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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는 지금 Nov 30. 2023

미니멀 라이프가 조명한
내 안에 씨름들.

미니멀 라이프를 내 삶의 여러 부분에 적용해 보면서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는지 나름 실험 중이다.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환경은 차라리 미니멀하게 만들어가기가 쉬웠다. 쓰지 않는 것, 앞으로 쓰지 않을 것 등을 구분해서 순간 일어나는 마음의 갈등을 살짝 정돈하고 나면 비움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비우면 바로 그 효과가 나타나는 과정은 오히려 투입 후 결괏값이 뚜렷해서 해나갈수록 더욱 조급한 내 성격에 딱 인 듯해서 한때는 "정리전문가" 자격증을 알아보기도 했다.


어려웠던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역들이었다. 어린 왕자가 일찍이 말했듯이 정말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중요하다는 그 무게감은 묵중 한데 정작 보이지 않는 그 세계 속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미니멀 라이프를 실현시켜가야 하는지 방향을 찾아가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물건을 사는 것도 그 물건을 비우게 되는 것도 결국 내 내면 안에서 일어나는 어떤 변화에서 발생한다는 것을 점점 더 분명하게 알게 되면서 미니멀 라이프의 뿌리를 찾아가는 심정으로 보이지 않는 세계 속으로 한 걸음씩 걸어 들어갔다.


먼저는 남들이 좋다고 하니 나도 해야 될 것 같아 해서 사들였던 물건 뒤에 숨은 내 욕심의 영역이다.


아이들의 책을 상당 부분 기증하고 또 버렸다. 그 과정에서 나 자신에게 물었다. " 왜 이렇게 많은 책을 이고 지고 살았니?" 첫아이를 임신하고 읽게 된 유명한 육아서를 통해 "책육아"의 효과를 과신했던 탓이었다. 책으로 한 아이를 내가 꿈꾸는 모습으로 만들어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세상에 좋다고 하는 책만 다 읽히면 내 눈앞에 "완벽한" 아이가 서있게 될 것만 같았다. 큰 아이는 책을 참 좋아했고 집에 있는 책들 대부분을 즐겨 읽기도 했다. 아이에게 책이라는 세계가 열린 것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그 뒤에 책으로 남들보다 유능하고 앞서는 아이로 키우고자 했던 나의 욕심을 인정한다. 책을 좋아하는 큰 아이가 또래보다 좀 더 빠르게 한글을 익혀가는 것을 늘 드러내지 않는 나의 자랑거리로 삼았음도 인정한다. 책을 읽으니 아이의 정서적인 부분의 성장이야 시간이 지나면 다 되든가 아니면 그조차도 좋은 책을 읽으면 성격 좋은 아이로 자연스레 자라게 될 거라 기대했던 나의 어리석음도 인정한다.


앞으로도 책을 새로 들이고 아이의 독서를 격려하는 것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그러나 내 안의 욕심을 절제하는 것 또한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이다.

아이가 자유롭게 물속에서 수영을 하듯 책의 바다를 유영할 때 나의 욕심을 투영시켜서 일정한 방향과 속도와 시간을 정해놓고 목표지점을 향해 빨리 헤엄치리라고 강요하는 엄마가 되지 말아야겠다.


요새 큰 아이는 공룡에 푹 빠져서 공룡책만 찾는다. 옆에서 지켜보는 나는 아이가 역사책이나 고운 문장 가득한 문학책이나 지적인 능력을 키워줄 것 같은 과학서적등을 더 봤으면 좋겠지만 아이는 이제 스스로 책을 고른다. 부모로서 좋지 못한 내용의 책을 걸러주는 것은 꾸준히 해야 하겠지만 특정 틀 안에 아이를 가두고 책과 관계를 만들어가는 아이를 제한하지는 않고 싶다.


이 욕심에 미니멀 라이프를 적용하는 것 또한 나의 씨름이다. 


두 번째는 미니멀라이프를 그 자체로 목적으로 여겨서 처음 미니멀 라이프를 시작하게 된 본질과 뒤집혀버려서 흔들리고 있는 균형의 영역이다,


처음 미니멀 라이프를 시작하면서 나는 하나하나 비워나가는데 거침이 없었다. 큰 가구가 나가고 거실이 비워지고 나자 일단 어느 정도 단계에 이르렀다는 성취감이 들었고 이를 바탕으로 다른 부분에서도 열심히 비우고 줄여갔다. 그렇게 신발과 옷가지를 비우고 화장품을 없애고 머리를 자르고 내 몸에 닿는 화학용품의 미니멀리즘을 향해 달리며 노메이크업, 노푸를 시도했다. 출근복은 두세 벌 안에서 교복처럼 바꿔 입어 가며 단순화시켰다. 나의 식탁은 때로는 김치와 나물반찬 하나를 곁들인 한 공기 밥으로 최소화되기도 하였다.


그러면서 없는 것, 있어도 가짓수가 최소한인 것에 목표를 두고 그것에서 만족을 얻었다.

물을 아끼기 위해 입었던 옷을 재차 입고 노푸를 추구하며 머리는 살짝 기름기가 도는 상태로 다녔고 노메이크업인 얼굴은 때때로 아파 보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은 조심스럽게 출근을 앞둔 나에게 "다른 옷은 없는지" , " 얼굴에 크림정도는 발랐는지" " 머리는 빗으로 빗었는지"를 묻기 시작했다.

나에게 불쾌감을 주지 않으려 최대한 배려한 질문들이었지만 꾸미지 않으려 노력한 것이지 예쁘고 향긋한 것을 당연히 참으로 좋아하는 나는 연이어 남편에게 추궁 아닌 추궁을 하기 시작했다.


" 옷에서 냄새나는지" , " 얼굴이 너무 누래 보이는지" " 머리의 기름기가 과하게 번들거리는지"


괜찮다고 하지만 정말 괜찮았다면 묻지도 않았을 질문들이었기에 그런 날이 며칠 반복된 후 나는 차츰 내가 균형을 잃어가고 있었고 미니멀라이프 자체를 목표화 하는 오류의 지점을 왔다 갔다 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몇 벌 되지 않는 옷을 반복해서 입다 보니 옷에서는 깨끗하지 못한 냄새가 났다.

화장기 없는 얼굴은 세수를 하긴 했지만 깨끗하고 단정한 느낌으로 하루의 시작을 열기에는 많이 부족했다.

물칠만 대충 한 머리는 뒤에는 눌리고 옆머리는 뻗치는 바람에 여러 번 빗어도 자꾸 궤도이탈을 하곤 했다.


내 몸에서 나는 퀴퀴한 냄새. 거울을 피하게 만드는 창백한 얼굴, 자꾸만 손바닥으로 다림질을 하게 만드는 머리.  이 모두가 미니멀 라이프를 시도한 결과물이긴 했지만 나의 하루를 행복하게 혹은 풍요롭게 만들어주지는 못했다.


나를 알고 나의 욕구를 잘 파악하기보다는 가짓수를 줄이고 보이는 비움에만 너무 연연하다 보니 살짝 옆으로 치우쳐버린 나의 미니멀 라이프.


그 균형을 다시 잡아가는 것. 미니멀 라이프를 도구삼아 아름다운 삶을 일구어가기로 한 첫 마음을 잃지 않는 것. 이것이 지금 내가 미니멀리즘을 실천해 가면서 씨름하고 있는 두 번째 영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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