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영어를 좋아했고 영어교육과에 진학해서 영어교사가 되었다. 영어교사가 되고 22년 차, 이 직업이 나에게 준 혜택은 경제적인 부분 외에 크게 두 가지이다.
1. 해외에 나갈 수 있었다.
나는 그렇게 활동적인 사람도 아니고 대인관계를 즐기는 쪽도 아니다. 심심하고 단조로운 것도 금세 피곤해하지만 급격한 환경변화도 꺼린다. 외부활동이 있으면 무조건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야 재충전이 되는 내향성이 강하며 디테일한 부분을 잘 살피고 매뉴얼대로 일해야 하는 공무적 행정업무에는 취약하다. 경직되어 보이지만 실제는 틀 안에 시키는 대로 하는 것에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가지는 스타일이기도 하다. 이런 나에게 한국을 떠나 겉모습부터 다른 해외에 나간다는 것은 양극단의 감정을 가져다준다. 늘 익숙했던 한국을 떠나 새로운 사회, 환경을 접한다? 뭔가 두근거림과 설렘을 안겨다 주고 변화를 갈망하는 두뇌에 팍팍 생기를 가져다주는 호르몬이 샘솟기 시작한다. 또 다른 극단에는 두려움이 엄청나다. 낯선 곳에서 낯선 얼굴들 사이에서 어떻게 살지?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떻게 대처하지? 이 모든 편리한 환경과 시스템을 떠나 뭐 하라 생고생을 사서 하나? 이런 내적갈등이 극심한 나 같은 사람에게 '영어'라는 도구가 주어지지 않았다면 나는 내적 씨름만 한참 하다가 결국 떠나지 못했을 것이다.
두려워도, 무서워도 그리고 해외로 나가는 모든 준비과정이 지난하고 힘겨워도 '영어'를 사용하여 그 한 단계를 극복해 나갈 때마다 조금씩 두려움은 자신감과 성취감으로 바뀌어갔다. 무엇보다도 '영어'로 어떻게든 어디서든 일단은 부딪히며 살아갈 수 있지 않겠나 라는 막무가내의 배짱이 결국은 나를 이끌어갔다.
덕분에 직장을 다니고 수입이 생기면서부터는 천천히 한 걸음씩 나를 세계라는 세상 속으로 이끌어가는데 열심을 냈다. 영어가 아니었다면 그리고 영어를 활용하여 돈을 벌지 못했다면 나는 해외살이를 도전해보지 못했을 것이다.
2. 한국이라는 사회의 프레임에 계속 딴지를 걸고 싶어진다.
마냥 장점이라고 할 수만은 없다. 하지만 이어지는 나의 씨름이고 결국 작은 생각의 불씨는 점점 커져 어떻게든 어떤 행동으로 이어진다. 그렇기에 나의 이 내적 씨름이 몇 년 후에 어떤 결실을 맺을지는 현재의 나는 잘 모르지만 분명한 건 어떤 변화든 이 생각으로부터 파생되리라는 것이다.
언어는 사고와 직결된다. 우리는 생각이나 감정, 의지와 같은 내면세계를 모두 언어화하지는 않는다. 때로는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깊은 내면의 것들도 수없이 많다. 그러나 그 무한대에 가까운 내면의 세계를 결국 유형화시키는 것은 언어이고 이를 통해 우리는 가장 먼저 나 자신과 소통하고 그리고 세상과 소통한다. 내면은 언어를 통해 나타나서 자신만의 모양새를 갖추게 되고 그리고 이 세상에서 어떤 변화이든 파장이든 만들어 내며 자신만의 생명력을 가진다. 말에는 힘이 있다. 이것은 진리이다.
영어를 전공하고 원어민급은 결코 아니지만 이 언어와 상당히 긴 시간 씨름하면 살다 보니 나의 사고도 두 세계를 오고 간다. 모국어인 한국과 영어가 주 언어인 서구권.
어려서부터 영미어린이 문학전집을 좋아했고 영어를 좋아하면서부터는 팝송, 영화, 드라마, 소설 등 영어를 재료로 하는 수많은 문화채널들을 즐겼다. 영어는 그렇게 내 안에 폭포수처럼 내가 살아온 한국사회가 아닌 또 다른 영미권 문화의 바다를 선사했고 그렇게 나는 영어를 매개로 한국에서도 끊임없이 새로운 사회를 찾고 부딪히고 경험했다.
그렇게 형성된 나의 가치관과 세계관은 종종 한국이라는 공간 안에서는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많은 것들에 의문을 가지게 만든다.
왜, 정년이 보장된 공무원이면 계속하는 게 최고라고 생각해야 하지?
덜 벌고 덜 쓰는 라이프스타일은 불가능한가?
더 작은 집에서 덜 소비하면서 살면 이상한가?
아이들이 꼭 공교육을 받아야 하나? 홈스쿨링 같은 대안은 정말 힘든가?
왜 부모가 아이들의 미래까지 책임져야 하지? (우리 집은 아들 둘. 장가갈 때 집까지 책임져주는 것은 이미 안 하기로 했다.)
왜 부모님은 아직도 다 결혼해서 장성한 자녀들의 삶에 노심초사하실까? (우리가 좀 더 경제적으로 잘살았다면 아닐 수도 있겠지만 일단 부모님들의 자녀 양육은 우리나라에서는 참 길고도 오래 이어지는 것 같다.)
왜 사회가 정해놓은 역할과 기대치는 이렇게 경직되어 있고 또 높기만 한 걸까?
왜 이렇게 우리는 비슷한 고민들만 하는 걸까?
사람 사는 곳, 어디든 비슷하니 한국이라고 유별난 고민을 하는 것은 아니고 나의 이러한 딴지 질문들은 한국이라는 한 환경에만 국한된 것도 아닐 것이며 영미권이라고 인생사가 유독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나의 질문은 한국 이라서가 아니라 결국 내 현재 삶에 불만족하고 있는 나의 씨름일 뿐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영어를 했고 덕분에 짧게나마 이런저런 나라들에서 지내볼 수 있는 감사한 경험들이 쌓였고 그런 배경이 있어 이런 딴지라도 걸 수 있는 것이리라고 본다.
굳어지기 쉬운 나의 사고와 생각의 틀을 영어라는 언어는 끊임없이 두드리며 그 가운데 틈을 내고 흠집을 남긴다. 그리고 그 크고 작은 충격들을 고스란히 받으며 나아가다 보면 예전에는 하지 않았을 생각들을 한다. 그리고 그 생각들은 때때로 새로운 도전과 변화를 불러들인다.
그러니 영어라는 창이 열어놓은 세계는 위험하기도 하고 그 이상으로 매력적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