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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스통장을 해지했다.

by 빛나는 지금

2월에 귀국해서 한 달 동안 벌이가 없었다. 그런데 4 가족 비행기값을 신용카드로 계산했더니 할부로 해도 한 달 카드값만 200만 원 가까이 나왔다. 3월 복직을 하고 마음은 급한데 그렇다고 월급날짜를 앞당길 수도 없고 월급액수에 0을 하나 덧붙일 수도 없는 노릇.


아무리 엄마집에 일가족 네 명이 더부살이를 한다 해도 그래도 사람이 넷이고 아이들도 어른들도 다 바깥활동을 하는데 어떻게 돈이 안 드는가... 결국 주거래은행에서 300만 원 한도의 마이너스 통장을 개설했다.


마치 막혀있던 물이 뚫어놓은 파이프 관을 통해 쫘악하고 빠져나가듯 마이너스 통장을 여니 그동안 막혀있던 결재 항목들이 스르르 사라졌다. 한숨은 돌렸다.

하지만 마이너스 통장은 개시하면서부터 짐이었다.


예, 적금 금리는 3% 왔다 갔다 하는데 마이너스 통장 대출 금리는 3.1 % 이상에 어째 된 일인지 25년이 넘어가는 로열고객임에도 -0.1% 로 우대금리는 깎여있었다. 한 달에 12,000원 이상씩 꼬박꼬박 나가는 이자도 아깝고 마이너스 통장이 주 생활비계좌로 연결되어 있다 보니 한 달 생활비가 제대로 측정도 되지 않았다. 300만 원에서 얼마나 썼는가가 우리 가족 생활비의 기준이 아닌데 혼용이 되어 빚은 빚대로 생활비는 생활비대로 말끔하게 구분이 되지 못했다.



무엇보다 내 마음이 불편했다.

마이너스 통장을 쓰면 항상 통장계좌에 -000원으로 찍힌다.

이 숫자가 오르락내리락하는 모습을 보며 한 달을 보내고 두 달을 보냈다. 급하게 막아야 했던 결제 명세서를 해결하는데 오롯이 300만 원 가까이를 다 쓰고 나니 이후로 월급에서 생활비를 이체해서 통장을 채워도 웬걸... 통장은 늘 마이너스 상태였다. 마이너스 금액이 줄어들었다가 다시 늘어났다가 하면서 한 달 생활을 하다 보니 인생이 마이너스 같아서 마음이 늘 편치 못했다.


그래서 오늘 그동안 복직하면서 모아둔 돈을 다 모아서 마이너스 통장 300만 원을 한 번에 상환해 버렸다.

외환 통장에 환차익을 기대하고 넣어둔 돈도 다 꺼냈다. 무슨 거창한 환테크를 해본 건 아니지만 작년까지 달러강세일 때는 외환통장에 넣어둔 돈이 하루단위로 몇만 원까지도 불어나는 것을 보기도 했기에 원화로 두는 것보다 달러를 틈틈이 사두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다. 액수의 규모 자체가 작으니 환차익도 지극히 소소했지만 나름 일상에서 시도해 볼 수 있는 작은 투자였다. 그런데 1400원대에 샀던 달러가 이제는 1350원까지 떨어져서 처음 구매하면서 넣은 원화가치에서 오히려 더 손해를 보게 되었다. 그래도 그냥 환전했다. 액수 자체가 크지 않아서 환전할 수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얼른 이 마이너스 통장이라는 짐덩어리부터 해결하고 싶었다.


좋은 대출도 있고 나쁜 대출도 있다고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출은 좋은 레버리지 역할을 해준다고 한다.


자꾸 마이너스만 찍어대는 마이너스 통장은 좋은 대출은 아니다.

그래도 급할 때 숨 쉴 구멍을 뚫어줬으니 유용하긴 했다.


그렇게 조금씩 모아가던 돈을 다 모아서 마이너스 통장을 해지하고 나니

우리 집 생활비 통장에 17000원이 남았다.


그래도 참 좋다.


드디어 플러스가 된 거다.


덕분에 내 마음도 플러스가 되었다.


투자도 좋고 재테크도 좋지만 일단은 현재 나의 레벨은 우리집 가계를 잘 관리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하는 수준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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