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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연 Jul 03. 2023

[에세이] 내가 가진 것을 세상이 원하게 하라

fire족을 꿈꾸는 세상에서 keep going을 외쳐주는 인생의 조언

나이가 마흔이 되었다. 백 세 시대라고 하니 인생의 절반도 못 온 나이이지만 취직, 결혼, 출산과 육아 등의 인생의 큰 숙제를 얼추 해낸 산 중턱정도에 올라온 듯한 시기인 것 같다.


처음 교사가 되고 꿈꿔왔던 세상과는 달랐던 괴리감에 방황할 때 내 곁에 수업이면 수업, 학생지도면 학생지도, 그러면서 아이들도 잘 키우고 살림도 잘 해내는 선배들을 보면서 나도 저 나이쯤 되면 나의 일에, 나의 선택에 확신이 생기겠지.라고 생각했던 그 나이가 지금의 내 나이쯤 되는 것 같다. 그런데 내가 그런 사람이 되었냐고? 여전히 다른 길은 없는지, 이 길에 내가 맞기는 하는지 고민과 번민이 계속되는 삶을 살고 있다.


한 때는 인기 있었던 나의 직업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힘든 직업에, 또 업무에 비해 적은 월급으로(이건 동의한다. 왜냐면 월급이 정말 잘 안 올라요…….) 사람들이 외면하는 직업이 되어 가는 것 같다. 무엇보다도 AI가 등장하는 이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생각과 문화를 향유하는 트렌드에 제일 민감한 아이들을 만나는 이 일이 벅차다는 생각도 들고 그래서 과연 미래 사회에 어울리는 직업인지 나조차도 모르겠다.


탈출은 지능 순이라는데, 떠나야 하는 건 아닐까? 다른 일을 시작한다면 하루라도 젊은 지금이 적기 아닐까? 하는 생각을 나만 하는 걸까? 내 나이의 일하는 직장인들은 누구나 하는 고민인지 아직도 본캐를 구축했다기에는 모자라다 느끼는 나 같은 사람만 이리 흔들리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다지만  흔들리다가 꽃은 피우지 못한 채 스러지는 많은 줄기들을 우리는 안다.


30여년간 한 직장에 몸담았고, 퇴직 후에는 자신의 이름을 건 책방을 연 작가는, 이렇게 흔들리는 나에게 일의 즐거움과 기쁨을 떠올려 보라고 말한다.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이 길에 들어섰으니까 라는 이유의 일하는 이유 말고 일 자체가 주는 즐거움과 기쁨. 내가 이직을 하거나 그만두게 되더라도 그러한 기쁨과 즐거움의 순간들은 중요한 선택의 기준이 될 거라고.


그래서 최근 내가 일하면서 즐거움을 느꼈던 순간들을 떠올려 봤다.


순간 1. 설득 전략을 가르치고 모둠별로 설득 전략을 활용하여 나를 설득하라는 미션을 주었다. 설득의 주제는 “선생님, 다음 국어 시간 한 시간은 자유시간을 주세요!”

매사에 활동 의욕이 떨어지는 중3교실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게 일사불란하게 조사하고 대본을 작성하여 나를 설득하는 아이들을 보니 귀여워죽겠다. 어디서 찾았는지 각종 연구 결과는 물론, 유명인의 인터뷰에, 자신의 경험과 효과가 인정된 공부법 등의 근거를 들어 나를 설득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볼 수 있던 그 수업은 한동안 나를 웃음 짓게 했다.

(그래서 한 시간 쉬었냐고요? 당연하죠! 마침 다음 날이 공휴일이었어서 애들한테 쿨하게 하루 학교 쉬라고 했습니다!)


순간 2. 학급의 선행상, 예절상등 인성 관련 표창을 해야 할 때, 아이들의 의견을 수집하려고 구글 폼을 보내고 마지막 문항으로는 선생님께 하고 싶은 말을 넣었는데,

사랑합니다가 많아 미소가 지어졌다. 뭐 장난으로 썼을 확률이 높지만 장난으로 사랑한다는 말을 쓰는 스위트한 아이들과 함께하는 건 교사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니까.

그런데 그중 한 아이가,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오면 마음이 편해져요. 국어 수업 전에는 오늘은 무슨 수업을 할까 기대가 돼요.라고 남겨줬다. 아. 벅차라. 마음이 벅찬 응답이었다.


