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를 한번 나갔다가 들어오니 물건이 없었다. 그 와중에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해야 했고 아이들 키우는 4인 가족에게 당장 필요한 물건들이 급해지는 상황이었다. 역시나 물건을 찾으니 금방 물건은 불어나기 시작했다. 옷도 가방도 주방도구 및 이불도 치약 비누 같은 생필품까지 금방 해결이 되었다. 이런 경험을 몇 차례 하다 보니 내가 내린 나름의 결론은 이렇다.
1. 우리는 정말 풍족한 세상에 살고 있다. 부와 빈의 차이의 정도와 양태는 더 커지고 다양해질지 모르지만 본인 혹은 함께 하는 가족의 삶의 방식에 대한 기준만 분명하다면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최소 혹은 그 이상의 물건은 거의 공짜로도 충분히 구할 수 있는 세상을 살고 있다.
2. 물건을 들이기는 쉬워도 내보내기는 쉽지 않다. 물건은 신기하다. 한번 들이기 시작하면 그 주변으로 빠르게 다른 물건들이 따라붙기 시작한다. 이유는 뭘까? 아마도 빈 공간을 무언가로 계속 채우고자 하는 우리 인간의 본능에 가까운 습성이 첫 번째 이유일 수 있겠다. 두 번째는 필요하다 싶으면 두 번 고민하기보다는 그 필요에 맞는 물건을 구매하는 소비 습관이지 않을까.
자칭 나 자신을 미니멀리스트라고 부르며 물건을 비우고 줄이기 위해 계속해서 마음을 쓰고 노력하고 있지만 나 역시도 여전히 일상에서 어떤 필요가 생기면 다른 고민 없이 그 필요를 당장 해결해 줄 것 같은 물건을 찾고 구매하는 일부터 시작하는 이러한 소비 습관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다.
이번에 이사하면서 구매하거나 준비한 물건 중에 후회한 물건들이 있다.
1. 비누 거치대: 싱크대 주변에 비누를 놔둘 공간이 마땅치 않아 부착형 비누 거치대를 구매해서 비누를 놔두고 쓰고 있다. 잘 쓰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역시 물건은 크든 작든 그만큼의 공간을 차지하고 또한 유지하기 위한 노력과 시간이 든다. 거치대를 싱크볼 주변에 붙여두었는데 그 공간만큼은 수도꼭지를 돌릴 수가 없다. 그리고 공중에 띄워 둔 것까지는 좋은데 비누를 쓰고 다시 올려두면 뚝뚝하고 비눗물이 떨어져서 그 아랫부분을 연신 닦아줘야 한다.
살짝 무른 비누 뒤쪽에 플라스틱 음료수 캡을 꾹 끼워두면 따로 비누 거치대 없이도 바닥에 두지 않고 비누를 비치할 수 있다. 내가 한창 잘 썼던 방법이다. 왜 이번에는 그 유용한 방법을 기억하지 못하고 성급하게 거치대부터 샀을까. 후회된다.
2. 제습기: 이사하자마자 장마 끝 무더위 시작이었다. 에어컨 없이 선풍기로만 더위를 막아보자니 쉽지 않았다. 더운 것 그 자체보다는 눅눅한 열대성 습기가 더 사람을 지치게 하는 법이라 부랴 부랴 중고 마켓 플랫폼으로 제습기 검색을 시작했다. 그리고 5만 원에 15L 용량의 제습기를 구매해서 초반에는 잘 썼다. 그런데 제습기는 뜨끈한 바람으로 제습을 한다. 그리고 선풍기를 돌리면서 창문을 다 열고 제습기를 돌려서 더 그렇겠지만 아무리 제습을 해도 공기 중의 눅눅한 습기는 그다지 줄어들지 않았다. 사실 체감적으로 제습의 효과를 그다지 경험하지 못했다.
