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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연 Sep 20. 2023

[에세이] 우주를 누비며 다정을 전하는 중

우리가 만나는 하나하나의 소우주들과 함께 읽고 쓰고 성장하는 나의 삶

요즘 들어 이상하리만큼 아무것도 하기 싫어졌다. 글 쓰는 삶을 살겠다고 호기롭게 선언하듯 말했으면서도 근 이 주간 어떤 글도 쓰지 못했다. 글뿐이랴. 책을 읽어도 자꾸 딴생각에 빠져들게 되었다. 새 학기가 시작되어 업무가 바빠지고, 또 개학이 늦었던 탓에 빨리 수업 진도를 나가야 하는 과중한 일상도 핑계가 되어주었지만 방학 동안 고생해 만들어 놓은 매일 글쓰기 습관이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것은 못내 아쉬웠다.


그러한 아쉬움에도 쉬이 글이 써지지가 않았다. 쓰는 것은 미루어두더라도 충분히 읽기라도 하고 싶었는데 책을 읽다 보면 오히려 더 무기력해짐을 느꼈다. 이상했다. 최근에 읽던 책이 ‘도둑맞은 집중력’이라는 책이었는데 정말 내 집중력과 글쓰기 및 읽기에 대한 애정을 도둑이라도 맞은 듯했다.


개학 첫날. 긴 휴식을 취했으면서도 나 역시 k직장인이기에 출근하는 몸이 그리 무거울 수가 없었다. 보통 개학 날의 1~2교시는 담임교사와의 시간으로 채워지는데, 나는 무려 3교시 교과수업까지 우리 반 수업이었다. 평소 넘치는 사랑을 쏟아붓던 우리 반이지만 내리 세 시간 함께 해야 해서 힘들지 않을까 하는 기우도 잠시, 3교시 수업을 마치고 교실 앞 문을 열고 나오는데

‘ 그래 나는 학교에서 수업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지.‘라는 생각이 들며 그제야 진정으로 개학을 맞이했다. 말을 많이 해야 하는 직업이고 오래 서 있어야 해 체력의 소모도 많고 사춘기의 예민한 아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야 해 감정도 많이 쓰는 일이라지만 나는 사실 내 일을 좋아했다. 내가 좋아하는 책을 읽고 반짝이는 눈으로 말해줄 수 있는 내 교과도 좋고, 똑같은 문학 작품을 함께 읽고 서로 다른 해석을 나눌 수 있는 수업 시간도 좋다. 더불어 중학생이 얼마나 귀여운지는 옆에서 사는 나 같은 사람만 보는 행운이기에, 중학교에서 근무하는 교사라는 직업에 늘 감사하며 살아가는 나다.


무기력으로 가려진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사실최근에 같은 일을 하는 선생님들의 잇단 자살 소식을 알게 되고 그들이 경험한 교권 침해 사례를 여과 없이 전해주는 뉴스를 통해 접하고 나니 마치 내가 경험한 듯이 아픔과 고통이 전해졌었다. 평소에도 타인에게 감정이입을 잘하는 편이라 잔인하고 무서운 사건 사고 뉴스는 피하는 법인데 이번에 보도되는 일련의 사건들은 그럴 수가 없었다. 내가 일하는 학교라는 공간이 누군가를 저렇게도 괴롭게 할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괴로웠고, 그런 상황에 나에게 발생하지 않았다고 해서 단순히 안도하기에는 그들이 겪은 고통의 시간이 너무나 상상되어 아팠다. 그리고 그러한 현실은 쉬이 바뀌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은  나에게 글을 읽는 것도 쓰는 것도 무기력하게 했던 것 같다.


그러던 중 좋아하는 국어 선생님의 책 출판 소식을 들었다. 평소 다정한 말투와 따뜻한 품성으로 나에게 귀감이 되어주던 선배 선생님이고 최근에는 나와 글쓰기 모임을 함께하는 좋은 글벗이 되어 주는 선생님이다. 그런 선생님의 글들을 흠모하는 마음으로 종종 읽었는데 인쇄된 종이를 넘기며 읽을 수 있다니 오랜만에 편안하게 책을 읽고 싶다는 마음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실로 편안한 마음으로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오랜만에 푹 빠져 읽는 독서였기에 마지막 책장을 넘기고 나서 드는 마음이 반가웠다.



어쩌면 나만의 특별한 능력이란 자기 자신을 스스로 돌볼 줄 아는 것 아닐까, 글씨를 잘 쓰는 것도, 농구를 잘하는 것도 특별하지만 밖으로 보이는 것보다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며 자기를 응시하는 일이 더 중할지 모른다. 내 감정을 들여다보고 이런 반응을 보이는 자신을 알아 가는 일. 나를 찾아가는 일은 평생에 걸쳐서 이루어질 테니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내 안에 특별한 능력이 있음을, 가능성이 있음을 믿고 살아가는 일일 것이다. 나는 아직 쉰 살의 나를 알지 못하고 그 후의 삶 또한 모른다. 하지만 나를 사랑하면서 내면을 가꾸며 살아갈 것은 분명하다. 내가 만나는 아이들에게도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자신을 돌보는 일을 통해 자기를 살아내도록, 자신을 살려내도록 격려해야겠다.

<@우주를 누비며 다정을 전하는 중>


선생님의 글을 읽다가 나에게 보내는 듯한 격려를 받았다. 혼란스러운 세상, 어지러운 뉴스 속에서 나의 내면을 자세히 돌아보며 나를 응시하는 일. 지금의 내 감정을 들여다보고 내가 하고 있는 일들에 감사하며 또, 나를 살아내고 살려내라는 글귀는 몹시도 힘이 되었다. 책의 제목처럼 다정이 내게도 전해졌다.


더불어 이 책은 국어 선생님의 다양한 수업 에피소드들이 담겨 있는데 읽으며 수업의 아이디어도 많이 얻게 되었다. 어쩌면 이렇게 다정한 수업을 계획하고 진행하셨을까 하는 마음에 새삼 부러움과 존경의 마음이 인다. 다양한 수업의 에피소드들을 읽으며 아이들의 모습이 상상되어 웃음이 나기도 시와 소설을 제법 감상해 내는 아이들이 대견하기도, 또 그런 수업을 꾸려나가는 선생님의 다정함에 미소가 지어지기도 했다. 그랬다. 나 역시 이런 순간순간들을 누리고 있었음에도 어지러운 뉴스로 제대로 감사하다 여기 지도 못했던 것 같아 내일 하게 될 나의 수업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사실 지금 기나긴 명절 연휴를 앞두고 수행평가까지 해야 해 진도의 여유가 없는 나날이다. 그래도 시간은 흘러가니, 명절이 지나고 아이들이 힘겨운 시험을 마치고 나면 선생님의 수업에서 얻은 힌트들을 가져와, 나도 아이들과 도서관에 앉아 편안히 시를 읽어보고 싶다. 힘들고 지친 아이들의 마음에 위로가 되는 시처방전을 써서 나눠보고 싶다.

선생님이 사랑을 담아 보낸 책을 읽고, 나 역시 다시금 기운을 내서 수업시간에 사랑을 보내보고 싶다. 그렇게 성장하는 우리를 꿈꾸며. 꿈꾸는 나를 잃지 않기를 바라며.  

역시 다정은 힘이 세다. 그것을 알고 있는 선생님의 글을 읽을 수 있어 좋았다.

향초를 켜고 책을 읽었다. 달콤한 향초의 향과 다정한 글귀가 나를 말랑말랑하게 해준다.

<표지사진은 바라보기만 해고 편안했던 오르티세이의   풍경. 책을 읽는 동안 내 마음도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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