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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연 Aug 25. 2023

[에세이]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

나를 쓰는 존재로 이끌어 준 것들.

지난겨울이었다. 막내가 혼자 따로 성당 캠프를 갔다. 나와 남편 아들 셋이 무얼 할까 하다가 엄마가 가보고 싶은 책방이 있는데 같이 가보겠냐며 제안했다. 내가 가고 싶었던 책방은 세종에 있는 ‘단비책방’이라는 서점이었는데 가정집을 개조해 북스테이도 하는 그런 곳이었다. 서점에 대해 언젠가 듣고 가족과 함께 가야겠다고 생각했던 곳이라 오늘 가기 딱이라고 생각했다.

언제부턴가 인터넷 서점의 편리함 보다는 편안한 분위기의 동네 서점이나 작은 서점을 부러 찾아다니는 편이 되었다(물론 급할 때에는 인터넷 서점을 이용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그러한 서점들은 보통 장서류가 많지 않고 책방 주인이 고른 책들만 있기에 책방 주인의 감성과 취향에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이라 둘째에게 맞는 책들은 사실 약간 부족한 편이다. 그래서 그런 책방에 가면 둘째는 그림책 코너류를 서성이다 결국은 별로 읽고 싶은 게 없다고 할 때가 많았는데 오늘 둘째가 없으니, 책방에 가기에 딱 맞는 날이었다.


눈 덮인 길을 따라 큰 애가 고른 음악을 들으며 책방으로 달려갔다. 주차를 하고 단비책방을 보는 순간 벌써 마음에 들었다. 이렇게 고즈넉한 마을에, 눈 덮인 책방이라니. 안에 들어서니 서가에 빼곡하게 있던 책들은 묘한 따스함으로 우리를 반겨주었고 언제나처럼 큰애는 굿즈들에 마음을 빼앗겼지만, 오고 싶던 공간에 함께 왔다는 충만함에 어떤 책도 굿즈도 다 좋을 것 같았다. 그때 내가 고른 책은 은유 작가의 ’ 글쓰기의 최전선‘이라는 책이었다. 빨간 표지에 강렬한 폰트로 써져 있는 단단한 그 말. 사실 내내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나였다. 그러나 늘 써야 한다는 생각이 들면 아이러니하게도 한 자도 쓸 수 없었다. 무엇을 써야 할지, 이왕 쓰는 것 잘 쓰고 싶은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망설이다가 이내 접어버렸던 나날이 쌓여 있었다. 그래서 그 제목에 쉽게 마음을 빼앗겼는지도 모른다. ’ 글쓰기의 최전선‘을 집어 들고 차를 주문한 뒤 이층 다락에 올라가 책을 읽기 시작했다. 나와 남편 아들은 각자 고른 책을 들고 창가에 앉아 따뜻한 차와 커피를 호호 불어 마시며, 눈이 뒤덮인 창밖의 논 풍경을 눈에 담으며, 그렇게 책을 읽었다. 아직도 가끔 그날을 생각하면 엄청 추운 날이었음에도 따뜻한 느낌이 드는데 그건 남편과 아들도 마찬가지였는지 우리는 종종 그날을 이야기한다.

따뜻했던 단비책방 다락방에서 책 읽었던 기억



‘글쓰기의 최전선’을 읽고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은 더 커졌음에도 한참은 글을 쓰지 못했다. 글로 나의 일상을 기억하고 싶었고, 내 안의 정리되지 않은 그 무엇들도 정리하고 싶었으며 바쁜 일상 속에서 나를 찾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냥 하루하루를 사는 것이 아니라 오늘 하루를 생각해 보며 글을 쓰는 사람은 성장하지 않으래야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데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단비 책방을 다녀온 뒤로 그 마음은 더 커졌지만, 글을 쓰는 것은 여전히 어려웠다. 그래서 은유 작가가 책에서 권유한 대로 글쓰기 모임을 조직했다. 평소 독서 모임에서 나와 감상의 결이 비슷해서 마음에 담아두었던 한 선생님이 있었는데 우연히 일기 등의 글을 꾸준히 쓴다는 소식을 듣고 적극적으로 섭외에 임했다. 당시  그 선생님은 육아휴직 예정이었지만 기쁘게 나의 제안에 응해주었다. 또 한 선생님은 같은 교과의 선생님이었는데 언제나 편안한 얼굴과 말투로 함께 이야기하는 사람도 편안해지게 하는 마력의 선생님이어서 그 우아함을 닮고 싶어 흠모하고 있었기에 함께 글쓰기 모임을 하자고 제안했다. 역시나 기쁘게 응해주었다. 그렇게 우리 셋은 이름 한자씩을 따서 모임명을 정해 글을 쓰는 삶을 살기로 했다. (물론 이미 글을 쓰고 있던 분들이라 나와는 달랐다.)

나의 글쓰기 모임. 좋은 사람들과 무해한 이야기를 나누고나면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진다.



