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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연 Jul 02. 2023

[에세이] 나는 결코 어머니가 없었다.

엄마와 딸의 공동 회고록을 읽고 떠오른 우리의 부산여행

지난 여름 문득, 나는 엄마와 단 둘이 여행을 떠난 적이 별로 없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아이 둘을 키우며 친정 엄마의 찬스를 어지간히도 써 왔지만, 그런 엄마가 나와 내 동생을 키울 당시의 이야기는 잘 듣지도 못했던 것 같다. 그냥 물을 때마다, 아휴 어지간했어. 둘이 빽빽 울면 동네 사람들이 나를 다 안쓰럽게 볼 정도였어. 정도만 투덜댔을 뿐. 그마저도 나는 어릴 때부터 몸이 약했던 동생이 그리 울었을 거라고 생각하며 나는 아마 걔때문에 울었을 거야. 라며 엄마의 힘든 육아의 책임을 회피하며 대화를 마쳤던 것도 같다.

일찍 결혼해 20대를 충분히 누리지 못했다는 내 인생의 부채감은 나의 마음속에 늘 지니고 있었으면서도 엄마가 우리를 낳아 기르면서 포기했던 엄마의 인생은 생각조차 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 시대는 누구나 다 결혼하고 그러면 집에서 아이 기르고 남편 내조하는 게 당연했던 시대라고만 생각하며 엄마를 시대에 내가 가둬놨던 것 같다.


그래서 내가 엄마에게 먼저 제안했다. 시외 운전은 자신 없는 나이고 엄마도 내 운전 실력은 이미 알고 있으니, 우리 둘이만 기차 타고 부산 여행 다녀오자고.

부산은 엄마에게나 나에게나 뜻깊은 도시다. 엄마는 아빠와 결혼 전 부산에서 큰 이모와 살면서 은행에서 근무했다고 한다. 어렸을 때 엄마가 은행에 함께 다녔던 엄마의 친구들과 찍은 사진을 본 적 있는데, 재킷에 펜슬 스커트를 입은 엄마의 모습은 너무 낯설어 지금도 그 사진이 기억난다. 엄마는 그 사진을 엄마의 화장대 구석진 곳에 넣어 두셨는데, 어쩌면 종종 꺼내보셨던 것일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지금은 든다.

그리고 나에게 특별했던 부산은 내가 임용 시험을 보고 발표가 나기 하루 전, 가족과 함께 여행 갔던 곳이었는데, 발표도 안 났는데 내내 가족들이 불안해하는 내 눈치를 보며, 합격하지 못해도 괜찮다며 이른 위로를 했더랬다. 나 참. 나 합격할 수도 있거든? 그런데 엄마만 꿈이 좋았다고 무조건 붙었다고 신나게 즐기라고 했었던 곳이 부산이었다. 여행에서 돌아온 다음날 아침 합격자 발표가 있었는데, 너무 피곤한 나머지, 그 시간에 일어나 확인하면 접속도 잘 안 될 테고 떨어졌다면 다시 잠이 오지도 않을 것 같아, 무려 한 시간을 더 자고 일어나 확인한 속이 참 편했던 나였다. 결과는 합격이었고 부산에서 내내 불안한 마음을 안고 여행했던 나는 그날이 돼서야 비로소 부산을 즐긴 기분이 들었다.


어쨌든 이렇게 특별한 사연이 있는 부산이 우리 단 둘의 첫 여행 장소로 적합할 것 같아, 기차표를 예약하고 비즈니스호텔을 예약하고 출발했다.


호텔에 짐을 맡기고 엄마가 아가씨 때 살던 곳부터 가보자고 했다. 엄마가 그쪽은 영도라는 곳인데 볼 게 하나도 없다고만 하시기에 그래도 가보자고 택시를 잡아타고 영도로 향했다. 영도는 바닷가 옆 가파른 길에 집들이 주욱 늘어서 독특한 풍경을 자아내는 곳으로 몇 번의 부산 여행을 했던 나도 처음 갔던 곳이다.  엄마는 골목 이곳저곳을 함께 두리번거리며 여기 많이 변했다고 평했다. 그러나 풍경이고 뭐고 너무 무더울 때라 더위나 좀 식힐까 하고 에어컨이 잘 나오는 그런 카페에 앉으니 나는 비로소 영도의 풍경이 보였다. 즐거워하는 엄마의 표정을 보니 오랜만에 효도하는 것 같은 기분에 나 역시 뿌듯했고, 엄마에게 여기 살 때 좋았냐고, 이모랑 둘이 재밌었냐고 물었다.

