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부터 감기약을 먹기 시작했다.
워낙 오랜만에 먹는 감기약인지라 몸이 어떻게 반응할지 약간 염려가 앞서기도 했지만 지끈거리는 두통에 온몸을 휘어잡는 오한의 아픔이 훨씬 더 컸기에 까슬까슬한 입맛에도 약을 먹기 위해 야무지게 밥도 챙겨 먹고 식후 30분 안내도 착하게 잘 지켜서 꼬박꼬박 감기약을 챙겨 먹었다.
처음 약을 먹고 나서 땀을 많이 흘렸다. 그리고 사흘여만에 잠다운 잠을 잘 수 있었다. 약기운에 의지해 잠이 더 깊게 든 것일 테지만 나에게는 절실했던 휴식이었다. 입고 있던 옷이 땀에 흠뻑 젖어 오히려 한기가 느껴지는 바람에 잠에서 깨어 보니 오후에 누웠는데 이미 초저녁을 훌쩍 넘긴 시간이었다.
가만히 내 상태를 살피니 지끈거리던 두통도 한결 가벼워졌고 마치 채찍처럼 찌르고 움켜쥐는 듯했던 오한도 잠잠해져 있었다.
다 나은 건 아니지만 회복이 시작된 것이다. 예전에는 몸이 좀 나아졌다 싶으면 더 이상 약을 챙겨 먹지 않았다. 약이 영양제도 아니고 일순간에 몸이 나아질 정도면 얼마나 약성분이 강하겠는가 싶은 기우까지 앞세워 내 마음대로 약을 끊어버리기 일쑤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내가 어떻게 느끼느냐를 그다지 신뢰하지 않기로 했다. 의사 선생님의 전문가로서의 진단과 처방을 더 신뢰하고 이왕 진단 받아먹기 시작한 약이 그 기능을 다 하도록 지켜보기로 했다.
더 궁극적으로는 내 몸이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점점 더 실감하게 되었기에 더 내 느낌 내 기분을 의지하지 않게 되었다.
한때는 무얼 먹어도 무얼 해도 내 몸은 내가 하는 대로 나를 따라와 주었다. 그래서 내 몸은 내가 어떻게 해도 되는 나의 소유라고 늘 여겼다.
그러나 이제 내 몸은 자신의 주장을 확실히 한다.
"이 음식은 안 맞아. 이걸 먹으면 불편해. 이건 안 받아줄 거야. 입안에는 들어올지 몰라도 위는 좋아하지 않을걸. 장이 불편 해할 테니 먹기 전에 한번 더 생각해 보는 게 좋을 텐데..."
이 이야기들을 무시한 채 먹거나 무리하게 일을 하면 몸은 뿔이 나서 마구 항의를 표한다. 머리가 아프고 소화가 안되고 지금처럼 감기로 하루 일과에 파업을 선포한다.
이제야 나는 내 몸이 이 땅을 사는 동안 조물주가 입혀주신 옷이며 다시 그분께 돌아갈 때 고이 벗어 내려놓아야 하는 그분의 소유임을 인정한다.
내 것이라 착각하고 내 마음대로 함부로 몸을 대한 시간들을 후회하며 가만히 어깨며 팔이며 다리를 주무르며 몸에게 말을 건넨다.
"미안해. 소중하게 대하지도 존중해주지도 못해서... 함부로 대했던 것도 정말 미안해. 이제 좀 더 아끼도록 노력할게. 같이 해줘서 고맙다."
감기가 폭풍우처럼 내 몸을 훑고 지나가고 있다. 이 폭풍우를 내 몸은 나와 함께 담담히 통과하는 중이다.
내가 배운 이 지혜를 잊지 않고 내 몸을 귀한 손님 대하듯 존중할 때 우리는 이 폭우를 다 맞은 후 더 단단한 한 팀이 되어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