아... 이래서 결혼선물로 받은 제습기를 그때도 중고마켓으로 팔았었다. 왜 그 기억이 이제야 떠오르는가. 그때도 제습기를 돌리니 뜨거운 바람이 나와서 오히려 더 더운 것 같았고 공기 중의 제습 효과가 느껴지지도 않았고 별 효과는 모르겠는데 제습기는 크고 무겁기만 했다. 그래서 그때도 5만 원에 제습기를 팔았었는데...
사람이 비슷한 경험을 했으면 배우는 게 분명 있을 텐데 나는 똑같은 일을 반복하고 후회했다.
물론 특정 공간에 제습기를 바짝 돌려주면 습기는 줄어들고 훨씬 쾌적한 공기질이 되리라 본다. 하지만 우리 집은 드레스룸이 따로 있어서 그 공간만 틀거나 빨래를 말리기 위해 틀어주거나 할 필요가 없다. 사방팔방 문이란 문은 다 열어놓고 여름을 나는데 제습기가 밤낮으로 돌아가도 습할 때는 그저 습할 뿐이다.
장대비가 내리는 날. 우두커니 거실 한 구석에 서있는 제습기를 보면서 의례히 느꼈던 답답함이 찾아왔다. 물건은 쓰임이 없으면 의미가 없다. 쓰일 수 있는 곳으로 보내자. 다행히 그 제습기를 처음 구매했던 중고마켓에 그대로 올리니 빠르게 팔려나갔다.
3. 접이식 좌식의자
우리 집에는 소파가 없다. 식탁도 따로 없다. 밥은 좌식 밥상에 차려서 먹는다. 딱딱한 방바닥에 앉고 싶지는 않아 친정집에서 접이식 좌식의자를 챙겨 왔다. 물건의 쓰임은 살아봐야 아는 경우가 많다. 실제 바닥에 앉아 있을 시간은 많지 않았다. 집에서 종종거리며 움직이다가 저녁 식사 시간에 온 가족과 둘러앉아 밥상에서 밥을 먹는데 그때도 주로 그냥 바닥에 앉아 먹게 된다. 벽 한쪽에 놔둔 좌식의자를 들어서 옮겼다가 다시 제자리에 갖다 놓는 것이 점점 일이 되니 나중에는 안 하게 되었다. 쓰임은 없는데 청소 때마다 그 좌식 의자를 들어서 청소기를 밀고 다시 내려놓는 수고로움이 반복되니 나에게 좌식 의자는 유용한 물건이 아니라 짐이 되어 가고 있다.
다행히 친정엄마가 다시 쓰신다고 하니 다음 주에는 갖다 드리려고 한다.
미니멀 라이프는 물건이 없는 삶이 아니라 필요한 물건을 언제나 유용하게 잘 쓰고 관리하는 삶이다.
나에게 그리고 우리 가족에게 언제나 잘 쓰이는 물건은 가격을 떠나 그 자체로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다. 늘 잘 쓰이는 물건은 관리도 잘 되는 법이라 소모품이 아닌 이상 반질 반질 윤이 나고 우리의 손길을 타서 따뜻하고 정겹게도 느껴진다. 나와 잘 맞는 물건은 볼 때마다 쓸 때마다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집 전체 분위기를 안정감 있게 만들어준다. 물건을 사용할 때마다 느끼는 만족감은 잘 구매하고 소비하고 있다는 긍정적인 평가로 이어지고 그러한 결정을 내린 나 자신에게도 한결 뿌듯함을 선사한다.
미니멀 라이프는 물건을 잘 고르고 구매하는 삶이다. 그리고 그 물건이 최대의 효용을 다하도록 잘 관리하고 유지하는 삶이다. 그 물건을 통해 내가 유익을 얻고 그 물건도 쓰임을 다함으로 그것의 가치를 다 충족시킨다.
사고 후회하는 물건들을 통해 나의 미니멀 라이프는 어떠해야 하는지 배워간다.
이렇게 배워가다 보면 점점 더 내 주변에는 쓰이지 못하는 물건은 없어지고 나와 더불어 세월이 더해갈수록 그 쓰임이 빛을 발하는 물건들만 남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