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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급한 사람. 느긋해지고 싶으시죠?

by 빛나는 지금

우리 집에서 가장 조급한 사람은 나다.

사실 워킹맘은 다분히 환경에 의해 전보다 더 조급해지기가 쉽다.


나보다 한 살 많은 언니는 서른이 되기 직전에 결혼을 하고 곧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는데 지금까지도 열심히 일하는 워킹맘이다. 언니가 한창 어린 두 조카를 키우랴, 일하랴 지금보다 훨씬 더 숨 가쁘게 살아갈 때 언니가 제일 많이 했던 말은 "빨리 해라, 얼른 해라."였다. 옆에서 지켜보는 내가 덩달아 마음이 바빠질 만큼, 그리고 아직 손이 여물지 못한 어린 조카들이 그런 엄마에게 등이 떠밀리면서 재촉당하는 것 같아 가끔 안되어 보일만큼 언니는 늘 본인부터 바빴고 가족들을 재촉하는 모습이었다. 그때는 잘 몰랐다. 그럴 수밖에 없는 언니의 속사정을.


이제 내가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그때 언니와 비슷한 하루하루를 보내보니 알겠다.

어린아이들 키우는 워킹맘은 웬만한 자기 성찰과 절제 없이는 저절로 조급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워킹맘은 가족수만큼 챙겨야 할 사람도, 일도, 물건도, 일정도 많아지는 사람이다.

아이가 하나면 남편 포함 셋의 분량을, 둘이면 넷의 분량을 뛰어야 한다.


아침에 눈을 뜨면 아침밥을 챙기고 간단하게나마 집정리도 해놓고 아이들 입을 옷과 가방도 챙겨놓고 그리고 시계의 분침을 초조하게 바라보며 마지막으로 자신의 출근준비를 부랴 부랴한다.

머리를 빗으며 둘째 양말을 신기고 얼굴에 파운데이션을 찍어 바르며 바지를 입힌다.


일어나서 한 순간도 앉지 않고 총총대며 부산하게 움직였는데도

유치원 차가 아파트 앞에 도착할 때보다 늘 늦어서 차량 도우미 선생님께 죄송한 사람이다.


한꺼번에 한 장소에서 다 같이 출발하면 좋으련만, 첫째와 둘째는 완전 반대 지점에서 스쿨버스를 탄다. 그리고 시간도 다르다. 둘을 다 태워 보내기까지 20여 분간 동분서주하다 보면 남편이 혼연일체로 같이 뛰어준다 해도 늘 동동거리는 게 워킹맘이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한 달을 보내고 아이들이 자란 시간만큼 워킹맘이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어떻게든 관리해 보려고 애쓴 만큼 조급해지기가 쉽다.


그런 워킹맘이 느긋해질 수 있는 길이 과연 있을까?


불가능한 것이 아니니 나는 그 해답을 "미니멀 라이프"에서 찾아가고 있다.


미니멀 라이프를 진행하며 바로 내 주변에서 내 손과 내 발이 닿는 만큼 비우고 정리를 하면서 드디어 내가 통제할 수 있고 만들어 낼 수 있는 영역을 발견하게 된다. 쓸고 닦으니 바로 깨끗해지고 치우고 버리니 그만큼 단정한 공간이 바로 눈앞에 나타난다. 집안 곳곳에 정리가 차근히 이루어져 가며 늘 나의 하루가 아닌 가족의 하루를 살아내느라 바빴던 워킹맘에게 내 손이 정직하게 만들어내는 나의 공간, 나의 집이 점점 더 분명한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느끼는 자기 효능감은 엄청나다.


비록 오늘도 유치원 등원 버스보다 늦게 도착해서 헉헉거렸어도 미처 끝내지 못한 메이크업을 출근길에 부랴부랴 하느라 양쪽 눈썹의 모얌이 달라져있어도, 아침에 설거지하느라 살짝 튄 물기가 깨끗이 빨아 입은 티셔츠에 선명한 자국을 남겼다 할지라도 이제는 예전처럼 조급하게 화나 짜증이 밀려오지 않는다.


왜냐면 이제 나는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스스로 내 공간을 정리하고 좀 더 단정하고 쾌적한 공간으로 재창조해낼 수 있는 충분한 역량이 있는 존재라는 것을. 그리고 이 역량은 단순히 집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나의 직장 업무, 인간관계, 돈, 가족관계 더 나아가 내 삶의 전 영역에서 발휘될 수 있는 놀라운 슈퍼파워라는 자기 신뢰라는 것을.


그러면 짜증이 덜 난다. 이쯤이야. 별 것 아니야.라는 마음의 여유부터 이 문제는 이렇게 풀면 차근히 해결이 되겠구나라는 상황을 그 상황만큼 바라볼 수 있는 객관적 인식도 생긴다.


원치 않았지만 저절로 조급해지는 우리 엄마들.

괜찮아요.

오늘 딱 이 만큼만 정리하면서 비워보면 알게 돼요. 오늘도 괜찮은 하루라는 것을.

그러면 그만큼 느슨해지고 느긋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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