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온 지 두 달이 되어간다. 이사는 미니멀라이프를 실천하기에 정말 좋은 기회이다. 이사 준비를 하면서 본격적으로 집 안의 모든 짐들을 챙겨보게 되고 이 과정에서 남길 것과 버릴 것도 자연스럽게 구분하게 된다.
미니멀라이프를 알고 실천한 지 4년 여가 되어감에도 이사를 하려고 짐을 챙겨보니 여전히 짐이 많았다.
주방이나 옷 관련한 짐은 많이 줄었는데 아이들 짐의 경우 세 살 차이가 나는 형제라 형의 옷이나 물품은 동생에게 물려주려고 같이 가지고 있다 보니 양이 쉽게 줄지가 않는다. 유용하게 쓸 물건들이니 이번 이사에서도 열심히 지고 날랐다.
미니멀 라이프에서 가장 빠르고 극적인 효과를 볼 수 있는 부분은 바로 큰 가구와 가전을 비우는 것이다.
작은 소품이나 물건도 필요가 없다면 비움의 대상이지만 큰 가구를 비우고 나면 그 전과 후과 확연히 다르다.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하면서 나는 소파, 식탁, 책장, 서랍장 등 큰 가구를 시간차를 두고 천천히 비워갔다.
점점 공간과 벽에 여유가 찾아들기 시작했다. 소파를 치우고 깨끗하게 비어진 거실. 해가 금방 잦아드는 아파트 1층이었지만 오전에 거실 벽과 바닥에 수 놓였던 나무 그림자는 그 자체로 아름답고 우아한 작품 같았다.
이후, 우리 집에는 여전히 소파도, 거실 탁자도 TV 세트도 없다. 없어도 생활하는데 아무 지장이 없고 오히려 TV 없는 자리에 아이들의 놀이 소리와 대화가 가득 메워지니 만족감이 더 커서 이사를 마친 지금도 다시 들일 계획은 아직 없다.
지금 우리 집 거실은 이런 모습이다.
4칸짜리 나무 책장은 이사 온 아파트의 재활용센터에 나와있던 것을 남편이 냉큼 데리고 왔다. 가지고 와서 보니 아직도 튼튼하고 이음새도 멀쩡하고 무엇보다 내가 평소에 찾던 대로 4칸에 아담한 디자인이 참 예뻤다. 차곡차곡 아이들 책을 꽂으니 아이들의 큰 백과 그림책도 쏙 잘 들어간다.
미니멀 라이프를 시작하기 전에는 우리 집에 책장도 책도 많았다. 아이 방 벽과 거실 벽, 남편 공부방 벽까지 책은 그득그득했다. 그러다가 책을 비우고 책장도 비웠다. 지금 우리 집은 아이가 정말 좋아해서 잘 읽고 소장하고 싶어 하는 책 시리즈를 제외하고는 모두 도서관에서 빌려 읽는다. 일주일에 두세 번씩 들르는 도서관에서 아이들이 직접 책을 고르고 빌려서 대출기간 동안 읽는다. 아이들이 한 번에 빌려오는 분량만큼 꽂으면 딱 이 앙증맞은 책장 4칸에 들어맞는다.
내 책은 한 번에 두세 권 분량인데 주방 식탁 옆 붙박이 수납장에 꽂아둔다. 수납장도 충분히 책장이 된다.
하나의 가구로 다용도로 사용하는 것이 미니멀 라이프의 매력이다.
책장 옆에 세 칸짜리 부직포 수납선반은 00소에서 3000원에 구매한 조립식 신발 선반장이다. 상품 이름은 신발 선반장이지만 크기도 높이도 지금 우리 아이들의 장난감 정리장으로 제격이다. 끼우기만 하면 되니 조립도 간편하고 부직포 재질이지만 프레임은 가볍고 얇은 금속 재질이라 그 뼈대 위에 아이들 장난감 상자를 걸쳐주면 전혀 가라앉지 않는다. 아이들 장난감이야 아무리 많이 담아도 무게가 많이 나가지는 않는다.
아이들 장남감을 각자 넣어두는 수납상자는 000 홍삼세트를 비우고 나온 박스를 활용했다. 문구점에서 파는 선물상자 못지않게 튼튼하고 단단해서 물건 수납에도 알맞다. 이전에 집 정리에 열을 올리던 시절에는 수납함을 색깔별로 디자인별로 맞춰가며 많이 구매했었다. 처음에 보기에는 깔끔해보였지만 수납함이 생기니 더 물건을 모으고 사들일 뿐 아니라 수납함 자체가 또 다른 청소와 관리의 일거리가 되어가면서 이후 제일 먼저 비운게 수납함이었다. 이제는 최대한 집에 흔히 있는 신발 박스나 다른 제품 포장 박스를 수납함으로 활용한다.
수납선반의 크기를 제한해 두면 아이들도 이 이상 장난감의 양을 늘리지 않으려고 잠재적으로 의식을 한다.
한 번은 교회에서 어린이 행사가 있어서 아이들이 선물을 많이 받아왔다. 이 수납함에 다 들어갈 수 없어서 아이들에게 "이제 안 쓰는 것은 버릴까?" 하고 제안하고 각자에게 비울 수 있는 봉지도 주었더니 짧은 시간 안에 아이들은 이제 더 이상 필요 없는 장난감들을 빠르게 비워냈다.
미니멀 라이프를 아이들과 함께 하면 자연스럽게 정리 교육이 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아이들은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고 자립심도 키우게 된다.
아이들이 저녁 내내 거실에서 놀고 나면 책과 장난감으로 거실은 어지럽다.
그래도 5분이면 정리가 다 끝난다. 딱 이 책장과 수납선반이 수납 가능한 분량만큼만 책과 장난감도 가지고 있기에 물건의 절대적 양 자체가 많지 않다. 덕분에 정리가 금방 완료된다.
낡고 오래되어 문이나 붙박이장의 시트가 일어나고 장판도 뜨고 벽지는 빛이 바래진 오래된 월세 아파트. 하지만 물건을 줄이고 비우고 정리를 한 후 돌아보는 우리 집은 오래되고 따뜻하고 정겹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