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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의 밥벌이는 멋있고 워킹맘의 밥벌이는 치열하다.

by 빛나는 지금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직장 근무를 시작했다.


매일 부모님께 한 달에 한번 용돈만 받아 쓰다가

근무하고 며칠도 지나지 않아 내 통장에 찍힌 첫 월급은 생경하고 뿌듯했다.


그렇게 시작한 나의 '밥'벌이는 계절을 통과하고 삶의 시즌을 달리하며 외양은 여전히 비슷하나 그 무게와 가치는 사뭇 달라지고 있다.


싱글일 때 월급은 나의 자랑이고 자존심 같은 것이었다.

돈의 액수가 문제가 아니었다. 공무원 신분에서 호봉 따라 올라가는 금액이니 주변과 크게 비교할 것이 없으니 나에게만큼은 차고 넘치는 큰 액수였고

매달 꼬박꼬박 들어오는 그 정기적인 공급이 주는 안정감은 나만 느끼는 여유를 넘어 주변의 부러움을 살 수 있는 일종의 후광효과도 더해졌다.


나는 부지런히 옷도 사고 구두도 사고 화장품도 샀다. 주말이면 친구들을 만나 분위기 좋은 커피숍을 찾아 그 주에 새로 산 옷을 입고 할부로 구입한 가방을 옆에 두고 그렇게 싱글 라이프를 누렸다.


소개팅을 나가서 "교사"라고 나 자신을 소개할 때면 은근히 상대남 또한 나의 안정적인 직업, 즉 월급에 큰 호감을 보인다는 것을 알았기에 나의 밥벌이는 내가 당당하게 상대를 재고 또 재는 얄팍한 무게추이기도 했다.


어릴 때 보아온 부모님의 모습을 따라 적금 등 저축을 꾸준히 하기는 했지만 2~3년 단위로 해외여행이다, 연수다 하면서 모아 둔 큰 목돈을 그렇게 별생각 없이 썼다.


30대 초반 즈음 같이 근무한 나보다 나이가 10살 정도 많았던 싱글 여선생님은 진지하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 야무지게 돈 모아서 자기 이름으로 된 아파트 한채, 자기 명의 차 한 대는 있어야 한다."


부모님 대신 가족용으로 모는 소형차는 있으니 되었고

아파트는 없었지만 결혼하게 되면 당연히(?) 미래의 남편이 준비할 몫이라 여겼기에

웃고 넘겼던 그 말을 지금은 가끔 진지하게 떠올려본다.


그렇게 마음껏 나만을 위해 돈을 쓰고 나를 나타내는 과시효과로도 손색이 없었던

그 돈벌이를 결혼하면서 그만두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교사라는 직업의 안정성은 그 자체로 큰 장점이자 또 하나의 큰 프레임이기도 해서 이 직업을 그만둔다는 생각은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다만 결혼하고서 내가 우리 가족의 경제를 담당하는 "외벌이"가 되어

나만을 위해 오롯이 존재하던 그 월급이 이제는 남편과 두 아이들 더 나아가 친정, 시댁으로 확장되는 가족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는 존재가 되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 다이내믹한 관계를 결혼 10년 차에야 조금씩 직시하고 있으니 참 늦다.


일과 돈. 돈과 삶.


직업과 삶의 관계는 연한이 있다. 길어도 50 중반이면 교사들도 명퇴를 많이 한다.

그러나 돈과 삶의 관계는 연한이 없다.


그리고 그 관계는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낳고 그 아이들이 커갈 수 록 그리고 내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 절절하고 치열해지고 있다.


힘들고 고민도 더 많아졌다.

그런데 싱글때와는 다른 맛이 나기 시작한다.


"어디 한번 해보자." 같은 파이터 정신도 생기고 이거 아니면 안 되는구나 싶으니

돌아갈 다리를 끊어버린 자의 결연함도 좀 생긴다.


그래. 어디 한번 해보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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