이다. 이즈미 세이치는 일본 해녀보다 제주 잠녀가 뛰어난 이유로 첫째 저임금에 비해 고능률, 둘째 저수온에 있어서의 강인함, 셋째 먼 바다까지 편대로 헤엄쳐 나가기 때문에 입어비가 덜 드는 점 등을 들었다.

제주 잠녀는 2월경에 20~30명이 한 조가 되어 전라남도로 나갔다고 한다. 거기서 차츰 동해안으로 북상해 청진이나 만주까지도 진출했다. 나중에 10월 무렵에 다시 제주도로 돌아오는 일정이었다고 한다. 이런 식으로 제주도 밖에서 나잠을 한 잠녀를 출가 잠녀라고 불렀는데, 1936년에만 3360명이 출가 잠녀에 등록했다. 제주 해녀의 강인함이 제주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던 셈이다.


제주 해녀의 일상에 대한 묘사도 흥미롭다. 제주도에서는 농번기와 해조류 채취기가 일치하기 때문에 잠녀들은 매일 바쁘게 일해야 했다. 잠녀들은 아침에 두 시간 정도 밭일을 하다가 누군가가 "물질하레 가자"고 하면 여남은 명이 함께 바다로 향한다. 한두 차례 잠수를 한 뒤에는 집으로 돌아와 점심을 먹고 다시 밭일을 한다. 오후 4시쯤 바다가 따뜻해지면 다시 누군가가 "물질하레 가자"고 말한다. 그러면 다시 잠녀들은 바다로 향한다.


힘든 노동을 견뎌야 하기 때문에 잠녀들은 나름의 휴가도 있었다. 잠녀들은 1년에 한 번이나 두 번 정도 가족을 떠나 약수터로 간다. 폭포수에 등을 두들겨 맞으면서 잠수병을 치료하는 것이다. 제주의 여러 곳 중에서도 성판악 계곡과 어승생악 계곡이 잠녀들이 자주 찾은 곳이라고 한다. 한 번에 1주일이나 2주일 정도 쉬고 나서 다시 일상에 복귀하는 생활을 50대까지 반복했다.


제주 잠녀는 조선시대의 육지 여성들과 달리 자체적인 경제력을 갖추고 있었다. 잠녀들의 모임인 부인회는 각 마을 대소사에 관여할 정도로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결혼을 하고 초야를 치를 때 제주도에서는 신부가 신랑의 옷을 벗겨주었다고 한다. 육지에서는 신랑이 신부의 옷을 벗겨주는 것이 관례인데, 제주도에서 여성의 지위가 남다르다는 점을 짐작할 수 있다.


제주 민요에 담긴 눈물


<제주도>에는 제주 지역의 민요가 적지 않게 등장한다. 이즈미 세이치가 직접 제주도를 돌아다니면서 각 마을의 민요를 채집한 것이다. 교래리에서 채집한 '마당질소리'는 도리깨질할 때의 노래다.

'어야도 홍 어야도 호야'

어야도 할 때 손을 들어 올리고 홍 할 때 내려치는 식이다.


제주도는 섬이지만 옛날부터 어업은 발달하지 않았다. 섬을 둘러싼 조류가 거센 편이라 사람들은 배를 타고 바다 멀리 나가는 것을 두려워했다. 바다에서 가족을 잃은 이들의 노래도 적지 않다.

이연 이연 이여도 하라
이연 말랑 가라 으흠 으흠
가시오름 강당장칩의
세콜방애 새마잠서라 으흠 으흠

이 노래는 제주 남쪽에 있는 '이여도'에 대한 이야기다. 제주에는 예전부터 이여도에 얽힌 이야기가 많았다. 대부분 배를 타고 떠난 남편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남편이 제발 이여도까지라도가서 살아 있었으면 하는 마음을 담기도 하고, 때로는 이여도에 대한 원망을 담고 있기도 하다.


제주도는 목장도 유명하다. 해안 마을에서는 잠녀의 나잠이 유명했고, 산촌에서는 목장을 통해 생활을 영위했다. 소나 말을 거느리고 가면서 부르는 노래들도 있다.

'이러 이러 이러 호'(소가 길을 벗어났을 때 똑바로 가라는 노래)

'호 호 호 호'(말더러 빨리 가라는 노래)


마소 떼를 모는 아이들에 대한 저자의 묘사가 아름답다.

"흰 구름이 오락가락하는 한라산과 이를 둘러싼 중대가리 같은 오름 기슭에 펼쳐지는 초원에서 '사낭소리'나 '속히 갑시다' 소리를 높이 부르며 수백 마리의 마소 떼를 거느리고 건너가는 소년소녀의 모습은 이 섬 아니면 볼 수 없는 아름다운 그림이다."(124p)


비단 이 부분 외에도 <제주도>에는 이즈미 세이치의 감성적인 묘사가 곳곳에 등장한다. 국문학(일문학)을 배웠던 것이 책에도 스며들어 있는 느낌이다. 일본인이지만 제주도에 대한 사랑만큼은 진짜였다는 것을 이런 묘사에서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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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를 정체시킨 비극 '4.3사건'


이즈미 세이치는 1965년에 다시 제주도를 찾는다. 1935년에 처음 제주를 방문한 지 30년 만이다. 이즈미 세이치는 책의 3부에서 제주 4.3사건을 언급한다. 그가 인용한 아사히신문의 1948년 10월 3일자 기사는 4.3사건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낮엔 대한민국, 밤엔 인민공화국'이라고들 했다. 게릴라는 밤에 부락을 습격, 식량을 약탈하고 젊은이를 끌고 가며 철수한다. 반항하면 죽였다. 이튿날 아침 이번엔 진압군이 온다. 살아남은 부락민은 거꾸로 게릴라와의 내통을 의심받아 시달렸다. 통모한 자는 사살되었다. 달아날 데가 없는 외딴 섬이다. 단결심은 굳다. 쌍방의 살상은 보다 심하고 보다 처참해져갈 뿐이었다.

4.3 사건으로 제주 도민의 4분의 1일 죽었다. 산촌과 양촌의 대부분이 불탔고, 교래리처럼 아예 마을이 해체된 곳도 있었다. 이즈미 세이치는 30년 간의 정치적 변동 시기를 제주도가 어떻게 견뎌왔는지 다시 최선을 다해 기록했다. 짧은 체류 기간에도 불구하고 경제적인 변화, 사회적인 변화를 자세하게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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