순간 3. 우리 학교는 점심 자습 시간이 있어 담임이 교실 임장을 해야 하는데, 나는 그 시간에 책을 들고 들어간 날은 책을 읽고 교탁이나 칠판이 지저분하면 그런 것들을 정리하는 편이다. 책을 보던 날 한쪽의 아이들이 조금 떠들고 있었는데, 책 읽는데 약간 방해가 되어 고개를 들려는 그 순간, “ 야 선생님 책 읽으시잖아 조용히 놀자”라며 스스로 조용해지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려 웃음이 났다. 얘들아 지금 너네 자습시간이란다.


쓰다 보니 즐거운 순간만 있는 것 같지만 물론 그렇지 않다. 행복은 찰나이고 더 많은 순간은 견디고 버티며 나의 자존을 지키려 고군분투하는 시간이 더 많고 길다. 해도 해도 쌓여가는 업무들과 아이들과의 갈등, 또 사춘기라지만 너무한 그 행동을 어디까지 참아줘야 하는가 하며 견뎌내는 시간도. 수학이 중요한 시기에 국어는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내 교과에 대한 회의의 순간도 나를 지치게 한다. 그런데 작가는  일이 잘 풀리든 그렇지 않든, 잘될 것 같은 희망이 보이든 그렇지 않든, 묵묵히 해보라고 말해준다.



그냥 붉어지고 그냥 둥글어진 게 아니라 태풍과 벼락, 무서리, 땡볕이 그 안에 다 들어앉아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어떤 인상적인 성취를 한 사람이 하는 ‘그냥 했다’라는 말속에도 하기 싫은 유혹, 아팠던 몸, 악평에 주저앉을 뻔한 경험, 된다는 보장이 없어 그만두고 싶었던 외로움등이 한가득입니다.

 그걸 다 건너 비로소 어느 지점에 다다른 겁니다. 그러니까 어떤 일을 꾸준히 한다는 것은, 그저 하지 않고 지나가는 날 없이 지낸다는 것뿐 아니라, 하고 싶지 않게 하는 현실과 마음을 넘어서는 뭔가가 있다는 뜻입니다.

@최인아 <내가 가진 것을 세상이 원하게 하라>


작가는 확신이 들지 않더라도, 때로는 하기 싫게 만드는 현실과 마음이 들더라도,나에게 즐거움은 무엇인지 내가 이 일을 통해 어떻게 성장하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며 그냥 하라고 말해준다.

내 주변에는 그렇게 그냥 하루하루를 때로는 견디고, 때로는 누리며 그렇게 살아갔을 좋은 선배들이 있다. 그분들도 내가 어떻게 20년을 하셨어요. 30년을 하셨어요 하면 어려움의 지점들을 넘고 견딘 자들만 지닐 수 있는 표정으로 그냥 했지 뭐.라고 대답하는, 자기만의 길을 만들어가는 선배들을 안다. 나도 그런 선배가 될 수 있을까. 그냥은 안되고 태풍과 벼락, 무서리와 땡볕을 다 견디며 단단한 나를 만들어가야 가능하겠지.


끈기가 있는 성격이 아니라 좋아서 시작했던 일들을 끝까지 한 역사가 별로 없는 것 같다. 내 삶을 돌아보면, 좋아서 시작해서 지금도 하고 있는 일은 가정을 꾸려 나가는 것과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뿐인 것 같다. 그러나 이젠 끝까지 가는 그 길에 지름길을 찾지 않기로 한다. 그냥, 묵묵히 나아가기로. 이 길이 맞는지 아닌지, 고민하는 그 시간에 고민과 더불어 오늘 나를 행복하게 했던 순간들을 떠올리며 나 스스로를 다독이고, 내 스스로가 이루고 싶은 성장을 그려가며 끝까지 가야만 알 수 있는 그것들이 내 것이 될 때까지 keep going 해보기로 한다. 내가 선택한 이 직업 안에서 나 자신을 잘 돌보고 사랑하며 나의 자존을 잘 가꾸고 타인을 돕는, 세상에 이로운 그런 삶을 만들어 가고 싶다.

(@대문사진은 대전 시립미술관 이건희 컬렉션에서 본 장욱진의 그림- 자신의 몸과 마음과 모든 것을 그림을 위해 다 써버리겠다는 장욱진의 마음가짐을 나에게도 새겨보려고)

혼자 있는 시간을 잘 보내야 성장도 있다는 작가의 말처럼 혼자 책 읽고 글 쓰는 시간을 성실하게 갖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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