엄마는 " 아니, 여기서 이모랑 얼마나 힘들게 살았나 몰라. 시골집 떠나서 집 같지도 않은 그런 방에 세 들어 살면서, 은행에서 받은 월급은 동생들 키우는데 보내고 아주 힘들었어. "라는 말을 했다.


나는 나의 이십 대. 모든 게 충만했고 가능성이 있었고 삶의 어려움은 그저 눈앞의 시험이나 취직뿐이었던 그 시절의 나의 눈으로 엄마에게 질문했다. 엄마는 고단한 시대를 통과한 딸 많은 집의 둘째 딸이었고, 엄마는 내가 누렸던 자유를, 꿈을 생각지도 못한 그런 세대였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다.

그곳에서 엄마는 수다쟁이가 되어, 부산에서 살던 이야기, 이모가 결혼하면서 간신히 집을 넓혀 갔을 때의 이야기, 부산에서 친하게 지내던 이들의 경조사에 가지 못했던 미안함, 이제는 다들 보고 싶은데 내가 못 챙기고 살았다는 미안함에 주저하게 되고 이제는 그네들의 연락처도 모르는 것에 대한 아쉬움.


엄마의 과거 회상은 내 기대와 달리 아쉬움과 미안함, 어려움과 힘듦, 세상을 떠난 이모에 대한 그리움들로 채워져 있었다.


나는 엄마를 몰랐다. 아이를 낳고 엄마의 마음을 느껴봤다고 생각했다. 그런 엄마의 시대에서 엄마가 잃어버릴 수밖에 없었던 그것들을 몰랐다. 미숙했던 시기의 나와 동생을 키워 부족했던 육아와 긴 시간 살았어도 본인만의 전문성은 없는 것 같다는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몰랐다. 그 모든 것은 엄마의 잘못이 아니었는데 엄마의 잘못이라고 생각하고 자책했던 시간들을 몰랐다. 나에 대한 엄마의 기대가 그저 버거웠던 시간이 있었는데, 엄마의 자식 성공에 대한 기대는 그 시대에 엄마가 유일하게 꿀 수 있었던 꿈이었던 것을 몰랐다.


<나는 결코 어머니가 없었다>는 하재영 작가가 어머니의 삶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순으로 이야기가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어머니의 경험과 같은 시간의 작가의 경험이 날실과 올실이 되어 두 사람의 삶이 얽혀 있다. 읽다 보면 미술을 그만두고 사춘기를 겪었던 나의 경험과 무용을 그만두고 방황했던 작가의 경험이 겹치기도 하고 시집살이를 했던 작가의 어머니의 경험과 아들을 낳지 못한 우리 엄마의 경험이 겹쳐 하나의 역사처럼 느껴진다.


엄마의 회고록을 쓰면서 작가가 느꼈던 엄마를 몰랐다는 그 생각을 나도 부산에서 했다. 내가 엄마에게 부산에서 주고 싶었던 경험은 무엇일까. 나는 엄마에게 지나간 시간을 회상하며 다 키운 딸과 함께 본인의 과거 여정을 들여다보는 추억의 시간이 되길 바랐다. 엄마는 어떤 경험을 추억으로 남기셨을까? 나는 부산에서 내가 몰랐던 외면했던 엄마를 만났다. 엄마 이야기를 하며 엄마가 후회하고 자책하는 그 순간에 위로를 더하는 딸이 되고 싶었다. 딸과 엄마는 참 애증의 관계라 나는 이렇게 느끼고도 엄마를 서운하게 할 수 있고 엄마 역시 나를 화나게,,,, 할 수도 있지만,그래서 서로가 티격대기도 눈치 보기도 하며 사랑하고 챙기기도 하는 그러한 묘한 관계를 계속하겠지만, 엄마의 인생 자체가 우리나 주변의 것들이 아닌 엄마 존재 자체로 빛난다는 것을 엄마가 기억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우리의 다음 여행도 계속될 거라는 것도.



우리는 스스로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비로소 나 자신이 된다. 내가 엄마에게 주고 싶었던 것은 엄마에 대한 ‘책’이 아니었다. “나 자신으로 살지 못했다.”라고 말하는 엄마가 자기 삶의 저자가 되는 ’ 사건‘이었다.

@하재영, <나는 결코 어머니가 없었다.>의 서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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