한 달에 한 번 글감을 정해 글을 쓰고, 마감을 정해 기한 내에 글을 올려 함께 읽고 서로의 글에 감상을 남기기도 전하기도 하며 응원한다. 누군가의 응원이 글쓰기를 독려하는 큰 힘이 된다는 것을 글쓰기 모임을 하며 알게 되었다. 하지만 나에게 여전히 글쓰기는 어려운 일이고 막상 글을 쓰려하면 어떤 말로 시작할지 이런 내용이 글을 쓸만한 가치가 있는지 고민하게 되고 망설이게 되며 글을 잘 쓰는 사람을 더욱 부러워하게 되었다. 어떤 글을 읽으면 ‘이런 문장은 어떻게 해야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며 내 문장이 더 초라해지기도 하고 또 어떤 비유는 너무나 탁월해 평소에 어떤 삶을 살아야 이런 비유를 할 수 있을까 하며 내 글이 다시금 부끄러워지기도 한다.


그러니 ‘계속 쓰려는 사람을 위한 48가지 이야기’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은 나에게 얼마나 다정한 격려인가. 글쓰기 상담이라니. 지금 나에게 딱 필요한 상담이었다.


책은 글을 쓸 때 누구나 부딪히게 되는 여러 가지 어려움들에 대해 작가의 경험을 나누어주며 이어진다. 글을 쓰려고 할 때 제목은 어떻게 지어야 하는지, 글감은 어떻게 고르는지, 퇴고는 왜 중요한지, 마무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 하는 기본적인 것들부터 글쓰기를 꾸준히 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글쓰기 시간을 사수하는 법 등의 꾸준히 쓰는 사람으로 사는 작가의 노하우까지 골고루 따뜻하게 담겨있다. 끊임없이 나에게 느껴지는 작가의 한 마디는 ‘쓰세요. 글쓰기는 꼭 하세요. 괜찮아요 써보세요'인 것 같았다.


잘 쓰고 싶은 욕심과 마음, 이것보다 더 멋진 문장은 없나 하는 두리번거림,  더 멋지게 마무리하고 싶은 그런 개인적인 생각들도 어쩌면 좋은 글을 만드는 동력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때로는 나를 다그치고 서두를 때 성과가 나기도 하니까. 그러나 그러려고 글을 쓰는 게 아니니까. 나는 작가가 되고 싶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바쁘고 정신없는 일상에 쉼표를 찍고 내가 살아낸 나의 오늘을 기억하고, 내가 읽은 책의 이 감동을 정리하며, 내 안의 내가 말하는 소리를 들으려고 글을 쓴다. 그리고 그렇게 용기 내어 조금씩 글을 쓰는 삶은 나를 조금 더 편안한 삶으로 안내하고 있다.


은유 작가의 책을 읽으며 나를 쓰는 사람으로 이끌어 낸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평소 틈틈이 읽던 책들. 책에 감동받았으면서도, 생각이 깨였다는 느낌이 들었으면서도 바쁜 일상에 이내 사라지고 마는 것에 대한 아쉬움, 좋은 사람들의 기억하고 싶은 대화들, 내가 사랑하는 이들과 있었던 행복했던 순간, 자신이 재미있게 읽은 책을 반짝이는 눈으로 말해주는 동네 책방의 책방지기와의 만남.

그런 것들과의 만남과 또 그런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이렇게 나를 쓰는 사람으로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글쓰기라는 것을 용기 있게 시작했으면서도 여전히 부끄럽기만 한 나는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에서 좋은 상담을 받고 온 기분이다. 책을 읽으며 나랑 가장 친한 친구인 남편에게도 글을 쓰라고 또 말해본다.  남편도 아들도 나도,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 글쓰기의 풍요로움을 느끼며 살길 바란다.




‘사진을 찍어보고 싶다’, ‘춤을 배워보고 싶다’가 아니라 하필 글을 쓰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나한테 글쓰기가 필요하고 또 내가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세요. 저도 온갖 상념이 엄습할 때마다 나에게 책을 써볼 기회가 생겼다면 두려워도 도망치지 말고 해 보는 게 지금의 최선이라는 생각으로 임했습니다. ’일단 막 쓰자, 대충 쓰자 ‘라며 스스로 달래고 긴장을 풀어주면서 썼어요. 완벽한 사람이 쓰는 게 아니라 쓰는 사람이 완벽해지려는 노력도 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건네봅니다.  



그래서 오늘도 일단 막 쓰고, 대충 써 본다. 계속 쓸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라며.


꾸준히 쓰는 삶을 위해 학원 숙제 밀린 아들 데리고 쓰기 나들이


@ 대문사진은 지난겨울 갔던 단비책방의 테이블. 동네의 작은 책방에서는 굿즈도 구입하고 차도 꼭 마시는 편입니다. 책을 좋아하는 마음으로 행복을 나눠주는 책방지기를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서요. 책방 있는 동네에서 살고 싶다면 책방에서 책을 사주어야 한다는 요조작가의 문장을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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