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 라이프를 진행하면서 깨닫는 사실 하나는 물건 비우기가 그나마 가장 쉽다는 것이다. 쓰지 않는 물건과 옷을 고르고 비우는 과정은 미니멀 라이프의 단계에서 시작과도 같다. 점점 진행의 단계가 올라가다 보면 이제 무형의 것들과 조우하게 된다. 인간관계, 감정, 생각, 과거의 상처 등. 결국 본질에 더 가까이 가기 위해 계속해서 불필요하고 의미 없는 것들을 취사선택하고 가지 쳐야 하는 과정은 평생 이어지게 된다.
그리고 현재 나에게 그 골리앗은 "돈"이다.
월세를 구하는 과정에서 돈에 대한 심리적 스트레스가 엄청났다.
보증금을 마련하기 위해 일찌감치 대출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막상 이사날짜에 맞추어 전세 자금 대출을 받으려고 주거래 은행을 살피니 갑자기 주택 대출에 대한 정부 규제가 바뀌어서 일시중지라고 하지 않는가. 아니 은행 대출만 믿고 있었는데 어떻게든 이자를 덜 내보려고 이삿날에 딱 맞추어서 대출을 받으려고 대기 중이었는데 갑자기 일시 중지라니. 우리는 당장 내일 잔금을 치르고 이사를 해야 하는 상황인데 돈을 구할 길이 사방으로 다 막혀버린 것이다.
결국 전혀 생각도 하지 않았던 장기 카드 대출을 받았다. 참 돈 빌리기 좋은 세상이다. 그만큼 빚 권하는 사회에서 버튼 몇 번으로 몇 백만 원을 급하게 빌렸다. 이자만 한 달에 9만 원이 넘는다는 것을 확인하면서도 급하니 다른 도리가 없었다.
한 달 전 마이너스 통장을 해결하고 한숨 돌리는가 했는데 다시 목돈을 대출받고 보니 이전보다 더 큰 돌덩이 하나가 어깨에 올라앉은 느낌이었다.
갚을 수 있는 상환능력과는 별개로 빚은 엄청난 짐이다. 그리고 그 상환 능력을 은행이나 대출기관에서는 흔히 나의 직업과 이전 대출 이력으로 판단하는데 그 기준은 굉장히 객관적인 듯 하지만 또한 한 사람의 삶에서 얼마나 취약하고 바뀌기 쉬운 것이기도 한가. 당장 내일 일을 예측할 수가 없는데 이 큰돈을 빌린 후 20~30여 년에 걸쳐 원리금으로 단 한 달도 빠짐없이 꼬박꼬박 충실히 상환할 수 있으리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그래서 은행은 갚지 못하는 경우를 대비해 다양한 법적 장치들을 이미 마련해 두었는데 빌려야 하는 "을"인 우리는 갚을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에 의존해서 당장의 필요 때문에 목돈을 빌린다. 그렇게 빌리라고 부추기고 권장하는 분위기에 살다 보니 그리고 빌리는 과정도 크게 어렵지 않다 보니 일단 빌리고 본다.
그리고 빚이라는 짐을 짊어지고 하루를 살아간다.
카드대출을 받고 급하게 월세 보증금을 치른 다음 나는 빠르게 다른 대출기관을 물색했다.
더 낮은 이자로 빌릴 수 있는 기관을 찾아 카드사에서 빌린 만큼 다시 빌려서 카드 대출을 일단 갚고 낮은 이자로 차근차근히 갚아나갈 계획이었다.
이자를 꼼곰하게 다 계산해보지는 않았지만 카드사가 연 8% 가까이 ( 그나마 이벤트 기간이라고 13%에서 할인해 준 것임) 다른 대출기관은 4%대였다. 다시 이런저런 서류를 구비해서 대출을 준비하려고 알아보는데 아... 그 기분이 참 씁쓸했다. 대출에 대출을 이어가며 나의 시간과 돈이 이렇게 빠져나간다는 것이 참 아까웠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창 미니멀 라이프를 가열하게 진행하며 무질서하게 널브러져 있는 정리되지 않은 공간을 마주할 때 예의 느꼈던 그 짜증과 두려움이 같이 몰려왔다.
무질서하게 어질러진 공간은 그 자체로 부정적인 기운을 내뿜는다. 이대로 막무가내로 더 흐트러져버리려고 하는 자포자기가 느껴진다. 아름답지 못한 것을 대할 때 받는 시각적 스트레스는 짜증을 불러오고 이대로 더 나아지기보다는 나빠질 것이라는 두려움이 슬금슬금 찾아든다.
나에게는 빚을 내고 또 그 빚을 갚기 위해 다른 대출을 알아보는 모든 과정이 그러했다.
짜증이 났고 두려웠다. 합리적인 이유로 나 자신을 설득해 가며 점점 더 빚 구덩이 안으로 들어갈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 기분으로는 이성적인 판단과 계산을 하며 다음 일을 진행할 수 없다.
나에게는 하나의 선택만이 남았다. "이 빚을 최대한 빨리 갚아야 한다."
차근히 저축을 해서 목돈을 모아 갚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몇 달의 시간 동안 조금씩 안에서부터 말라 들어갈 나 자신을 알기에 그 방법을 선택할 수 없었다.
눈을 부릅뜨고 주변을 살폈다.
아이들 앞으로 몇 년간 들어 두었던 적금을 깼다. 월급날, 한 달 월급에서 3/4를 다 끌어다 모았다. 월급의 80% 이상을 끌어왔으니 남은 한 달 어떻게 생활이 가능할지 잘 모르겠지만 일단 나에게는 이 빚을 통과해야 다음 한 달이라는 시간도 가능했다. 김치에 물에 만 밥을 먹겠노라 하는 심정으로 다 끌어모았다. 필요 없는 가전은 중고마켓에 올려서 몇만 원이라도 보탰다.
그렇게 빚을 갚았다. 상환하면서 두 번을 거푸 물었다. "이제 남은 돈 없지요?" "네 고객님. 없습니다."
그 확인을 두 번이나 거듭해 받고서야 나는 빚이라는 짐을 어깨에서 내려놓았다.
그 순간만큼은 나 스스로에게 "참 잘했다. 애썼다"라는 말을 해주고 싶었다.
빚 권하는 사회. 빚 내기 딱 좋은 사회. 그 안에서 시스템의 부품처럼 살기를 거부해야 미니멀 라이프가 가능할 것 같다. 결국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으냐고 다시 묻는다. 그 답을 스스로 얻고 그 답대로 살기 위해 거슬러 몸부림치며 살아야 내가 꿈꾸는, 그리고 나에게 점점 더 큰 자유를 주는 '미니멀 라이프'의 모습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 같다.
빚이라는 짐과 한바탕 전투를 치르고 아주 조금은 내면이 단단해진 듯도 하다.
"내 돈으로 산다. 절대 남의 돈으로 살지 않는다."라는 그 단순한 전제를 마음에 새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