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출근하려고 보니 남편이 베란다 쪽에서 등을 한껏 구부리고 바쁘다.
무얼 하나 싶어 보니 이사 오면서 심었던 채소 모종을 가만가만 조심스럽게 통에 모으고 있다. 이사 온 집 베란다가 넓기도 하고 해도 잘 들어 남편은 처음부터 베란다 화단을 만들자고 즐거워했다. 어디서 큰 나무판을 구해와서 화단처럼 짜고 산에서 흙을 퍼와서 채운 다음 이것저것 심어서 베란다 텃밭을 만들겠다고 조경계획이 워낙 거창해서 설득하고 설득해서 일단 작은 화분 두 개에 배양토를 사고 씨를 심는 것으로 의견 조율을 하고 시작한 우리의 첫 텃밭.
상추와 쑥갓을 심고 아이들과 함께 물 주고 위치도 바꿔가며 정성을 기울이고 이주정도 시간이 지났는데 아침저녁으로 챙겨 볼 때마다 살짝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처음 싹이 올라올 때는 "야하!" 하는 감탄이 나왔다. 생명이란 그 자체로 얼마나 예쁘고 놀라운지 아무런 변화가 없는 듯했는데 어느새 연초록의 작은 싹들이 하나 둘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러다니 작디작은 아기 손같이 여린 떡잎이 벌어지고 드디어 상추다운 면모로 자라는가 하는 섣부른 기대도 키웠는데 이후로 이 아이들은 비실 비실 줄기도 못 세우고 한쪽으로 계속 눕기만 한다.
보다 못한 남편이 옮겨 심어야겠다고 오늘 아침부터 작업을 시작한 것이다.
그저 심고 물만 주면 상추나 쑥갓이 간밤에 쑥쑥 자라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아침 해도 뜨거운데 그렇게 베란다에서 몇십 분을 애를 쓰며 약하게 힘을 못 내고 있는 채소 아기들을 돌보고 있는 남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아빠가 떠올랐다.
아빠는 뭐든지 잘 키웠다. 아빠 손을 거치면 식물도 꽃도 나무도 채소도 쑥쑥 잘 자랐다.
처음 이사올 때 나름 조경은 되어있었지만 다소 밋밋하게 비어진 공간이 많았던 작은 화단도 아빠의 손이 닿기 시작하자 몇 개월 만에 다채롭고 풍성한 공간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기존의 나무는 더 힘 있게 가지를 세우고 잎이 무성해지더니 아빠가 손을 꾹꾹 눌러 다진 마당 흙에서는 어느샌가 새로운 식물이 올라오고 계절 따라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마당이 풍성해지는 만큼 봄에는 나비와 각종 곤충이 날아들고 나무 그늘이 넓어지는 만큼 아침에 새소리는 더욱 경쾌해졌다. 힘없이 비실비실하던 난초도 화분도 아빠 손이 닿으면 알뜰히 살아났다.
아빠가 만드신 작은 텃밭에서는 우리 가족이 다 먹고 이웃에 나누어도 한 바구니가 남을 만큼 상추며 깻잎이며 각종 푸성귀가 넉넉하게 자라났다. 오늘 그렇게 배부르게 먹었는데도 다음날이면 또 쑥쑥 자라나 있었다.
아빠 손이 닿으면 생명 있는 것들은 그렇게 제 몫을 다하고도 더 자랐다. 더 푸르러지고 더 곧게 키를 세우고 더 그늘을 넓게 펼치며 또 다른 생명에게 여유공간을 내주기도 했다.
동물을 키워본 적은 없지만 아마 아빠는 개도 고양이도 다 잘 키우셨을 것이다.
아빠는 어떻게 그렇게 생명 있는 것들을 알뜰살뜰 잘 키우셨을까?
아침저녁으로 돌보는 섬세한 노력과 손길이 물론 당연히 따랐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제 와 돌아보면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아빠가 따뜻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빠는 사람에게도 식물에게도 따뜻한 사람이었다.
그 따뜻한 손길로 식물을 한번 더 어루만져 주고 돌봐주니 식물도 잘 자랐던 것 같다.
따뜻한 성실함. 그 일상이 생명을 키운다.
아빠가 참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